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이경(동성애자인권연대 운영회원)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서 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에게 보낸 성소수자 정책 질의에 대한 답변이 도착했다. 무지개행동은 이 답변을 모아 11월 29일 “대선에 들이대고픈 성소수자 정책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성소수자들의 요구안을 발표하였다. 성소수자 운동의 요구에 대한 각 후보들의 입장 차이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는 답변이었다. 총평을 하자면, 새누리당의 답변은 ‘사회적 합의’나 ‘헌법상의 권리’ 운운하면서 차별금지법조차 제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분노를 절로 일으키고, 민주통합당은 구체성이 결여되거나 불확실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진보진영 후보라 할 수 있는 이정희, 심상정, 김소연, 김순자 후보는 성소수자 인권운동과의 연대와 실천, 진보정당이 그동안 축적해온 성소수자 정책에 대한 방향성에 바탕하여 성실하게 응답했다. 이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으랴!


답답한 점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인권이 얼마나 후퇴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고 민주통합당이나 문재인 후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단적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에 대한 문 후보의 태도가 그렇다. 차별금지법은 몇 년 간 성소수자 운동의 주요한 요구이자 성소수자들이 올해 대선에서 가장 염원하는 것으로 그 필요성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2007년 당시 경총 및 재벌 및 우파 기독교의 반발을 너무 쉽게 받아들여 성적 지향을 비롯한 7개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했고 결국 차별금지법은 논란 속에 폐기되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참여정부에서 추진되었던 차별금지 제정을 다시 추진하겠다”며 사실상 참여정부를 계승하고자 하는 문재인 후보를 믿을 수 있을까? “다양한 차별 사유에 대한 금지를 최대한 담아내겠다”고 하지만 결코 과거를 평가하지 않는 민주통합당이 다시 한 번 배신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박근혜 후보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차별받지 않음은 우리 헌법에 이미 규정하고 있다”며 차별금지법이 “사회 일각의 요구”일 뿐이니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정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참으로 내용도, 성의도, 의도도 불성실하다. 헌법 있다고 독재 못했나? 헌법 있다고 의문사와 고문을 막을 수 있었나? 그러니까 박근혜 후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가하면, 고용형태나 성별, 출신 국가나 장애 때문에 차별받아온 99%의 삶은 박근혜 후보에겐 “사회 일각” 정도에 해당하는 것 같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1% 부자들의 정당이니 당연할거다. 우리는 박근혜에게 사회적 합의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박근혜 후보의 답변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투쟁해온 사람들에게 너무나 모욕적이었다.


대표적인 성소수자 차별조항인 군형법 92조의 ‘계간’조항 폐지에 대한 입장을 보자. 박근혜 후보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와 위계에 의한 성폭력조차 구분하지 않는다. 그것은 박 후보가 이미 동성애자를 가해자로 상정하고 있으며, “이를 방치할 경우 군의 전투력 보존에 직접적인 위해”가 크다고 판단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런 입장이 더욱 질 나쁜 이유는 억압적인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동성애자를 희생양 삼기 때문이다. 또한 군형법 92조 계간조항을 폐지하자는 운동의 목소리를 억압하면서 한반도 분단 상황과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것 또한 뻔하게 드러난다. 국가안보 앞에 인권이란 무시해도 좋은 것인 거다. 서로 총을 겨누는 일이, 이 끔찍한 적대관계를 지속하는 일이 도대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들 중 누구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아마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집권에는 도움 될지 몰라도 말이다.


계간 조항을 폐지하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고 말만 바꾸겠다는 등 여러 이야기를 하더니 결국 “군기문란을 방지하겠다”고 약속하는 문재인 후보 또한 근본적으로 우리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계간 조항 폐지 없이 성폭력을 방지하겠다거나 인권교육법을 제정하겠다는 약속은 사기에 가깝다. 이정희, 심상정, 김소연, 김순자 후보는 분명하게 ‘군형법 92조 계간조항 폐지’를 약속했다. 지금껏 이들은 꾸준히 군형법 92조 계간 조항 폐지를 위해 우리와 함께 목소리를 내왔다. 인권과 평화의 입장에서 이 조항은 도저히 존속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동성결혼/파트너십에 대해서는 각 후보의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박근혜 후보는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성별, 가족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게다가 자기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여론도 ‘부정적’이라고까지 친절하게 덧붙였다. 이 애매한 답변을 솔직하게 풀어 써보면 결국 동성결혼을 허용해서 정상가족제도에 금이 가는 일은 막겠다는 것이고, 그 동안 가족제도 위에서 자라온 온갖 성차별과 성별 고정관념이 흔들릴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너도 나도 가족이니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도 싫다는 이야기다. 여자는 임신출산과 가사노동을, 남자는 군복무와 충성스럽게 일하는 것을 본분으로 알고 사는 것이, 여성에게 저임금을 받아들이게 하기도 편하고, 사람들이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도록 하는데 용이하다는 것이 박 후보의 생각일 것이다. 물론 지금 한국사회에서 동성결혼 논의가 시기상조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유럽과 캐나다 등 여러 국가는 동성결혼을 인정하며 미국은 동성결혼에 대한 찬성 여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요컨대 ‘여론’은 운동의 성장과 그에 따른 차별의 완화, 인식의 변화 등에 달려 있다. 박근혜 후보 및 새누리당의 ‘반대’와 ‘일반 국민들의 반대’를 동일하게 볼 수 없다.


동성결혼 및 다양한 가족 구성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진보 후보들의 주장이 그 차이를 보여준다. 이정희 후보는 “민법과 건강가족법이 가족을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단위로 정의”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보고, “혼인과 출산을 국민의 의무로 규정하는 건강가정기본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소연 후보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족 관계 속에서 보장받는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보고, 동성배우자 및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해서도 그 권리가 “조세, 연금, 의료, 보험, 주거 등에서 평등하게 인정되고, 재산권, 사회보장, 조세 등에 혈연가족과 동일한 권리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결혼할 권리와 가족을 이룰 권리는 사회적 인정일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권리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우리 중 누가 사회보장과 의료, 노후자금, 살 집이 필요치 않단 말인가? 박근혜 후보는 바로 인간의 삶에 가장 필수적인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사회적 합의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박 후보야 치료비 걱정, 집세 걱정 따위는 해본 적이 없을 것 같으니, 밥 대신 빵이라도 먹으라고 할 것 같지만.


트랜스젠더 성별변경에 대한 각 후보의 입장도 들어봤다. 문재인 후보는 단지 “성별변경에 대한 기준을 완화하겠다”고만 답하고 있어서 사실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박근혜 후보의 답변은 더욱 용감무쌍한데 “법원의 판결을 받으면 성별 정정이 지금도 가능하니 추가 법 개정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권력 분립에 따른 사법부 존중 차원에서 이를 이해해야 한다”고 하니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사실 나는 박근혜 후보가 트랜스젠더 성별변경에 대해 어떤 관심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트랜스젠더가 성별 변경 문제에 가로막혀 자기 삶의 통째로 반납해야하는 고통조차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박근혜가 인권을 언급할 때 툭하면 ‘법치’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섬뜩함마저 느낀다. 이 얘기는 안하고 넘어갈 수가 없겠다. 박 후보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자 사법 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국가에 의한 사법살인, 인혁당 사건에 대한 판결이 두 개라고 주장할 정도로 뻔뻔하다. 성전환 수술 및 필요한 의료 항목의 의료보험 적용, 트랜스젠더가 일할 권리, 시민으로 동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진보 후보들과는 완전히 다른 위치에 서 있는 자다. 성별은 그 자신의 결정이어야지 법원 판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반인권 대통령 후보가 소수자들에게 얼마나 재앙적일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답변 또한 각 후보들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짐작케 했다. 박 후보의 주장을 압축하면 “성전환자 성별변경 특별법과 차별금지법이 지금껏 제정되지 않고 있어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고 인권을 보장받을 법제도적 지원이 갖추어지지 않은 실정”인데, “청소년이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과 관련한 도움... 인권 및 성적 다양성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적인 공감대 형성과 합의점에 먼저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후보의 주장은 궤변이다.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이 필요한 것처럼 말하면서, 결국 법 제정조차 안 될 정도로 성소수자 차별 금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으니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도 뒤로 미루자는 것이다.


다른 후보에 비해 심상정 및 김소연 후보는 비교적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특히 김소연 후보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려면 어렵게 만든 학생인권조례 등을 정착, 확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답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선의 런닝메이트 격으로 치러지는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보수 후보들은 진보진영 단일 후보로 출마한 이수호 후보를 학생인권조례를 가지고 공격하고 있다. 지금껏 동성애 문제는 우파들에게 늘 공격의 대상이 되어왔다.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동성애혐오와 편견 때문에, 동성애는 우파들에게는 흔들기 좋은 주제다. 서울학생인권조례 투쟁이나 군형법 92조 삭제 투쟁 당시 저들이 동성애=빨갱이=전교조=진보정당 이라는 공식을 활용한 것은 무엇을 겨냥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럴수록 진보운동과 좌파는 성소수자 권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한다.


주거, 의료, 교육, 노동 등 사회정책에 있어서의 평등을 어떻게 보장하겠느냐는 질문에 박근혜 후보는 “기회균등위원회를 신설하여 차별 없이 기회가 균등하게 부여”되도록 추진하겠다고 했다. 박 후보의 평등은 우리가 말하는 평등과 아예 다른 뜻을 지닌 말이다. 우리는 인종, 장애여부, 학력, 직업, 성별 등과 상관없이 그 자신에게 필요한 권리를 동등하게 누릴 수 있을 때, 그야말로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 동등해질 때에야 비로소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무한 경쟁과 심화되는 양극화는 이미 99%를 다른 출발점에 세워 놓았다. 기회가 고루 주어지면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러므로 박근혜의 ‘기회 균등’은 ‘부자들이 잘 사는 것이 평등’이라는 뜻이다.


‘국민적 합의’와 ‘법 앞의 평등’. 얼핏 보면 맞는 말 같다. 박근혜 후보가 답변에서 눈에 띄게 자주 사용한 단어다. 박 후보의 주장을 ‘오해’ 없이 들으려면 이들이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국민’인가? 누가 ‘법 앞에 평등’한가?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나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과연 누가 합의했다는 것일까? 삼성의 반도체를 만들다 산재로 질병을 얻어 목숨을 잃은 20대의 여성노동자와 이건희 삼성회장은 정말 ‘법 앞에 평등’한가? 문재인 후보가 매우 색다른 행보를 펼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문 후보는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을 방문하여 단식을 풀고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했지만 그 이후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척 하다가 국회에서는 배신한 것도 민주통합당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FTA를 강행했다가 이제 와서 반대 투쟁이 거세지자 물타기한 것도 민주당이다. 이러니 우파들이 민주당의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신나게 비난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선뜻 투표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성소수자 정책만으로 후보를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단 한 번도 성소수자 권리를 자신의 정책으로 현실화시키는 후보는 만난 적이 없다. 대다수 진보 후보들은 그럴 기회를 얻지 못했고, 서울학생인권조례의 경우에도 투쟁의 압력에 떠밀려 민주당이 찬성한 예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가지를 고려하게 된다. 후보의 성소수자와 인권에 대한 입장 및 정책의 준비 정도도 평가하지만, 다른 것들 또한 중요하게 살피게 된다. 민주주의, 인권, 고용, 복지, 환경, 평화 등 여러 분야에서 말이다.


상황이 이러니 이번 대선을 앞두고 주변의 진보 성향 지인들의 고민은 대체로 박근혜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문재인을 찍어야 하나’와 ‘그래도 성소수자 정책을 비롯해 여러 면에서 옳은 주장을 펼치는 진보 후보를 찍어야 하나’ 사이에 있다. 노무현 정부에 희망을 걸었다가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 중 많은 수가 다시 한 번 울며 겨자 먹기로 문재인 후보를 찍겠지만 그건 민주당을 지지해서가 아닐 것이다. 박근혜가 온갖 부패 추문 속에서도 경쟁 구도에서 밀려나지 않는 이유는 그 상대자가 너무 빈약해서이기도 하다. 단일화 이후에도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크게 상승하지 않는 이유는, 대선 과정에서 이미 안철수 후보나 문재인 후보 모두 전혀 우리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동인련에서 주최한 <에이즈 다르게 생각하기 토론회>에 참가한 에이즈 감염인이 “언제까지 정부가 우리에게 무상으로 약을 공급해줄지 알 수 없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끊길 수도 있다.”며 걱정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위기는 전례 없이 심각하다. 다음해 정부 예산은 복지 예산이 대폭 삭감된 채 긴축 재정안으로 제출됐다. 복지를 삭감하는 것으로 경제위기의 책임을 우리에게 지우려 하는 것에 대한 감염인들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다. 복지를 삭감하고 임금을 깎거나 해고해서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내핍을 강요하는 이명박 정부 5년이 끔찍했기 때문에, 무상보육, 무상급식과 같은 복지에 열광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권교체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상위 1%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박근혜가 그렇게 싫고,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반민주, 반인권적 탄압이 박근혜 당선으로 더 심하게 이어질까봐 끔찍할 것이다. 박근혜의 뒤를 떠받친 과거 유신 독재와 권위주의의 유산이 더욱 무섭게 부활할까봐 걱정일 것이다. 그래서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도 다시 골방으로 들어가게 될까봐 두려울 것이다. 아마 동인련 회원들 중 많은 분들이 박근혜를 막기 위해 문재인에 한 표를 던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러한 정서에 십분 공감하기 때문에 선택이 참 망설여진다. 진보정당 지도부들이 사분오열한 탓에 우리는 선거 공간에서 보다 큰 목소리로 우리의 주장을 펼치고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줄어들었다.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정서가 지배하는 대선 공간은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한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소연 후보와 김순자 후보가 출마했다. 성소수자들과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 만나온 이 후보들 덕분에 TV토론에서 우린 난생처음으로 성소수자 지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맙고 또 힘이 났지만 아쉬움도 컸다. 좋은 정책, 진정성,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힘을 모아 여기저기 울려퍼지게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게도 위에서 이야기한 진보정당(정확히는 통합진보당 지도부)의 엄청난 실책들 때문에 우리는 마음껏 힘을 실을 만한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대선을 맞았다. 진보, 노동자 후보들의 진정성 어린 정책과 실천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면서도, 지금 양당 중심 대선 구도에서 얼마나 미미한 득표를 할지 생각해보면 속이 쓰리고 입맛도 씁쓸해진다.


한 가지 스스로에게 당부하는 것이 있다. 대선이 끝이 아니고 투표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무현을 뽑았다고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 하에서 가장 거센 촛불 행진이 타올랐다. 마뜩치 않으나 박근혜의 현대판 유신을 막으려고 문재인이라는 차악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지지한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문재인이 된다고 해서 강정마을에 평화가 찾아오고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당장에 일터로 돌아가게 되지 않는다. 문재인이 된다고 해서 그가 제시한 성소수자 정책과 차별금지법이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변화를 만드는 건 우리의 힘이다. 그래야만 무엇이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 아직은 빛을 보지 못한 진보 후보들의 성소수자 정책은 오랜 기간 성소수자 운동을 통해 축적한 요구와 전망이다. 이런 정책들을 요구하고 반영하기 위한 운동을 꾸준히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몫일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거리에서, 투쟁에서, 나와 당신의 용기와 행동에서 나왔다.




  1. DRVZ
    2012.12.18 16:52 [Edit/Del] [Reply]
    쓰신 글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했습니다.
    다만, "에이즈 감염자"는 "HIV 감염자"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네요.
    성소수자들에겐, 아직 갈 길이 먼 한국 정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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