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 기호, 나의

 

 

 

  매일 아침 의사는 상처를 덮은 붕대를 들춰보고 나갔다. 그 다음 날도 그들은 똑같은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 상처를 들여다보고, 무언가 이야기하며 열심히 어딘가에 어떤 말들을 적어놓고는 그대로 병실을 나가버렸다.

  문득 궁금했다. 그들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내 상처를 보며 무슨 이야기들을 적고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언어로 적은 그 이야기들은 과연 옳은 것일까. 또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이 그곳에 기록해놓은 언어들은 어디에서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갑자기 억울했다. 상처받은 자들은 자신들의 상처를 알 수 없는 역설을 지녔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에 의해 아무렇게나 기록되고 있을 나의 상처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이것은 분명 나의 상처인데. 철판이 튀어 올라 내 무릎을 치고 간 시간은 잠깐이었지만, 단순히 한 단어, 한 문장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되는 어떤 시간과 생각의 씨줄과 날줄이 여러 번 엇갈린 매듭이었던 것인지도 모르는데.

  말하고 싶었다. 그들의 기록이 틀렸다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더 많은 것들을 기록해야하며 그러기 위해 분주히 생각의 손을 움직여야한다. 과잉된 감정의 기록이거나 기껏해야 자학이라고 폄하되더라도 상관없을 것이다. 분명히 내 안에는 말하지 못한 것들이 있으며 기록되지 못한 것들이 있다. 게다가 우리들의 언어란 치명적으로 불완전한 숙명을 지녔으니, 서로 다른 모양으로 몸을 섞은 여러 개의 기호들 사이에는 어차피 나의 생각으로부터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이 존재할 테.

  그래서, 나는 적고 또 적기로 마음먹는다. 짓밟히거나 오독되지 않는 나의 생을 위하여. 나는 비로소 안타깝고 소외된 나의 생을 지금에야 알겠기에.

 

  맨 처음 나는 나의 우울에 관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나의 무기력을 적어 내려갔. 무자비한 시간의 힘으로 인해 분명히 가장 많이 소외되었을 나의 우울들. 어차피 나는 사람들의 언어를 믿지 않지만 그러나 나는 언어를 믿지 않는다는 말을 언어로 적어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언어를 믿고 있는 그들에게 언어를 믿지 않는 내 말을 전달할 수 없을 것이기에. 불완전한 그들의 언어를 빌리며, 나는 그렇게 배려를 알게 되었다.

  병실 침대에 앉아 노트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채워가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떤 한계에 부딪혔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이따금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물론 꽉 채운 백지 여러 장으로 남겨진 우울과 무기력의 시간들은 지금 여기 이 시간까지 잠식하려하기도 했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나는 알고 있다. 언어, 기호, 그리고 똑같은 거리감을 지닌 채 평행선을 그리며 지나가고 있을 진실이나 진심을. 그렇게 나는 또 균형을 잡는 법을 배웠다.

  엄마의 병실에 찾아가 그녀에게도 내가 기억할 수 없는 나의 시간들에 관해 물었다. 그녀는 거북이가 당신을 태우고 망망대해 쪽으로 헤엄쳐 나아가는 태몽을 꾸고 나를 낳았다고 했다. 거북이 꿈은 앞으로 낳을 아이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거나 장수하게 되는 태몽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그녀는 오랜 시간 어딘가에 발을 빠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 때에도 자신이 무언가 잘못해서 아이를 그 깊은 나락으로 밀어버린 것은 아닌가, 자책하기도 했다고.

  그녀에게 들은 나의 시간을 적다보니 그것은 나의 시간이었던 동시에 그녀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미 사라져버린 그 때의 그 시간과 언어 사이, 그리고 그녀의 시간과 나의 시간 사이. 내가 애초에 쓰고자했던 진실로부터 훌쩍 멀어지며 아뜩한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들을 꾹꾹 눌러 적으며 또 다시 철판 하나가 튕겨 오른 것처럼 내 마음 속 어딘가 통증이 밀려왔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또 다시 무언가를 배우게 되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기록한다는 것은 결국 지워버린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록되지 않은 모든 것들은 더욱 완벽하게 지워져버릴 것이다. 기록하며 지워버리고, 죽음을 떠올리며 생의 의미를 확인하고, 사랑하면서 증오하고, 또 살아가면서 죽어가는.

  모두가 잠든 한 밤중에 오렌지색 등불에 의지해 노트를 채워가다가 나는 망설였다. 훼손되거나 소외되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마저도 망각의 몸짓이라는 것을 알겠기에. 나는 지금 쓰면서 또한 지워가고 있는 것이기에. 그럼에도 나는 또 다시 힘을 내 써내려간다. 지워지고 소멸해가는 것들의 편에 서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역설을 무릅쓰고 살아남는 것이 나의 임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지내요?"

  문 밖에 서 있는 나를 보며 그녀는 한 참을 멍하니 바라봤다. 나도 데리다 카페 바깥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녀를 오래도록 지켜봤다. 이렇게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것은, 소외되거나 훼손되지 않는 나를 내 손으로 온전히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많이 훼손되고 소외된 것이었기에.

  ", 잘 지내요."

  "다리는왜 그래요? 다쳤어요?"

  그녀가 지나간 시간을 묻고 있었다. 나는 망설였다. 내가 입 밖으로 내미는 말들이 혹시나 오독될까 염려하면서. 그녀에게만큼은 오독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가닿고 싶어서.

  ", 일하다가요.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요."

  말하지 않고 그녀는 빙긋 웃었다. 괜찮다는 말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깊은 상처를 남기며 온 생애를 뒤흔들었더라도, 지금은 괜찮다는 바로 그 간단한 말 때문에. 여러 번 꼬인 혈관 저 끝에서 뜨거운 피가 돌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품에 안긴 듯 온 몸이 따스해졌다.

  "그 쪽도괜찮죠?"

  또 다시 말하지 않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몸짓이란 그 어떤 기호나 언어보다 더욱 선명한 말이 아닌가. 분명하거나 또렷하지 않아서 결코 훼손되어지지 않는.

  "번역 일은 계속해요?"

  "그래야겠죠? 나는 성질이 더러워서 누구 시중들고 즐겁게 해주고 그런 거 못하거든요. 그나마 나는 그렇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도 있으니 다행이겠죠."

  "자기 글은 안 써?"

  나는 그녀에게 기록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녀야말로 소외되고 훼손되어버린 진심이 많을 테니, 굳은살처럼 박혀있는 그것들을 기록하는 일이야말로 그녀에게는 또 다른 구원일 것이기에.

  "냄새가나지 않으면요. 그 때까진 쓰면 될 것 같아요. 이왕 쓰는 거, 냄새가 아니라 향기가 나게 써야죠."

  "냄새가 뭐 어때서요?"

  그녀가 또 다시 나를 물끄러미 봤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무언가 입 안에 담고 한 참 오물거렸다.

  "많이고마웠어요."

  순간 '고맙다'는 말이 참 고마웠다. 아무래도 그것은 그 어떤 몸짓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듯했다.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 어딘가 어루만져지고 있는 기분이 드는 것을 보면 그것은 참으로 고마운 '고맙다'였다.

  "나도요. 나도 많이 고마웠어요. 어쩌면 그래서 이렇게 다시 찾아온 걸지도 모르고요."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불현듯 나의 시간 위에 그녀를 기록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 그것이 아직 지워지지 못한 흔적 같은 것일까 . 사랑이 아니라고 말해놓고, 사랑일까 봐 두려워서.

  "그래서, 그렇게 기록하고 나니까 조금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냥알게 되는 거죠. 거리감이요. 아무리 정확히 말하려고 해도, 그냥 대충 얼버무려도 분명히 존재하게 될 내 진심과의 거리감이요. 그걸 확인하고 깨닫는 작업인 것 같아요. 이상한 건 그게 절망이거나 좌절 같거라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않더라고요. 모호하다고 여러 번 쓰게 되는 수밖에 없는 건데, 이상하게도 모든 게 또렷해지더라고요. 신기해요."

  모호해서 더욱 또렷한 것을 알고 있는지, 그녀도 내 앞에 활짝 웃었다.

  "맞아요. 정말 알 수 없는 것들이 참 많아요. 들여다보려고 더욱 크게 눈을 뜨면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면 감은 눈꺼풀의 어둔 뒤편에서 무언가 슬그머니 떠오르는 그런 거요. 이상해요, ."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도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서로 함께할 수 없는 것들을 깨달아버렸다. 그래서 헤어졌고 그리고 이렇게 다시 만났다. 여전히, 사랑하지 않고 헤어진 채로. 어쩌면 모호하다고 말해도 좋을 흐릿하고 뭉개진 어떤 감정의 시간 위에서.

  "어렸을 때 그런 일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땐가, 5학년 땐가난 키도 크고 다리도 길고 그랬는데 달리기를 참 못했거든요. 어쨌든 운동회 날이었는데 달리기를 하다가 그냥 중간에 주저앉아버린 거예요. 다른 애들 다 뛰는데 나만 그냥 철퍼덕 이. 후후, 도대체 그 때에는 무슨 맘을 먹고 그랬던 건지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죠?"

  주저앉았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내 기억 속 어딘가가 큰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근데이상하게도 지워지지가 않아요.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러도, 그 때 그 장면이 선명해요. 언제가 되었든 간에 이다음에 꼭 다시 뛰어야할 것처럼요. 마치 누군가 나한테 세뇌라도 시키고 있는 것처럼 그 때 그 장면이 계속해서 떠올라요."

  와글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비난하고 내게 소리치는 목소리들이 나를 감쌌다. 이미 모두가 멀리 사라져버린 트랙 위에서 나는 서성거리고 있었다. 내가 왜 그곳에 서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나는 왜 달려야했고 그렇게 멈춰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해요. 나중에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때 미처 끝까지 달리지 못했던 그 거리를 같이 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구나. 아니, 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냥 천천히 걷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 그냥 그렇게 멍하니 서 있게 되더라도,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어 나를 일으켜줄 사람이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이요. 판타지죠, 판타지. 그죠?"

  기억은 어떤 언어일까. 언어가 아니라면 그것은 어떤 기호일까, 신호일까. 우리는 어떤 색깔과 모양의 기호를 떠올리며 만나고 헤어지는 것일까. 판타지라고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갑자기 내가 열심히 끌어 모았던 불완전한 언어들이 퍽 흐트러졌다.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며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기억의 문양으로 다시 모여섰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왜 그랬던 것인지 알지 못하는 기억의 문양. 언어도 아니고 기호도 아니었는데, 그것은 신기하게도 똑같이 겹쳐지고 있었다.

  "그만 가요. 우리 가끔 이렇게 또 봐요.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요. 헤어진다는 건헤어지는 게 아닌 것 같아요. 한 번 만나게 되면 그저 서로 달라진 거리를 두고 여전히 같이 가는 것 같아요. 자기가 아까 말했던 그 거리감이요. 다시 만나게 되서나는 참 좋아요."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모든 것들이 흐트러졌다. 내가 믿고 있던 진실이 아닌 진실과, 사랑이 아닌 사랑과, 언어가 아닌 언어, 기호가 아닌 기호, 그리고 삶이 아닌 삶까지. 모든 것들이 뒤엉키며 어지러웠다. 놀이기구에 올라탄 것처럼 뱅글뱅글 돌고 있는 듯 현기증이 났고 속이 메스꺼웠다. 그녀와 나의 시간이 엇갈리며 서로 다른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생의 순환에, 모든 것을 초월하는 이상한 차원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어린 아이처럼 무작정 환호해도 괜찮은, 그녀가 말한 바로 그 판타지였다.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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