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21. 새 - 저녁, 훼손된
그녀의 근거 없는 비난을, 우린 고스란히 듣고만 있었다. 불결하고 더러운 그 모든 것들은 그녀가 만든 그녀 자신의 머릿속에 불과한데, 우린 고스란히 그 비난을 감내하기만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다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몇몇 손님들도 ‘게이바’ ‘동성애바’ 어쩌고 하는 그녀의 비명을 견디지 못해 카페를 빠져나갔고, 평소 목소리가 크던 상우 오빠의 대꾸도 그녀 앞에 힘없이 흐트러졌다. 죄송한 짓은 저지른 적 없으면서, 친한 동생의 어머님을 대하는 예의를 먼저 생각하고 있는지, 데리다 오빠는 자꾸 그녀 앞에 허리를 숙였다.
소리를 지르는 엄마를 끌어내며 용호는 얼굴이 벌게졌지만, 그녀는 아들의 곤혹스러움은 헤아리지 못하는 듯했다. 윤락가에라도 빠진 사춘기 아들을 끌어내듯, 아들에게 매춘이라도 시킨 호스트바의 포주를 대하듯 그녀는 욕지거리를 뱉고 가게 안에 물건들을 내던지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경찰서에 신고를 하겠다는 둥 이 동네에 방방곡곡 소문을 내 가게 문을 닫게 하겠다는 둥 엄포를 놓으면서, 그녀는 그렇게 한 동안 훈계며 설교며 위협을 늘어놓다가 가게 문을 나섰다. 문 밖에서도 그녀는 카페 안을 가리키며 ‘저런 것들’이라는 손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억울함을 견디지 못한 성준이 때늦은 고함을 치며 의자를 걷어찼고, 정작 자신은 제대로 대꾸조차 못했으면서 상우 오빠는 데리다 오빠를 타박했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욕설과 비난에 할 말을 잃은 현아 언니는 눈만 끔뻑거렸고, 민수는 말없이 가게의 물건들을 주워 올렸다. 나는 물끄러미 훼손되어버린 것들을 바라봤다. 너무도 가볍고 얄팍하게 찢겨나간 그 모든 것들을.
깨진 유리조각을 밟고 카페를 나오며,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났다. 확인이 필요했다. 나를 둘러싼 이 세계, 아주 멀리에 섰던 그 사람. 또 다시 자학이라고 하면 자학일 테고 망상이라고 한다면 망상이겠지만, 막다른 길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사랑이든 사랑이 아니든,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 시간에 대한 예의일 것 같았다.
양산에 도착해 그의 집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첫 번째 데이트 때 그는 자신의 고향에 관해 상세히 말해주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지나며 ‘집’이라고 말했었다.
바로 그 아파트 건물 앞 정류장에 시내버스에서 내려서는 그가 보였을 때, 나는 어쩌면 조금은 달라진 그를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랑이 아닌 사랑과, 삶이 아닌 삶을 깨달아버린 누군가에게 나는 조금 수척하고 절망한 낯빛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파트 입구를 걸어 들어가는 그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화단 근처에서 놀던 아이가 작은 고무공을 놓쳤고 그는 그걸 받아 아이에게 돌려주었다. 아주 잠깐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을 때, 나는 끝이구나 생각했다. ‘아닌 사랑’을 확인했다.
확인을 확신하고, 확신을 확인하고, 다시 확인을 확신하며 버스 여러 대를 보내고나니, 변함없는 그의 모습이 다시 아파트 단지 앞에 나타났다. 나를 만나러 온 것도 아닌데, 서성거리던 나는 자꾸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버스에 오르자 엉겁결에 택시에 올라탔고, 그 버스를 따라가 달라고 했고, 버스 맨 뒷자리에 앉은 그의 뒷모습을 봤다. 변하지 않은 그 모습을 끝까지 봤다. 버스가 멈추고 내 마음도 멈추고, 그가 내려서고 내 몸도 내려서고 나니, 그곳이 직업 교육원이거나 학원인 줄 알았는데 종합병원이었다. 왜 평일 대낮에, 병원에?
한 쪽으로 팽팽하게 기울었던 마음이 끈을 놓치자 순식간에 반대쪽으로 휘어졌다. 무슨 일이 있나, 사랑이 아니어야했을 다른 이유가 있었나? 나는 황급히 그를 따라 병원으로 들어섰다. 여기에 내가 있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도 놓쳤고, 우리의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도 놓친 채였다. 묻고 싶었고, 듣고 싶었고,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다른 건 없었다. ‘아니’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듣고 싶어 나는 그를 막아섰고, 그를 마주봤다. 어느 쪽이든 ‘아니’라고 말하는 그를 똑똑히 보기 위해.
그는 사고에 관해 말했다. 다행히 몸을 던졌던 그녀가 나뭇가지에 걸려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고 했지만, 행운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처음으로 그는 뒤틀려버린 그 시간이 고마웠다고 했다. 그녀의 실패가 고맙고 또 고마웠다고.
“이상한 데가… 아팠어요. 한 번도 아파본 적 없는 곳이었는데… 거기엔 절대 상처가 나지 않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통증이 느껴지는 거예요. 고통은 나에게 오직 하나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꿈속이라도 거닐 듯 그의 눈빛은 몽롱했다.
“약을 먹고 있는 게… 나 혼자라고만 생각했어요. 원하지도 않는 그 삶을 받아들이고…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간신히 이어가고… 자살 충동을 견디느라 혼자서 공포에 질리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는 게 언제나 나 혼자뿐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왠지 그는 홀가분해 보였다. 미소가 아니었지만, 말개진 그 얼굴은 미소처럼 보이기도 했다.
“갑자기 지나온 내 삶이 반성돼서, 엄마에게 잘해야지, 엄마한테 자랑스럽고 평범한 아들이 돼야지, 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아닌데… 엄마라는 사람도, 나처럼 아팠다는 게… 아니 엄마라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라… 낳았으면 책임을 다해야지 그런 말이 아니라… 그럴 거면 낳질 말아야지 그런 말이 아니라… 그래도 엄만 결혼을 선택하고 아이를 낳기로 하고 선택이라도 할 수 있었지 그런 말이 아니라… 그 여자가 너무 불쌍해서… 엄마 아닌 그 여자가… 그 여자의 삶이란 게 너무 그래서…”
울먹이던 그가 기어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랑의 일부일까, 아닐까? 나는 그때 그에게 내주었던 내 손을 내가 끌어쥐고 있었다.
“나…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트랜스젠더여서 당신을 사랑했던 게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헤어지는 것도 트랜스젠더여서 헤어지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을게요.”
나에게도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거긴 매번 아픈 자리였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다시 그 자리. 아무리 멀리 뛰어도, 다른 길을 찾아가도, 다시 그 자리. 내 사랑은 어디에서 멸종되어가는 중일까. 이 사람처럼, 그 여자처럼.
“그만 갈게요. 바래다주지 못해 미안해요. 조심히 올라가요.”
멀어지는 그를 지나치며 수납 창구에서 영수증을 받아가는 어떤 보호자가 내 쪽으로 돌아 나왔다. 손에 든 걸 들여다보고, 갸웃거리고, 그 자리에 서서 허공을 보더니, 다시 손에 든 걸 들여다보고, 돌아섰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 되었는지, 수납창구로 다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 울고 있는 그 사람도 그렇게 돌아서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가 잘못되었다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이렇게 고쳐달라고 빨간 줄을 여러 번 그으면서.
내 쪽인 허공에 인사를 하고서, 그는 사람들을 비집고 계단을 뛰어 올랐다. 수납 창구에 영수증을 들이밀었던 남자는 똑같은 영수증을 들고 다시 돌아섰다. 처음부터 잘못된 건 없었다. 아무리 믿을 수 없는 일이라도, 어떤 핑계를 대서든 막아서고 싶더라도, 훼손된 것들을 되돌리는 일은 불가능했다. 아니었고, 아니었고, 아니었다.
김비: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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