長篇小說



金 飛

 

 



데리다 - 침입, 생각의



"그건 너무 쓸데없는 생각이다. 물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너는 지금 하지 않아도 될 생각에 매달리고 있는 거 아냐? 검은 색의 꽃은 왜 존재하지 않는 거지, 왜 네모난 생명이란 존재하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은 쓸모없잖아? 해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뭐 호기심을 가질 수도 있는 거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일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 걸까?"
  "왜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될 수도 있죠."
  "도움이 되긴 무슨 도움이 되냐? 호기심이라는 것도, 너희들처럼 어린놈들에게나 쓸모가 있지, 니들도 나이 들어봐. 그건 다 쓸모없는 에너지 낭비라고 귀찮아 할 테니까."
  "형이 쓸모 있다고 생각되는 그 모든 것들도, 결국 예전에는 쓸모없다고 생각되던 사람들의 아이디어 속에서 나오고 만들어진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 거예요? 세상에 쓸모없는 생각들이 어디 있어요? 그걸 너무도 간단하게 폐기시켜버리는 기득권 세대들의 몰이해가 더 쓸모없는 거지."
  "그건 용호 형 말이 맞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형이 말하는 그 어린 놈, 나이 먹은 사람들 하는 투의 말하는 방식은 정말 쓸모없는 것 같아요."
  "이 자식들이 또 시작이네? 그럼 오랜 시간에 걸친 경험과 노하우들이 전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말이야, 뭐야? 너희들이 누리고 있는 지금 이 세상도 그런 세대들의 거듭된 희생과 실패를 바탕으로 세워진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 거냐?"
  "저희들을 이런 불합리하고 이기적인 세상 속에 몰아넣은 것도,  그런 세대들의 거듭된 희생과 실패의 결과기는 하죠."
  "상우 오빠나 용호나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어느 쪽도 동의할 수 없지만, 잎새의 생각이 스스로를 너무 옥죄는 거라는 데리다 오빠의 이야기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애. 그건 아닌 거야. 날아오르려면 날개를 펴면서 몸을 들어 올려야지, 오히려 발톱으로 무언가를 꽉 움켜쥐고 있으면 어떡해?"
  "언제나… 언제나 그랬던 것 같아요. 내 존재 자체가 그렇잖아요? 물 위에 그린 그림 같고, 새까만 종이 위에 검은 펜으로 적은 기다란 편지 같고."
  "그래서, 그 형한테는 연락이 아예 안 와?"
  "사랑이 아니라잖냐? 사랑이 아니라는데 뭐 할 말 다했지. 연락은 무슨 연락을 해. 이게 그냥 툭탁거리는 사랑싸움 같은 건 줄 아냐?"
  "왜, 나도 그 사람이랑 싸우면 연락 안 하고 그러는데 뭘. 그러다가 몇 달 지나면 내가 하든 그 사람이 하든, 결국에는 다시 연락하고 사과하고 만나고 그러는 거 아냐, 사랑이라는 게?"
  "사랑이 아니라니까."
  "왜 사랑이 아니야? 사랑이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고 사랑이 아닌 게 되는 건가, 그게? 나는 내 여자 친구가 몸으로든 말로든 사랑을 표현하거나 보여주지 않아도, 그래도 사랑인 걸 알겠는 걸? 사랑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사랑이 아닌 게 되는 건 아니지. 너도 그런 말 들었다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건 너무 바보 같애."
  "그건 현아 말이 맞다. 그건 오히려 너무 비겁해. 그 사람 입장에서는 어떤 핑계를 찾고 있었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그 사람과의 관계에 어떤 확신이 없었으면서 어떤 핑계될만한 게 나타나기를 기다렸던 사람처럼 말이야. 비겁하다, 그건."
  "이 사람들이 왜 이래? 언제는 본인의 입장이나 마음이 중요한 거라고 그렇게 감싸고 돌 때는 언제고, 잎새가 자기 스스로가 사랑이 아닌 것 같다잖아? 사랑이라고 믿어버리면 자신이 알고 있는 정체성이 흔들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믿어버리면 사랑이라는 그 말에 신뢰가 가지 않는 다잖아?"
  "서로 좋으면 그만이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서로 좋았으면 상대방이 여자든 남자든,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거냐고? 결혼했든 결혼하지 않았든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사랑이라는데, 분명히 사랑이라는데? 아야야!"
  "그건 아니지, 이놈아! 그래도 지켜야할 건 있는 거지. 물 위에다가 집 짓냐? 날개도 없는데 날겠다고 뛰어내려? 그래도 기본적인 바탕이 있어야 그 위에 사랑이든 뭐든 시작하고 만들어나갈 거 아니냐고. 쟤는 지금 그 밑바탕이 흔들린다잖아? 그래서 그 놈도 사랑이 아닌 거라고 말했던 거고."
  "잎새 누나가 할 말 있는 거 같은데요?"
  "그래? 뭔데? 말 해봐, 그 말이 그 말 아냐? 내 말이 틀려?"
  "다들 정말 바보처럼 왜 이래? 언제부터 사랑이라는 게, 말로 다 표현되고 정확하게 나눠지고,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였어? 사랑이라는 건 두 사람만 아는 거 아냐? 두 사람도 결국 이렇다 저렇다, 말로 해서 사랑을 느낀 게 아니라 마음으로 다가왔으니까, 그렇게 느껴졌으니까 사랑이라고 확신했던 거 아니냐고? 근데 왜 자꾸 거기다가 옳으니 그르니, 맞네 틀리네 단서를 가져다가 붙이는 거냐고?"
  "왜요, 왜 자꾸 손을 들여다봐요, 누나?"
  "왜, 악수하고 둘이 사랑하자고 계약이라도 맺었던 거야? 그래서 계약 파기라도 선언하고 싶은 거야?"
  "악수 같은 게 아니지. 그거보다 더 찐한 거였겠지."
  "뭐 이런 거? 이렇게 끌어안고 입 맞추는 거?"
  "아, 더러워! 뭐예요, 형! 어디다가 입을 맞춰요?"
  "왜 뭐가 어때서? 정용호, 이제 너랑 나랑 계약 맺은 거다, 알았지? 이렇게, 이렇게……."
  "너희들 심각한 이야기하는데 자꾸 쓸데없이… 아, 어서 오세요."
  "여기 정용호 있죠?"
  "아이 저리 안 가요? 저리 가라고요!"
  "왜 인마, 너도 좋잖아? 내가 입으로 해줄까? 입으로……."
  "정용호!"
  "어? 엄…마?"
  "너 이리 안 나와! 당장 그 더러운 구석에서 안 나올 거야, 당장 거기서 안 나와!"
  "아… 안녕… 하세요."
  "당장 거기서 나와! 엄마 혀 깨물고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그 불결한 데서 나오라고! 당장 나와!"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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