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 자유로운, 부유(浮游)하는

 

 

 

 

 사랑에 관해 생각하는 일은 그만두었다. 사치라고 그것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지금의 나에게 사랑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사랑이라는 것이 그러하듯 문득문득 떠오르겠지만 다른 쪽으로 걸어야하는 내게 그건 지나쳐야하는 풍경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라는 시간을 무력하다고 단정 짓는 일이 어리석음을 알지만 사랑이 떠난 자리에서 사랑을 생각하는 일은 기껏해야 치기어린 자학인지도 모른다.

 직업 교육원에서 수업을 듣는 일도 그만두었다. 아침 아홉 시부터 네 시까지 주로 엑셀이니 워드니 하는 컴퓨터 관련 수업을 듣기는 했지만 그 역시 내게는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주로 아주머니들이 많았던 수업은 즐겁고 경쾌할 때가 많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 지금의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어리지도 않은 친구가 왜 이런 수업을 듣느냐, 지금 직업 교육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니냐, 가끔 그런 질문들을 들을 때면 곤란하기는 했지만 비단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직업 교육원에서 보냈던 그 시간도 사랑처럼 나에겐 또 다른 자학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직업 교육원에 나가지 않는 대신 여기저기 일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가족들이나 세상이 기대하는 그런 모습으로 나를 변화시켜야겠다는 신념이 생겼던 것은 아니지만, 그저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그곳이 아닌 어딘가. 물론 그곳에서 또 다시 예전과 똑같은 모습을 되풀이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어디로든 발을 내딛고 싶었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발걸음이더라도.

 다행히 공장이나 작업장에서 육체적인 노동을 할 수 있는 일자리들은 많은 편이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이제 겨우 서른이 된 건장하고 평범한 나에게 대부분의 현장 직 업체들은 호의적이었다. 그 중에 한 군데를 선택했을 때 머릿속에 고려했던 단 한 가지는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과의 거리였다. 퇴근을 하고 병원에서 엄마를 돌보아야하고 그 곳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다시 출근을 하는 일상을 보내야했기에 직장과 병원과의 거리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이었다. 물론 직장을 다니면서도 엄마를 돌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가족으로써의 책무나 의무감 따위가 아니라 동질감에서 기인한 애틋한 연민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처음 다니게 된 직장은 타이어를 만드는 카본 가루를 수입해서 따로 포장해 전국 각지에 있는 타이어 공장에 내보내는 일이었다. 지게차를 운전하는 법을 배워야했고 수 백 키로가 넘는 포대를 채우고 쌓는 일을 반복해야하는 고된 일이기는 했지만, 작업장 구석에 작은 사무실이 있었고 그곳에서 카본 가루를 실은 트럭이 들어올 때에만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크기와 종류 별로 포대에 나누어 담아 쌓아 놓기만 하면 되는 일이어서 어렵지는 않았다. 어쨌든 사람들과 그렇게 크게 부딪히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또한 심리적인 불안이나 우울이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카본 가루를 포대에 담아 포장을 하고 나면 카본 가루가 들러붙어 온 몸의 구멍에서 시커먼 검댕이 묻어나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내 안에 쌓여있던 찌꺼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아 오히려 홀가분했다.

 직장을 구했다는 이야기에 엄마는 자꾸 시커멓게 되는 내 손을 붙들고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나 자신도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고 또한 여전히 불안하고 우울하기도 했지만 나보다 더 불안한 그녀의 눈빛을 보니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온 몸에 지워지지 않는 검은 검댕은 불안하고 우울한 내 감정을 감추기 위한 아주 편리한 가면이 되어주기도 했고.

 우울한 그녀와 우울한 내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전히 우리는 무기력하고 기운이 없었지만, 어쩐지 함께 우울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나에게는 나조차도 이해하고 납득하지 못하는 나와, 그런 나를 이해하고 납득하지 못하는 타인이 존재할 뿐이었는데, 여기 새로운 직장에서 나는 처음으로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십 년 가까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오 팀장은 언제나 제일 먼저 가족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에게는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어서, 당신 스스로는 제대로 된 가족의 품이라는 걸 느껴본 적이 없어서 그건 언제나 반드시 이루고 싶었던 꿈이라고 했다. 돈이나 성공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현실 속에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일찍이 깨달았기에, 가족을 갖는 일은 자신이 갖고 있는 꿈들 중에 유일하게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고 그는 웃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귀하게 간직하고 싶었던 거라고.

 귀하고 소중한 가족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 없었으면서 그래서 그것을 그렇게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거라니, 처음에 나는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가 말했던 귀하고 소중한 가족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족 안에서 희망이나 꿈을 찾지 못하던 내게, 그것은 가식이거나 망상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커멓게 된 손으로 지갑 속에서 아이들 사진을 꺼내보는 그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어쩐지 그의 꿈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그것이 자기 최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온통 검댕에 그을린 그의 일상에 그토록 환한 웃음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 그의 세계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나는 그가 내미는 사진들을 관심 있는 척 들여다보며 '좋겠어요.' 말했다. 그것은 그가 기대하고 있을 바로 그 부러움의 미소였고 그는 껍데기뿐인 내 미소만으로도 충만한 행복감을 참지 못해 큰 소리로 껄껄 웃었다. 거짓이 진실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역설이었다.

 나보다 삼 개월 전에 들어왔다는 최 씨 형님은 내내 말이 없었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까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들어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언제나 구석에 혼자 앉아 땀만 닦아냈다. 어쩐지 외면하고 싶지 않은 익숙한 그의 고립에 한 번은 그에게 다가가 음료수 캔을 내밀었는데, 그는 편안한 미소 한 번 보여주는 일도 힘겨운 듯했다. 음료수 캔을 들고서도 그는 내게 아무런 말 한 마디 하지 못했고 신참을 대하는 경력자의 빤한 훈계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하면 그냥 듣고 있었고, 무언가 질문을 하면 그저 그렇게 힘겹게 미소를 짓는 것이 전부였다.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후로 더 이상 그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그가 하지 못한 말이 무엇이든 그에게 그토록 힘겨운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조차 폭력임을 알기에. 억지로 지어야하는 미소의 고통을 나 역시 잘 알고 있기에.

 나보다 나이가 어린 김 씨는 자동차에 빠져 있었고, 그와 비슷한 또래인 박 씨는 경리 아가씨에게 빠져 있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이상하게도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또렷해졌다. 나를 생각하고 나를 고민하며 내 안으로 파고 들어갈 때에는 전혀 모르겠는 것이 바로 ''이더니,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듣고 있으니, 어느새 나의 모습이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

 분명히 내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우울하고 무기력하며 흘러가는 시간에 짓눌리는 느낌을 견딜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마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여전히 흔들리고 불안한데 온 몸이 이완되며 느릿느릿 걷고 있는 편안함. 그들은 그들의 세계에서, 나는 나의 세계에서 어차피 똑같은 곳을 향해 걷고 있다는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는 기시감.

 

 그들은 그렇게 거기에 있고, 나는 이렇게 여기에 있다.

 

 

 소통이 감동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말이 오독되고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진정한 소통이란 소통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서있는 여기에서 그들이 서있는 그곳을 바라보는 일. 나와는 전혀 다른 그들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끝까지 등지지 않는 일.

 소통이라는 목적 앞에 주저앉아서 그 이유를 따지며 괴로워하는 것은 결국 소통과 가장 멀리 있는 몸짓일 것이다. 인간이란 처음부터 끊임없는 오해와 난해가 뒤엉키며 만들어진 시간의 피조물. 그렇다면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던 소통을 한탄하며 비관할 일이 아니라, 소통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커다랗고 감동적인 소통인 것인지도.

 "제가 들어갈까요?"

 최 씨 형님은 여전히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오늘은 그와 내가 남아 트럭의 마지막 포대까지 끌어내 쌓아놓는 잔업을 하기로 했다. 커다란 트럭의 앞부분에 실은 것들은 나무 팔레트를 지게차로 내려 끌어내리면 되는 일이지만, 트럭의 맨 안쪽에 쌓여있는 것들은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 일일이 트럭의 입구 쪽으로 끌어내야만 했다. 밖에서 기다란 줄로 팔레트에 연결해 끌어내는 일과, 안에 들어가서 포대를 밀어내는 일이 동시에 균형적으로 이루어져야만 조금씩 앞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그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무게였다.

그렇다면 그는 소통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소통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과 다른 타인의 생을 존중하며 묵묵히 자신의 앞길을 걷고 있는 그야말로 우리들 중에 가장 현명한 소통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인지도. 그렇다면 내가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노력은 소통이 아니라 어쩌면 소통을 가장한 단절의 몸짓?

 "갑니다!"

 갑자기 나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이 뜨거웠는데, 그래서 그를 향한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었던 건데 아직 포대를 밀 준비가 되지 않은 이쪽 상황을 모르는 입구 쪽에서 팽팽하게 줄이 당겨졌다. 기우뚱 포대가 기울어지는가 싶어 황급히 떠받치려고 포대에 두 팔을 들어 올리는데, 다리 아래에서 무언가 퍽 튕겨 올라 내 무릎을 쳤다.

 "!"

 기다란 철판이었다. 마지막 나무 팔레트를 트럭 끝으로 밀어놓으며 그 사이를 괴고 있던 철판이 칼날처럼 튕겨 내게 날아왔던 것이었다. 찌릿한 통증이 무릎 위에 꽂혔다. 찢겨진 작업복 안으로 철철 피가 흘렀다. 쩍 벌어진 상처 속으로 허연 뼈가 드러나 보였다. 갑자기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는데, 그 순간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바쁘고 분주한 일상 속에 이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믿었던 그녀였다. 이해하거나 소통할 필요도 없이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을 그녀. 그리고 여기에서 이렇게 피를 흘리며 무릎을 움켜쥔 나.

 갑자기 울컥 눈물이 치밀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왜 눈물이 나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여전히 나는 나를 읽어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갑자기, 너무나도 갑자기

 그녀가 몹시도 그리워졌다.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Name *

Password *

Link (Your Homepage or Blog)

Comment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