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 그리워하다, 사랑하다




  "정말 혼자 있을 수 있겠어?"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말에 오 팀장은 난감해했다. 어머니마저 같은 병원에 입원 중이시라니 그는 더욱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따라 나와 최 씨 형님만을 남겨둔 채 일찍 퇴근을 해버린 터여서, 괜한 자책감 때문인지 이내 그의 목소리에 짜증이 뒤섞였다.
 "인마, 뭐가 괜찮아? 까딱하다간 다리 하나가 날아갈 뻔 한 일인데. 그게 허리 위쪽으로만 튕겨 올랐어도 너는 지금쯤 생사를 오갔어야할 일이야, 이게 지금!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
 얼마나 그렇게 '까딱'하는 시간은 어떤 행운과 불운을 비껴갔던 것일까.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그가 말했던 '까딱'의 시간은 나의 삶에 어떤 흉터를 남기거나 혹은 상처를 지웠던 것일까. 다행히 철판은 무릎 인대를 비껴갔고, 상처가 깊기는 했지만 뼈에도 이상이 없어 잘 아물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고 의사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까딱'했던 나의 시간은 고맙게도 이번에는 내 편이었다. 고맙게도, 고맙게도.
 "어쨌든 지금은 괜찮잖아요? 그러면 됐죠, 뭐."
 "짜식, 서른이 되도록 뭐한 거냐고? 애인은커녕 힘들 때 오라고 할 친구 놈 하나 안 만들어 놓고 그 나이 먹도록 뭐했어?"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빙긋 웃기만 했다. '까딱'하고 지나갔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지만 그의 말처럼 한 단락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었던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정말 아무도 없어? 정말 혼자서 지낼 수 있겠어?"
 무릎이 동강나며 붉은 피가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내 안에 여전히 존재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보았다. 구급차에 몸을 싣고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의사와 간호사들에 의해 병원 침대 위에 몸을 눕히면서 그토록 선뜩한 붉은 색처럼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단 한 사람이 분명히 있기는 했다.
 "그럼요, 걱정 마세요."
 물론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움은 사랑이 아니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이 사랑이라면, 기억이란 모두 판타지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그림이며, 망각은 가장 치명적이고 안타까운 고독의 병증일 것이다. 누군가의 이름이나 기억을 여러 번 쓰며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사랑은 쉽사리 내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이별은 그 모든 것들을 깨끗이 지워버리는 것만으로도 아주 쉬운 하나의 절차가 되어버릴 것이다.
 갑자기 머릿속이 맑아졌다. 사랑이라고 믿게 만들어버린 '까딱'하는 시간들이, 소통하고 소통되고 있다고 오해하던 그 때의 '까딱'하는 순간들이 내 앞에 부유하고 있었다. 그토록 쉽게 사랑이라 말해서는 안 되는데, 사랑이란 존재와 상실만으로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조용한 공존이었던 건지도 모르는데.
 또 다시 '까딱'하는 시간이 지나간다. 나는 그것이 이번에는 어느 쪽으로 나를 밀쳐버릴지 알지 못한다. 그저 그렇게 내게 어떤 흉터를 남기고 지나가는 시간들을 묵묵히 바라본다, 생각한다. 언젠가 내게 다가올 '까딱'하는 시간을 기대하며, 나의 의지와 진심만으로 가능하지 않은 '까딱'하고 지나가버리는 그 시간들을 묵고(黙考)하며.

 회사와 보상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서류를 뒤적이는 아버지와 형의 눈빛은 치밀했다. 사고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기 위해 찾아올 조사관에게 그들은 어떤 것을 말해야하고 어떤 것을 말하지 말아야하는지, 나에게 일러두었다. 두 사람은 내 앞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두꺼운 책 앞에 앉아있는 듯했다. 그게 아니면 두꺼운 돈뭉치이거나.
 한 줄의 문장으로 한 단락의 글자들로 어딘가에 기록될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슬퍼졌다. 무수히 여러 가지 소리를 내며 지나갔을 결정적이고 중대한 시간들이 그토록 남루한 글자 몇 개로 요약된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안타까웠다.
 지나가버린 시간을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어떤 시간이 어떤 흉터를 남기며 사라져버린 건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내가 놓쳐버린 것이 과연 시간인 건지, 어디론가 나를 떠민 그 시간들이 과연 한 지점을 향해 나를 밀쳤던 건지. 어쩌면 그 때의 그 시간은, 내가 몸을 비틀거나 혹은 발버둥을 쳐 그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떨어져 내릴 것을 예상하며 나를 거기에 밀쳤던 것은 아니었는지.
 자꾸 그녀가 생각났다. 그러나 보고 싶다는 말은 옳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그저 그녀의 모습이, 그녀의 말투가, 그녀의 웃음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물론 사랑은 아닐 것이다.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거나 그녀를 만지고 싶은 감정 따위는 없었으니, 그건 사랑이라고 불러야할 그리움과는 다를 것이다. 나는 그저 그 시간이 떠올랐을 뿐이다. 이미 내가 놓쳐버린 시간, 나를 어딘가에 밀쳐놓고 저 멀리 사라져버린 시간. 그리고 물론 가능하지 않겠지만, 지금 이 순간도 그러한 기억으로 인해 나를 떠밀고 있을 내 등 뒤의 어떤 '까딱'까지도.
 그렇다면 사랑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리움이 사랑이 아니라면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해야하는 시간들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모두 서로 다른 시간을 만나고 그 시간에 떠밀리면서, 당연히 사랑이라고 믿어버리는 건 어쩌면 엉뚱하게 떠오른 문양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사랑의 문양으로 새겨진 만남, 사랑의 문양으로 떠오른 우정, 사랑의 문양으로 새겨진 집착, 사랑의 문양으로 그려진 연민이나 동정까지. 그 모든 것들은 사랑이며, 그럼 그 모든 것들은 사랑이 아닌 걸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말 말고는, 시간은 인간에게 아무 것도 건네주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침대 위에서 천천히 몸을 흔들어본다. 서류를 들고 의사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는 아버지의 등짝을 바라본다.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어깨를 부풀리며 형이 의사를 감싼다. 무얼 요구하는지 난감한 의사의 얼굴이 보이고, 더욱 더 목소리를 높여 지나간 시간을 말하고 다가올 시간을 말하는 그들의 절규가 들려온다.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들의 고성과 싸움은 더욱 거세진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이렇게, 그녀를 그리워한다. 그녀가 보고 싶다. 그것에 사랑이 아닌 다른 어떤 이름을 붙이든 간에, 나는 그녀와의 시간을 그리워하며 또한 그런 시간에 다시 몸을 맡기고 싶다. 이름 따위 있든 없든, 사랑이든 아니든.

 "그렇게 돌아다녀도 괜찮은 거야?"
 "네, 딛지 않도록 조심만 하면 괜찮데요."
 "아버지는?"
 "어제 왔다 갔어요. 엄마한테는 안 왔다 가셨어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어떤 시간이 한꺼번에 뭉쳐져 그녀의 얼굴을 뭉개고 지나갔다.
 "형이 간병인 불렀다고 했는데, 왔어요?"
 대답도 없이 그녀는 고개만 끄덕였다.
 "사람은 어때 보여요? 괜찮아요?"
 이번에도 그녀는 대충 고갯짓만 했다.
 "혼자 있을 수 있겠어?"
 "나는 이렇게 움직여 다니는걸요. 그냥 좀 찢어지고 꿰맨 건데요, 뭐. 다리 하나는 멀쩡해요. 엄마도 혼자 있잖아요."
 혼자 있는 두 사람이, 함께 있다. 혼자 있는 두 개의 시간이, 함께 있다. 혼자 있는 두 개의 삶이 함께, 이렇게 함께 있다. 분명히 엄마도 나도 아무도 없는 혼자였는데,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우린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서로를 보며 웃고 있었다. 혼자 있는 서로를 응시하면서.
 "여자 친구는… 안 오니?"
 그녀의 물음은 갑작스러웠다.
 "네?"
 "여자 친구한테는 연락 안 했어?"
 "그런 거 없어요. 내가 그런 게 어딨어요?"
 "그래? 그럼, 그냥… 친구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말 상대도 해주고, 곁에 있어주는 그런 친구. 애인이니 뭐니 그런 거 아니더라도, 그냥 함께 있어주는 그런 친구."
 문득 그녀가 지금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묵묵히 그녀의 곁에 있을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렇게 몽롱한 꿈에 이끌려 창밖으로 뛰어내리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르는데.
 엄마에게는 그런 친구가 있느냐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그것은 어쩌면 힐난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문득 그녀의 사랑이 궁금했다. 그녀에게 그것은 어디에 있었는지. 헤어진 아버지에게 있었는지, 기억 속에 지워버린 누군가에 있었던 건지.
 또 다시 심장 밑 어딘가가 시큰거리며 아파왔다. 갑작스레 무언가 튀어 올라 그곳을 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나를 피 흘리게 했던 것이 그 길고 두꺼운 철판 하나만은 아니었던 건지, 내가 모르는 시간의 철판 하나가 도대체 어디를 긁으며 튕겨 나갔던 건지. 나는 왜 이토록 매번 어딘가가 퉁퉁 부어 쑤시고 있는 건지.
 엄마가 보지 못하도록 부끄러운 손을 들어 어딘가를 매만진다. 어디라고 딱히 이야기할 수 없는 여기저기를 꾹꾹 누른다. 피 흘리지도 않고 꿰매지지도 않는 온통 시큰거리며 아프기 만한 시간의 상처. 몸을 눕히지도 못하고 허리를 펴, 나는 남은 한 쪽 다리만 그저 벌벌 떤다. 느리고 더딘 회복의 시간이다.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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