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잎새 - 찾아서, 대리 보충을

 

 

 

 

   성준은 한참이나 테이블에 엎드려 울었다. 울고 있던 민수도 눈물이 범벅인 얼굴을 들어 그를 봤다. 모두들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했던 이야기를 쉽사리 납득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울고 있는 그의 눈물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배신이나 반역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모임을 함께 하며 언제나 툭탁거리는 일들뿐이었더라도, 동질감은 그들에게 떼어낼 수 없는 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성애자가 되어버린 그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듯했다. 어쩌면 그건 그만큼 그와 나 사이에는 믿음이나 위로라고 할 만한 소통이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오래도록 스스로를 동성애자라고 말해놓고 이성애자의 삶을 살기로 한 그의 결정에 최소한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여자라고 말하며 남자의 삶을 살았던 나나, 남자라고 말하며 여자의 삶을 살아야했던 민수는, 아마도 조금 더 쉽게 시간의 반역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동성애자라고 무수히도 여러 번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면서 매번 어떤 의심이나 의혹을 지우려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힘주어 자신은 절대 변하지 않는, 이성에게는 단 일 퍼센트의 흔들림도 없는 백 퍼센트 순수한 게이라고 여러 번 말해왔던 건지도.

   동성애자라고 말하며 동성애자가 아닌 자신을 깨닫고,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며 사랑인 것을 부인하려 애를 쓰고,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야아한다고 말하면서 조금도 서로에게 다가서려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시간들. 말 한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순진한 눈빛의 우리들의 등 뒤에서, 냉혹한 시간은 그렇게 좌절하고 오열하는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그깟 몇 마디의 말로 인간과 이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어리석은 우리들의 눈물을 비아냥거리면서.

 

   "보고 싶지는 않아?"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누나 말이야, 그 사람이 보고 싶지는 않느냐고."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나의 마음일까,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나의 마음일까. 아니면 그 모든 건 그저 유약해져버린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내 상념의 일부분일까.

   "글쎄."

   "보고 싶든 보고 싶지 않든 상관없지 뭐."

   갑자기 이성애자인 누군가와 '결혼하자.'고 말했을 그의 결심이 떠올랐다. 반역처럼 혁명처럼 토해져 나왔을 어떤 말. 스스로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인정하고서 '나는 동성애자야.'라고 말했을 그 때처럼 모든 일상을 한꺼번에 뒤흔드는 어떤 말. 그런데, 그건 정말 다른 걸까?

   "너는 어때? 너는 옛날에 만났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리워질 때가 있니?"

   "생각나기는 하지. 근데 그게 단순한 생각인지 그리움이라고 말해야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몸이 달아오르는 어떤 본능인지 그게 확실치가 않지."

   서성거리고 망설이는 사이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서성거리고 망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어차피 무언가를 놓쳐야할 것이고.

   "사랑이없어."

   도로를 꽉 매운 인파 사이를 걷다가, 그는 그 자리에 문득 멈춰 섰.

   "그게갖고 싶은 거라고 말하면서, 그래서 외로운 거라고 무수히 여러 번 이야기하면서점점 사랑이 없어져."

   사람들의 길을 방해하거나 그들의 길을 가로 막으며, 그는 거기에 서있다. 그에게 가로막힌 사람들이 불쾌한 눈빛으로 그를 보지만, 처음부터 그는 아무도 가로막지 않았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사랑이, 없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외로울까봐혼자 남을까봐 두려운 건 아닌 것 같애. 어차피 사람은 혼자거든. 삶의 시작을 혼자서 하는 거라면, 그 마지막도 분명 혼자일 거거든. 그냥……."

  사람들이 멈춰선 그를 피해서 지나친다. 더 이상 그에게 방해받거나 가로막히지 않고, 발길을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걸어간다, 움직인다. 걸어간다, 움직인다. 그리고 아무데로도 가지 않는 그는, 거기에 멈춰 서서 말하고 있다.

   "사랑이 없는 게싫어."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무슨 이름을 붙이든지 간에, 사랑이 없는 거싫어. 애써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싫고."

   그리고 그는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바보 같애, 그거."

   사람들과 함께 걷다가 갑자기 멈춰선 그를 나는 보았다. 멈춰 서'사랑이, 없다.'고 말하는 그를 나는 보았다. 그리고 '바보 같다.' 말해놓고 다시 사람들과 똑같은 몸짓으로 움직이며 걷고 있는 그를 보았고.

   나는 아직도 어디로도 움직이지 못한다. 누군가는 걷고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거기에 멈춰 서서 어디로 가야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물론 '사랑이 없다.'거나, '바보 같다'고 말하지도 못한 채였고.

 

   그 곳에 모인 누구에게도 파티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파티를 떠올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성준은 계속해서 상우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당연히 받지 않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남겼다. 대부분 욕설이거나 배신자라는 따위의 비난의 말이었지만, 가끔 그러다가 그는 휴대폰을 붙들고 울먹거리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그 또한 어떤 '반역'이라는 사실을 짐작했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믿었던 생각의 반역, 두 사람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감정의 반역.

   현아 언니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카페에 들어섰다. 고개를 박고 있는 성준의 등 뒤에서 그녀는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다른 시간 강사들과 함께 연대해 진행하던 점거 농성을 오늘로 풀게 되었다고 했다. 처우를 개선하겠다, 원하는 대로 모두 들어주겠다는 다짐이나 약속 따위가 아닌 그저 다시 협상을 진행하자는 제안뿐이었지만, 그녀는 오늘 밤엔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손님도 없는 카페를 독차지하고 우리는 부러 많은 음식을 주문했다. 민수도 불러야하는 것 아니냐고 데리다 오빠에게 물었을 때,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힘겹게 말했다. '그냥, 놔둬라.'

   평소에는 술 한 잔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그가 불콰해질 즈음, 카페의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의 발걸음엔 머뭇거림이나 망설임 따윈 없었다. 어쩌니 분명하고 또렷한 몸짓인지, 언제나 그의 정체성을 의심하던 누군가의 비아냥거림이 무색했다.

   "성준이 형은 왜 저래요?"

   "너야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 같구나?"

   현아 언니는 게슴츠레 눈을 뜨며 용호에게 물었다.

   "아무 일도 없었지, 그럼 무슨 일이 있겠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 엄마나 집안 식구들한테 는 거였지, 나한테는 아무 일도 없어요."

   "이렇게 여기 다시 와도 되는 거니? 괜찮은 거야?"

   "당연하죠. 난 아무것도 안 변해요. 변할 거면 예전에 변했겠죠. 난 똑같아요, 변한 거 없어요. 앞으로도 없을 거고요. 난 여전히 양성애자고, 사랑이라고 믿고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여자든 남자든 그런 건 상관없어요."

   무수히도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였는데, 오늘은 그 울림이 좀 달랐다. 마치 자신은 결코 반역을 경험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절대 그 앞에 무릎 꿇고 울거나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으리란 선언처럼.

   ", 우리 용호 멋지다! , 한 잔 마셔! 이 누나가 이거 오늘 다 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용호도 한 잔 마시고, 그 흔들림 없는 자세 끝까지 유지하며 사는 거야. 그렇게만 산다면 세상에 두려울 게 뭐가 있겠냐? ! 부럽다, 부러워!"

 

   그녀는 그의 앞에 놓인 잔에 술을 가득 부었다. 콸콸 흘러넘치는 잔을 들면서, 그는 또 다시 '성준이 형은 왜 그래요?' 물었고, '상우 형은 안 와요?' 또 다시 물었다. 우리들 모두는 그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저 서로의 잔에 자꾸 술을 채웠다. 비우고 다시 채우며 말은 많아졌고 웃음소리는 커졌지만, 끝내 그의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라는, 어떤 파티의 불문율이었다.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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