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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인터뷰

[회원인터뷰] 무지개 깃발이 아름다운 이유 - 활동회원모임의 진(Zinn)

by 행성인 2015. 11. 2.

인터뷰 받은 사람: 진(Zinn)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회원모임)

인터뷰 한 사람: 마루, 오소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마루 :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 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진(Zinn)이라고 합니다. 제 정체성은 레즈비언이고, 행성인의 오래된 회원입니다. 제가 닉네임으로 쓰고 있는 ‘진’은 하워드 진이라는 역사학자의 이름을 의미하기도 해요. 그분은 “역사나 기록이 중립적일 수는 없다”며 소수자의 입장에 서서 활동한 역사가 였어요. 평소에 존경하는 인물이예요.




하워드 진 (Howard Zinn, 1922.8.24 ~ 2010.1.27)

역사학자, 정치학자, 사회비평가,사회운동가, 희곡 작가



마루 : 지금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 저는 회사원이고 아키비스트(Archivist)예요. 아키비스트라는 직업은 기관이나 개인의 기록을 통해서 과거, 현재, 미래를 돌아보고 내다보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직업 이예요. 지금 하고 있는 인터뷰도 그렇겠지만 기록은 활동의 결과물로 생산되는 것인데 거기에서 그치면 기록이라고 보기 어렵고요. 이런 낱낱의 기록들을 누군가에게 쓰일 수 있게 하는 작업이 아키비스트의 역할입니다. 성소수자 운동이나 역사는 공식적인 역사가 아니라서 정식으로 기록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올바로 알려지거나 전달되기 어렵잖아요. 행성인의 지난 20년가량의 활동과 발전, 탄압 이런 역사들을 공공기관이나 ‘탄압의 주체’가 기록하는 것과 우리 편에서 남기는 것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역사를 체계적으로 발굴, 기록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통해서 2,30년뒤에도 증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모로 힘든 일이지만 분명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여기에 도움이 되고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루 : 자신의 성 정체성은 언제 처음 알게 되었나요?


: 보통 동성애 성향을 7,8살 때 안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때까지의 기억은 잘 안 나고 사춘기 쯤 들어서 5학년쯤 확실해졌던 것 같아요.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마음이 설레고 스물거리는 무언가가 올라오는 걸 느꼈죠.


마루 :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굉장히 이성애 중심적이라서 모든 사람이 항상 이성애 중심적인 관점을 주입 받고 살아가잖아요, 혹시 남자친구를 사귄 적은 없었나요?


: 이성애자가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정체화 하기까지 연애를 꼭 해봐야 아는 건 아니듯, 동성애자도 연애를 해봐야 내가 동성애자라는 걸 아는 건 아니잖아요. 여느 성소수자들이 그렇듯 정체성이 자긍심으로 가는 과정을 치열하게 겪었던 던 것 같아요. 스스로 부정하고 포비아를 극복하는 과정도 그렇고요. 저는 고교1학년때 첫 연애를 했어요. 지금처럼  왕따나 학교폭력은 심하지 않았지만 뒤에서 이런저런 얘기 하는 걸 들었어요. ‘레즈비언’ 같은 단어가 뭔지도 몰랐지만 그런 뒷얘기들에 충격 받고 그래서 개과천선 해야겠다 생각해서 졸업 후에 남자들과 소개팅도 많이 하고 실제로 남자친구와 연애도 적극적으로 했죠. 그런데 커뮤니티를 알아버린 이상 벗어날 수가 없더라고요.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동성애자도 있구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어요. 내가 비정상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나도 내가 더 가슴 뛰는 연애를 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요.

 

마루 : 행성인은 처음에 어떻게 알고 활동하게 되었나요?


: 96년도에 대학에 들어와서PC통신을 열심히 할 때였는데, 아직도 기억이 나요. 집에서 신문을 보는데 한국일보였어요. 동성애자 특집 기사였는데 PC통신을 중심으로 한 대학 동성애자 관련 기사였어요. 제가 그때 나우누리 계정이 있었는데 제게 너무 가까운 곳에 동호회가 있었던 거예요. ‘레인보우’라고.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그때 만난 언니들과 ‘니아까’라는 레즈비언 잡지를 기획하고 만들었죠. 글도 쓰고 여러 가지 모임도 하고 그러면서 여성주의와 레즈비어니즘을 접하고 페미니스트와 다양한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던 와중에 행성인(구 동성애자인권연대)를 알게 됐죠. 그 때부터 2000년 사이에는 학생운동의 언저리에 있었어요.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저에게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끈 같은 역할을 했어요. 그 끈을 잡고서 사회학을 공부하게 됐는데, 학생운동과 진보정당운동 그리고 사회운동 안에 동인련도 있었기 때문에 같이 활동을 했죠. 지금 행성인의 선배활동가들도 그때 거기에서 만났고요.




하이텔, 천리안, 유니텔과 함께 유명 PC통신 서비스로 자리잡았던 나우누리.

99년 초고속 인터넷 시대의 개막으로 PC통신 서비스는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고

2013년 1월 31일, 나우누리는 19년간의 서비스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마루 : 그러면 원래 정치적인 활동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행성인을 알게 되고 결합하게 된 건가요?


: 그렇죠. 그런데 그냥 단순히 커뮤니티가 아니라 운동 안에서 행성인을 만났어요. 당시의 동인련은 나름의 색깔이 있었어요. 잡지를 만드는 일보다 오히려 사회문제가 저를 더 끌어당긴 것 같아요. 

 

마루 : 그렇게 가입을 했지만 중간에 활동을 쉬었다가 다시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 살짝이 아니라 좀 오래 쉬었어요. 오래된 회원들이 많이 이야기하듯이 행성인은 제게 삶의 토대 같은 느낌이었어요. 예전에는  동성애자 운동이 지금처럼 사회운동과 적극적으로 결합되어 있지 않았고 제 관심이 노동문제나 반전운동과 같이 좀 더 폭넓은 정치문제에 있었어요. 하지만 성소수자 운동이 그런 운동과 결합되어 있다는 생각은 버린 적이 없었어요. 마음이 멀어졌다기보다 다른 활동 속에서 성소수자 운동과 결합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마루 : 다른 영향은 없었나요?


: 저는 사회적으로30대 비혼여성이잖아요. 긴 시간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중요한 시간 동안 화끈하게 운동했고 그건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부에요. 가치관이나 철학도 활동을 통해 자리를 잡았고요. 그런데 생활인으로서의 나는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도 삶에 영향을 많이 미치더라고요. 동성애자로서의 나의 진로, 생계문제 이런 것들요. 그 가운데 “활동은 어떻게 하며 살 수 있을까?”고민하는 과정에서 이전과는 달리 성소수자 운동이라는 나의 쟁점을 가지고 다른 운동과 결합하고 연계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많은 성소수자들이 그렇듯 실제 느끼는 소외감은 일상이더라구요. 결혼, 이성애 중심의 문화와 삶 속에서 자긍심을 지키는 것도 너무나 중요한 일이고요.


마루 : 그러면 다시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굴곡은 있지만, 활동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평생 어떤 방식으로든 하고 싶은 것이니까요. 좀더 재미있게 활동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행성인 모임에 나오게 된 거예요. 제가 2000년 제1회 퀴어문화축제 기획단과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에서도 활동을 했었는데 그간 성소수자 운동은 정말 많은 성장을 했어요.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성장해야 하고 갈 길도 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도 그 역사 속에 함께 하는 것이 성소수자로서 내 삶의 의미 있는 일일테고요. 



"무지개 깃발이 대중운동에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

함께 연대하고 있다고 알리는 순간 가장 빛나거든요."



마루 : 민주노총 총파업 궐기대회 등 투쟁 현장에서 많이 뵙게 되는 것 같아요. 원래 이런 활동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무지개 깃발 아래 서 있는 자신을 회사 사람들이 볼까 걱정해본 적은 없나요?


: 97,8년도에 노동자 운동에 무지개 깃발이 처음 휘날린 이래, 지금 우리는 더 많은 성소수자들과 함께 여러 연대의 현장에 있게 되었어요. 무지개 깃발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무지개 깃발이 대중운동에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 함께 연대하고 있다고 알리는 순간 가장 빛나거든요. 그게 행성인의 지향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직 깃발 아래 오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깃발 아래에 있는 성소수자도 있겠죠. 최근에는 그런 분들이 무지개 깃발을 보고 드문드문 와서 아는 척도 하시잖아요.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집회에 참여하고 싶지만 못하는 경우도 있고, 직장근처에서 집회나 1인시위를 하면 지나가면서 아는 척을 하고 싶지만 그냥 스윽 지나가야 할 때도 있죠. 하지만 마음은 다 전해지잖아요? ㅋ 저를 포함해서 많은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3차 범국민대회에 함께한 행성인의 무지개 깃발.

행성인은 연대의 정신을 소중히 해왔으며, 이를 회칙 3조 3항에 명시하고 있다.



마루 : 처음 무지개 깃발 아래 성소수자로서 선 느낌은 어땠나요?

 

: 사람들이 퀴어문화축제나 퍼레이드를 통해서 거리로 나가는 행위에 대해 많이 회고하잖아요. 맨날 지나다니는 시청역, 서울역 이런 곳에서 깃발을 세우고 다른 성소수자들과 함께 나의 이야기와 내가 연대하는 이야기가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하는 것. 세상사람들에게 드러내놓고 내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은 엄청난 희열이 있죠. 제 1회 퀴어문화축제를 생각해보면 깜깜한 연세대 교정을 조악하게 만든 팻말을 들고서 한 바퀴 돌았던 것이 시작이었는데 지금은 만 명 가량의 사람들이 함께 행진하고, 인도에서 응원해주는 사람들 속에서 행진을 하잖아요. 정말 큰 변화죠. 2013년 홍대에서 할 때는 진짜 울컥했어요.


마루 : 행성인에 여러 팀들이 있지만 활동회원모임에서 활동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 활동회원모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성소수자 운동은 아직까지 첨예한 차이를 드러내기보다는 운동의 규모가 커지는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운동이나 인권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행성인에 문을 두드리는데요. 나이대도, 정체성도, 살아온 길도, 취미도 다르지만 각자가 가지는 고민과 함께 다양한 관점과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거든요. 단체가 활발 하려면 움직이는 사람이 많아야 하기 때문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보고 그게 활동회원모임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함께 해달라는 요청에 응했고 우리 쟁점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루 :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이었나요?


: 서울시청 무지개농성을 통해서 장애, 여성, 노동 등 여러 단체들이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지지를 보내줬잖아요. 행성인이 올해 퀴어문화축제에서 ‘저항과 연대의 행진단’을 꾸리기도 했고요. 영화 ‘프라이드’를 보면 노동자들이 공격받고 소외되고 억압받는 현장에 성소수자가 참여하고 거꾸로 성소수자들이 차별 받을 때 그들이 행진에 함께하는 장면이 있어요. 성소수자, 장애, 노동, 이주민, 빈곤층 등 이들에게 억압을 일삼는 세력의 몸통은 하나라고 생각해요. 더 나은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계속 이끌어내는 것이 활동회원모임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요.


마루 : 내후년에 행성인이 20주년을 맞이합니다. 20주년과 관련해서 아카이빙 사업을 함께 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떤 계획이 있나요?


: 20주년 얘기하면서 아카이빙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 단체 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운동에서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데 우리도 행성인 아카이브가 필요해요. 단순히 이런 자료가 있다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펼쳐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카이빙이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이벤트가 됐으면 좋겠어요. 아카이빙의 목적에는 조직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과거 행성인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 활동에 참여했던 선배들의 기억을 모으는 과정을 통해 신구 회원들간의 교류도 가능할 테고요. 아카이빙의 결과를 외부에 보여주는 방법으로 전시를 해볼 수도 있고, 책을 낼 수도 있고, 짧은 약사를 만들어 볼 수도 있겠죠.  다양한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조직이 활성화 되고 단체에 대한 애정도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루 : 행성인 활동 외에는 평소에 무엇을 하고 지내나요? 하고 있는 다른 활동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 퇴근하고 나면 시간이 많지 않아요. ㅋ 쉬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영화도 보고 친구들 만나고..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입니다. 행성인 내 많은 직장인 여러분들이 비슷할 거라 생각해요. 퇴근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마루 : 마지막으로 행성인 회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비성소수자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긍심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육아와 결혼, 이성애 만이 주제인 사회에서 우리의 문화와 삶을 유지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 사회 자체가 스트레스잖아요. 모두들 맘과 몸이 건강해야죠!  대신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 많은 만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에너지도 많은 것 같아요. 또, 행성인은 회원조직이잖아요? 단체가 몸이라면 회원들이 팔과 다리, 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어디선가 동맥경화가 일어나겠죠. 회원 여러분들이 나오셔서 함께 활동을 하는 과정이 단체를 움직이고 활발하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을 우리가 만들어간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