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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아웃사이더의 인사이더 되기 - 행성인 11월 신입회원모임 디딤돌 후기

by 행성인 2016. 11. 28.

성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길을 나서며


좀 즉흥적인 선택이었다. 물론 올해 초부터 행성인에 관심이 있었지만 내 신분은 군인이었고, 행성인의 여러 활동에 참여하기에는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가능할 때 하자고, 내가 ‘자유의 몸’이 되면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그렇게 미루고 또 미루고 있었다. 중심에서 한 발짝 비껴선 아웃사이더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에는 너무 외로웠다. 너무 고립되어 있었다. 군대라는 곳은 남성사회의 여성혐오를 확대 재생산 하는 공간 같았고, 가는 곳마다 짙은 안개처럼 펼쳐져 있는 여성혐오-동성애혐오의 장막 속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 편을 어디서 찾으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마침 행성인 신입회원모임이 휴가 기간과 겹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미 잡아 놓은 친구와의 약속을 미뤄야 했다. 그리고 시간도 없고 자유의 몸도 아닌 내가 지금 가서 뭘 어쩔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외로웠고 자유롭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기어코 참여 신청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길을 잃으며


무작정 참가 신청을 하긴 했지만 나는 끝까지 망설이고 있었다. 고작 신입회원 모임에 참석하는 게 내 귀중한 휴가 시간을 쪼개서 투자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일까? 이미 나는 다른 인권단체 모임에 참석해 보지 않았던가? 이번에는 내가 달라질 수 있을까? 온갖 고민들이 내 머릿속을 휘감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지하철은 멈추지 않았고 나는 대흥역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나는 행성인 사무실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결국 초행길에 한 번 길을 잘못 들고야 말았다.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닫고 돌아가며 또다시 고민했다. 이걸 핑계로 그냥 집에 갈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르는 척 할까?


하지만 그 망설임의 결론이 내려지는 것보다 내 눈이 행성인 건물을 발견하는 것이 더 빨랐다. 이젠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었다.


길을 찾으며


결국 나는 온갖 망설임과 고민과 어색함을 가득 안고 모임에 참여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을 두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내가 나 자신일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물론 이 시간이 내 현재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꿔 놓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앞으로의 시간은 나에게 달린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늘 중심에서 한 발짝 비껴서 있었던 아웃사이더가 중심에 서서 인사이더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한 줄기 빛을 찾은 것 같다. 빛이 있다면 잠시 길을 헤매더라도 언젠가는 그 빛을 따라 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나는 언젠가 내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분과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