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끼순이 사절”, “부치 사절”, “일틱 선호”. 데이팅 어플을 둘러보다 보면 한 번씩은 봤음직한 문구들이다. 어플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주변 지인들이나 온라인 상에서 들려오는 경험담을 통해 접했기에 그다지 낯설지 않은 문구들일 것이다.
걸커가 기피당하는 이유는 자못 다양하다.
물론 단순 취향 차이로 끼순이, 부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종종 보이는 “끼순이/부치 나오면 죽여버린다” 등의 호불호 이상의 혐오성 짙은 과격한 문구들은, “끼순이/부치 사절”을 단순 개인의 취향만으로 볼 수 없게 만든다. 그토록 혐오 당하며 사는 사회인데, 왜 또 누군가를 혐오하게 되는 걸까?
일단 ‘끼순이’, ‘부치’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게이는 남성을 좋아하는 ‘여성스러운’ 남성, 레즈비언은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스러운’ 여성으로 여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여성스러운’ 남성과 ‘남성스러운’ 여성은 각각 끼순이와 부치의 모습과 동일시 여겨진다. 즉, 성소수자의 다양한 면모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끼순이=게이, 부치=레즈비언으로 패싱되는 것이다. 이는 곧 걸커(걸어다니는 커밍아웃)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걸커가 기피 당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이는 친구사이 소식지에 실린 글 「 [칼럼] 주관적 게이용어사전 #8 걸커」 (2014.08.27) 에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 중 일부를 발췌했다. (게이 걸커만을 언급했지만, 부치 걸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리라.)
1. 부담스러워서. 그의 과장된 행동 때문에 내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인지, 영화 속 드렉퀸과 함께 있는 것인지 헷갈려.
2. 같이 있는 것만으로 게이로 보일 것 같아서. 이런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걸 들킨다면 내 성정체성을 추궁당할 게 분명해.
3. 남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워서. 혹시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이렇게 여성스러운 사람이 남자일 리가 없어.
4. 게이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존재라서. 당신 같은 사람들이 실제로 있으니까 우리가 욕을 먹는 거야.
5. 물들까봐. 옛말에 끼는 전염성이 강하다던데. 나의 남성성에 위협을 느껴버렷!!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항목은 1번 (부담스러워서. 그의 과장된 행동 때문에 내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인지, 영화 속 드랙퀸과 함께 있는 것인지 헷갈려.) 이다.
걸커로 이야기되는 끼순이/부치들의 언어, 몸짓, 외관들을 보면 ‘보통’ 여성이나 남성들의 그것들과 비교해봤을 때 확실히 과장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끼순이들의 살랑거리는 손짓과 모델 워킹,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 진한 화장과 화려한 패션 등이 그렇고, 부치들의 팔자걸음, 매우 짧은 숏컷, 몸에 밴 젠틀한 매너(?) 등이 그렇다.
지금까지 끼순이/부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끼순이/부치 사절’로 돌아가보자. 사람들은 그들을 왜 ‘사절’ 할까?
여기서 가만히 한 번 생각해보자. 끼순이/부치들의 그것들이 과연 과장스러운 것일까? 만약 여성들이 끼순이들의, 남성들이 부치들의 언어, 몸짓들을 한다면 과장스러워 보일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회에서 그들은 사회가 원하는 ‘여성성/남성성’을 ‘온전히, 잘’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로 보일 것이다. 즉, 끼순이/부치들의 언어와 몸짓들이 과장스러워 보이고, 사람들이 그들을 기피하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반대 성의 것들을 재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 성을 재전유하는 게 부자연스러운 이유는, 사회가 노동력의 (재)생산을 유지, 통제, 관리하기 위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섹슈얼리티를 억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지되는 체제에서 여성과 남성이 각자 맡은 바를 제대로 하지 않을 때 혼란이 일어난다고 보는데, 이는 성별 이분법을 낳았고 표준화된 ‘여성성/남성성’이 생겨나게 된 이유이다. (섹슈얼리티 억압 메커니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얼마 전 행성인에서 있었던 나영(NGA 활동가)님의 <성소수자 억압의 원인은 무엇일까> 교육을 스케치한 글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사회가 주입하는 ‘여성성/남성성’을 그대로 습득하고, 개인의 실천에 있어서 그것들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그래야 사회에서 ‘온전한 여성/남성’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동일성 보존의 본능’에 따라 (차이의 철학 - 사람들은 왜 막연히 동성애자들을 싫어할까? 참조) 더 나아가 그것들을 남에게까지 강요하기에 이른다. ‘끼순이/부치 사절’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항간에 MTF 트랜스젠더들이 재현하는 여성성에 대해 말들이 많다. 그들이 재현하는 여성성이 페미니즘에서 그토록 없애고자 노력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즉 젠더 롤을 고착화시킨다고 비판한다.
굉장히 안타까운 안목이 아닐 수 없다. 시스젠더들도 ‘온전한 여성/남성’으로 ‘살아남기’ 위해 답습하는 것이 그 ‘여성성/남성성’이다. 그러한 사회에서 MTF 트랜스젠더에게 ‘여성’으로 패싱 되기 위해 ‘여성성’을 재현하는 것은, 단순 은유로서의 ‘살아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생존’하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물론 젠더 롤은 사라져야 한다. 사라진다면, ‘끼순이/부치 사절’도 사라질 것이고, MTF 트랜스젠더가 재현하는 여성성도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사회가 만들어 낸 문제를 그대로 답습한다고 해서 그 책임까지 소수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을뿐더러, 어떤 모습으로 살던 타인의 삶을 강제할 수는 없다. 그것은 또 다른 ‘젠더 롤’이 될 것이다.
필요한 것은 같이 사회를 바꾸어나가려는 연대의 움직임이지, 다른 소수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끼순이, 부치, MTF 트랜스젠더는 그들의 모습 그 자체로 사회의 ‘젠더 롤’을 파괴하는 하나의 흐름이 될 수 있다. 끼순이는 끼순이대로, 부치는 부치대로, MTF 트랜스젠더는 MTF 트랜스젠더대로 자신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면서 세상의 억압에 맞서 싸우면 될 뿐이다.
'무지개문화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You have the power." (0) | 2018.03.04 |
---|---|
내가 '나'일 수 있는 공간 - 퀴어 프렌들리 업장 매그넘&퀸뽀차 대표, 퀸뽀님 인터뷰 (1) | 2018.03.01 |
엠버의 체스트트러블(Chest Trouble) (0) | 2017.11.10 |
무지개문화읽기- 퀴어영화 그동안 어떻게 바뀌었나. (0) | 2017.09.06 |
[행성인 회원의 경향신문 퀴어 백일장 당선작] 악몽 (0) | 2017.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