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입대를 하다니...

Posted at 2009. 3. 30. 14:30// Posted in 회원 이야기/회원 에세이

 

어렸을 적 엄청난 공포로 다가온 것 중의 하나가 “2년도 넘는 극기훈련”=군대였다. 다른 것들로는 불주사, 포경수술 이런 게 있었던 거 같다. ‘내가 어른이 되기 전에 통일이 되어야 하는데’ 하면서도 별로 그럴 거라 믿진 않았다. 군대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사회화’ 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억압들에 서서히 익숙해졌다. 나에게 다른 선택권이 있진 않았다. 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군대도 ‘뭐, 어쩌겠어. 남들도 다 가는데, 내가 못하겠어.’라고 스스로와의 협상을 시작했다.

세상에. 조인성이 4월 달에 공군에 입대를 한단다. 이럴 수가. 4월 달로 신청할 걸. 그 막막한 훈련소에서 한줄기 빛이 되어줄 텐데. 스타이고 루머까지 겸비하셨으니, 시나리오를 짜기 딱 좋은데. 오늘은 2번 봤다고 기뻐하고, 혹시 눈이라도 마주치지 않을까, 날 맘에 들어 하지 않을까, 연인이 되는 거 아닐까, 화장실에서 삐익~.... 이런 저런 상상들로 지루할 일이 없을 텐데.

사실 군대 가면 걱정이긴 하다. 이성애 남성들의 연애, 주로 섹스 이야기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는 그 곳에서 나는 어떤 컨셉의 ‘남성’을 선택할 것인가. 그냥 원래 하던 데로 “공부만 해서 조금 어리버리하고 순수한(나이 들어 육체적으로 순수하니까 조금 바보 같은, 으로 읽히겠지.) 눈에 안 띄는 그런 애”정도가 좋겠다 싶다. 여자친구는 대학교 들어와서 한 번 사귀어봤고, 같은 동아리에다가 키스까지 밖에 못해봤다고 해야지. 열심히 궁금해 하는 척하면서 들어주면 자기이야기나 신나서 해대겠지. 뭐. 여자아이돌은 나도 (다른 맥락에서?) 좋으니까 같이 맞장구치면 되고. 연예인 중 누가 섹시하고 이쁘다는 거야 그냥 남자만 제외하면 되니까 그리 어렵지 않고. 사실 이성애자들은 내가 동성애자가 아니라고만 하면 그게 자기들한테 좋으니까(고민할게 없잖아) 그렇게 믿긴 하지만, 모든 관계를 거짓말에 기대해야만 하는 공간에서 2년의 시간은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이런데 아빠는 군대에 가서 좀 힘들어봐야 배우는 것도 있다고, 쉬운 길만 피해서 가는 내가 불만이라는 소리를 해댄다. 정말 오만하다. 아들이 게이인데(참고로 난 커밍아웃을 했다.), 내가 얼마나 맘 고생을 많이 했고, 군대가 나에게 얼마나 공포스러운 공간일지 단 한 번의 생각도 하지 않고 내뱉다니. 그래. 안다. 생각하기 싫은 거겠지. 그래도 요즘 내가 군대 가서 몸살 나지 않으려고 운동하는 걸 보면 뿌듯해한다. 그래서 요즘은 친하게 지낸다. 어제는 술 먹고 와서 뽀뽀를 하고는 “너희는 내가 불만이지? 어쩌겠니, 그게 아빤데.”라고 엄청난 동정심을 유발한다. “아빠, 사랑해요.”(비꼬는 거 아님.) 나를 보지 않으려는 아빠를 보면 화가 나지만, 군대 때문에 다른 걱정하기 싫어서인지 요즘은 마음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려는 것 같다.

그 사랑은 괜찮은데, 군대 가서 짝사랑하는 건 걱정된다. (당연히 남자들만 있는 공간에서는 남자들끼리 서로 좋아하는 일이 생긴다. 서로 섹스를 안 하면 사랑이 우정으로 포장되고, 섹스[각주:1]를 하면 여자가 없어서 욕구를 푼 거라고 핑계대면서 이성애왕국을 지키긴 하지만 뭐. 심지어 애정도 있고 섹스까지 해도 “여자랑 남자랑 놓고 비교하면 여자가 더 좋으니까 그게 진짜 사랑”이라며 ‘나는 이성애자(정상)이야’라고 자위하며 안정을 되찾는다. 그런 식이면 안젤리나 졸리가 이상형인 남자는 안젤리나 졸리랑 연애하면 진짜 사랑이고 다른 여자랑 하면 가짜 사랑인감?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통해서라도 이성애왕국을 유지시키는 이 사회가 토 나온다.) 어쨌든, 물어보면 이성애자라고 대답할만한 남자들과 친밀한 공간에 있다 보면, 주고받고 하다가 좋아하기 쉽다. 내 문제는 그냥 즐기기만 하지를 못하는 거다. 이성애커플이 하는 모든 짓을 나도 하고 싶은 거다. 그러니 골치 아프다. 나의 욕망과 그 친구의 욕망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그 친구가 가진 이성애중심주의가 얼마인지 잰 다음 내가 얼마나 노력하면 바꿀 수 있을까? 바뀌긴 할까? 고민하고. 거기다 군대이니 커밍아웃하고 고백한 후 정리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계속 봐야 하니, 걱정이다. 좋아하는 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보니, 그 짓을 또 할까봐 두렵다.


어찌되었든, 온갖 잡생각을 뒤로하고

‘남자’가 되어 돌아오지 않고, 더욱 멋진 게이가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군대로 떠난 ‘오’군_ 동성애자인권연대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참고로 군대는 계급에 따라 권력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동성 간 성폭력이 벌어지곤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나온 자료에 의하면 군대내 동성 간 성폭력의 가해자의 대부분은 이성애자이다. 물론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무성애자건 성폭력 가해자는 가해자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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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욜
    2009.03.31 16:00 [Edit/Del] [Reply]
    더 멋진 게이로 돌아올 오리가 기대된다^^ 힘든 훈련이겠지만. 잘 참고 견디렴. 나도 군대에서 생활했던 생각이 나는구나
  2. 2009.03.31 23:41 [Edit/Del] [Reply]
    네 모습 그대로 돌아와줘~ 그정도면 충분히 멋진 게이였다고^^
    그나저나 야박한것, 아직 편지한통 안보내는구나!!

    아무쪼록 몸, 마음 건강히.
  3. 용제
    2009.04.04 12:02 [Edit/Del] [Reply]
    음.... 복잡한 마음 잘 읽었습니다. 돌아오면 한번 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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