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잎새 - 향기로운, 지독하게

 

 

 

  지독하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던 건 열 일곱 제일 친했던 친구 S의 장례식 때부터였다. 일반 학교가 아닌 외국어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언제나 어떤 괴리감이었던 학교라는 존재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았다. 선생님들을 포함해서 매번 얼굴을 마주하는 같은 반 아이들은 다른 모양의 교복으로 성별이 나뉘어져 있었을 뿐, 소통할 수 없는 존재라는 측면에서 내게는 똑같은 인형이었고 똑같은 벽이었다.
  그나마 서울 외곽의 학교였던 중학교에 비해서는 나았던 것이, 공부를 잘하던 아이들이 모여선지 아니면 더 이상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고 이해할 마음의 여유 같은 걸 떠올리는 아이들이 없어서 그랬는지 어쨌든 고등학교는 더욱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물론 그것은 더욱 또렷하게 만져지는 괴리감이기도 했고.
  그렇게 서늘하고 답답한 공기 속에서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커다란 덩치의 말이 없든 나의 친구 S는, 내가 매일 학교에 등교하는 단 하나뿐인 의미였다. 그렇다고 원래 말이 없던 그 친구와 대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면 이다음에 나는 성전환수술이라는 것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을 때 그는 '그러냐? 행운을 빈다.'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의 그 짧은 한 마디가 나는 그 어떤 장황한 설교나 설득보다 더욱 반가웠고, 그 이후로 나는 그를 나의 친구로 생각하게 되었다. 워낙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닌 곰 같은 외모여서 친구 이상의 감정이 느껴졌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런 그의 담담함은 그 즈음 나에게 가장 큰 위로였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기말 고사가 끝나고 그 친구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슬픔보다는 배신감이 먼저였다. 중학교 시절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나 자신의 혼란으로 여러 번 자살 사이트를 들락거렸고, 그 때 알게 된 자살하는 갖가지 방법에 관해 S에게 말했던 것은 나의 고통을 알아달라는 치기어린 애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는 여전히 담담한 말 몇 마디나 피식거리는 침묵으로 자살을 이야기하고 생의 마지막을 아무렇게나 더듬고 있는 내 말들을 묵연히 듣고만 있었고.
  그가 살아있을 때에는 그의 커다란 덩치마저도 보이지 않는 듯 외면하며 지내다가, 그가 죽고 나니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애도의 꽃송이를 보며 울먹임을 들으며 나는 그들의 이율배반이 역겨웠다. 선생님들을 포함하여 모든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을 때 나 혼자 담담한 얼굴로 소리 없는 안녕을 말했던 것은 그 아이와 나만의 소통 방식이었던 건데, 그런 내게 반 아이들 모두는 하나같이 입을 모아 지독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굳이 거부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어쩌면 그 말이 최초로 나를 선명하게 짚어내는 또렷한 나의 정체성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엄마가 이혼을 하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다시 재혼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마음대로 하시라 대답하고 관심을 끊어버렸던 것도 그런 지독함이었을 것이다. 뒤늦게나마 자신의 삶을 찾아야겠다며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가겠다고 엄마가 공항에서 전화를 걸어왔을 때, 그녀의 보고서 같은 생존 방식 몇 마디에 담담하게 '알겠어.'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던 것도 그런 지독함이었다. 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와 뭐 이런 부모들이 다 있느냐고 엉엉 울어버렸을 때, 나에게는 왜 슬픔이나 아쉬움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걸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자문했을 때에도, 그런 내게 동생이 지독하다고 말했을 때에도 역시 그건 어색하거나 낯선 말이 아니었다.
  성전환수술을 준비하면서 이태원의 트랜스젠더 클럽에 가 이따위로 살지 말라고 트랜스젠더 종업원들 중에 하나와 멱살잡이를 했던 것도, 어쩌면 그렇게 지독했던 내 모습의 당연한 일상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성전환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자랑처럼 이력서 안에 적어놓고서 번번이 채용을 거부했던 세상의 차가운 모습을 마주하면서도 부당하다거나 맞서 싸울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은 채 돌아설 수 있었던 것도, 저항하며 정의로운 당당함 따위가 아닌 그저 지독함이었을 것이다.
  소위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들 중에 단 한 번도 스스로가 여자임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는 마흔이 다 된 트랜스젠더를 만난 적이 있었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있는 그에게 위선 떨지 말라, 자기 최면은 집어치우라,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던 것 또한 그런 지독함이었을 것이다. 성전환수술을 하고 여자의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채로 뻔뻔스럽게 끝까지 생존해주겠다 공공연히 떠벌렸던 것도 당연히 그런 지독함이었을 것이고.
  내가 가진 모든 나의 정체성이 불안하고 흔들리며 유약한 것이었는데, 생각해보면 그건 내게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유일한 정체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신념이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믿음이나 희망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거칠고 폭력적인 그것은 분명 다른 이름이어야 하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결국 생존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존하고 있다.
  내게 비명을 질러놓고 도망치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를 쫓아가거나 추궁하든 용서를 빌든 전화 한 통 걸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런 지독함이었을 것이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도 않고 담담하게 혼자서 터미널까지 걸어가 버스를 타고 용인으로 올라올 때까지, 심지어 버스 안에서 TV를 보던 사람들과 함께 푸슬푸슬 웃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지독함이었을 테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쓰러졌을 때 어떤 높은 감정의 일렁임이 내 머리 위에 쏟아졌지만 흐느끼거나 소리치지 않고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던 것도 나를 생존하게 했던 바로 그 지독함이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도 생존하고 있다.
  지독해지고 다시 또 지독해지면서.


  "하하하, 이 영화 정말 배꼽 잡네? 완전 웃겨, 끝장 웃겨!" 정말 남자들은 '별로'라는 말에 저렇게 민감할 수 있는 거야? 너도 그러니? 게이인 너도 잠자리하고 나서 '별로'라고 하면 저렇게 붉으락푸르락하고 그렇게 돼? 응? 하하하! 저 남자 봐, 저 꼴을 좀 보라고!"
  술병을 사들고 유진의 집에 쳐들어왔으면서도 나는 영화 채널의 코미디 영화 한 편에 빠져 그의 집 거실을 데굴데굴 구르고만 있었다.
  "넌 이 영화 봤어? 이거 완전 웃기는데? 근데 왜 흥행을 못했지? 그치, 이 영화 별로 흥행 못한 거지?"
  괜히 리모컨으로 영화 소개버튼을 누르고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검색하고 있었는데 자꾸 얼굴이 화끈거렸다. B급 영화처럼 키치적이고 우스운 상황들이 확실히 재미있긴 했는데, 뜨끈해지는 목덜미는 어쩐지 그것과는 상관이 없는 듯했다.
  "이봐, 사람들 평도 좋은데 이 영화 왜 안 떴지? 요즘 오백 만을 넘어섰다는 그 허술한 웹 툰 코미디보다는 최소한 훨씬 괜찮은 것 같은데… 결국 배급사나 제작사의 파워게임인 건가? 그치, 그런 거지?"
  뜨끈해지는 얼굴을 매만지면서 나는 아예 TV 앞에 배를 깔고 누웠다. 그러나 내 귀에는 등 뒤에서 혼자 술을 따라 마시고 있는 유진의 침묵이 더욱 크게 들려왔다.
  "영화 안 볼 거야? 그럼 영화 끈다?"
  "영화 보려고 온 거 아니잖아?"
  그가 술잔 속에 대고 말했다.
  "아니지. 근데… 근데 이거 재밌네, 뭐."
  "그럼 계속 영화나 봐."
  그러나 더 이상 영화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영화를 보고 있었던 건 아니었으니 어쩌면 당연했던 건지도 모른다. 후반부로 가면서 조금씩 감동 코드를 풀어놓는 영화의 빤한 이야기 구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꾸 힘이 풀렸다.
  "에이, 뒤로 가니까 빤해지네. 별 수 없지, 그게 대중영화의 한계겠지. 나도 술 마셔야겠다."
  "뭐야, 그 사람이랑 안 좋아?"
  "뭐 그냥… 어차피 그냥 만났던 건데 뭐. 원래 다 한계가 있는 거잖아, 우리 같은 것들의 관계라는 게 말이야."
  갑자기 그가 발끈하며 나를 봤다.
  "무슨 한계?"
  "몰라서 묻냐?"
  "사람 좋아하는데 무슨 한계가 있어야하는 건데?"
  그는 당장 멱살잡이라도 할 듯했다.
  "내가 하다못해 너희 같은 동성애자도 아니고 아무래도 나 같은 것들은 사람 만나기 좀 복잡스럽지. 여자로 살고 있으니 남자 동성애자들은 나를 좋아할 수 없고, 남자의 태생을 가지고 있으니 이성애자 남자들은 당연히 나를 좋아할 수 없는 거고. 기껏해야 큰 가슴에 짙은 화장에 호기심으로 몇 번 만나보고 싶은 감정이, 그게 우리 같은 것들이 매달릴 수 있는 사랑이라는 거지 뭐. 복잡하지 복잡해, 에휴!"
  장난스럽게 중얼거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입에 침이 말랐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거야, 아니면 그래야한다는 거야?"
  "뭐가?"
  "사람을 만나는 거 말이야. 누난 지금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투잖아? 아니면 그렇게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는 중이던가. 자처해서 시궁창에 처박히는 사람처럼 말이야."
  술잔을 내려놓고 그가 의자에 기대 앉아 나를 봤는데 똑바로 마주볼 수가 없었다. 겹겹이 옷을 겹쳐 입고 있는데도 발가벗겨진 것처럼 자꾸 얼굴이 달아올랐다.
  "사람 사는 일이 무 자르듯 그렇게 되는 게 어디 있느냐고, 자기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고 뻔뻔스럽게 살겠다고 하더니 누나도 별 수 없구나?"
  입이 썼다. 술 때문이 아니었다. 돌돌 입 속에 돌리고 있던 건 달달한 체리 한 알이었는데, 약이라도 물고 있는 것처럼 쓴 내가 입 안에 가득했다.
  "그런 핑계가 어디 있어? 그냥 자신이 없는 거라고 말해. 누구한테 사랑받고 그 사랑을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게 자신이 없다고. 그 사람의 모든 걸 품어 안고 자기 자신마저 받아들이며 품어 안을 자신이 없는 거라고, 솔직히 털어놓으라고."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일어섰다. 다른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단지 붉어지는 얼굴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을 뿐이었다. 내가 시간 속에 내버렸던 발기하는 성기처럼 내가 모르는 무언가로 인해 온 몸의 세포가 곤두서버렸다.
  "갈께… 아무래도 가야겠다, 너무 늦겠어."
  나는 유진의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 허공에 대충 손을 들어 올리고는 현관문으로 달려 나갔다. 신발을 꿰어 신는데 납작해진 슬리퍼처럼 자꾸 플랫슈즈가 질질 끌리며 미끄러졌다.
  "평생 외로웠다면서! 숨 막혀 죽을 것 같았다면서! 그러면 누나를 외롭게 하고 질식 시켰던 건 세상이나 사람들이 아니라 누나 자신이었던 거 아니냐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놓고도 나는 오금이 저려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으로 뛰었다. 높은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산자락 같은 것도 아니었는데, 유진의 목소리는 메아리라도 울리듯 여러 번 튕기며 계속해서 나를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제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길을 따라서. 아뜩한 깊이로 곤두박질치는 추락의 길을 따라서.

  "웬일이래? 모임도 없는데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카페에 다 나오고? 매일 혼자서 점심 먹는 오빠가 불쌍해서 와 준 거냐?"
  "점심은 시켜 먹어요?"
  생각해보니 그것도 어떤 지독함인지도 모른다. 대답을 하지 않고 오히려 되묻는 것. 질문을 받아놓고 대답이 아니라 엉뚱한 걸 물으며 틈새로 빠져나가려는 것. 지독한 것이 나인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만이 유일한 나의 생존 방식이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삼키지 못한 알약처럼 지난 밤 유진의 말이 온통 입 안에 쓴물로 고여 있었지만, 잠자리에 눈을 감으며 나는 평소처럼 금세 잠이 들 거라고 믿었다. 나는 원래 그렇게 지독한 사람이었으니까. 나의 생존은 내 지독함의 증거였으니까.
  "시켜먹기도 하고 그냥 대충 샌드위치 만들어먹기도 하고. 뭐 먹을래? 시켜 먹을까, 아니면 샌드위치 만들어 줄까?"
  "여기 안에서 시켜도 되요? 냄새나잖아요?"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이불처럼 나를 뒤덮던 잠은 어젯밤엔 내내 발꿈치 어딘가에서 뒤엉켜 있었을 뿐 좀 채 눈 감은 어둠이 지워지지 않았다.
  "손님도 없는 걸 뭐. 지금 시간에는 원래 아무도 없어. 요즘 들어 이상한 놈 하나가 새벽마다 가게 앞에다가 이상한 걸 자꾸 던져놓고 가서 문제다만… 뭐 아침 시간에는 원래 아무도 없으니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밤은 마치 누군가 내 생각 속에 무언가를 던져놓고 간 것만 같았다. 차가운 것이든 뜨거운 것이든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게 만들었던 무언가.
  "뭐 냄새 좀 베면 어떠냐? 음식 먹는데 그럼 냄새 안 나냐? 하다못해 커피 한 잔을 내려도 그 냄새가 온 동네를 퍼지는 법인데, 그게 다 사람 사는 냄새지 냄새 하나 없는 게 그게 사람이냐?"
  나는 커피 냄새를 생각하고 있었다. 주택가 입구에 자그맣게 자리한 카페를 지나, 사람들이 드나드는 골목 구석구석을 파고들었을 냄새. 누군가는 머리를 감다가, 누군가는 요리를 하다가, 누군가는 마당에서 혼자만의 방식으로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다가 그의 콧속으로 스며들었을 바로 그 냄새. 어쩌면 누군가는 싫어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반가워했을 어떤 냄새.
  "기다리면 다 빠지지 뭐. 창문 열어놓고 기다리면 되는 일이지 무슨 그런 냄새 때문에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살 일 있냐? 뭐 먹을래?"
  그가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이야기에 동감을 표시하려고 천천히 입을 벌렸다.
  "뭐 아예 냄새 풀풀 풍기면서 자장면 같은 거 시켜 먹을까? 카페에서 먹는 자장면도 나름 퓨전이라서 좀… 잎새야?"
  분명히 아침에 집을 나올 땐 청명하고 맑은 날씨였는데, 어디선가 물 냄새가 났다. 웃음이거나 그렇다고 말하는 끄덕임이거나 그도 아니면 맛있고 기름진 음식의 이름을 떠올리며 입을 벌렸던 건데, 내 입에서 쏟아져 나온 건 어떤 기호나 문자로도 표시할 수 없는 낯선 소리였다.
  "잎새야, 왜 그래?"
  그냥 잠을 좀 자지 못했을 뿐이었다. 지난밤은 밤새도록 잠을 설치다가 오랜만에 마주한 일요일 아침이 반가워 일찍 집을 나섰던 것뿐이었는데. 그래서 온 몸이 이불이라도 덮은 듯 혼곤하고 무거웠던 것뿐이었는데.
  냄새를 견디지 못한 사람처럼 나는 코를 막고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분명히 내게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건 어리석게도 지나간 일들에 매달리거나 내가 버렸던 것들에 미련을 두는 나약한 사람들에게만 존재하는 형편없는 냄새라고 생각했는데.
  어디에서 풍겨오는지 알 수 없는 냄새가 자꾸 온 몸에 들러붙었다. 얼마나 지독한 냄새였는지 두 눈이 시큰해 계속 눈물이 쏟아졌다. 오물통에 코를 처박은 것처럼 역겹고 지독한 냄새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내 온 몸의 물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어디에서 무엇이 썩고 있었던 건지, 그토록 오랜 시간을 삭히며 내 안에서 얼마나 물러터지고 있었던 건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는 소리를 높여 엉엉 울었다.
  여전히 나 혼자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지독한 짓이었다.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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