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데리다 - 디페랑스, 세상에 없는

 


  "뭐야, 이 분위기? 다들 왜 이래, 재미없게?" 
  "조용히 있어, 너는. 그래도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평소처럼 끼 떨고 그러는 모습 보이고 싶냐? 오늘은 좀 점잖게 잠자코 있어."
  "어머머, 이 언니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땍땍하게 굴어? 그런다고 언니의 기갈이 감춰질 수 있을 것 같애? 그런다고 감춰질 거였으면 언니가 이 바닥에 이렇게 오픈해서 나올 수 있었겠어? 일반들 사이에서 포비아인 척하며 살지. 형 외모만 보면 완전 성질 더러운 포비아같애, 그거 알아?"
  "이게 정말? 오늘은 쫌 그만하자, 응? 새로 오셨잖아, 새로! 그러니까 우리 모임을 위해서도 그런 모습을 보이면 좀 그렇잖니, 안 그러냐?"
  "아야야, 왜 발을 밟아? 씨, 우리 원래 이렇게 안 조용해요. 만나기만 하면 수다에 싸움에 정신이 없는데, 오늘은 그 쪽 온다고 해서 다들 이렇게 점잔 떨고 앉아있는 거라고요, 이런 모습 앞으로는 전혀 없을 거예요. 아야야!"  
  "못산다, 정말. 내가 말했죠? 우리 모임 사람들 정말 특이해요. 다 다르기도 하고. 어쩌면 이렇게 다들 다른지, 근데 뭐… 그냥 보면 다 똑같지 뭐. 아니다, 생각해보면 그걸 다르다고 말하는 건 우스울 것 같기도 해, 그치? 누구에게 끌리든 누구와 잠자리를 하든 도대체 그게 왜 중요해야하는 건데, 안 그래요?"
  "맞아, 맞아. 그거야 개인의 몫이지, 그 혼란이나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누군가의 위로와 지지가 필요하다면 그걸 기꺼이 내줄 수 있는 게, 이 사회와 주변 사람들의 몫일 테고."
  "그걸 누가 모르나요?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게 잘라내듯이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렇지요."
  "그래, 너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겠지. 근데 그게 자랑은 아니지. 정체성이라는 게 뭐냐? 나를 표현하는 거잖아? 나를 알아야 나를 지킬 수가 있는 거고, 정체성이 없다는 건 어째 용기가 없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냐?"
  "왜 정체성이 없어요? 나는 그 누구보다 내 정체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요."
  "모르는 걸 아는 게 확신이라고? 모르는 것과,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게 과연 차이가 있기는 한 거냐?"
  "상우야, 그만하자. 오늘까지 그럴래? 미안합니다. 우리들이 원래 이래요. 서로 개성들이 워낙 강해서."
  "아닙니다, 저도 많이 긴장을 하기는 했는데 이렇게 편안하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잎새 씨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저 누나 또 우리들에 대해서 얼마나 씹었을까? 그치, 우리들 이야기 막 하면서 씹고 그랬던 거지?"
  "하여간 저 피해의식… 그러니까 네가 매번 그런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는 거야. 너는 처음부터 무언가를 너 스스로 만들고 쌓아가는 주체적인 자아의식이 부족하니, 그렇게 기존의 권위를 찾아 돌아다니기만 하는 거야. 실은 그저 가볍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원하면서도, 또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볍게 보이는 게 싫으니 거기에 집착하고 매달리면서 스스로의 피해의식을 보상받고 있는 거지."
  "그러는 형은,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나고 키 백 팔 십이 넘는 아이들만 건드리면서 자기가 지키려는 보상심리가 뭔데?"
  "그건 보상 심리가 아니라 피 가학적 욕망 같은 걸 거예요. 자기가 어떤 것에 지배당했던 고통을 알고 있는 피해자이면서도, 반대로 고스란히 누군가를 지배하려는 가해자의 역할을 하려는 그런 욕망이요."
  "어쭈? 그래, 넌 그새 철학책 좀 들여다봤냐? 데리다 형이 철학에 관심이 있다니까, 데리다 형 눈에 들려고 그 동안 철학 공부 좀 하셨어?"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만 좀 하자, 제발. 새로운 사람 데리고 온 내가 다 창피해지네, 정말."
  "그래, 잎새 말이 맞아. 정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나중에 철학책 하나 골라서 같이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정식으로 만들어보던가. 어쨌거나 반가워요, 나는 송현아예요.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근데 형은 취향이 어떻게 되요?"
  "예?"
  "성적 취향이요, 성 정체성이요. 바이섹슈얼이세요?"
  "그게… 뭐죠?"
  "양성애자요. 동성도, 이성도 다 끌리는… 그러니까 잎새 누나를 좋아할 수 있게 된 거 아닌가요?"
  "뭐야, 인마? 너 바이섹슈얼을 그런 뜻으로 알고 있는 거야?"
  "그럼 아니에요?"
  "맞지, 맞기는 한데… 트랜스젠더를 좋아한다고 바이섹슈얼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지. 엠 투 에프 트랜스젠더에게 사랑을 느끼는 남자라면, 오히려 그건 이성애자에 가깝겠지."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요? 양성애자가 트랜스젠더를 좋아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양성애자는 남자도 여자도 다 좋아할 수 있으니까 트랜스젠더를 좋아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렇기는 한데… 꼭 그렇지는 않다는 말이지."
  "내 생각에는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요? 양성애자라면요, 아무래도 트랜스젠더들은 양성적인 모습을 모두 지니고 있는 존재이니만큼, 양성애자들에게는 그만큼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트랜스젠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러버라고 하지 않냐? 트랜스 러버, 뭐 그렇게 부르는 것 같던데?"
  "그렇죠, 트랜스젠더들 모임에서는 그렇게 불러요. 특히 엠 투 에프 트랜스젠더들에게 껄떡대는 남자들을 그렇게 부르죠. 에프 투 엠 트랜스젠더들에게 호감을 느끼는 여자들에 대해서는, 트랜스 러버라고 잘 부르지는 않던데… 뭐,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그 말에는 이상한 뉘앙스가 있어요. 별로 좋지 않은 그런 거요."
  "용호 너는 어때? 너는 바이섹슈얼이니까 트랜스젠더에게 이성적으로 끌리냐?"
  "난 그런 것 같지는 않던데… 뭐 상관은 없겠지만, 꼭 그래서 끌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바이섹슈얼이라고 하면서도 의미적으로 완벽하게 딱 떨어지는 양성애자는 아니고, 트랜스젠더 러버라고 하면서도 그러한 정의 너머 어딘가에 다다르는 또 다른 의미를 갖기도 하고…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사랑의 참된 의미를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오로지 종족 번식을 위한 사랑만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이야기하며 그렇지 않은 모든 다른 감정들은 더러운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일이라니… 참!"
  "그래서인 것 같지는 않아요."
  "뭐가요?"
  "제가 이 사람을 사랑한다고 느낀 거요. 이 사람이 여자라거나 남자라거나… 혹은 트랜스젠더라거나 동성애자라거나 뭐 그런 걸 생각하면서 사랑을 하게 되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 거죠?"
  "그럼 형은 그 감정에 불편함이나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잎새 누나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잖아요? 그런 거에 대해서 어색하다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뭘 그렇게 빤히 봐요, 자꾸 그렇게 보지 말아요."
  "글쎄…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냥 손을 잡고 싶었고, 손을 잡고 나니 안고 싶었고, 그래서 입 맞추고 안아주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니 이 사람의 곁에 오래도록 있고 싶다, 이 사람이 없는 시간은 너무 힘겹고 공허할 것 같다, 그런 깨달음을 얻었고, 그래서 당연히 그 감정을 소중히 간직하고 이 사람을 내 삶에서 떼어놓고 싶지 않다 하는 생각을 느꼈던 것 같고요."
  "그럼, 형의 사랑은 무어라고 불러야 하나? 동성애는 분명히 아닌 거고, 이성애라고 하기에는 누나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조금 걸리고, 그렇다고 트랜스 러버라고 하기에는 그 말이 의미하는 바와는 다른 지점인 건 같고… 데리다 형, 형이라면 그걸 뭐라고 불러야할 것 같아요?"
  "사랑이지."
  "예?"
  "그냥… 사랑인 거지, 그건."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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