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내가 다니던 전 회사에 입사를 하던 날, 나는 자기소개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IT 스타트업 기업이었던 그 회사는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름 신생 기업이었다. 하지만 부푼 꿈과는 달리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서비스 관리 업무를 인수인계 받은 이후 나는 성인물이나 혹은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건드리는 콘텐츠를 걸러내기 바빴다. 피드에는 차별과 혐오가 담긴 콘텐츠가 종종 등장했지만 이를 내려야 할지를 놓고 사람들의 판단이 갈라지곤 했다. 나는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를 향한 혐오, 폭력, 차별이 담긴 콘텐츠를 금지한다는 정책을 만들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수준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늘 반복되어 왔다. 인터넷이 활성화 된 이후 새로운 공간이 탄생하면서 많은 집단이 새로운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공론장의 형성을 꿈꿨다. 일례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선 사이버 공간이 여성들에게 어떤 자유와 도전을 제공할지 진지하게 탐구하기도 했다. 물론 웹에서 SNS로 새로운 공간이 발전해가는 동안 유의미한 흐름도 있었다. 가령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로 대표되는 일련의 선언과 운동들이 가져온 결과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성소수자들 역시도 익명의 공간이 주는 힘을 빌어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2019년 우리는 여전히 일베를 비롯한 극우 남초 커뮤니티가 활개 치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편향적인 위키사전이 공인된 정보로 오인되는 현실도 존재한다. 성소수자 혐오세력 역시도 블로그와 웹페이지를 기반으로 엄청난 편견과 허위정보를 유포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이 열려있다는 것은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이는 그 공간이 재빨리 현실을 흡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유튜브는 혐오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그러는 와중에 지난 6월 유튜브 최고경영자인 수전 워치스키가 동성애 혐오 콘텐츠를 삭제하지 않은 일에 사과를 했다. 해당 영상이 가이드라인 위반은 아니지만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상처가 되었음은 이해한다는 요지였다. 그러나 예를 들어 문제의 대상으로 지목된 유튜버들 중 한 명인 크라우더는 영상을 통해 동성애자 개인을 조롱거리로 소비했고 사생활을 침해했다. 유튜브는 커뮤니티 생태계를 위해 지나친 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글쎄 저런 사태가 멀쩡한 생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일까?

 

이는 영상뿐만이 아니다. 나는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의 담당자로 일을 하고 있고 이는 내가 성소수자에게 악의적이고 혐오적인 댓글을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발견하고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신고다. 사유는 ‘폭력성’과 ‘증오심’ 표현. 입으로 옮기기도 꺼려지는 이 코멘트들은 대부분 성소수자 집단이나 개인을 향한 폭력이며 바탕에는 증오심과 혐오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이 신고가 제대로 처리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하긴 이 방면에서는 페이스북도 톡톡히 유명세를 치루고 있긴 하지만.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다

 

사실 댓글만이 문제는 아니다. 성소수자 혐오집단도 이제는 유튜브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쪽으로 가장 유명한 채널이 바로 ‘레인보우 리턴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올해 초에 문을 연 레인보우 리턴즈는 3만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영상의 평균 조회 수도 꽤 높은 편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미 잘 조직된 교회들이 예배시간에 영상을 한 번 틀어주거나 구독 권유를 하면 저 정도의 숫자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 유튜버들이 이따금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영상을 올리는 차원을 넘어서서 아예 전문 채널까지 생겼다는 것은 다소 암울한 일이다. 사실 큐플래닛이 편견과 차별 대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공익방송’을 목표로 한 것도, 이런 상황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유튜브에서 혐오가 퍼진다면 그 안에서 맞서는 일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한가 하는 의문은 든다. ‘레인보우 리턴즈’와 같은 채널이 유튜브에 남겨져 있는 것이 과연 괜찮을까?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영상 플랫폼에 성소수자 혐오를 정체성으로 한 채널이 존재한다는 것은 과연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까? 저렇게 해도 괜찮다?

 

사이버 공간이 막 도래하던 때, 그리고 다양하고 새로운 플랫폼이 막 탄생하던 때 사람들이 기대와 흥분을 보이던 모습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런 들뜸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실망과 좌절로 이어지길 반복했다. 일례로 ‘아랍의 봄’의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받던 페이스북이 이제 ‘블루일베’라는 조롱을 받고 있지 않나. 그리고 이제 유튜브가 남았다. 사기업이라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적극적인 커뮤니티 생태조성에서 손을 놓고 수수방관을 반복하던 서비스의 사용자들은 피로감을 호소한다. 그런 회사들의 성장세가 주춤하고 위기가 다가온다는 말도 들려온다. 나는 유튜브가 다른 길을 걷기를 바란다. 커뮤니티 생태가 혐오에 찌들고 망가지는 것은 어쨌거나 사용자에게도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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