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 편지를 쓰라고 하니... 무슨말을 어떻게 시작해야하나 고민하다가... 정말 그냥 행성인에게 보내는 편지로 써볼까 합니다. 글재주도.. 말 주변도 없어 걱정이 되긴 하지만 열심히 써볼게요. 안녕~ 내가 벌써 행성인을 만난지 4년이 되었구나. 처음에 너의 이름은 동인련이었지. 너를 알고 후원하게 된 계기는, 지금도 내 인생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교회공동체 덕분이었어. 예배시간에 한겨레에 실린 육우당의 시를 읽어주시며 너의 존재를 알려주셨고 나는 주저 없이 후원회원이 되었어. 벽장이었던 나는 처음엔 그냥 돈만 후원하려고 했어. 하지만 하루하루 호기심이 커지더라고. '동성애자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그래도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후원을 하자 며칠 안돼 예쁜 목소리의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어. 너무나 반갑고 떨렸지. 그 분에게서 회원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흥산회 모임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어. 그리고 그날을 위해 회색 츄리닝과 예쁜 운동화를 준비해 두었지. 막상 그날이 오니 너무 무서워 갈까말까 만나는 장소 도착해서까지 고민했어. '그냥 돌아갈까' 하고 말이야. 동성애자들이랑 같이 있으면 나까지 그렇게 보이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말이지.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우스운 생각이었지만, 아직도 많은 우리 존재들은 그 두려움에 무지개 깃발에 다가오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을 거라고 난 확신해. 어쨌든 그 날의 산행은 여러모로 내 인생을 바꿔 놓을 만한 사건이었지. 얼마 후에 내 인생의 로또 곽이경과 사귀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널 만난 2013년도 부터 뭔가가 시작되었던 것 같아. 널 만나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자동차 정비를 시작했고, 남모를 눈물도 많이 흘렸지. 그리고 사회문제를 무지개 깃발과 함께 참여함으로써 세상을 보는 시각도 넓어졌어. 힘들 때마다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지들도 생기고 덕분에 새로운 길을 가며 힘들었던 시기에 큰 힘이 되었어. 같이 사장을 욕해주기도 하고, 진로에 대해 고민도 나눠주고, 막연하기만 했던 성소수자로서의 삶의 본보기가 되어 주었지. 그리고 혐오라는 모호했던 두려움이 구체적으로 다가왔고, 구체적이 된 혐오는 대응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 그것들이 날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아. 그리고 사랑하는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성공적으로 하게 되었고, 커밍아웃을 하고 난 뒤에 부모님과 훨씬 더 가까워진 것을 느껴. 특히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깊이 존경하게 되었지. 이 많은 시작점을 통해 어떤 것들이 이루어져 가고,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날 힘들게 했던, 나중에 내가 노동을 할 수 없게 되고, 옆에는 아무도 없고, 외롭고 쓸쓸히, 궁상맞게 늙어 죽어갈 날의 두려움에서부터 해방되었어. 사실 그렇게 될리 없기 때문이 아니고, 그렇게 되더라도 내 존재가 망가지지 않을 수 있게 계속해서 연습하고, 더욱 단단해 지도록 노력해야겠단 생각으로 전환된거지. 이렇게 내가 나로서 살 수 있게 큰 역할을 한 너에게 항상 고마워. 너로인해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자긍심을 갖고, 좀더 진보하려고 노력할 수 있게 우리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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