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편지(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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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편지] '쓰까'를 넘은 진짜 연대
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후원회원) 안녕하세요.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나영입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초창기부터 만나 어느덧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만나고 연대하며 지내왔네요. 학생운동을 하면서 아직 스스로 성적지향에 대한 확신이 없고 성소수자 커뮤니티 활동도 적극적이지 않던 시절에 집회 현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만나면 항상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무지개 깃발의 의미를 알아보지만 그 때는 나만 알아보는 비밀 같은 것, 누군가가 같이 알아볼까 싶어 더 두근거리는 깃발이었거든요. 동인련-행성인의 무지개 깃발은 어느 현장에서든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성소수자 관련 집회 뿐 아니라 노동, 철거, 이주, 장애, 여성, 평화, 청소년, 감염인 인권운동의 현장까지 빠짐..
2017.12.09 -
[활동가 편지] 나의 반쪽을 찾게 해준 행성인
태욱, 삶은 희망(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이런 표현을 쓰면 내가 행성인 누군가와 연애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오해”이다. 각설하고 행성인이 나의 애인을 찾아준 것은 아니지만, 나의 반쪽은 찾게 해주었다. 내가 두려워서 인정하지 않고 있던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변에도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이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에는 90년대 후반이었다. 소위 학생운동의 끝물이라고 불리는 세대인데 그래도 여러 가지 연대활동이 나름 활발히 진행되었다. 농활은 대학생이면 누구나 다 하는 활동으로 인식될 정도였고, 빈활, 철거투쟁, 노동자 투쟁 등과의 연대도 비교적 활발하였다. 위와 같은 활동에 항상 열성적으로 참가한 ..
2017.11.24 -
[활동가 편지] 걸어왔던 길, 가지 않은 길
김경태(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요즘 들어 지인들한테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2000년에 홍석천이 커밍아웃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고. 뭐,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해서 나도 게이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데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뒤 이어 그 모임의 모체인 ‘동성애자인권연대(현 행성인)’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커밍아웃해준 것이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때부터 내 ‘게이 인생’은 좋든 싫든(!) 행성인의 좌표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다시, 홍석천이 커밍아웃하지 않았다면 나는 게이로서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행성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기 ..
2017.11.14 -
[활동가 편지] 나이 40, 인권단체에서 지란지교를 꿈꾸고
토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책읽기 모임) 안녕하세요? 저는 책읽기 모임을 함께 하고 있는 토리라고 합니다. 그간 행성인 활동에는 오랫동안 함께 했지만 회원으로는 재작년에 가입했습니다. 주로는 정당 활동을 했었지요. 인권 운동과 단체 회원으로서의 활동은 그렇게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텐데, 긴 시간 동안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이 주저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사실 오래 전에 단체에 속해 있다가 정처없이 떠나온 후 소속되어 있는 것이 어색한 느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작년부터 행성인에서 책읽기 모임을 꾸리고 있습니다. 책읽기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각자 일상에서는 바쁜 이들이 모여 나누어서 읽고 싶은 책을 함께 읽는다를 공통 분모로 합니다. 같은 단체 회원이라는 점 외에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서 만나면..
2017.10.26 -
[활동가 편지] 우리로부터, 나와 당신에게로
지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 안녕하세요. 9월부터 행성인 사무국에서 상임활동가로 분투하게 된 지오입니다. 9월 4일 첫 출근일을 박아놓고 기다리는 동안 저는 앞으로 행성인과 ‘나’란 사람 사이에 일어날 온갖 일들을 상상하며 보냈습니다. 별별 사람들과 다 교류하게 될 것에 대한 설렘과 그 속에서 충돌하게 될 어느 순간에 대한 두려움, ‘우리’라 부를 수 있는 속에서도 최전방에 설 것이라는 데 대한 자부심과 무려 활동가씩이나 되어 혐오 앞에 꽁무니를 내빼게 될지도 모른다는 데 대한 겁. 이런 것들이 동전의 양면처럼 엎었다 메쳤다 마음을 들쑤셨어요. 어느 쪽이 우세하달 수 없이 팽팽했던 끈은 단 하나의 단상에 힘없이 늘어졌습니다. 내 자리, 내 책상이 될 그곳에 연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붙여놓는 ..
2017.09.06 -
[활동가 편지] 마냥 즐거웠던 만남
동그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안녕하세요. 성소수자 부모모임 실무팀에서 활동하는 동그리입니다. 이제 행성인 활동한지 1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 1년 동안 행성인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는데 그 중에 선생님들과 나누고 싶은 경험이 있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지난 7월 27일날 행성인 사무실에서 피스모모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청소년들과 퀴어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준비하면서 비청소년이 된지 너무 오래되어서 고민과 걱정을 되게 많이 했는데, 막상 청소년분들을 만나니 제가 괜한 걱정을 했던 거였습니다. 청소년 분들 중에도 이미 퀴어 당사자 지인도 있고, 본인이 속한 공동체나 학교에서 성소수자 청소년이 경험할 어려움들을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다..
2017.08.17 -
[활동가 편지] 모두에게 교차로 같은 노동조합이길!
학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 민주노총) 저는 요즘 노동조합 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활동을 노동조합에서 시도하고 있죠. 성소수자 노동권팀에서는 노동조합 대상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만드는데 함께 하고 있고, 알바노조에서는 얼마 전부터 시작한 성소수자 모임에 힘을 보탰습니다. 민주노총에서는 퀴어문화축제 공식 참가를 계기로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의 모임을 시도해보려 합니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즐겁지만 그만큼 고민도 많습니다. 노동조합은 자본과 권력에 맞서 투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는 세력과 싸우는 조직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노동조합을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2017.08.08 -
[활동가 편지] 때는 바로 지금
정민우(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몇 년 전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스스로에게 조용히 했던 결심이 하나 있었다. 성소수자와 연관된 주제로는 논문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섹슈얼리티와 연관한 한국의 인문사회과학 연구 전반이 척박한 환경에서 아등바등 애쓰고 싶지도 않았고, 또 나보다 나은 환경에서 성실히 작업할 젊은 연구자들이 많으니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핑계였다. 무엇보다도 나는 두려웠다. 그 때까지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별다른 소속이 없던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혹은 할 수 있는지 스스로도 잘 몰랐고, 내가 쓸 수 있는 것들의 한계와 가능성이 다시 내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돌아올 것이 두려웠고, 그것이 다시 꼬리표처럼 내내 나를 좇을까 겁이 났다. 석..
2017.06.13 -
[활동가 편지] 일탈이 일상이 되도록
마당(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언젠가 글을 쓰며 ‘방어적 체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생소하겠지만 아마 들으면 어떤 것인지 느낌이 오리라 생각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감정. 실망하지 않기 위해 바라지도 않고, 슬퍼하지 않기 위해 그 무엇도 희망하지 않는 태도. 내가 나의 성적 지향을 깨달은지 10년이 넘었지만 외국에서와는 달리 한국에선 좋은 소식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차별금지법도 동성 커플의 가족구성권도, 군형법 92조의6 폐지도 모두가 아직 혹은 나중에였다. 그 모든 시도가 혐오에 막혀 무산 되었다는 뉴스만이 반복되었을 뿐이다. 분노와 우울로 몸이 지쳐갔다. 버티기도 힘들거니와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어차피 안 될것이고 되면 좋은 일’이..
2017.05.30 -
[활동가 편지] 우리의 시대는 다르고, 우리의 두려움은 서로의 용기가 되어 돌아온다
그림자(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나는 영세자영업자 레즈비언이다. 자영업을 시작한 이후로 일상과 생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면 이명박 정권 광우병 집회의 패배를 시작으로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광풍의 9년 동안 황폐한 일들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던, 스스로를 돌아 볼 때 아주 많이 비겁했던 삶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1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의 결핍을, 무기력함을, 결코 닿을 수 없는 내면의 그 곳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가는 삶을 살았다. 이제야 돌이켜 그때 10년의 일기들을 다시 읽어 보니 그런 사랑이 내게 있기에 황량한 그 시절을 살아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차오른다.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 토론회. 그날은 조금 상기된..
2017.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