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 세이브, 오토매틱

 

 

 

  지나고 보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들이 있다. 처음부터 내가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는데 시간이 지나보니 그렇게 된 것들. 이곳은 내가 도착하고자 했던 데가 아니었는데 흘러가듯 따라 가보니 그곳이 되어버린 것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했던 일들을 다시 되짚어가기보다는, 여기 이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찾느라 바빠진다.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려 하지 않고, 지금 이렇게 된 상황들에 대해 나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옳은 반성의 행위라고 믿어버린다.

  그래서 뒤틀려버린 그녀와의 관계를 두고 화가 났다가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끄집어내 늘어놓기 바빴다. 그녀에게 사과를 하려던 생각이나 마음가짐까지 어리석고 바보처럼 느껴져서, 그것은 내가 하지 않아도 되었을 최대의 배려이자, 사랑이라는 관계에 대한 차고 넘치는 예의였다고 생각해버렸다.

  고작 육 개월 남짓의 시간 아닌가? 몇 번 되지 않던 이전의 관계들과 비교해보아도 그것은 너무 짧고 보잘 것 없었던 시간이라고, 애써 이성과 합리주의를 끌어 들여 망가져버린 관계를 더욱 아무렇게 굴렸다.

  그런데 그녀에 대한 생각은 이상한 데서 불현듯 생각났다. 공교롭게도 그건 두려움과 같은 타래였다. 한 번도 온전히 누군가와 함께였던 적이 없었으면서 두렵다는 생각이 들면 그녀가 떠올랐다. 누군가를 마음속에 받아들여본 기억 같은 것은 까마득할 뿐이면서 혼자인 나를 확인하며 공포에 질릴 때마다 이상하게 자꾸 그녀가 생각났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린 것처럼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러고 나면 또 다시 오싹 소름이 돋았는데, 그러면 여지없이 그녀가 그리웠다.

  그래,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구나. 그렇게 인정하고 나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미 내 곁에 존재한다고 믿어버린 공포는 더욱 생생했다. 혼자 누운 방 안이 갑자기 커졌거나, 침대 안에 갇힌 내가 갑자기 작아졌거나. 세상과 나 사이에 또 다른 겹의 공간이 드리운 느낌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버리려고 하니, 새로운 차원의 공간이 내 주위를 슬그머니 감싸고 있었다. 초겨울 새벽녘처럼 을씨년스런 바람이 꾸물댔고, 골목을 거슬러 오르는 불량배의 발길질처럼 툭툭 불규칙한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단지 누군가에게 주었던 마음을 거두어오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몸이 자꾸 어디론가 딸려갔다. 누군가에게 붙들려 나는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필사적으로 일상에 매달렸다. 반드시 직장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다니고 있던 직업 교육원 수업도 꾸준히 들었고, 그녀를 만나며 시작했던 헬스클럽 다니는 일도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그녀와 함께 갔던 음식점에도 일부러 혼자 찾아가 접시 하나를 싹싹 비웠는데도 그러면 그럴수록 시간의 틈은 자꾸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 연애의 관계란 사랑이라는 감정이 채워지고 충만해진 만큼, 반대로 그만큼의 상실감이 수반되기 마련이지. 현실을 인정하며 끈질기게 변함없는 일상 속에 몰두하려고 노력했는데도, 그러면 그럴수록 이상하게 무언가 자꾸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또 다시 내가 원하지 않는 어딘가에 '어쩌다 보니' 버려진 나를 발견할까봐 겁이 났다. 기껏해야 엉뚱한 데를 딛고 서서 안간힘을 쓰고 있을 나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될 생각을 하니, 나는 또 다시 간절히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두려움이 반복된다 싶더니 어느새 나는 그녀에게 다시 메일을 쓰고 있었고, 이게 무슨 창피한 짓인가 헛헛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녀의 SNS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옛날 글들 중에 하나를 들여다보다가 억지로 쌓아왔던 이성과 믿음의 더미들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것은 연애 초기에 그녀가 적어놓았던 단 세 줄의 중얼거림이었다.

  '그가 나와 다른 여자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면, 나는 그를 붙잡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사랑은, 끊임없이 낭떠러지를 따라 걷는 위태로움이다.'

  공포에 질린 것은 나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나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나를 만나고, 사랑하고, 나와 살결을 부딪치며 온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그런 두려움이고 위태로움이라니, 구토라도 하듯 무언가 터져 온 얼굴에 흐르고 있었다. 간절히, 너무나도 간절히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그것은 그녀를 구하는 길이었고, 또한 나를 구하는 길이었다. 더 이상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지 않은, 너무도 오랜만에 마주한 의지였다.

  "영화 보러 갈래요? 그 때처럼요, 우리 맨 처음 만났던 그 때처럼."

  나는 침대에서 고개를 들고 그녀에게 물었다. 따스한 온기로 내 품 속에서 몸을 말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모르게 묻어 있었을 눈물 자국들을 그녀가 손으로 쓱쓱 지워주었다. 그녀의 손을 잡아 그 속에 입김을 불어 넣었고, 나는 다시 또 그녀의 온기를 들이마셨다. 따스해진 서로의 온기를 호흡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공포에 질렸거나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현실이 참으로 고마웠다.

 

  그 때처럼 우리는 처음 만났던 그 때 그 정류장에 다시 섰다. 부러 그녀는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었고, 나도 그 때 앉았던 그 정류장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처럼 휴대폰을 들어 그녀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고, 그녀도 건너편에서 나를 처음 본 것처럼 손을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정쩡하게 들어 올리는 손이 아니라 반가워 아이처럼 펄쩍펄쩍 뛰는 그런 손짓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길을 건너지 않고, 천천히 길을 따라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8차선 도로가 있었고, 속도를 높이며 달리는 자동차들이 있었으며,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걷고 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는, 우리를 가로막은 모든 것들을 지우고 오로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서로만 바라봤다. 너무 멀어서 그녀의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녀의 표정이 나와 꼭 닮은 것이란 사실을. 그녀도 그렇게 그곳에서 나의 표정을 읽고 있으리란 것을.

  우리는 칠순이 넘은 노년의 남녀가 서로 만나 사랑을 나누는 영화를 봤다. 그 때까지 그렇게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영화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노년의 남녀가 만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모든 상황들이 현실감이 없었으며 억지스러웠고, 두 사람 모두 반드시 사랑하고 만나야한다는 행복을 향해 질주하는 것만 같았다.

  삶의 마지막을 목전에 둔 그 시간에까지 그렇게 내달리는 것 같은 사랑을 해야 한다, 나는 그 영화가 그려놓고 있는 사랑을 믿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인 모양이었다. 우리는 사랑에 관한 영화를 보았으면서도, 그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이 서로 나누고 있는 지금 우리들의 사랑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 때처럼 똑같은 카페에 들어가 똑같은 음료를 주문해놓고 그녀와 나는 또 다시 서로의 손의 크기를 쟀다. 신기한 것은 두 사람의 손의 크기가 달라진 것 같았다. 나의 손은 그녀의 손을 향해 작아졌고, 그녀의 손은 나의 손을 향해 커진 듯했다. 물론 비가 내리는 어둑어둑한 날씨와 어두운 카페 불빛 아래에서의 착시 현상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것마저도 우리의 사랑이 서로를 향해 키를 키우고 있는 때문이라고 믿어버렸다. 우리의 사랑이라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 거라고 마음대로 규정해버리면서.

 

  이제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망설이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버리면 어쩐지 그 말의 무게가 덜어지거나 혹은 소모품처럼 닳아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는데, 이제는 더 이상 사랑을 놓고 망설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껏해야 나약한 두려움이거나 혹은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사랑이라고 말하면, 더욱 더 사랑이 된다. 내 안에 아무렇게나 던져져있던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된다. 그 곳에 언제나 그것이 있고, 그 안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수치스러워하거나 혐오해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 나의 삶을 지어야한다는 것을.

  그녀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를 보며 웃는다. 그녀가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녀가 사랑에 관해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든 어떤 위태로움을 떠올리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나의 사랑을 말한다. 나를 지키고 내가 지키며 고스란히 나의 사랑으로 되돌아오고야 마는 나의 감정을. 그러고 나면 또 다시 커다랗게 부풀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두려움을 지우는 믿음을.

  오늘도 전화를 끊으며 나는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이제는 그녀도 망설이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랑한다고 대답한다. 어느새 사랑이라는 말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우리들의 시간. 사랑이라는 스물 네 시간의 하루와, 사랑이라는 수많은 반짝거림이 떠다는 우주와, 사랑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여행을 이제 우리는 시작한다. 그곳이 어디이며 어떤 세계이든 상관없다. 함께 가는 누군가가 우리들의 곁에 있지 않아도, 축복하고 소원하는 이들의 기도가 없는 곳이더라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두렵지 않다.

 

  사랑이라고 말하면 나는 언제나 새로워진다.

  내가, 내 사랑의 주인이다.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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