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 주인공으로 서는 세상을 위해,

노동운동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자신의 과제로 삼아야하는 이유

(이 글은 필자의 <차별금지법과 노동> 토론회의 토론문입니다)

 


곽이경 (동성애자인권연대)

 

차별금지법은 단순히 소수자에 관한 법의 위상을 넘어 평등 원칙을 기준으로 사회의 모든 제도와 정책을 근본부터 점검하고 재정렬할 것을 요구하는 기본법이다. 어떤 사람이든 불합리한 사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평등이라는 가치는 훼손 없이 지켜져야 한다. 또한 차별금지법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반차별 원칙에 대한 인식을 넓혀가는 것도 중요하다. 차별은 실질적으로 권리를 제약하지만 우리가 편견과 차별에 익숙해 있는 탓에 그것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차별은 임금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또한 우리가 노동자로서 얼마만큼의 임금을 받느냐의 문제도 차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면에서 따로 떨어진 문제도 아니다.

 

이 토론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곧 노동인권의 문제임을 짚어내고, 그것이 미칠 사회적 영향들에 대한 중요한 토론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여성노동에 있어 여전히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과 그동안 일궈낸 제도적 성취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이 차별받은 경험과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벌인 투쟁의 경험은 일터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려는 지금 노력에 중요한 밑거름이다. 발표자들은 이와 같이 성차별 판단기준이 중요한 지침이 되어주고 차별의 영역을 확대하는데 기여해왔다고 언급한다. 그렇게 법에서 차별 판단 사유가 확장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실제 차별판단기준의 한계도 여전하다. 차별사유로 인해 사직을 종용받아도 차별임을 입증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고용상 차별 금지가 꼭 근로계약 관계에서만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이라면 많은 차별들이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노동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이 토론회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일 것이다. 양성평등을 목표로 한 여성노동운동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었지만 명백히 남녀의 문제가 아닌 고용영역의 다양한 성차별 문제에 대해 짚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차별받은 당사자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위해 스스로 투쟁하는 것은 노동운동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 용기가 차별을 넘어서는 운동이 시작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여성 노동자가 그렇다. 하지만 다양한 주체가 나서지 않는다면 차별 당사자들의 싸움은 다시금 배타성 안에 갇히기도 쉽다.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소외되고 억압되는 목소리들 간의 연대의 단초를 그려가는 시도를 충분히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용 영역에서의 평등을 우리는 ‘일터에서의 평등’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우리가 평등을 이야기할 때는 몇 가지가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당연히도 노동함에 있어 차별적 대우가 없어야 한다. 둘째, 어떤 사람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노동하면서 그 자체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일터에서 흔히 느끼는 모욕감이나 괄시, 천대 등과 연결된다. 지극히 개인적으로만 여겼던 이 경험들을 세상에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하다. 그래서 셋째로, 내가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와 대표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노동조합운동에서 차별받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참여를 촉진할 때 그런 기회는 더 많이 생긴다. 물론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된 논의가 노동현장에서의 평등을 논하는데 전부일리는 없겠지만 노동운동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자신의 과제로 받아들인다면 위에서 밝힌 일터에서의 평등을 향해 좀 더 진전하리란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이것이 완전히 소수자 이슈가 되어있다는 인상이었다.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운동이 차별금지법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법의 실효만 따져놓고 본다면 관심이 없어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힘의 관계를 바꿀 힘이 노동계급에게 있다면 차별금지법이 소수자들만의 운동이나 제도적 성취 정도로 여겨져서는 곤란하다. 우익들이 차별금지법을 ‘동성애옹호법’이라며 법 제정을 막아서고 있다. 이것을 볼 때 차별금지법 제정은 ‘누가 차별받으면 안 되는가’에 대한 싸움이다.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에 도전한다는 것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싸우는 소수자들에게는 분명한 실익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당사자들 중 대다수가 노동계급 이거나 계급 이하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분열 지배를 위한 차별의 근거들 속에 억눌려 있다는 사실이 더 많이 드러나야 한다.

 

차별은 사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단지 커밍아웃하지 않은 성소수자들만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피부색이 다른 이주노동자도 누구나 식별 가능하게 달라 보이지만 이들이 겪는 일들이 ‘차별’이라고 인식되기까지는 싸움이 필요하다.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자신을 ‘유령’이라 칭한 것은 단적인 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심각한 차별이다. 여성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기 전까지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도 비가시성의 영역에 있었다. 이 말은 곧, 여성들이 느끼는 부당함이 ‘문제’로 여겨지지 못했다는 말이다.

 

문제로 만드는 힘은 누구에게 있는가? 여성노조는 여성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청소, 학교 등 여성 노동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일터로 관심을 돌렸고, 여성,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느끼는 부당함을 운동으로 조직하는데 관심을 돌렸다. 최저임금문제를 여성노동의 문제로 제기한 것은 한 예다.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이 허드렛일을 한다는 이유로, 원래 여성들이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청소나 돌봄 등의 노동을 한다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겨우 넘어서는 월급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포함하여 차별을 넘어서는 운동은 차별받는 사람들의 조직화와 함께 가야 한다.

 

차별금지법 자체로 어떤 것이 차별인지를 모두 개념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실질적인 차별 구제를 하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앞으로 보다 실질적인 차별금지 법제화와 더불어 적극적인 평등권 실현을 위한 제도적 조처들을 일구어내는데 기본 바탕이 되리라 생각한다. 돈 벌고 살아야하니 이 정도는 감내하자고 생각했던 것들을 의심하는 힘을 키울수록 이 바탕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은 지금 당장 노동법이 있어도 자신의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법 바깥의 사람들, 있어도 못 써먹는 사람들, 개별로 있어서 법의 힘을 이용하거나 보호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므로 범위가 넓어야 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몫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배제당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실천하는 노동운동이 필요하다. 연대가 무엇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동일성에만 기초한 연대보다는 저마다 지닌 보편성의 기반을 찾아내는 연대의 관점이 필요하다. 그것이 잘 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이 다양한 주체들의 운동과 실질적으로 만나야 할 것이다.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도록 하는 과정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고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진 주체들로 변화하게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이 자본주의 사회가 차별과 편견을 이용하여 무디게 만든 타인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게 만들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어떤 트랜스젠더 노동자의 꿈은 장기투쟁작업장의 해고노동자들이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해고 걱정 없이 먹고 살만큼의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것이라 하자. 생존을 위한 비용에는 어떤 것들이 허용되는 것일까? 트랜스젠더로서 한 달에 적어도 20~30만원 드는 호르몬 치료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사치인가?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그 호르몬을 맞는 것은 사치가 아니라,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공공성의 영역에 있음을 보증해주는 것, 그러한 연대가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을 변화시키겠는가.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 젖히기란 몹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구체적 관계들 속에서 이미 그렇게 변화하는 노동자들을 만난다. 그게 가능성의 시작일지 모른다. 차별금지법 또한 이와 같은 의미로 노동운동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에서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은 어떻게 그 지평을 넓혀가야 할까? 우선 습관적으로 배제해온 타자들과 관련 맺기가 요구된다. 첫째, 노동조합이 ‘차별금지법’ 같은 낯선 이슈를 노동조합운동이 이끌고 가야할 공식적인 과제로 포함시켜야 한다. 둘째, 장기적, 상호적 관점에서 이 이슈를 다룰뿐더러 운동의 인적·물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동원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자신의 과제가 되어 형식적 연대를 넘어설 수 있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성소수자 권리 문제를 가지고 조합원들에게 캠페인을 벌인다면 그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들 한다. 조합원들이 지닌 기존의 편견과 노동조합의 운동 방향이 충돌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균열을 회피하지 않고 끈기 있게 대면하면서 해결해갈 역량을 키울 때 민주주의의 역동성도 커질 수 있다. ‘차별금지법과 노동’이라는 화두 앞에서, 앞으로 이와 같은 고민을 함께 해나갈 노동운동의 동지들을 더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1. 모리
    2013.09.14 00:18 [Edit/Del] [Reply]
    이 글을 읽고 나니 바성연에서 차별금지법을 동성애조장법으로 호도한게 아무 효과도 없었던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생각보다 엄청 효과적으로 먹혔던 건지도.
  2. 모리
    2013.09.14 00:22 [Edit/Del] [Reply]
    요즘 드는 생각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성과 섹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않는데, 동성애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을까, 하는 거. 홍석천이나 하리수 같은 대상화 된 성소수자가 아니라 동성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할 기회.
    성교육도 인권교육도 제대로 안 하는 나라에 태어난게 한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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