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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8월 회원 모임 - 평등에 대한 감수성 향상 프로그램 후기

by 행성인 2018. 10. 25.

소유(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지난 8월 24일, 무지개텃밭에서는 평등에 대한 감수성 향상 교육이 있었다. 그간 단체에서 지적받은 여러 문제점들을 돌아보기 위해 진행하는 회원 프로그램의 일환이라고 한다. 지난 달에도 같은 이름의 교육이 진행되었는데, 당시 나처럼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던 사람 때문에 한번 더 자리가 만들어진 것 같다.

 

 

1. 우리는 공동체일까?


더지님이 진행한 이번 강의는, 행성인은 공동체인가 라는 묵직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공동체란 무엇일까? 사전에서 찾아보기로는, '운명이나 생활, 목적 등을 같이 하는 조직체'라고 한다. 모임에 온 사람들은 모두 회원이라서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서로 운명을 같이한다고 말하긴 좀 어색했다. 큰 의미에서 특정한 목적을 공유하는 것을 이유로 공동체라고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왠지 '우리'같은 단어가 자연스러워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행성인의 수백 명의 회원들 중에는 내가 대화 한 번 나눠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목적이 같다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하나의 개념을 이야기해도 -심지어 단체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성소수자라는 단어에서조차- 다양한 차이가 드러나는 법인데 목표가 같다고 또 그렇게 같은 집단의 구성원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화면엔 단체 정관이 펼쳐졌다. 단체의 목적과 함께 활동하기 위한 규칙들을 정의한 이 문서는, 그 위상에 비해 일부러 들여다 본 적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많은 토론과 사건들을 거쳤을 발췌된 문장들은 모두 익숙하고 동의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내부 문화를 돌아보게 된 상황 때문에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정관에는 회원의 정의도 적혀있었는데, 주로 목적과 원칙에 대한 동의와 이에 따르는 의무와 권리에 대한 명시가 있었지만 그밖에 회원들에 대한 설명이나 특정한 정체성 이름을 통한 설명-혹은 제약-이 있지는 않았다.

 

 

행성인 정관 중 일부

 

단체의 주장이나 활동 때문에 소속된 사람들이 비슷비슷할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해왔지만, 사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무척 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각자가 편안히 여기는 정체성도 다를테지만, 단체 활동의 다양한 참여 방식을 생각하면 활동에 자주 참여하는 회원과 참여하지 않는 회원이 다르고, 어떤 팀에 소속되어 있거나 특정 관심분야 활동을 하는지에 따라서 또 다를테다. 그렇게 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이들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만들어 질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활동을 매개로 친밀해지지만, 또 어떤 사람은 친밀함을 매개로 활동한다. 행성인은 회원의 활동이 중심이 되는 단체이지만, 어떤 사람은 커뮤니티를 찾아서 오기도 한다. 단체가 공동체인지는 답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행성인에 공동체가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렇다면 그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2. 농담


 

 

더지님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 중 하나로 언어적, 심리적, 문화적 공감대를 들었다. 그러면서 '당신의 농담은 모두를 웃게 할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을 던졌다. 농담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리 낯설지 않다. 내가 충분한 권력을 가지지 못한 공간에서의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거나 성소수자 혐오적인 농담들, 그리고 소수자로 놓이는 자신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도식에 가깝게 표현하자면 발화자는 권력을 재확인하고, 나는 검열과 갈등에 놓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늘 그렇게만 위치 지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것을 자각하기까지는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왔던 것 같다.

 

더지님의 사례들을 들으며 내 경험들을 되짚어보았다. 예컨대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맞지 않다고 여기거나 잘 이해하지 못했을 때, 보다 친밀해지거나 괜히 '갑분싸'가 되거나 소외되기 싫어서 침묵하고 말았던 순간들. 사소(?)하게는 내가 속한 정체성에 대한 고정관념에서부터 학력 때문에 대화에서 배제되었던 순간들이라던가. 돌이켜보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 때는 주로 하나의 코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편이었는데, 만일 그 모임들에서 나의 활동 경력이나 친밀함의 정도가 달랐으면 다르게 대처했을 것 같기도 하다. 또 나중에는, 반대로 내가 이야기하거나 침묵했던 일에 다른 사람이 같은 입장이 된 경우도 있었다.

 

더지님은 평등에 대한 감수성은 스스로 자백하지 않는 권력과 불평등을 드러내는 작업 속에서 가능하다고 했다. 내 생각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돌아보더라도 일상의 불평등을 다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누군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일은 너무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는 활동하는 동안 행성인에서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편히 하면서, 왜 내가 살아가는 다른 곳들은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그것은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공동체의 문화로부터 다른 미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회지만 우리 안에서는 다른 모습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를 바꾸자고 모인 우리가 우리 안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변화를 볼 수 없을 때 어떻게 또 그것을 사회에 요구하고 만들어갈 것인가 싶기도 하다.

 

 

3. 토론


강의는 토론으로 이어졌다. 토론시간에 앞서 참가자들은 몇가지 약속을 했는데,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솔직해지기, 나중에 흉보지 않기, 한 명이 너무 오래 말하지 않기와 같은 내용들이었다. 평소 말할 타이밍을 종종 놓치고, 자기 검열도 심한 편이라서 그런지 마음에 들었다. 이어서 채식과 뒤풀이를 주제로 토론을 했는데, 각자의 자유로운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특정한 입장에서 얘기하도록 한 규칙이 재미있었다. 다른 입장이 되어보고, 비록 앞의 약속이 있기는 했지만, 그 규칙 때문에 상대적으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참고차 제시되었던 권력의 적용 여부를 분석해보는 도표는 추후 어떤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그것의 공동체적 의미를 판별하거나 끌어내는 데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어서 평등 점검표를 통해 단체 상황을 점검하고, 그중 상대적으로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있는 사항들을 조별로 분석해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그렇게 꼽힌 사항들이 내가 분명한 의견을 가진 것들이 아니어서 좀 당황하다가, '나이가 많은 사람이 모임에서 소외된다'를 선택했다. 하지만 내가 겪은 게 아니라 다소 막연한 기억들과 인상에 의존하고 있었기에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깊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쉽다. 밤이 늦어 마지막으로 각 조가 나눈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었는데, 여러 이야기 중에 청소년으로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로 기억에 남는다.

 

프로그램에서 사용된 평등 점검표

 

 

 

해산


단체와 내가 속한 노동권팀의 상황 때문에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참여했던 프로그램은, 정신없이 흘러가 늦은 시간에 쫓기다시피 하여 끝이 났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토론 주제를 비롯해 해결되지 않은 여러 문제들이 나왔지만 결국에는 다 언급만 하고 끝이 난 것 같아, 나올 때는 후련함보다는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으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혹 그날 밤을 새워 끝장 토론을 해서 각 항목에 대한 실천적 결정들을 뽑아내었더라도 그것으로 해결되었다고 후련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평등한 공동체를 위한 약속' 처럼 또 어떤 것을 만들어내더라도 결국 중요한 것은 매 순간의 관계와 문화를 어떻게 바꾸어 나가는가이고, 그것은 여전히 나를 비롯한 구성원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여담이지만, 단체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결정한 이후 모임에서는 전처럼 시작하기 전에 '평등한 공동체를 위한 약속'을 소리내어 읽지 않고 있다. 실천의 방식을 되짚는 과정일거라 생각하지만, 설명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글을 쓰다가 보니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이번 교육에서 비중있게 다뤄졌던 내용은 아니다. 언급될 때도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쉽게 지나쳤던 내용 같다. 그런데 '행성인은 공동체인가'라는 질문을 되새기면서, 우리는 공동체여야 할까? 라는 질문을 가지게 되었다. 단체 혹은 활동이 각자에게 지닌 의미나 성소수자에게 커뮤니티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종종 들었지만, 활동을 위한 조직이 아닌 공동체로서 의미를 생각해보는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공동체에 대해 우리는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고, 이 공동체는 어떤 의미를 가지며 또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언젠가 나누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