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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386

[기고] 성소수자가 철탑에 오른 현대차 비정규직에게 보내는 편지 - 성소수자가 현대차 비정규직과 '희망'을 말합니다 오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 안녕하세요. 지난 1월 5일 희망버스 때 편지를 쓰고 두 번째네요. 그때 고마웠어요. 송전탑 아래 집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용기 내어 드러내면서 함께하신 동성애자 동지들"이라고 말해주어서 고마웠어요.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계속 울컥울컥했어요. 아마 이름이 먼저 불린 적이 없어서 그랬나 봐요. '동성애자'라는 사람들은 항상 없는 걸로 여겨지거나, 있어도 애써 말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삭제돼 버리곤 했거든요. 차별금지법 때도 그랬고, 학생인권조례 때도 그랬고, 마포구 현수막 사건 때도 그랬거든요. 먼저 말해 준다는 게 나에게 그렇게 큰 것일지 몰랐어요. 듣고서야 알겠더군요. 이 편지는 언제나 어색해요. 나는 당신을 잘 모르거든요. 내가 아는 건 현대차 사내 하청은 불법.. 2013. 2. 7.
[이주사의 받아쓰기] 새로운 출발 이주사(동인련 웹진기획팀) ‘받아쓰기’ 코너를 통해 문장력 강화를 해 보겠다는 원대한 꿈은 산산조각나고 말았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늘 뒷전이었던 것이 사실이죠. 워낙 글쓰기를 싫어하는 성격도 도움이 되지 않았구요. 그래서 올해는 받아쓰기의 성격을 명확히 해서 정기적으로 글을 쓰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받아쓰기는 성소수자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이 돌아보고 교훈을 얻을만한 성소수자 해방운동가들에 대해 다뤄보려 합니다. 특히, 다양한 억압과 차별, 불의에 저항하고 섹슈얼리티와 성해방의 전망을 사회 변혁 전망과 함께 말과 글, 행동으로 현실과 역사를 바꾸려 노력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동성애자/성소수자 운동의 역사가 거둔 중요한 성취들은 언제나 거대한 사회적 격변, 혁명적 열망.. 2013. 2. 5.
다섯 번째 편지 오랜만이야,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우린 어제도 만났었지. 어제도 함께 만나서 술을 마셨지. 미안해. 언니와 웃고 떠드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 어제 즐거웠다고 문자를 보냈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어. 언니와 다시 즐겁게 지내기 위해서는 이 말을 꼭 해야할 것 같았어.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많다고 해서 서로의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는 것 정도는 알아. 내가 매일 아침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는 사실을 언니는 알고 있지. 그래서 아침에 만날 때면 언니는 아메리카노를 내밀잖아. 내가 맥주를 마시면서 담배 피우는 걸 좋아하는 걸 알잖아. 그래서 늘 언니는 내가 맥주를 마시면 담배를 내밀잖아. 하지만, 아메리카노 첫 모금을 마실 때 어떤 느낌인지, 클럽에 가서 맥주 한모금과 함께 담배를.. 2013. 2. 5.
행복에 대하여 모리(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그놈의 행복이 문제였다. 가족들이 내가 게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도, 그 녀석이 자기가 게이란 걸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것도 모두 행복의 문제였다. 집에 내려갔을 때 나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이성애자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오랜 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족들을 기만한 것”이 그 죄목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이랬다. 내가 “30살이 되면 대부분의 동성애자가 그렇듯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건 의사인 누나가 찾아본 이상한 논문이 입증해 주고 있었고(사실 그 논문을 읽기나 했는지 의심스럽지만), 내가 불행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주변 사람들에겐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기다려 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었다. 재밌는 것은 가족.. 2013. 2. 2.
네 번째 편지 나에게 왜 이곳에 왔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바닥 만을 보았어요. 바닥에는 보풀이 일어난 빨간 카페트가 깔려 있었죠. 선생님이 내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연습실 안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어요. 내가 질질 끄는 슬리퍼 소리만 가득했죠.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숙였죠. 무슨 단어를 쓴다고 해도,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를 뚫고 이곳에 온 내 마음을 설명할 수는 없었을 거니깐요. 아니, 그 반대였어요. 입을 열기 시작하면 수많은 단어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어요. 이곳까지 달려오는 지하철 안, 마을버스 안에서 나의 마음은 그랬어요. 버석거림, 삭막함, 외로움. 누군지 대상도 명확하지 않은 그리움이 가득차서, 비쩍 마른 쭉정이처럼 흔들거렸어요. 이렇게 비가 .. 2012. 11. 30.
성소수자가 다니기 좋은 직장? 오리(동인련 성소수자노동권팀) 외국에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이 다니기 좋은 직장이 있다더라. 자주 듣는 이야기다. 국내에는 없을까? 찾아보니 IBM과 포스코가 있었다. 포스코는 윤리경영이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홈페이지로 봐서는 뇌물 안 받고, 부정부패 없고,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고 이런 거 같다. 특히 올해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국제적인 기준을 참고하고, 다른 기업들을 벤치마킹하면서 윤리규범에 인권을 포함시켰다. 윤리규범 임직원 관련된 부분에 “인종·국적·성·나이·학벌·종교·지역·장애·결혼 여부·성정체성 등을 이유로 어떠한 차별이나 괴롭힘을 하지 않는다” 라는 문구가 첨가되었다. 궁금해서 윤리상담실에 전화로 물어봤다. 성정체성을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했는데 “하리수 같은 사.. 2012. 11. 5.
[회원 인터뷰]별이 되고 싶은 사람, 카이 인터뷰 : 모리, 재경, 조나단, 진구, 학기자(동인련 웹진기획팀)정리 : 조나단 웹진 10월호 2차 기획회의와 11월호 1차 기획회의가 있던 24일 수요일 밤. 회원인터뷰 주인공 ‘카이’의 취조가 시작되었다. 카이의 취조회를 위해서 수많은 준비를 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카이는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려고 벌떡 일어나다가 책상에 다리를 부딪혔다. 카이는 우리가 던진 질문(질문이라고 쓰고 떡밥이라고 읽는다)에 충실히 답했다. 세세한 내용들이 궁금한가? 그러면 웹진팀으로 들어오는 거다. 어떤가? 계약을 성립할 조건으로 웹진팀을 하겠다는 의사를 담아 메일 주소를 남기면 그날의 녹취록 파일을 넘.. 읭? 모기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나이는 24살, 이.. 2012. 11. 5.
세 번째 편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엄마는 내게 캔맥주를 꺼내면서 말씀하셨죠. 어른이 되었구나, 우리 딸, 축하해. 엄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여자의 집에서는 올해 안에 결혼을 하지 않으면 집안에 있는 남자들이 모두 죽는다는 점괘를 받았다고 해요. 그 마을에서 가장 용한 점쟁이에게 말이죠. 여자의 집은 난리가 났더랬죠. 사대 독자가 죽고 나면 누가 집안을 이끌어 가겠어요. 그래서 집에서는 동네에서 결혼하지 않은 단 한 명의 남자와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고 했어요. 여자는 남자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결혼을 해야 했죠. 남편에게는 늘 숨겨둔 애인이 있었고, 여자는 울면서 집을 지켰다고 했죠. 옷장에 여행 가방을 싸둔 채, 도망갈 기회를 엿보다가, 결국 도망가지 못하고 그 집에서, 남편은 여전히 집에 들.. 2012. 9. 25.
가족에 대하여 모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요즘 내 눈엔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이 밟힌다. 이것저것 궁금해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엄마 옆으로 와서 손을 잡아 달라고 내미는, 나는 잡아보지 못할 그 손. 얼마 전 아버지에게 “다음 대선 때 동성결혼이 쟁점으로 나오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더니 그건 힘들지 않겠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 대선이면 5년 뒤. 난 서른을 앞두고 있을 테고, 친구 중 몇 명은 결혼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중 몇은 이미 애를 낳아 기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난 아빠가 될 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난 당연히 아빠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게 됐나 보다. 가끔 친구들이 “야, 이런 건 할 줄 알아야 나중에 애도 키우지~”하며 능숙하게 전구 같은 걸 갈아.. 2012. 9. 25.
국가인권위원회, 지금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길 바래 오리 (동성애자인권연대 노동권팀) 내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라고 차별을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어디로 가야 할까? 가족? 법원? 경찰? 인권단체? 신문고? 국가인권위? 법원이나 경찰에 찾아가기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으로 또다시 힘들어질까봐 두려움이 앞선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우팅 할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지인들이나 인권단체에 말한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그나마 국가인권위가 그런데여야 하지 않나? 싶지만, 국가인권위에서 성소수자 관련해서 뭔가를 했다는 소식은 잘 안 들리고, 오히려 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 소식이 더 크게 와 닿는 것 같다. 국가인권위원법에 성(性)적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놀라웠다. ‘그런게 있었구.. 2012. 9. 24.
[오리의 인권이야기]연대하는 이유 본 칼럼은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오리가 인권오름에 연재한 글로서 오리와 인권오름의 동의를 얻어 웹진 랑에도 공동연재 합니다. 무지개깃발을 들고 찾아간다. “어디서 왔어요?” “동성애자인권연대요.” 잠시의 머뭇거림 후, 왜 여길 왔나? 하는 표정이다. 나도 뭔가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성소수자가 찾아온 이유에 답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 그것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대답을 해주고 싶은 마음. 그건 어디서 오는 걸까. 보통 대답은 “우리도 차별과 억압을 받고 있고, 당신들의 투쟁을 지지합니다. 약한 사람들끼리 뭉쳐야 이길 수 있습니다. 함께 합시다.” 정도로 끝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만 말하면 뭔가 안일하다는 느낌도 든다. 한때는 자본주의의 문제로 혹은 가부장제의 문제로 성소수.. 2012. 9. 24.
[오리의 인권이야기]나의 일상에서 인권적으로 가장 구린 지점 본 칼럼은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오리가 인권오름에 연재한 글로서 오리와 인권오름의 동의를 얻어 웹진 랑에도 공동연재 합니다. 글을 쓰겠다고 한 건 뭐라도 해야겠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름 나에게는) ‘있어 보이는’ 인권오름에 글을 쓰면 뭐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거 같아서. 그런데 막상 쓰려고 보니,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싶었다. ‘다른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찾아봐야 하나? 이런저런 책을 읽어서 인권공부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시작을 기념으로 나의 일상에서 인권적으로 가장 구린 지점을 쓰기로 했다. 장애인 활동보조 일을 했었다. 시작은 “돈도 벌고, 장애인도 만나고”였다. 장애인과 만날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비장애인처럼 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2012. 9. 24.
[만남] 서평: 우리의 명절에 ‘우리’는 조나단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명절은 그 나라의 문화적 특성과 전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고 민족적 정서가 담겨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전형적인 농업 사회였던 우리나라는 농사를 시작하면서 풍작을 기원하거나 추수에 대해 감사를 하는 제사 의식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명절이 되었다고 한다. 며칠 후면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왔다는 추석이다. FTA로 드러나듯 기간산업의 육성을 위해 농업을 버릴 수는 있어도 추석은 명절이다. 자기계발을 이룰 수 있다며 국민이 미미한 수혜를 동반한 책임을 나눠 부여받게 되고, 농민들은 알아서 저농약이나 무농약으로 업그레이드하며 경쟁력을 키워야 하더라도,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하듯 추석 차례상은 비싸진 국산 햇 농산물로 채워질 것이다. 그렇게 추석은 오늘날에도 뿌린 것.. 2012. 9. 22.
롹의 영혼, 청자팀 검은 소년을 만나다 모리(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2012년 9월 2일. 검은 소년을 만났다. 배가 고파서 먼저 밥부터 먹었다. 검은 소년은 면 요리를 좋아했다. 굳게 다문 입술, ‘검은 소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온통 검은 옷을 입고 온 그는 언뜻 보기에도 무언가 있는 사람 같았다. 그렇게 나는 그 검은 기운에 흡수되고 있었다.(이 글은 인터뷰 후 모리의 머릿속에서 이해-분해-재구성 된 것임을 알립니다.) 자기소개 부탁해요이름은 검은 소년이에요. 원래 검은 색을 좋아해서 충동적으로 10초 만에 지었어요. 학생이어서 제약이 많아요. 활동은 이번 퀴어문화축제 때 동인련을 보고 청자팀(청소년 자긍심 팀)으로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음악. 학교 밴드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어요. 베이스를 친 지는 3년 정도 됐어요.. 2012. 9. 22.
외로움에 대하여 얼마 전, 5년째 베프인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친구는 나의 협박에 반 강제적으로 나를 받아들였고 내 결혼식에도 꼭 참석하겠다고 했다. 행복했다. 약 2년 전에 처음으로 ‘게이로 산다는 것’이 인간관계에 아주 기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에게 정을 주지 못하고, 어느 정도 이상은 절대로 마음을 열지 못하게 만드는 그 무엇.분하고 억울해서 자다가 깬 그날 새벽, 블로그에 글을 마구 적었다. 마음을 열지 못하게 하는 그 ‘무엇’이란 상처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날 괴물 보듯 할 거라는 걱정과, 그런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마음을 빚지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절친한 동생은 얼마 전에도 내게 이런 말을 했다.“버려지기 전에 버려야 해요.”반은 맞는 말이다. 버.. 2012. 8. 4.
#1 자선이라는 나눔과 연대라는 나눔 이주사(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80년대 대표적인 영국 밴드 스미스의 보컬 모리씨는 영국의 유명한 자선 공연이었던 ‘라이브 에이드’에 불참 의사를 표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를 돕자는 거라죠? 하지만 그쪽 사람들이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한 적 있던가요? 단언컨대, 대처 및 왕실 가족이라면 ‘라이브 에이드’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신속한 방법으로 10분 안에 그 문제를 해결했을 겁니다만, 밥 겔도프 이하 사람들은 여왕에게 대들기엔 너무 간이 작았고 그래서 결국 그런 식으로 없는 사람들 주머니나 공략하기로 한 겁니다." 지금 동인련, 그러니까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아주 오랜만에, 내가 이곳에 발 담근 이후 처음으로 대대적인 후원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바로 이 시점에 나는 모리씨의 저 .. 2012. 8. 3.
[회원인터뷰] 매트릭스 두 개의 알약, 빨간 알약을 먹은 감성청년 학기자 (웹진기획팀) Scene1. 프롤로그 7월 17일 화요일 동인련 노동권팀 회의가 끝난 늦은 시간 형태, 학기자는 사무실에 남아 앉아있다. (허둥지둥) 인터뷰가 처음이라서 많이 어색하네요.진지하게 하세요.…… ^^;; Scene2. 스물아홉 살, 터닝 포인트 연대의 시작, 계기는 무엇이었어요?계기는 정말 별거 아니었어요. 트위터를 하다 보니 연대하는 친구들을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연대를 해야겠다 해서 한 건 아니고 친구들이 연대 농성장에 있으니까 그 친구들을 보러 간 거죠. 농성장을 가보면 알지만 거기에 있는 플랜카드, 탄압… 많이 놀랐죠. 어디 어디 연대 했어요?처음 연대를 했던 곳은 카페 마리라는 철거 농성장이었어요. 그 다음이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그 다음이 북아현동.. 2012. 8. 2.
<타인의 고통> 서평: 당신의 맹점엔 무엇이 갇혀 있나요? 조나단(동인련 웹진기획팀) 수상하다. 입시 전쟁, 살과의 전쟁, 메달 쟁탈전, 전쟁 같은 사랑,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는 온라인 게임 광고까지… 그물을 던지면 오늘 지나온 거리에서 전쟁어(語) 두세 마리는 어렵지 않게 건질 수 있다. 비약과 은유의 미학을 얕잡아보는 것은 아니다. 나도 삶이 전쟁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전쟁에 비유할 것이 너무나 많을 만큼 우리는 고단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수상하다. 나는 전쟁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경험한 적이 없는 전쟁을 능숙하게 묘사할 수는 있다. 포탄이 떨어지고, 벽 뒤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상황. 소녀는 강간당했으며 마을 사람 모두는 이미 닷새째 굶주렸고 시체는 묻지도 못한 상황 같은 것. 모두 내가 소비했던 사진과 영화 이미지다. 그 이미지들은 정말.. 2012. 8. 2.
두번째 편지 두 번째 편지 미안해. 제육볶음을 먹으면서 네 생각을 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것 때문에 미안한 것은 아니야. 제육볶음과 내가 좋아하는 체리 사이의 거리만큼, 너와 나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 생각하는거야. 그래서 미안한거야. 그 마음 때문에,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서 설거지를 하면서 잠시 울었어.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어. 부재중 전화가 떠 있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네 핸드폰 번호를 일곱 자리까지 누르다가, 종료버튼을 눌렀어. 도저히 너에게 전화할 용기 따위는 나지 않았어.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를 알기 시작했더라? 아마 고등학교 시절부터였을 거야. 네가 나에게, 내가 너에게 다가갔거든. 그게 뭐였는지, 어떤 이유였는지도 모른 채.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이었어. 반갑게 손을 흔드는 나.. 2012. 8. 2.
첫 번째 편지 오랫동안 망설였어. 이 망설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면 끝이 없을거야. 하지만 그 시간동안 내가 생각했던 건 너뿐이었어. 울면서 사랑한다 말하던 나에게 바보같다, 고 말하던 그 목소리와 편지함에 들어 있던 너의 편지, 그 안에 적힌 너의 손글씨, 너의 집에 처음 놀러 갔을 때 어질러져 있던 책상과 침대 위, 부끄럽게 웃던 너의 웃음. 나는 늘 울고 있었어. 처음 잔디밭에 앉아 음악을 깔깔대던 때부터, 아니, 내가 너와 짝이 된 후, 친해지지 못하고 늘 보고만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울음은 어느 날은 기쁜 것이기도 했고, 슬픈 것이기도 했지. 어떤 날은 그 둘을 구별하지 못했어. 나의 울음은 늘 중구난방으로 흘렀어. 너에게 처음 장미꽃을 건네던 날에도 그랬었지. 열다섯밖에 안 된 내가 무슨 생.. 2012.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