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잎새 - 저녁, 훼손된

 

  우리는 그녀의 비난을 고스란히 듣고만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곳에 있는 누구도 그녀에게 그런 비난을 들어야할 사람은 없었는데, 그 모든 것은 그저 그녀의 머릿속에 그려진 어떤 끔찍한 것이었으며 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더럽고 흉측한 생각을 하고 있던 건 오히려 그녀 혼자뿐이었는데. 그래도 우리는 잠자코 그녀의 손가락질 앞에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던 몇몇 손님들은 '게이 바' 어쩌고 하는 그녀의 악다구니를 견디지 못해 카페를 빠져나갔고, 평소에는 목소리가 크던 상우 오빠의 대꾸도 그녀 앞에선 힘없이 흐트러졌다. 미안하고 죄송한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으면서 친한 동생의 어머님을 대하는 예의를 먼저 생각하고 있는 건지, 데리다 오빠는 자꾸 그녀 앞에 허리를 굽혔다.
  소리를 지르는 엄마를 끌어내며 용호는 얼굴이 벌게졌지만, 그녀는 아들의 곤혹스러움은 헤아리지 못하는 듯했다. 윤락가에라도 빠져있던 사춘기 아들을 끌어내듯, 아들에게 매춘이라도 시킨 호스트바의 포주를 대하듯 그녀는 욕지거리를 내뱉고 가게 안의 물건들을 내던지며 더욱 기세 등등이었다.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동네에 방방곡곡 소문을 내 발을 붙이지도 못하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그녀는 그렇게 한 동안 훈계며 설교며 위협이며 협박들을 늘어놓다가 가게 문을 나섰다. 그녀는 문 밖에서 용호를 붙들고서도 가게 안쪽을 가리키며 '저런 것들'이라는 손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억울함을 견디지 못한 성준이 때늦은 비명을 지르며 의자를 걷어찼고, 정작 자신은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면서 상우 오빠는 데리다 오빠를 타박했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욕설과 비난에 할 말을 잃은 현아 언니는 눈 만 끔뻑였고, 민수는 말없이 망가진 가게의 물건들을 주워 올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물끄러미 훼손되어버린 그 모든 시간들을 바라보고만 있었고.
  망가진 것들이 아름답고 기분 좋은 모습이기를 바라는 것은 병적으로 희망에 집착하는 이 세계의 폭력이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나 진리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훼손되어버리고 나면 모든 것들은 한 순간에 쓰레기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어영부영 어설픈 손짓으로 그것들을 주워 모으는 일은 기껏해야 쓰레기 속을 뒤지는 꼴에 불과할 것이다.
  깨진 유리조각을 밟고 카페를 나오며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떤 현실과 마주했다. 내 등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조금 더 선명하게, 더 이상 구차한 변명이나 남루한 후회를 떠올리지 않아도 될 만큼 또렷하게 나를 둘러싼 이 세계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또 다시 자학이라고 하면 자학일 테고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망상이라고 한다면 망상일 테지만, 나는 세상이 그것을 무어라고 부르든 간에 훼손된 그것에 손을 담그고 싶었다. 시뻘겋게 드러나는 것들을 똑똑히 건져 올리고 내 손을 찌르는 상처를 들여다보며 피 흘리는 나를 목격하고 싶어서.

  양산에 도착해 그의 집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첫 번째 데이트에서 그는 자신의 고향에 관해 상세히 말해주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가리키며 '집'이라고 이야기했었다.
  바로 그 아파트 건물 앞 정류장에 멈춰선 시내버스에서 내리는 그가 보였을 때 나는 어쩌면 조금은 달라진 그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아닌 사랑과, 삶이 아닌 삶을 깨달아버린 누군가에게 나는 조금 더 수척해지고 어두워진 낯빛을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파트 입구를 걸어 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화단 근처에서 놀던 아이가 작은 고무공을 놓쳤고 자신에게 굴러온 공을 들어 뒤뚱거리는 아이에게 전해주었을 때, 그의 입가엔 엷은 미소마저 번지는 듯했다.
  그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다, 그에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거라면, 나에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철없던 어린 시절 때처럼 좋아하는 아이에게 고백을 했다가 주먹질을 당했던 것도 아니었고,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 말해놓고 친구들 앞에 나를 감추기 급급했던 그런 남자들 같지도 않았으며, 자신을 가꾸지도 않는 게 그게 무슨 여자냐는 손가락질을 당했던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보통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만났고 자연스럽게 사랑했으며, 자연스러운 이별을 했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앓이를 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에게도 내가 모르는 아쉬움이나 후회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것 역시 자연스러운 감정의 찌꺼기일 것이다. 이렇게 멀리서 지켜보는 그의 헤어짐은 참으로 자연스럽고 '아무렇지 않았다.'
  망설임과 억울함의 시간이 지난 뒤 또 다시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아파트 단지를 나서는 그가 보였다. 나를 만나러 온 것도 아닌데 서성거리고 있던 나는 자꾸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가 버스에 오르자 나는 엉겁결에 정류장에 섰던 택시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가 탄 버스를 따라가 달라고 운전사에게 말하면서, 나는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움의 일부라고 믿었다. 억지로 나의 감정을 뒤틀거나 훼손시키지 않고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러운 이별의 과정일 뿐이라고.
  버스 맨 뒷자리에 앉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났다. 이렇게 서로 다른 곳을 보며 갈 수도 있겠구나. 서로의 모르는 곳에서 그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은 일상적인 시간에 몸을 담그면서. 눈물이 흐르면서 나는 웃고 있었지만, 그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했다. 사랑이란 그렇게 슬프고도 기쁜 일이었을 테니까. 이별이란 그렇게 기쁘고도 또 슬픈 것일 테니까.
  버스가 멈춰서고 그의 모습이 움직였다. 그가 버스에서 내려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마지막 말을 입 속에 담았다. 그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해야 하는 말.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이제 내가 나에게 해주어야하는 말.
  나는 그가 들어서고 있는 건물을 올려봤다. 기껏해야 그가 이야기했던 직업 교육원이거나 학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은 커다란 종합병원이었다. 갑자기 내 안에서 키를 키워가고 있던 확신이 한 순간 어디론가 증발하고 있었다. 갑자기 여러 겹으로 휘감은 불안 때문에 나는 서늘한 공기 속에 서서 잠시 몸을 떨다가, 황급히 그를 따라 병원으로 뛰어들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은 그저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이별의 풍경일 뿐이다. 그는 거기에 있고 나는 여기에 있으며,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는 이별의 길을 걷고 있을 뿐. 잠시 잠깐 엇갈리며 지나치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그저 냉혹한 시간의 인사일 뿐.
  그러나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불안은 더욱 날카롭게 내 생각을 찢었다. 이성과 생각을 난도질하며 그것은 나도 모르는 목소리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물론 전혀 예상하지 않은 장소에서 전혀 예상하지 않은 시간 속에 자신을 부르는 나를 본 그는, 그대로 거기에 얼어붙어 버렸고.

  소리가 지워진 듯 세상이 고요했다. 우리들의 눈앞엔 분주하게 사람들이 오고갔다. 서로 다른 아픔을 끌어안고 신음하거나 절규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는데, 우리 두 사람은 오직 서로의 숨소리만 듣고 있었다. 모든 언어가 지워진 듯했다. 자연스러웠던 시간을 거스르며 나는 그와 함께 그곳에 있었다.
  그는 사고에 대해서 말했다. 다행히 몸을 던졌던 그녀가 나뭇가지에 걸려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던 남루한 행운에 관해서도 말해주었다. 그녀는 실패했다고 말할는지는 모르지만, 처음으로 그는 뒤틀려버린 그 시간이 고맙게 느껴졌다고 했다.
  "이상한 데가… 아팠어요."
  커다란 손으로 그는 힘없이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쓰다듬었다.
  "한 번도 아파본 적 없는 곳이었는데… 거기에 상처가 나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데가 아파오기 시작했어요."
  꿈속이라도 거닐 듯 그의 눈빛은 어쩐지 몽롱했다.
  "나는 약을 먹고 있는 게… 나 혼자라고만 생각했어요. 내가 원하지도 않는 삶을 받아들고, 그렇게 무기력하게 간신히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자살 충동을 견디느라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공포에 질리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는 게 언제나 나 혼자 뿐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왠지 그는 홀가분해 보였다. 해쓱해진 얼굴에 드리운 건 분명 미소를 닮았다.
  "갑자기 지나온 내 삶이 반성이 되어서, 엄마에게 잘 해야지 엄마에게 자랑스럽고 평범한 아들이 되어야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아니었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나처럼 아팠다는 게… 아버지와 형과 그리고 나에게까지 버려진 게 엄마라는 사람이었고 삶이었을 테니, 그렇게 그 시간들을 견디며 지내왔을 거라는 게… 그냥 아팠어요. 너무 안타깝고 답답해서… 나는 엄마한테 모든 걸 쏟아내며 그 시간들을 버텨왔는데, 아무도 없었던 엄마가 어떻게 그 시간들을 견뎌냈던 건지… 내 방 건너편에서 엄마는 얼마나 그렇게 오래도록 혼자서 몸을 떨고 있었던 건지."
  기어이 그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잘못이나 용서를 구하는 몸짓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건 동질감 같은 건지도 모른다. 수십 년 동안 자신이 지나왔던 그 시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래서 더욱 선명하게 그녀의 외로움이 마음속을 찔렀던 건지도.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처음 느낀 통증이었고, 처음 아픈 곳이었어요. 처음 아픈 그 자리가 너무 신기했어요. 꾹꾹 눌러보면서 자꾸 아파오는 통증을 느껴 봐요. 너도 거기가 아픈 거다, 너도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은 거다. 너도 거기에 아픈 자리가 있는 거다, 아플 수밖에 없는 거다, 그렇게 나에게 타이르면서 계속해서 꾹꾹 눌러봐요."
  커다란 손으로 그가 짚어내고 있던 건 한 자리가 아니었다. 온 몸 여기저기를 꾹꾹 누르며 서로 다른 자리를 짚어가며 그는 모든 곳이 모든 시간이 아프다고 말했다.
  "근데… 근데 더 끔찍한 건요. 그런데도… 내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거예요. 이렇게 아픈데… 이렇게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데, 그런데도 또 똑같이 조금도 변하지 못할 것 같은 거예요. 여전히 똑같이 그렇게… 그렇게 살아야한다는 일이……."
  울먹이던 그가 기어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고 싶다는 생각에 다가서는데 그가 벌게진 눈으로 나를 봤다.
  "나…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할게요. 트랜스젠더여서 당신을 사랑했던 게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헤어지는 것도 트랜스젠더여서 헤어지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을게요."
  나에게도 통증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거긴 이미 알고 있던 데였다. 언제나 아프던 곳이었으니 이번에도 또 다시 어떻게든 그곳에서 통증이 시작될 것이란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를 악물었다. 괜히 수납 창구에서 영수증을 받아가는 어떤 보호자의 등짝을 바라봤다.
  "변하지 않아요, 바뀌지 않아요.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조금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요. 이게… 이게 그냥 나에요. 모든 게 내 착각이라고요!"
  영수증을 받아들었던 그가 다시 돌아섰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는 다시 수납 창구로 다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 울고 있는 이 사람도 그렇게 돌아서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가 잘못되었다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이렇게 고쳐달라고 빨간 줄을 여러 번 그으면서.
  "그만 갈게요. 바래다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조심히 올라가요."
  그는 허공 위에 인사를 하고는 사람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의 이름을 불러야하는데, 또 다시 내가 모르는 어떤 감정이 나의 생각을 찢으며 그의 이름을 부르게 해야 하는데, 나는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서로 다른 아픔으로 오열하고 절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무리 몸부림쳐도 변하지 않는 잔인한 현실 앞에 딱딱하게 온 몸이 굳어가며.
  수납 창구에 영수증을 들이밀었던 남자는 또 다시 똑같은 영수증을 들고 돌아서고 있었다. 처음부터 잘못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리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무슨 핑계를 대서든 막아서고 싶은 것이라 하더라도, 훼손된 시간을 지울 수는 없었다. 결코 도망치거나 피할 수도 없이 그것은 참으로 자연스러운 시간이었다.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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