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잎새 - 적의(敵意), 여기

 

 

 

 그래야한다고 나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그들의 삶은 언제나 나의 고립을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내게 '?'냐고 물었고, 나는 그저 내 안에서 떠오르는 환멸을 혼자서 견뎌야했다.

 그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건 서른이 넘어서였다.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 인간으로 살아오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은 당연히 환대였을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리라 믿었던 그것의 부재를 받아들이면서, 그 상실감을 채운 것이 바로 세상에 대한 적의(敵意)였다. 그것은 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고, 다시 세상과 사람들에게 환대가 아닌 적의를 드러내야하는 나만의 근거가 되어버렸다.

 그런 나를 고쳐야한다거나 바꾸어야겠다고 다짐해본 적도 없었다. 내가 모르는 기억의 어느 순간 그런 흔들림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나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비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의 적의를 알고 있다고 믿었다. 말하지 않아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아도 그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선뜩한 것들을 나는 다 들여다보고 있다고. 그것을 지우는 일이란 어쩌면 나 자신의 존재 의지를 꺾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오랜만에 만난 유진은 데리다 오빠에게 수다스럽게 자신의 일상들을 털어놓았고 그의 일상을 묻기도 했다. 그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짧은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환대의 눈빛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유진도 그 사실을 눈치 챘기에 평소보다 더욱 과장된 모습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향한 본능적인 불편함을 깨우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그렇게 현명한 삶을 사는 그가 부러웠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가슴에 박혔던 말들만을 여러 번 곱씹고 있었다. 나를 꽁꽁 둘러싸고 있던 감정의 껍데기, 아무것도 지킬 생각이 없으면서 제일 어둡고 혹독한 구덩이 속에 나를 밀어 넣어버린 어리석음. 알고 있다, 그게 바로 적의라는 것.

침대 위에서 휴대폰이 몸부림쳤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나처럼 그건 여러 번 몸을 떨었다. 작은 화면 위에는 현아 언니의 이름이 떴다. 지금은 누구와도 아무런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은데.

 "너 뭐하니? 벌써 자는 거 아니지? 괜찮으면 지금 빨리 데리다 오빠 가게로 와줄래?"

 전화를 들지도 않고 손가락만 움직여 스피커폰을 켰는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리다 오빠 가게에 불이 났어! 누가 불을 질렀대!"

 화염에 휩싸이는 무언가가 갑자기 눈앞에 떠올랐다. 활활 타오르며 순식간에 모든 것들을 잿더미로 만드는 어떤 결심이 기억났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오래도록 나를 살게 했던 거라고 믿었던 바로 그 적의였다.

 

 용의자는 현장에서 붙들렸다고 했다. 밤에 내린 소나기 때문에 불이 제대로 붙지 않아 그가 현장에서 머뭇거리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불안하고 뒤숭숭한 마음에 데리다 오빠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것도 천운이라고 했다.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재빨리 뛰어나와 석유통을 던지고 도망치는 그를 향해 몸을 던지면서, 그는 그가 며칠째 자신의 가게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남자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수상한 협박 편지들이 며칠 째 날아들었던 것을, 데리다 오빠는 그제야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그것이 그 용의자의 범행인지는 조사를 더 해봐야하는 것이겠지만, 그 모든 것이 붙잡힌 용의자 단 한 사람만의 적대감은 아닐 거라는 사실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은.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던 적의가 그토록 소름끼치고 참혹한 것이어서.

 이십 대 후반의 그는 철없던 시절 클럽에서 만난 여성들과 몇 차례 관계를 맺었다가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한꺼번에 무너져버린 시간들 때문에 삶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분노를 견딜 수 없어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그는 경찰에게 자백했다.

 후천성 면역 결핍증의 발병과 동성애가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니었음에도 그는 그것이 동성애자들의 병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 가게의 주인이 동성애자이며 밤마다 동성애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라는 소문이 동네에 퍼지면서,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견딜 수가 없었다고. 동성애자가 아닌 자신은 이렇게 병이 들어 온 생애가 위태로운데, 아무렇지 않게 근사한 카페를 차려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멀쩡한 동성애자인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당장 칼이라도 들고 뛰어들고 싶었노라고, 그는 털어놓았다.

 다 죽여 버리고 싶었다고 울부짖는 그를 보며, 데리다 오빠는 말이 없었다. 나와 현아 언니는 소름이 끼쳐 물러섰지만 그는 오히려 남자에게 한 발 더 다가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미안함인지 아니면 여전히 남아있는 분노인지 그는 자꾸 눈길을 피했지만, 데리다 오빠는 입술을 깨물고 있는 그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몸을 떨며 두 눈을 번뜩이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천천히 말했다.

 "그건죽는 병 아니에요. 스스로가 잘 관리만 하면, 누군가의 눈에는 평범하고 괜찮아 보일 수도 있는 그런 병이라고요. 그 쪽도 그렇게 말했잖아요? 내가너무나도 평범하고 멀쩡해 보였다고."

 입술을 깨물고 있던 남자가 그에게 눈을 맞추었을 때, 데리다 오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괜찮다는 말이었다. 당신을 죽이고 있는 것은 병이 아니라, 당신의 분노라고, 어리석은 적의라고 그는 두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우리들 중 아무도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그와 만난 것은 벌써 십오 년도 훨씬 지난 일, 그러나 어떤 시간의 크기도 누군가를 알고 이해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수 십 년을 만나도 여전히 낯설고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기도 하고, 단 한 번의 조우만으로도 평생을 함께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마술 같은 시간이, 여기 우리들 곁에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또 다시 손을 들여다봤다. '정말 그건 마술 같은 시간이었구나.' 새삼 코끝이 찡했다.

 "그래도 그렇게 그냥 풀어주게 해도 괜찮은 건가?"

 그녀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놔둬. 많이 힘든 게 당연해. 그건 단지 우리가 동성애자인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혼란스러웠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걸 테니."

 그는 눈앞에 놓인 커피 잔을 돌돌 돌리기만 했다.

 "오빠는 괜찮아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연히 괜찮지. 그냥 문 한 짝 타버리고 만 건데, ."

 "아뇨, 그거 말고요."

 그가 나를 봤다. 그러고는 피식 웃었다.

 "뭐야, 이거? 이젠 병자 취급하겠다는 거야? 왜들 이래, 어울리지 않게? 너희들도 아무도 몰랐잖아? 난 멀쩡해. 앞으로도 이렇게 칠십 까지는 살 거고. 후후. 그래 칠십까지는 살아야지."

 기억 속 어떤 시간이 불쑥 떠올랐다.

 "그래서, 이십 칠년이었던 거야? 그 때 말이야, 우리 늙어서 뭐하고 있을지 생각해보자고 했을 때그래서, 이십 칠 년이었어?"

 대답도 없이 그는 희미하게 웃고 말았다.

 "회사도 그래서 그만둔 거였구나? 괜찮은 직장인데 그냥 끝까지 다니지, 왜 그러나 싶었는데."

 현아 언니가 삐죽거리며 물었다.

 "처음 안 건 벌써 오 년이 넘었으니까, 그래도 꽤 잘 다녔지. 근데 나이가 드니까 조금씩 더 피곤해지더라고. 그래서 내가 이깟 돈 버는 게 중요한가 싶은 거야? 그래서 이걸 차렸던 거지."

 그가 가게 안을 빙 둘러봤다. 의자를 놓으며 장식품들을 놓으며 그림들을 보기 좋게 걸며,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이 갔다. 우리는 그저 그의 개업을 도우며 신나고 즐겁기만 했는데, 좋은 시작을 만들어주겠다고 더욱 더 떠들썩하고 시끄럽게 그를 돕기만 했었는데.

 문득 그가 나에게 화를 내던 순간이 떠올랐다. 가장 어둡고 참혹한 구덩이 속에 너를 밀어 넣고 네가 지키고 싶은 건 무엇이더냐, 따지던 그의 말. 그는 나에게 소리치던 것이 아니었구나. 바로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다그치고 있었던 거였구나. 나약해지고 형편없는 자학에 빠져드는 자기 자신에게.

 갑자기 오금이 저려왔다. 온 몸이 자꾸만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 땅도 사놨다? 뭐 크지는 않지만 나중에 나이 들어서 초가집이라도 짓고 혼자서 평화롭게 지내려고."

 "왜 혼자 지내? 우리가 있는데나랑 같이 살자, 나랑."

 사람 좋은 그녀는 자신의 가슴팍을 퍽퍽 쳤다. 벌써 여러 날 째 시간 강사의 처우와 관련해 카페 근처에 있는 학교 앞에서 밤샘 농성을 하고 있던 덕분에 제일 먼저 달려올 수 있었던 거면서, 그래서 누구보다 까칠하고 피곤한 얼굴이면서 그녀는 그를 향해 어깨를 활짝 폈다.

 "네 애인은 어떡하고?"

 "내 애인? 걔도 같이 살지, . 오빠 거기 땅 산 데가 어딘데? 나도 알려줘. 그러면 우리도 그 옆에 코딱지만 하게 사버리지 뭐. 아니면 오빠가 집 좀 크게 짓고 우리가 월세 들어가서 살던가. 그럼 생활비에도 보태고 딱이네."

 "또 어떤 놈이 불 지르는 꼴을 당하려고? 게이하고 레즈비언하고 뭉쳐서 산다는 소문나면 사람들이 퍽 가만있겠다!"

 그는 과장된 목소리로 껄껄 웃었다.

 "지랄, 내가 그걸 가만 둬? 나하고 우리 애인하고 합치면 웬만한 게이 열보다는 나을 걸?"

 남자처럼 가슴을 크게 부풀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왁자하게 웃어버렸다. 혼곤하게 지난밤의 일들이 꿈결처럼 머릿속에 희미해지는 듯했다. 시커멓게 그을린 문 너머로 푸르스름한 새벽하늘이 밝아오고 있었고, 우리 세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데리다 오빠는 오믈렛이라도 만들 테니 이른 아침 식사로 먹고 가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현아 언니는 그제야 긴 하품을 하며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밀렸던 잠이 쏟아지는지 그녀는 그렇게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순식간에 쌕쌕 잠이 든 그녀의 얼굴을 한 동안 바라보다가, 나는 다시 내 손을 들여다봤다.

 

 다시 한 번, '정말 마술 같은 시간이었구나.' 나는 되뇌고 있었다.

 

 적의가 깨우침이 되고, 그것이 다시 누군가를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소중한 기회가 되는 시간. 인간의 삶의 어느 모퉁이에서든 환하게 빛나는 힘을 발하는 마술 같은 시간.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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