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17. 산 - 생(生), 이름이 없는
나의 생에는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말할 수 있는 그들이 나는 부러웠다. 이름이 없기 때문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 언제든 입을 벌려 쏟아내기만 하면 나의 생은 몇 개의 글자로 각인되어 더 이상 흐릿하고 모호한 삶은 아닐 것이다. 안다, 나는 안다. 그런데도 이름이 없거나 불리기 쉽지 않은 그 이름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그들이, 나는 꽤나 부러웠다.
자꾸 잠이 쏟아졌다. 여러 개의 손이 뒷덜미를 끌어당기는 듯 계속 침대 위에 눕고만 싶었다. 오랜만이었다. 사랑 덕분에 조금씩 그 무기력의 공동(空洞)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고 믿었는데, 나는 반환점을 돈 사람처럼 다시 또 아래로 휘어진 어느 경사길을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겁 없이 말했던 그 사랑의 말들로 그녀도 행복해진 것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 빙글빙글 제 자리를 돌고 있는 내 우울의 순환을 털어놓는 일은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핑계로 그녀를 끌어내리고, 나처럼 무기력하게 만들고, 다시 위태롭게 만드는 일말이다. 그건 결코 사랑일 리 없었다.
그녀와 헤어지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내 목소리는 그래서 다급하게 들렸는지 모른다. 말이 아니라 비명처럼 터져 나왔을 것이다.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그녀를 향해 나는 중얼거렸다. 사랑이지, 당연히 사랑이지, 아무래도 사랑이야, 그래 사랑이지. 속도를 올리며 내달리는 버스 속에서 아찔한 관성의 힘을 온 몸으로 버텨내면서, 나는 계속 사랑이라고 되뇌었다. 제발 나를 끌어올려주기를 바라면서, 사랑은 꼭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아니 확신을 흉내 내면서, 나는 두 글자에 매달렸다. 그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면서, 나도 구해지기를 바랐다. 확신이 생기고, 정체성이 생기고, 자긍심이 생기고, 태도를 분명히 하고 싶었다.
그러나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는 나는 어쩐지 쫓기고 있었다. 이불을 뒤집어쓰는 내 안엔 사랑이 아니라 비명이 가득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고, 계속해서 내 귀에 속삭이는 어떤 괴물이 내 가슴 위로 올라탔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잤다고 말하지만, 잔 게 아니라 숨어 있었다. 누군가는 손목을 긋고, 누군가는 허공 속으로 몸을 던지는 이유는 어차피 모두가 점 하나로 사라져버릴 존재임을 알겠기 때문일 것이다. 이름도 없고, 목적도 없고, 근원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상실이고, 별로 달라질 것도 없고, 제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쏘아진 생.
그래서 나는 그런 느낌에 지배당할 때면 잠을 잤다. 고작 숨어 있는 일이지만, 여전히 괴물의 목소리를 시끄럽게 듣지만, 그래도 잠이란 어둠 속에 숨어 있으면 몽롱해졌다. 어디로도 가지 않고, 싸우지 않고, 제일 멀리 피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주말에 부산으로 내려오겠다며 이번 주에는 어디에 데리고 갈거냐고 묻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겁이 났다. 아무렇지 않게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하면 되는데, 진땀이 흘렀다. 생각 같아서는 이번 주 데이트를 건너뛰면 어떠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두드러기 같은 두려움이 온 몸에 번져 있었다. 출판사에서 번역료를 받았다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말하는 그녀는 경쾌한데, 나는 여러 번 심호흡을 했다. 더 이상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나는, 발가벗긴 채 내쫓긴 아이처럼 거기 오슬오슬 떨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새벽 버스를 탔다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선잠이 달아나버렸는 데도,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녀가 탄 버스가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나는 시계만 봤을 뿐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버스가 도착할 시간을 이십여 분 지나서야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이런 내 모습을 들키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무기력증에 빠진 나는 곧 사랑을 부정하는 나처럼 보일 것이기에, 그것마저 잃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았기에 억지로 그녀 앞에 나를 세웠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버스에서 내리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 손에 땀이 흥건했을 텐데 다행히 그녀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녀의 손이 이끄는 대로 나는 열심히 발을 움직였다. 신발 하나를 사야겠다면서 나를 끌고 부산대학교 앞 상점들을 돌아다녔다. 오랜만에 보는 너무 많은 사람들로 현기증이 나는데, 나는 입을 꽉 다물고서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끝내 원하는 신발을 찾지 못했고, 장전동 가까운 제일 구석진 작은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휴대폰 속 신발 사진에 눈을 둔 채 그녀가 물었다.
“어디… 아파요?”
아프다고 말하는 일마저 어쩐지 거짓말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 좀 몸이 안 좋네요. 가끔… 그래요. 가끔요, 심한 건 아니고요.”
자꾸 말을 덧붙이고 있는 내 자신이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나는 이 생을 애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때일수록 더 많이 움직이고, 사람들도 더 만나고, 그래야하는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백화점 갈래요? 운동하는 셈치고 백화점 한 바퀴 돌고, 식당관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요. 좀 움직이고 화려한 것들도 좀 보고 나면 기분이 나아질 거예요.”
무수히도 여러 번 들었던 의사의 말들이, 엄마의 말들이, 친구의 말들이, 책속에서 튀어나온 말들이, 한 데 뒤엉켜 가슴을 짓밟았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괴물은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녀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 아뇨. 그냥… 그냥 좀 쉬고 싶어요.”
생기 넘치던 그녀의 얼굴이 살짝 기울었다.
“그럼 연극 보러 갈까요? 영화관에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연극은 사람도 적고 재밌고 웃기는 연극 보면 마음껏 웃을 수 있으니까 기분이 나아질 거예요. 그래요, 연극 보러 가요, 우리!”
이거다 싶었는지 그녀가 내 팔꿈치를 꼈는데, 나도 모르게 흠칫 물러섰다. 영락없이 그녀를 밀쳐낸 꼴이었다.
“아뇨, 아뇨… 그냥 좀 조용한데서 쉬면 안 될까요?”
“그… 그래요. 그럼 자기가 어디 가고 싶은지 말해요. 자기 가고 싶은데 가요, 그럼.”
억지 미소를 짓느라 그녀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러나 나는 가고 싶은 데가 없었다. 쉬고 싶다는 생각밖엔, 침대에 쓰러져 눈을 감고 싶단 생각밖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들은 듯 그녀는 머뭇거렸다. 억지미소마저 조금씩 지워졌다.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나는 고개만 숙인 채였다. 나를 공포에 질리게 했던 그 괴물이 어느새 내 앞에 앉아있었다. 호통이라도 치듯 꽉 다문 입술로, 나를 흘끔거리며 내 앞 길을 떡하니 막고 서서. 내 쪽으로 입술을 내밀었는데, 긴 혀라도 죽 내밀어 나를 핥을까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시끄러운 사람들 속을 빠져나와 버스에 올라탔을 때, 그녀의 손이 조용히 내 팔꿈치를 어루만졌다. 떨고 있는 내 손을 잡았다. 괜찮다고 말하듯 웃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만 봤다. 그래, 괜찮다. 괜찮다, 아무 일도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위에 있다, 우린 흘러가고 있다. 또 다시 흘러가버리고 말, 끝없이 쳇바퀴를 도는 이 징그러운 시간 위에.
버스가 남산 지하철 역 앞을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하차 벨을 누르더니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이번에도 끌려서 버스에서 내려 어정쩡하게 섰는데, 그녀가 우악스럽게 나를 이끌고 범어사역 쪽으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질질 끌려가는 채로 나는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은 않고 자신만 믿고 따라 오라고 했다. 범어사 지하철역에 도착해 분홍빛으로 화려하게 피어있는 꽃나무 가지들이 휘어진 쪽으로 나를 이끌더니, 그녀는 나를 끌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도로 양 옆 불법 주차된 자동차들 너머에는 만개한 봄꽃들이 저마다 서로 다른 빛깔을 자랑했지만, 나는 그 꽃들이 모두 가짜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믿지 못하겠지만, 그토록 화려하고 선명한 빛깔의 꽃은 없었다. 유혹하듯 아름다운 그것들은 향기 없이 절대 지지 않는 영원함을 지녔다. 고집스럽고 괴물 같은 아름다움을.
나를 잡아끄는 그녀의 등짝을 보고 있으니 알 것도 같았다. 그건 맨 처음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던 엄마의 등짝이기도 했고, 군대에 다녀오면 나아질 거라고 말했던 아버지와 형의 등짝이기도 했으며, 그 너머엔 찬란한 희망이 있으리라고 장담하던 의사들의 등짝이기도 했다.
“헉헉… 뭐야? 왜 범어사가 안 나오는 거지?”
언덕 꼭대기에 올라서서 그녀는 눈앞에 드러난 묘지들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녀가 믿었던 건 ‘범어사역’이라는 지하철 표지판이었을 뿐, 길 가에 장식된 가짜 꽃들이었을 뿐, 그 쪽은 범어사 가는 길이 아니었다.
“범어사… 어디로 가요? 이 쪽이 아니에요?”
땀을 흘리며 그녀가 그제야 내 쪽으로 돌아서 물었다. 그러나 나는 말해주기 싫었다. 이미 반대 방향으로 너무 멀리 와버리기도 했지만, 그녀가 말하는 그쪽이 어디든 거기엔 가고 싶지 않았다.
“범어사는 왜 가게요?”
“아니… 범어사 들러서 자기랑 마음도 좀 가라앉히고… 올라가면서 땀도 좀 흘리면 분명히 기분이 훨씬 나아질 거거든요.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게 좋다잖아요? 그래서 마라톤이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좋은 거라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엉뚱한 곳으로 나를 이끌었으면서, 그녀는 스스로의 믿음이 틀렸다고는 생각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만 가요.”
“왜요? 범어사 멀어요? 멀면 어때요? 우리 거기까지, 한 번 끝까지 가봐요. 그래야 이겨낼 수 있는 거예요, 내가 도와줄게요.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예요. 내가 힘이 되어 줄게요. 그러니까, 나만 믿고 가요. 나만 믿어요.”
“그만요! 제발 그만 하라고요!”
꾹꾹 눌러놓았던 것들이 폭발하듯 쏟아졌다. 나를 붙잡았던 그녀의 손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그… 그래요, 이해해요. 맞아요, 나도 이해해요.”
긍정의 가면을 뒤집어 쓴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나도… 나도 알아요. 그거… 그렇게 버려진 느낌, 아무도 모르는 구석에 처박힌 느낌… 그거… 나도 잘 알아요.”
어떤 다짐을 믿었던 건지 그녀는 돌아선 내 팔을 움켜쥐었다.
“근데요. 산다는 거… 살아남는다는 거… 그렇게 호락호락한 거 아니에요. 저절로 살아지는 삶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요. 치열하게… 미친듯이 발버둥치면서… 반드시 살아주겠다, 내가 기필코 살아남아서 너희들의 그 비아냥거림을 박살내 주겠다, 그런… 그런 결단과 결심이 필요한 거라고요!”
흉기 같은 말들이 마구 나를 찔렀다. 누구에게든 옮겨가고, 서로 다른 가면으로, 얼굴로, 목소리로, 똑같은 말만 하는 그 괴물이었다.
“살아요, 반드시 살아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살아남으라고요! 치열하게… 절대 지지 말고 치열하게…”
“그만, 그만! 그만하라고!”
우리의 머리 위에 드리운 꽃나무가 후드득 몸을 떨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만나고 돌아왔을 사람들이 역 쪽으로 걷다가 우릴 봤다.
“제발… 집어 치우라고… 날 살게 하려면… 그 쓸데없는 소리부터 집어 치우라고! 날 못나고 형편없는 새끼로 만들어버리는 그 따위 소리부터 집어 치우라고!”
묘지가 있는 쪽으로 나는 뛰었다. 등 뒤에서 그녀가 나를 불렀는지 따라왔는지 알 수는 없었다. 나를 짓밟고, 비틀고, 조롱하는 그 개같은 진심들과 희망들로부터, 나는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 묵도했던 사람들이 질주하는 나를 봤고, 나는 내 등에 업힌 괴물을 털어버리려고 몸부림쳤다. 수십 개의 손과 발과 손가락과 발가락으로 괴물은 내 등 뒤에 찰싹 달라붙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미래와 희망의 말들을, 계속해서 내 귀에 노래하고 있었다.
김비: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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