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해리(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여성모임)
안녕하세요,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여성모임 민해리입니다. 5월 여성모임에서는 30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여성영상집단 움, 이영 감독님의 영화를 봤습니다.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다가 아이다호데이, 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불거진 성소수자 반대 및 혐오에 대해 다시금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지요.
이반검열이란 2000년대 중반, 학교에서 동성애자를 색출하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머리가 짧거나 손만 잡아도 제재를 가하고, 스킨쉽에 따라 벌점을 매겨 행동을 규제했던 것을 얘기하지요. 영화는 이반검열에 대한 이야기만을 다루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갈등을 겪는 10대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반검열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대개 10대 시절을 그들을 통해 다시금 회상하며 공감하게 해주었습니다.
나온 이들은 카메라를 통해서 각각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이야기 합니다. 자신이 연출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 하지만 얼굴에 가면을 쓰거나 카메라의 포커스를 자신의 얼굴이 아닌 다른 곳으로 비추는 식으로 본인의 모습을 원하는 만큼만 드러내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노출의 범위를 정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솔직하게 털어놓게 됩니다. 이런 장치가 관객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웠습니다. 영화 첫 부분에는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것이 이질적이고 그로부터 오는 불편함이 있었다면 뒷부분으로 가면서 그들이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에 공감하게 됩니다. 오히려 이것이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사회로부터 상처를 받은 10대들의 이야기라고 인식하는 것이지요.
첫번째 에피소드 천재의 경우 <이반검열 1>에 나왔을 당시만 해도 자신은 레즈비언이라며 스스로 정체성을 확신하다가, 두번째 영화를 찍는 시점에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천재 자신은 레즈비언이었던 과거에 대해 떳떳하고 그것도 자신이라며 말하지만 남자친구는 천재의 과거를 계속해서 부정하며 천재에게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강요하게 됩니다. 결국 둘은 헤어지게 되지요. 이 부분에서 천재는 ‘나는 레즈비언인데, 남자친구가 있으니까 이제 레즈비언이 아닌 걸까?’ 하는 의구심을 끊임없이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더욱 공고히 다지는데 이런 부분들이 뒤이어 나오는 초아의 이야기와 대비를 이루는 듯 합니다.
두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초아는 촬영을 하는 중간에 10대 소녀와 교제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둘의 교제가 끝난 후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게 되지요. 천재가 남자를 만나면서도 자신은 레즈비언이라고 확신한 반면, 초아는 여자를 만나면서 스스로에게 확신이 사라지게 됩니다. 천재의 이야기가 지나간 후 바로 이어지는 초아의 고민은 외부와의 갈등이 아닌 자신 안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천재가 남자친구와 직접 충돌하고, 분노하고, 답답해하며 화를 내는 동안 초아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이것 역시 10대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꼬마의 이야기는 성소수자 혐오를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고 고통 받는 소녀입니다. 꼬마는 가족으로부터 아웃팅 당하고 본인의 정체성을 부정당하면서도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을 가지고 지내는 학생입니다. 씁쓸했던 점은 이 영화가 2007년 개봉작 임에도 불구하고 8년이 지난 지금도 성소수자 혐오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정체성을 부정당하고 상처받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감독과 출연자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출연자들이 직접 감독을 맡기도 했고, 감독이 직접 나와서 출연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직접 출연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구조들을 지켜보는 관객들 역시 앞에서 듣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고, 그로 인해 출연자들과 좀 더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 듯 합니다. 그들이 마치 우리의 과거이고, 지금 나의 동생들인 것처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함께 고민하게 되면서 그 상처와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10대들이 카메라 앞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여기 모인 이들의 정체성이 얼마나 단단한지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으며 더불어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여성모임은 말 그대로 여성 성소수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20살부터 50대 여성들이 함께 모이는 곳이지요. 우리는 모두 각각의 10대를 보냈고, 각기 다른 삶을 살았으나 우리가 마주하는 고민은 ‘정체성’으로 공명합니다. 영화는 우리의 10대의 모습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돌아보게 해주었고, 이후 가진 감독과의 대화, 상영회에 참석한 분들이 함께한 뒤풀이에서는 스스로에 대해 덧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정체성으로 고민했던 시기, 나의 커밍아웃, 현재 여성 성소수자로서의 삶 등을 얘기하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고, 성소수자로서 우리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되는 자리였습니다.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앞으로 여성모임을 통해 더 많은 자리에서 뵙길 바랄게요. 여성모임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언제든 연락부탁드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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