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 인권팀)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 겨울 송년회부터 행성인과 함께하기 시작한 세인이라고 합니다. 셰인 아닙니다. 인권활동계의 패권을 쥐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시스젠더 게이 집합의 원소입니다. 그 점 죄송스레 생각합니다. 잠깐! 글을 작성중인 프로그램인 마이크로소프트 워드2016이 왜 시스젠더에 빨간 밑줄을 긋죠? 후지네요. 아무튼 제가 신년회부터 시작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연말 행사부터 나가게 된 건 뭔가를 기다리지 못하는 급한 제 성질 때문이겠죠. 실은 작년 12월 말에 들어왔으니 활동한지는 4개월이 되어서 뭐라고 쓸 말이 없지만 알량한 경험을 토대로 말을 이어보겠습니다.
처음 행성인 왔을 때 어떻게 HIV/AIDS 인권팀을 들어가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별 생각 없이 골라서 그런 것이려나요. 만약 정신건강과 관련된 팀이 있었다면 그 쪽으로 갈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지금 다시 고르라고 해도 저는 이 팀에 들어올 것 같아요. 콘돔을 끼지 않은 채 섹스를 하고서 성병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했던 온갖 상상들 때문이었을까요, 친구가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냥 팀 사람들이 좋아서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병과 죽음이라는 코드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이들을 비판할 추가적인 명분임과 동시에 우리를 분열, 혹은 결속 시키는 아이러니컬한 병. 해외 게이 인권운동의 역사는 에이즈의 역사와 그 흐름을 함께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아무래도 결속 보다는 해체에 가까운 듯합니다. 아마도 죽음이라는 단어를 사회에서 제외시키고 싶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이 병이 인간관계의 해체가 아니라 결속을 가져올 수 있도록 분위기를 바꾸어놓는 데에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지지? 뭘 지지하는데?” 에이즈 인권활동가의 집에 초대받아 놀러갔을 때에 활동가 분으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글쎄요. 우리는 무엇을 지지하는 걸까요? 감염인들의 인권?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나마 들어 아는 것은 감염 사실을 말하는 순간 게이 인생이 끝난다는 친구의 말, 온몸에 발진이 다 퍼질 때까지 확진이 두려워 병원을 가지 못하다가 쓰러질 때가 되어서야 병원을 찾아갔다는 현실입니다. 이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덮어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닌데, 오히려 더 곪을 뿐인데 우리 사회는 쉬쉬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는 개인의, 사회의 건강을 지지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건강하다는 게 무엇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말이죠. 그렇지만 적어도 어떻게 지지해야 할지는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HIV/AIDS 팀의 활동은 약간 안에서만 도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감염인들과 만나서 밥을 먹고 내부 세미나를 했지만 대외적인 활동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키싱 에이즈 살롱에 참여하게 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굳이 예약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들어올 수 있었고, 감염 사실을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성소수자가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인권 운동의 시작이자 반인 것처럼 감염인이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을 커뮤니티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부터 나아가야 할 걸음이 아닐까요?
사랑은 존재의 인정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사랑 받기위해서는 우리의 존재를 알려야 하기에 우리가 이토록 치열하게 투쟁하는 것이겠죠? 비단 소수자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그러한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떠한 투쟁을 하며 살아가게 될까요? 당신은?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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