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21. 산 - 사람들, 오독(誤讀)하는
나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읽는다’는 행위는 인간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도구이고 생존의 방식일 테지만, 모든 걸 다 안다고 말할 때, 이제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다고 확신할 때, 바로 그때 이전까지 읽었던 그 모든 것들은 틀린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소통은 혐오스럽다. 이해는 혐오스럽다. 안다는 건 혐오스럽고, 알겠다고 말하는 것도, 알아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알고나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도, 모조리 혐오스럽다.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그 행위들은 알 수 없어야 당연하고, 몰라야 당연하고, 그걸 두고 괴로워하거나 자학하고 자멸하는 일은 다시 잘못 읽는 행위일 뿐이다.
한 쪽 다리의 인대가 망가져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아야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아버지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다. 그래도 머리를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했을 때, 아버지의 목덜미는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의사가 천운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오히려 의사를 노려보았다. 힘드시겠지만 퇴원하고도 한 동안 집에서 잘 보살펴주셔야 한다고 부탁하자, 아버지는 누군가의 허리를 걷어차듯 병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의사가 나가고 나자 형은 내 목덜미를 틀어쥐고 병원 복도 제일 어둔 구석으로 끌고 갔다. 형편없이 쪼그라든 내 앞에 그는 마구 소리를 질렀다. 언어가 아니었다,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읽을 필요 없었고, 잘못 읽을 일도 없었다. 내 목덜미를 쥐고 마구 흔들 때,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마구 밀칠 때, 나를 둘러싼 허공 위로 마구 주먹을 흔들 때, 나는 아주 잠깐 그를 읽었고, 내가 읽은 의미는 제법 정확했을 테지만, 확신하진 않았다.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나를, 읽을 수 없는 세계를, 이제 나는 읽지 않기로 했고, 그제야 조금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미안하단 말도, 고마웠단 말도, 그녀와 나를 제대로 읽었다는 확신이 들 때 가능한 말이었다. 읽지 않고 내버려두는 일이 지금은 둘 모두를 위해 제일 좋을 것 같았다.
“아…들?”
꿈틀거리는 그 여자의 손가락이 내 팔꿈치를 매만졌다. 나뭇가지에 찔리고 팬 상처투성이 그녀의 얼굴이 나를 봤다. 웃으려고 했지만 퉁퉁 부은 자리 때문에, 피딱지가 들러붙은 자리들 때문에, 웃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서 무엇이든 읽고 싶어 했던, 무엇이든 읽어도 괜찮고 읽지 않아도 괜찮았던, 그 여자의 눈이었단 것만 알 것 같았다.
“다들… 갔어?”
모두가, 갔다. 무수한 망설임과 결심을 건너 뛰어 찾아왔을 그녀도 함께, 모두가 가버렸다. 하지만 엄마에게 그렇게 말하기는 싫었다. 모두가, 가버렸다고.
“우리 아들… 놀랬지?”
나는 힘없이 웃었다. 이제부터 엄마에게 잘해야겠다는 다짐이거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는 의미로 읽히는 건 싫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녀에게 웃음으로 읽히고 싶었다.
“아유, 우리 아들이 나를 보고 웃어주기까지 하고… 영광이네.”
“괜찮은… 거죠?”
묻고 보니, 바보 같은 말이었다. 그녀는 오래도록 괜찮지 않았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회복을 기다려야할 것이다. 기껏해야 괜찮지 않은 회복으로.
“응, 괜찮아. 말짱해.”
괜찮다는 그녀의 말을 이번에는 제대로 읽고 싶어서 나는 생각의 눈을 부릅떴다.
“그냥… 꿈 꿨던 거였어. 정말… 정말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랬어.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두 발이… 이 두 발이 나를 이끌어서 그렇게 되어버렸어.”
그녀 역시 스스로는 결코 읽어내지 못했던 자신을 만났다고 고백했다. 나도 그랬었다고 말하기 위해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미안하다, 아들? 이젠 안 그럴게.”
다시 고개만 끄덕. 알겠다고, 이번에는 잘 읽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똑같은 몸짓이라니 조금 조급해졌다.
“나 때문에… 우리 아들, 많이 힘들었지? 도움도 별로 안 되고… 맨날 잔소리만 하고…”
퉁퉁 부은 자리와 피딱지의 자리가 뒤엉켜 그녀의 미소는 기괴했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 우리 아들은, 우리 아들 삶이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해야 되는 걸 알겠는데, 그게 잘 안 돼. 마음은 정말 그렇지 않은데… 뭐가 됐든 간에, 우리 아들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데… 내가 바라는 건 그거 하난데…”
읽어내지 못했던 그 마음을, 그녀는 되짚고 있다. 스스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던, 잘못 읽었던 그 시간을 더듬는다.
“그래도 나는 우리 아들이 참 부럽다. 너는 그래도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말하려고 하잖아? 그렇게 힘들고, 어렵고, 복잡해도… 너 자신에 관해 뭘 생각해내려고 하잖아?”
갑자기 머릿속이 흐려졌다. 잘못 읽었다고 믿었던 그 믿음이 흔들렸다.
“엄마는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거든. 난 항상… 너희 아빠를… 너희 형을… 그리고 너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줄 밖에 몰랐거든. 나에 관해서… 생각하고 말할 줄 몰랐거든. 그래서 엄마는 네가 부럽다. 너 자신에 관해서 그렇게 오래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최소한 이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네가 차암 부럽다.”
아니다, 그녀는 지금 아무런 목표 의식도 없이 생각도 없이 몽롱하고 무기력한 삶을 사는 내 모습을 책망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그런 삶은 절대 살아서는 안 되는 거라고 훈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미 그 어떤 것도 오독할 수 없는 나는, 읽으려는 마음이나 읽지 않으려는 마음조차 놓쳐버린 나는, 그녀의 손만 붙들고 있었다.
“멋지다, 우리 아들!”
친친 붕대를 감은 손을 들어, 그녀는 내 손 등을 쓰다듬었다. 그거 아니라고, 그럴 리 없다고, 그렇게 읽으면 안되는 거라고 말해야하는데, 눈물만 계속 흘렀다.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이해하지 않고, 잘못 읽은 그 마음조차 분명히 알겠는데, 어딘가에 가 닿은 것 같았다. 마침내 어딘가에, 도저히 불가능하고 있을 수 없다고 믿었던 미지의 어딘가에. 신기하고 또 신비로운 어긋남이었다.
김비: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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