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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31

내 삶의 전환점이 되어준 트랜스* 세미나 주하(트랜스* 세미나 참여자) 트랜스 세미나 전 회를 참가하고 나서 나는 트랜지션을 시작하지 않은 26세 MTF 트랜스 여성이다. 행성인에서 주최한 트랜스 세미나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한 친구의 권유였다. 그 친구는 트랜스젠더로서 뭘 해야할지 모르는 나를 보면서 참 많이 답답해 했다. 그 친구가 트위터를 돌아다니다가 소개해 준 것이 행성인 트랜스* 세미나였다. 처음 참가할 때는 ‘세미나’라는 제목에 부담됐다. 굉장히 전문적인 지식을 다룰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가하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가볍게 참가 할 수 있었다. 트랜스 세미나 중 인상깊었던 회차는 1회차와 6회차였다. 1회차는 친구와 같이 참가했는데 솔찍히 ‘이게 뭐야…’ 라는 소리가 나올정도였다. 내가 너무 많이 알아보고 기대한 .. 2015. 11. 9.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29. 에필로그 - 행위, 문학의 長篇小說 金 飛 29. 에필로그 - 행위, 문학의 “어, 뭐야? 너도 왔어?” “누가 연락했니, 성준이 네가 연락 했냐?” “너 엄마한테 또 혼나려고 그래? 집에서 쫓겨나는 거 아니냐?” “내가 우리 집에서 살게 해 준다니까? 용호 정도면 난 동거 가능. 우경이도 이해해줄 걸?” “뒤는 잘 살폈니? 또 어디 엄마가 너 따라오신 거 아니니? 너희 엄마, 정말 대단하시더라!” “야야… 어머님도 오죽 답답하시면 그랬겠어?” “우리 데리다 형은 또 멀리까지 간다. 이해력도 정말 넓고 넓으시지. 형 인프제라고 했지, 참?” “이거 또 사람 분류하는 버릇 아직도 못 고쳤네? 그게 다 어떻게든 정답을 내고 싶어 하는 입시교육의 잔재인 거라고 그게. 인간을 그거 하나면 이미 알겠다고 퉁쳐버리는 그 태도가 그게, 그게 .. 2015. 7. 20.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28. 새, 산 - 찾아서, 대리 보충을 長篇小說 金 飛 28. 새, 산 - 찾아서, 대리 보충을 소설을 쓰는 사람이고 싶던 때가 있었다. 아니 소설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픈 사람들은 모두 별이 된다는 유치한 문장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득히 어딘가에서 자기만의 광량으로 빛나는 미약하지만 끈질긴 존재가 되고 싶다는 믿음 말이다. 사실은 빛이 아니어도 좋고, 하루 온 종일 빛나던 순간이었는데 빛일 리 없다고 해도 좋고, 보이지도 않는 그 빛이 어떻게 빛일 수가 있느냐고 어쩔 수 없는 불가능이어도 괜찮은 그 빛 말이다. 말을 잃어도 우리의 말이 있고, 언어를 잃어도 우리의 언어가 있듯이, 빛을 잃더라도 우리의 빛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그 확신. 아마도 나는 그 확신을 제대로 적기에 소설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 2015. 7. 8.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27. 데리다 - 이론, 화행 長篇小說 金 飛 27. 데리다 - 이론, 화행 “영상이요? 정말 괜찮겠어요?” “응, 행성인에서 이번에 피엘들과 같이 프로그램을 하나 한다고 그래서.” “행성인? 행성인은 또 뭐야? 외계인, 이방인 뭐 그런 거야?” “이 자식은 퀴어라는 놈이 그 이름도 모르냐? 헌데, 형 왜 이렇게 용감해 졌어? 오랜만에 애인 생기더니 무서운 게 없어졌어? 앞뒤 분간이 안 돼? 모르는 사람들한테 얼굴 팔리는 게 보통 일인 줄 알아?” “봤지, 상우 형. 형은 남자인 척 어른인 척 어깨 빳빳하게 세워도, 여기 눈치보고 저기 눈치 보고 가슴팍이 콩알만 하지만, 우리 데리다 형 봐. 이 정도는 돼야 어른이고, 당당함이지.” “이 자식이 또 슬슬…” “형, 지난번에도 불 났을 때 쫄려서 이 근처에는 오지도 못했지?” “야야, .. 2015. 6. 30.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26. 산 - 그리워하다, 사랑하다 長篇小說 金 飛 26. 산 - 그리워하다, 사랑하다 “니 진짜 혼자 지낼 수 있겠나?”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말에 오 팀장은 난감해했다. 어머니마저 같은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따라 최 씨 형님만을 남겨둔 채 일찍 퇴근을 해버린 터여서, 자책 때문인지 그의 목소리엔 짜증이 섞였다. “야, 인마… 뭐가 괜찮노? 까딱하다간 몸뚱이가 날아갈 판국이었구만… 그게 허리 위쪽으로만 튕겨 올랐어도 니는 지금 여가 이리 누워있지도 몬한다. 허허 거릴 일이 따로 있지, 인마!” ‘까딱’하는 시간은 얼마나 여러 번 행운과 불운으로 나를 비껴갔던 걸까. 그의 말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까딱’의 시간은 어떤 흉터를 남긴 채 나로부터 멀어져갔을까. 다행히 철판은 무릎 인대를 끊어내.. 2015. 6. 19.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25. 새 - 적의(敵意), 여기 長篇小說 金 飛 25. 새 - 적의(敵意), 여기 그래야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그런 적은 없다. 아마도 나는 나를 구덩이로 밀어 넣은 보이지 않는 힘이 일말의 여지없이 ‘적의(敵意)’라고 믿었을 것이다. 깊이 빠진 나를 구해내기 위해 어떤 손이든 나를 움켜쥘 수밖에 없을 텐데, 놓으라고, 그건 폭력이라고 버둥거리며 스스로 더 깊이 매몰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온전히 선의뿐이었나? 나를 구하려는 그 손이 내 몸을 찌르고, 나를 아프게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몰아넣을 때, 그러면 그 때 내 온 몸을 지배했던 고통은 가짜인가? 고통을 느낀 자로서의 내 감정과 통증은 의미 없이 얄팍하기만 한가? 구원이나 치유가 고통일 수밖에 없단 정의는, 고통은 곧 구원이고 치유란 .. 2015. 6. 10.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24. 산 - 자유로운, 부유(浮游)하는 長篇小說 金 飛 24. 산 - 자유로운, 부유(浮遊)하는 사랑에 관해 생각하는 일은 그만뒀다. 그 마음을 폄하할 의도는 아니지만, 지금의 나에게 사랑은 쓸모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지나간 것들이 그러하듯 문득 떠오르긴 하겠지만, 나는 이제 그걸 ‘자학’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닌가, 자학을 한번 더 학대하는 일인가? 그럼 그걸 뭐라고 불러야하는 걸까? 직업교육원에서 수업을 듣는 일도 그만두었다. 아침 아홉 시부터 네 시까지 주로 엑셀이니 워드니 컴퓨터 관련 수업을 듣긴 했지만, 그 역시 지금의 나에게 쓸모 있는 건 아니었다. 주로 아주머니들이 많았던 수업은 즐겁고 경쾌했지만, 그 역시 지금의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남자가 이런 직업 교육을 받기엔 늦은 것이 아니냐, 학교 때 공부 안 하고 뭐 했느냐, 예.. 2015. 6. 10.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23. 데리다 - 그리워하며, 환대를 長篇小說 金 飛 23. 데리다 - 그리워하며, 환대를 “여보세요? 아, 아닙니다. 잘못 거셨어요. 아니에요, 전화 잘못 거신 것 같습니다.” “사장님 계십니까?” “예, 무슨 일이신데요?” “여기 가게를 내놓았다고 해서 찾아 왔는데요.” “아닌데요, 저희는 가게 내놓은 적 없습니다.” “사장님이세요? 아닌데… 건물 주인에게 아직 이야기를 못 들으신 건가요? 아, 아닌가? 박 사장이 아직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건가? 이거 미안합니다. 나중에 확인을 하고 다시 오지요. 실례했습니다.” “뭐예요, 가게 내놨어요?” “아니, 아니야.” “근데 저 사람은 뭐야?” “모르겠어. 웬일이야, 내가 한 동안 모이지 말자고 문자 보냈는데, 못 받았어?” “오지 말라고 하면 오지 말아야 하는 곳인 거야, 여기? 치사하게 왜 .. 2015. 5. 21.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22. 산 - 사람들, 오독(誤讀)하는 長篇小說 金 飛 21. 산 - 사람들, 오독(誤讀)하는 나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읽는다’는 행위는 인간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도구이고 생존의 방식일 테지만, 모든 걸 다 안다고 말할 때, 이제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다고 확신할 때, 바로 그때 이전까지 읽었던 그 모든 것들은 틀린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소통은 혐오스럽다. 이해는 혐오스럽다. 안다는 건 혐오스럽고, 알겠다고 말하는 것도, 알아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알고나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도, 모조리 혐오스럽다.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그 행위들은 알 수 없어야 당연하고, 몰라야 당연하고, 그걸 두고 괴로워하거나 자학하고 자멸하는 일은 다시 잘못 읽는 행위일 뿐이다. 한 쪽 다리의 인대가 망가져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아야할지도 모른다는.. 2015. 5. 10.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21. 새 - 저녁, 훼손된 長篇小說 金 飛 21. 새 - 저녁, 훼손된 그녀의 근거 없는 비난을, 우린 고스란히 듣고만 있었다. 불결하고 더러운 그 모든 것들은 그녀가 만든 그녀 자신의 머릿속에 불과한데, 우린 고스란히 그 비난을 감내하기만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다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몇몇 손님들도 ‘게이바’ ‘동성애바’ 어쩌고 하는 그녀의 비명을 견디지 못해 카페를 빠져나갔고, 평소 목소리가 크던 상우 오빠의 대꾸도 그녀 앞에 힘없이 흐트러졌다. 죄송한 짓은 저지른 적 없으면서, 친한 동생의 어머님을 대하는 예의를 먼저 생각하고 있는지, 데리다 오빠는 자꾸 그녀 앞에 허리를 숙였다. 소리를 지르는 엄마를 끌어내며 용호는 얼굴이 벌게졌지만, 그녀는 아들의 곤혹스러움은 헤아리지 못하는 듯했다. 윤락가에라도 빠진 사춘기.. 2015. 5. 3.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20. 데리다 - 침입, 생각의 長篇小說 金 飛 20. 데리다 - 침입, 생각의 “그건 너무 쓸데없는 생각이다. 생각이나 고민이란 건 해답을 찾기 위한 거 아냐? 근데 그거에 그렇게 매달리는 건 비효율적이다.” “그게 생각처럼 되냐? 생각처럼 안 되니까, 그게 사람이지. 결과 값이든 오류든 툭 떨어지면 그게 사람이냐고?” “하지만 하지 않아도 될 생각을 감지할 수는 있지 않을까? 아, 내가 지금 소모적인 생각에 붙들려 있구나. 내가 가진 게 이것뿐이구나. 그러고 털어버리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말이야.” “완벽히 검은 색 꽃은 왜 없는 걸까, 네모난 생명은 왜 존재할 수 없는 걸까… 뭐 그런 생각, 도움이 안 되긴 하지.” “왜 도움이 안돼요? 도움이 될 수도 있죠.” “도움이 되긴 무슨 도움이 되냐? 호기심이.. 2015. 5. 2.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19. 산 - 시간, 낙하하는 長篇小說 金 飛 19. 산 - 시간, 낙하하는 ‘밤’이라고 말하면 세상은 더욱 어두워진다. ‘태양’이라 말하고 하늘을 보면, 동그란 그것은 더욱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소나기’라고 말하며 맞는 빗방울은 더 거세고 찌르듯 아프다. ‘바다’라고 말하면 거대한 물덩어리는 더 막막해지고, ‘새’라고 말하면 하늘을 나는 그 날갯짓이 부러워진다. 어쩌면 ‘사랑’이라고 말하니 그건 그래서 더 달콤해졌던 건지도 모르고.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꾸 밀려오는 이 길고 나른한 잠이 고통스러운 것은. 세상이 그것에 ‘병’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기에. “뭐 했어요, 오늘?” 그녀는 사랑이란 말을 기다리고 있겠지만,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냥… 집에 있었어요.” 그녀가 기다리는 말은 사랑보다 먼저 미안한단 말일까? 그건 무얼 .. 2015. 4. 21.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18. 새 - 향기로운, 지독하게 長篇小說 金 飛 18. 새 - 향기로운, 지독하게 나를 두고 ‘지독하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던 건 열 일곱 제일 친했던 친구 S의 장례식 때부터였다. 나 같은 것에게 살아남을 방법은 공부 밖에 없을 것 같아 지독하게 공부를 해 외국어고등학교에 갔지만, 항상 괴리감이었던 학교의 존재는 달라지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다른 모양의 교복으로 성별이 나뉘었을 뿐, 나에게는 마찬가지 인형이었고 똑같은 벽이었다. 물론 그 벽은 내 것이었다. 내 앞에 모든 사람들을 향해 떠밀었을 뿐 생각해보면 그 벽을 만들고, 숨고, 넘을 수 없다고 단정지은 것은 바로 나였다. 내가 만든 내 벽이었고, 오직 나만 둘러싼 벽이었고, 빈틈도 없이 나 하나만 꽁꽁 가둔 원통형의 굴뚝같은 벽이었다.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고, 몸조차.. 2015. 4. 12.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17. 산 - 생(生), 이름이 없는 長篇小說 金 飛 17. 산 - 생(生), 이름이 없는 나의 생에는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말할 수 있는 그들이 나는 부러웠다. 이름이 없기 때문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 언제든 입을 벌려 쏟아내기만 하면 나의 생은 몇 개의 글자로 각인되어 더 이상 흐릿하고 모호한 삶은 아닐 것이다. 안다, 나는 안다. 그런데도 이름이 없거나 불리기 쉽지 않은 그 이름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그들이, 나는 꽤나 부러웠다. 자꾸 잠이 쏟아졌다. 여러 개의 손이 뒷덜미를 끌어당기는 듯 계속 침대 위에 눕고만 싶었다. 오랜만이었다. 사랑 덕분에 조금씩 그 무기력의 공동(空洞)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고 믿었는데, 나는 반환점을 돈 사람처럼 다시 또 아래로 휘어진 어느 경사길을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말하지 않.. 2015. 3. 29.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16. 데리다 - 디페랑스, 세상에 없는 長篇小說 金 飛 16. 데리다 - 디페랑스, 세상에 없는 "뭐야, 이 분위기? 다들 왜 이래, 재미없게?" "조용히 있어, 너는. 그래도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평소처럼 끼 떨고 그러는 모습 보이고 싶냐? 오늘은 좀 점잖게 잠자코 있어." "어머머, 이 언니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땍땍하게 굴어? 그런다고 언니의 기갈이 감춰질 수 있을 것 같애? 그런다고 감춰질 거였으면 언니가 이 바닥에 이렇게 오픈해서 나올 수 있었겠어? 일반들 사이에서 포비아인 척하며 살지. 형 외모만 보면 완전 성질 더러운 포비아같애, 그거 알아?" "이게 정말? 오늘은 쫌 그만하자, 응? 새로 오셨잖아, 새로! 그러니까 우리 모임을 위해서도 그런 모습을 보이면 좀 그렇잖니, 안 그러냐?" "아야야, 왜 발을 밟아? 씨, 우리 원래 이.. 2015. 3. 22.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15. 새 - 달라지는 것들, 사랑하면 長篇小說 金 飛 14. 새 - 달라지는 것들,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나면, 잠시 세상이 정지한다. 바쁘게 머릿속을 유영하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증발한다. 오직 사랑한다는 그의 목소리 하나만, 등대처럼 새빨갛게 거기 섰다. 언제나 그건 나에게서 멸종된 언어였다. 가족이나 형제, 혹은 친구들의 이름 뒤에 붙이는 사랑 따위도 꺼내어본 적 없어, 내가 아는 언어 속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 TV 속에서, 책 속에서, 사랑을 보고 읽었을 때, 나는 전시물 앞에 선 것처럼 멀찌감치 떨어졌다. 한 번은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에게 안기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거기 유리벽 안에만 있던 사랑이, 아무리해도 가까워질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던 사랑이 하나의 몸으로 마침내 나에게 안긴 것 같았기 때문에. 물 .. 2015. 3. 15.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14. 산 - 세이브, 오토매틱 長篇小說 金 飛 14. 산 - 세이브, 오토매틱 지나고 보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일들이 있다. 내가 도착하려고 했던 곳이 아닌데, 흘러가듯 따라가다 보니 여기가 된 것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왔던 길을 되짚기보다는 떠밀린 여기 이 자리에서 그럴 수밖에 없던 상황을 찾느라 바빠진다. 어떻게든 되돌리려하지 않고 지금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들을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옳은 반성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뒤틀려버린 그녀와의 관계를 두고 화가 났다가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끄집어내 늘어놓기 바빴다. 그녀에게 사과를 하려던 생각이나 마음가짐까지 어리석게 느껴져, 그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배려이자 사랑이라는 관계에 대한 넘치는 예의였다고 생각해버렸다. 고작 육 개월 아닌가? 몇 번 되지 않던 이.. 2015. 3. 10.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13. 새 - 구해줘, 겁이 나 長篇小說 金 飛 13. 새 - 구해줘, 겁이 나 사람에게는, 각자 주어진 몫이 있다고 믿었다. 삶이라는 시간이 저마다의 길을 따라 흘러가는 일이라면, 어떤 골을 만나 휘어지고 고였다가 또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 그런 게 삶이라면, 내 몫의 삶에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너비와 다른 방향의 길이 있을 거라고. 그러나 시간의 물살에 나를 내맡겨 흘러가다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높고 가파른 벽에 부딪히면서, 나는 겁이 났다. 그 벽의 크기와, 질감과, 심지어 내가 그 벽에 왜 부딪혔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게 뭐지, 나는 버둥거리는 게 다였다. 제자리를 뱅뱅 돌며 허우적거리는 나는, 벽 아래 내내 그러고만 있는 힘없는 아이였다. 그런 나에게 내 스스로 손을 내밀었던 것은, 아무도 나를 구해줄 수.. 2015. 3. 4.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12. 데리다 - 패밀리, 가족 혹은 長篇小說 金 飛 12. 데리다 - 패밀리, 가족 혹은 “정말이야? 정말 헤어진 거야?” “뭘 자꾸 물어? 사람이라는 게 만나고 헤어지고 그러는 거지. 그게 뭐 별거냐?” “그래도 이 누나 이번에는 좀 달랐잖아요? 매번 누가 있기는 했던 것 같았는데, 이렇게 우리한테 그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적은 없었거든요.” “걔네들은 원 나잇이었고… 그냥 즐기려고 만나는 사람 이야길 뭐 그렇게 상세하게 할 게 있냐?” “놔둬라, 쟤네들은 아직 그런 거 모를 때다. 키스하면 사귀고, 같이 자면 결혼해야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애들한테 그런 이야기하면 충격 받아.” “그래서 형은 괜찮다 싶으면 일단 한 번 자보고, 악수하듯 키스하고… 뭐 그럴 수 있었던 거예요?” “저게 또 슬슬 사람 성질을 긁기 시작하네?” “너야말로 .. 2015. 2. 24.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11. 산 - 파르마콘, 시간의 長篇小說 金 飛 11. 산 - 파르마콘, 시간의 변하지 않는 것이란 말이 싫었다. 변화는 반드시 있다, 존재한다, 실재한다. 설령 내가 수십 년의 우울 속에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비아냥거림을 듣고 살았더라도,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변화는 있고, 있어야하고, 있을 것이다. 휴대폰을 움켜쥐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 배신감 때문은 아니었다. 자신은 변해놓고, 그래서 살아남아 놓고서, 변하지 않을 거라는 그녀의 말이 너무도 허무하고 절망스러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꾸 눈물이 쏟아졌다. 나를 둘러싼 여기가 너무도 슬퍼서. 끝내 변하지 못하고 어딘가로 곤두박질치고 말 어떤 생이란 게 너무도 안쓰러워서. 문 밖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또 한 번 피를 뒤집어 쓴 아들의 몸뚱이를 발.. 2015.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