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24. 산 - 자유로운, 부유(浮遊)하는
사랑에 관해 생각하는 일은 그만뒀다. 그 마음을 폄하할 의도는 아니지만, 지금의 나에게 사랑은 쓸모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지나간 것들이 그러하듯 문득 떠오르긴 하겠지만, 나는 이제 그걸 ‘자학’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닌가, 자학을 한번 더 학대하는 일인가? 그럼 그걸 뭐라고 불러야하는 걸까?
직업교육원에서 수업을 듣는 일도 그만두었다. 아침 아홉 시부터 네 시까지 주로 엑셀이니 워드니 컴퓨터 관련 수업을 듣긴 했지만, 그 역시 지금의 나에게 쓸모 있는 건 아니었다. 주로 아주머니들이 많았던 수업은 즐겁고 경쾌했지만, 그 역시 지금의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남자가 이런 직업 교육을 받기엔 늦은 것이 아니냐, 학교 때 공부 안 하고 뭐 했느냐, 예의를 모르는 질문들은 너무 많이 쏟아졌고, 그 대답 역시 쓸모가 없단 걸 이제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직업교육원에 나가지 않는 대신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가족들이 기대하는 모습의 나로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생긴 건 아니지만, 다른 곳에 나를 내려놓고 싶었다. 그곳에서 역시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일 수밖에 없더라도, 이번에는 다른 눈으로 그런 나를 지켜보고 싶었다.
다행히 공장이나 작업장에서 육체노동을 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많은 편이어서, 겉보기엔 이제 겨우 서른 된 건장한 남성인 나에게 대부분의 현장 직 업체들은 호의적이었다. 그 중에 한 군데를 선택했을 때 고려했던 한 가지는, 엄마가 입원한 병원과의 거리였다. 퇴근을 하고 병원에서 엄마를 돌보아야하고, 거기서 잠을 자고 아침에 다시 출근을 하는 일상을 보내야했기에 직장과 병원과의 거리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이었다. 물론 직장을 다니며 엄마를 돌보겠다는 마음도 가족으로서의 책무나 의무감보다는 동질감에 가까웠을 것이다. 가족의 제일 바깥 자리, 삶의 제일 바깥 자리, 같은 자리를 딛고 선 두 사람이었기에.
그래서 내가 다니게 된 직장은 타이어를 만드는 카본 가루를 수입해 따로 포장을 해서, 전국 각지에 흩어진 타이어 공장에 납품하는 일이었다. 지게차를 운전하는 법을 배워야했고, 수백 킬로그램이 넘는 포대들을 채우고 쌓는 노동을 반복하는 일이었다. 작업장 구석에는 작으나마 휴게실이 있었고, 그곳에서 쉬다가 카본 가루를 실은 트럭이 들어올 때에만 나가 사람들과 같이 작업을 했다. 크기와 종류별로 포대에 나누어 담아 쌓아 놓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 어렵지는 않았다. 사람들과 크게 부딪힐 필요도 없으니 심리적인 불안이나 우울이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그렇게 카본가루와 씨름하고 나면 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시커먼 검댕이 묻어나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내 안에 쌓였던 찌꺼기가 쏟아진 것 같아 오히려 홀가분했다.
직장을 구했다는 내 이야기에 엄마는 자꾸 시커메지는 내 손을 붙들고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나보다 더 불안해하는 그녀의 눈빛을 보니 어쩐지 더 안심이 되기도 했다. 온 몸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카본 가루는, 잿빛 검댕은 아주 쓸모 있는 가면이 되어주었다. 나 역시 처음으로 쓸모 있는 내가 된 것 같아, 좋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관해 생각하는 일은 오랜만이었다. 기껏해야 가족, 기껏해야 사랑, 기껏해야 나를 깔고 앉은 괴물이 전부였는데, 사람을 생각한 건 처음인 것 같기도 했다.
이십 년 가까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오 팀장은 항상 제일 먼저 가족을 생각한다고 했다. 당신 자신에게는 한 번도 다정한 가족을 가질 수 없었기에, 그게 일생의 꿈이 됐다고 했다. 돈이나 성공이야 어차피 불가능이고, 그나마 다정한 가족이 자신의 생에 주어진 제일 큰 가능성이라고 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갈 땐 무조건 웃는 얼굴이라고 했다. 억지로 하다 보니 그런 얼굴이 됐다고 했을 때 나는 믿지 않았는데,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웃는 그 얼굴엔 어떤 억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에는 어떤지 모르지만, 그 억지가 지금의 그가 된 건 사실인 모양이었다.
나보다 삼 개월 전에 들어왔다는 최 씨 형님은 내내 말이 없었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까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않고 구석에 혼자 앉아 땀만 닦았다. 한 번은 그런 그에게 내가 먼저 음료수 캔을 내밀었는데, 친근한 미소 한 번 보여주기도 힘든 모양이었다.
나는 그 후로 그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호의나 ‘좋은 관계’를 핑계로 함부로 말을 걸지도 않았다. 기다림은 그 쪽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필요했다. 우리에겐 모두 다른 분량의 기다림과 가능성과 호의가 있으며, 그걸 감지하고 지켜주는 것만이 유일한 책무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렇게 거기에 있고, 나는 여기에 있다. 이런 걸 평등이라고 하는 걸까? 삐익삐익 소리를 내며 검은 가루를 잔뜩 실은 트럭이 도착하자, 우린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시 트럭 위로 올라탔고, 땀을 흘렸다.
소통은 감동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의미가 오독되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소통은 오히려 소통하지 않으려는 몸짓과 닮은 건지도 모른다. 소통하려는 마음은 지닌 채, 거기에 서서, 그에게 필요한 기다림과 나에게 필요한 기다림을 저울질하는 일. 시간이 걸려도 괜찮으니까, 성급하게 판단하고 결정짓고 아니라고 하지 않고, 마음만 한 발짝 더 다가간 채 몸은 그대로 그의 마음을 내버려두는 일.
“제가 들어갈까요?”
최 씨 형님은 여전히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오늘은 그와 내가 남아서 트럭의 마지막 포대까지 끌어내 쌓는 잔업을 하기로 했다. 커다란 트럭의 후미에 실은 것들은 나무 팔레트를 지게차로 내려 끌어내리면 되는 일이지만, 맨 안 쪽에 쌓은 것들은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 일일이 화물칸 입구 쪽으로 끌어내야 했다. 밖에서 기다란 줄로 팔레트에 연결해 끌어내리는 일과, 안에 들어가서 포대를 밀어내는 일이 동시에 균형적으로 이루어져야만 조금씩 앞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무게였다.
그렇다면 소통의 무게도 비슷한 걸까. 그는 소통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걸맞은 가장 완벽한 소통을 이루고 있는 셈이 아닐까?
“갑니다!”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는데, 그래서 그를 향한 목소리에 힘을 줬던 건데, 아직 포대를 밀 준비가 되지 않은 이쪽 상황을 모르는 입구 쪽에서 먼저 팽팽하게 줄이 당겨졌다. 기우뚱 포대가 기울어지는가 싶어 황급히 떠받치려고 포대 쪽으로 두 팔을 들어 올리는데, 다리 아래에서 무언가 퍽 튕겨 올라 내 무릎을 쳤다.
“악!”
칼처럼 기다란 철판이었다. 마지막 나무 팔레트를 트럭 끝으로 밀어놓으며, 그 사이를 괴고 있던 철판이 칼날처럼 튕겨 올라 내 쪽으로 날아왔다. 날카로운 통증이 무릎 위에 꽂혔고, 찢겨진 작업복 안으로 피가 철철 흘렀다. 쩍 벌어진 상처 속으로 허연 뼈가 드러나 보였다. 갑자기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는데, 그 순간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까맣게 잊고있었다고 믿은 한 사람이었다. 떠나보냈거나 떠나갔거나 이미 지금의 나에겐 쓸모를 잃어버린 그 사람이, 갑자기 튕겨 올랐다.
통증 때문은 아닌데, 아니 다리를 베고 나간 그 통증 때문이 아닌데, 무릎을 움켜쥔 채 나는 울고 있었다. 최 씨 형님이 놀라 뛰어 왔다가 시뻘겋게 흐르는 피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뭘 하겠다는 건지 일단 트럭 아래로 뛰어내렸고 이리저리 허둥대다가 간신히 휴게소 안에 전화기를 끌어 쥐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낸 것 같았다. 나 역시 한 번도 본 적 없던 내 몸 속에 또 다른 몸을 보면서, 한 가지는 확실하게 깨우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그녀가,
나는 몹시도 그리웠다.
김비: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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