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산 - 사람들, 오독(誤讀)하는




  나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들의 말은 언제나 나와 나의 생각과 너무 멀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그들의 끄덕임은 위로가 아니라 혐오였다. 알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틀린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나는 언제나 더욱 더 기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엉뚱하고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그제야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이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할 테니까.
  그래서 내게 '소통'이나 '이해'라는 말은 포근하고 따스한 것이 아니라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소통을 갈구하고 이해를 청하는 그들의 몸짓은 너무도 간절해서, 오히려 더욱 역겹게 느껴졌다. 조금도 소통하지 못해놓고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핑계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너무 남루했다. 그들에게 소통이나 이해란 고작 강요이거나 훈계였고 나의 삶에서 그건 언제나 가장 물리치고 싶은 것이었다.
  그것이 비단 외부의 누군가와 나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또 다른 나 사이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였다. 무기력하고 우울한 시간들을 보내던 나는 가끔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행동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었다. 분명히 배가 부르다고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끊임없이 음식을 입 속에 집어넣다가 토해버리거나, 그 즈음 거의 유일하게 내게 친구가 되어주었던 학교 앞 매점에 작은 개의 허리춤을 걷어차기도 했다. 분명히 나는 그 개의 꼬리 짓이 너무도 반가워 자주 먹이를 가져다주곤 했었는데, 어느 날 나는 그토록 아꼈던 개의 허리를 짓밟고 있는 나를 발견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나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으니, 다른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고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세상이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어 단절되었던 끔찍한 현실에다가 나조차도 나와 소통할 수 없는 더욱 지독한 단절을 더하여,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고립 속에 나를 처박았다.
  그런 고립을 견디지 못해 발작하듯 폭력적으로 변하는 내 모습을 오직 엄마 한 사람만이 곁에서 지켜보아 주었고. 커버린 내 몸집을 감당하지 못해 번번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면서도 엄마는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이해하거나 내 마음을 읽으려고 애쓰지 않았던 건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내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모르는 일일 테니까. 그녀는 그렇게 내게 남겨진 단 한 명의, 나를 오독(誤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하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고요는 더욱 깊어지고 아뜩해진다. 내가 믿고 있는 언어는 세상의 언어가 아니었다. 세상의 언어는 언제나 외침이거나 절규였다. 그게 아니라면 조롱이거나 폭력이었고.
  한 쪽 다리의 인대가 망가져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아야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했던 건지, 아버지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다. 그래도 머리를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하는 의사의 과장된 말투에서 아버지의 목덜미는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의사가 천운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오히려 의사를 노려보았다. 힘드시겠지만 퇴원을 하시고도 한 동안 집에서 잘 보살펴주어야 한다고 부탁하자 아버지는 누군가의 허리를 걷어차듯 병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의사가 나가고 나자 형은 내 목덜미를 부여잡고 병원 복도의 제일 어둔 구석으로 끌고 갔다. 형편없이 구겨진 내 앞에 그는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언어가 아니었다. 말이 아니었다. 외침이었고 절규였고 조롱이었으며, 또한 폭력이었다. '인간'이라는 이름의 책무에 관해서 말하거나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정상과 비정상을 논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의 말에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시간이란 언제나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는 양가적인 언어일 뿐 언제나 내가 도착한 여기가 가장 최악의 경우라고 읽어버리는 것은 한 개인의 비관적 습성에 불과했다. 그가 말하는 인간으로써의 책무라던가 가족이라는 무리의 의미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의 언어가 아닌 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며 그저 침묵하고 있었다. 그가 주먹을 치켜들고 말을 잃어버린 내 얼굴에 들이 댔을 때에도, 나는 내던져진 꾸러미처럼 온 몸을 이완시키고 차가운 벽 위에 늘어져 있었다. 언어를 지운 내게, 그들이 말하는 인간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내게 이 세계는 그저 모든 것이 사라진 원시의 태초였으니, 나는 그저 화석화될 의무만을 남겨놓은 이름 없는 '미상'의 생물이었다.

  그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 없었다. 고마웠다는 말이 혀끝에 맴돌았지만 그것은 헤어짐을 반기는 말처럼 읽힐까봐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아팠던 것처럼 그녀도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나와 형이 달랐던 것처럼 엄마와 아버지가 달랐던 것처럼, 그렇게 그녀와 나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었던 것일 뿐. 처음부터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읽어낼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세상의 언어를 신뢰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서로가 주고받은 사랑의 말들은 모두 오독이었을 것이기에.
  "아… 들?"
  꿈틀거리며 그녀의 손가락이 내 팔꿈치를 매만졌다. 나뭇가지에 찔리며 엉망으로 패인 그녀의 얼굴이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붕대를 친친 감고 있었고 퉁퉁 부은 눈이었지만 그것은 여전히 세상에서 단 하나, 내게서 아무 것도 읽지 않으려는 고마운 눈빛이었다.
  "다들… 갔어?"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을 정리하지 못하고 나왔다며 아버지는 일찍 자리를 떴고, 형은 결혼할 여자의 전화를 받자마자 시종처럼 황급히 옷매무새를 추스르며 뛰어나가 버렸다.
  모두가, 갔다. 무수히 많은 망설임과 결심으로 나를 찾아왔을 그녀도 함께, 모두가 가버렸다. 하지만 엄마에게 그렇게 말하기는 싫었다. 모두가, 가버렸다고.
  "우리 아들… 놀랬지?"
  나는 힘없이 웃었다. 이제부터 엄마에게 잘해야겠다는 다짐이거나 형처럼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는 의미로 읽히는 것은 싫었지만, 그래도 나보다 더욱 놀랐을 그녀를 위해 그렇게 가벼운 미소라도 보여주는 것이 옳을 듯했다. 어쩌면 그것은 형이 말했던 '가족'이라는 이름의 책무였는지도 모르고.
  "아유, 우리 아들이 나를 보고 웃어주기까지 하고… 영광이네."
  "괜찮죠?"
  엉겁결에 묻고 보니 너무 바보 같은 말이었다. 의사는 그녀가 앞으로 한 쪽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을 것이라 말했고, 나뭇가지에 걸려 여러 번 공중을 돌면서 바닥에 떨어져 그녀의 온 몸은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눈을 떠 이렇게 희미한 말이라도 건넬 수 있었던 건 며칠 동안의 긴 잠을 자고 난 후 겨우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래, 괜찮아. 말짱해."
  언제나 반대로 읽어야하는 말. 가장 아프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 앞에 누구든 꺼내놓게 되는 이상하고 기이한 말.
  괜찮다는 그녀의 말을 이번에는 제대로 읽고 싶어서 나는 생각의 눈을 부릅떴다. 그 동안 나의 행동에 대한 반성이라던가, 엄마에게 반드시 보여주어야 하는 사죄의 의미 같은 것도 아니었는데, 자꾸 고개가 숙여졌다. 또 다시 어리석게도 나는 나 자신조차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꿈 꿨던 거였어. 정말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랬어.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내 두 발이… 이 두 발이 나를 이끌어서 그렇게 되어버렸어."
  그녀도 역시 스스로도 결코 읽어내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만났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아들? 이젠 안 그럴게."
  분명히 그것은 그녀의 진심이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자꾸 오독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그녀가 하지 않은 말들은 무엇일까, 그녀의 진심 뒤로 감춘 것은 어떤 말들일까. 오독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던 나는 어느새 엉뚱한 데를 더듬고 있었다.
  "나 때문에… 우리 아들 많이 힘들지? 도움도 별로 안 되고, 맨날 잔소리만 하고."
  겸연쩍게 웃느라 퉁퉁 부은 그녀의 볼이 기괴하게 틀어졌다.
  "그러지 말아야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 우리 아들은 우리 아들의 삶이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해야 되는 걸 알겠는데 그게 잘 안 돼. 마음은 정말 그렇지 않은데, 우리 아들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데……."
  눈물을 흘린다기보다는 어딘가에 고여 있던 물이 퉁퉁 부은 그녀의 얼굴 위에 흐르고 있었다. 눈물인지 진물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번들거림이었다.
  "왜 자꾸 그러는지,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 아들을 힘들게 하기만 할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자꾸 그러는지… 아유, 참."
  또 다시 읽어내지 못했던 스스로의 마음을 말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던 오독하는 시간들. 그녀도 나처럼 스스로를 읽어내지 못하는 시간들에 둘러싸였던 것을 이제야 나는 알 수 있을 듯했다.
  그녀의 손을 꼭 잡았는데 왈칵 울음이 터졌다.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무기력한 시간들을 알겠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엄마와 아들이라는 끈 때문이 아니라, 그녀도 나도 삶이라는 시간 앞에 아무에게도 읽혀지지 못한 채 그렇게 오래도록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는 것을 알겠기에.
  "그래도 나는 우리 아들이 참 부러워. 너는 끊임없이 너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말하려고 하잖아. 힘들고 어렵고 그래서 부대끼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너 자신에 관해 생각하고 무언가 말하려고 하잖아."
  갑자기 머릿속이 흐려졌다. 분명히 그녀의 말을 다르게 읽어야하는데, 반드시 오독해야한다는 생각이 순간 흐트러졌다.
  "엄마는 한 번도 그래본 적 없거든. 엄마는 나에 관해서… 나 자신에 관해서 한 번도 고민하거나 말해본 적 없거든. 엄마는 항상 너희 아빠를, 너희 형을, 그리고 너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줄 밖에 몰랐거든. 그래서… 엄마는 네가 부러워. 너에 대해서… 너 자신에 관해서 그토록 오래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네가 최소한 이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나는 네가 부러워."
  아니다, 그녀는 지금 아무런 목표의식도 없이 생각도 없이 몽롱하고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는 내 모습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그런 삶은 절대 살아서는 안 된다고 훈계하고 있는 것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미 아무것도 오독할 수 없었던 나는, 그녀의 손을 붙들고 꺽꺽거리며 울고만 있었다.
  "멋지다, 우리 아들!"
  쇠약해진 손으로 더듬거리며 그녀는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저 더듬거리듯 툭툭 치는 것에 불과했지만, 내 온 몸은 한꺼번에 흔들리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그녀의 말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였고 그녀도 자신의 생각이나 말을 온전히 읽어내지 못한 채였지만, 생전 처음 나는 그녀의 마음속에 가 닿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읽지 않으며 이해하지 않고,
  끊임없이 오독하면서 마침내 맞닿은,
  이상하고 신기한 어긋남이었다.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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