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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동성애 혐오

동대문구와 시설관리공단은 즉각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 대관 취소를 철회하라!

by 행성인 2017. 9. 29.

루카(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녹록치 않은 일입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거절당하고 내쫓길 때면, 그러한 어려움은 몇 갑절이 되어 당사자에게 돌아옵니다. 좌절과 울분, 절망, 그 밖의 언어를 모두 나열해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고통의 무게는 성소수자의 존엄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어제 오전 동료 활동가를 통해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 체육관 대관 취소 사실을 전해들었을 때도 저는 육중한 무언가에 짓눌린 듯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식을 접한 다른 성소수자들도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공도 마음대로 못 차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한탄을 쏟아내며, 이러한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동대문구와 시설관리공단이 가장 먼저 대관 취소 사유로 제시한 것은 '미풍양속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미풍양속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전은 미풍양속(美風良俗)에 대해 '아름답고 좋은 풍속'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풍양속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체육대회'란 과연 무엇일까요. 이와 같은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 저는 상당한 노력과 정신을 기울여야만 했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가 풋살 경기를 하면 미풍양속을 저해하는가?", "아니면 동성애자와 양성애자가 배드민턴 경기를 하면 미풍양속을 무너뜨리는가?", "설마 퀴어와 비퀴어가 달리기 계주 경기를 하고 나면 사회 전반에 악풍음속(惡風陰俗)이 만연해지는가?"

 

답은 명확했습니다. 그러한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미풍양속을 근거로 체육대회 진행 목적의 대관을 불허하는 것 또한 정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는 말 그대로 체육대회일 뿐입니다. 공을 차고 달리기를 하며, 함께 모여 땀을 흘림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자리입니다. 이와 같은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바로 체육관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무척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식에 근거하여 퀴어여성네트워크는 체육대회 개최를 위한 '번지수'를 제대로 찾았습니다. 자유한국당 당대표실이나 교회 예배당 한가운데서 체육대회를 개최하겠다고 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를 향한 저열한 혐오 선동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관을 신청한 주체가 단지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한다는 이유만으로 체육관 대관을 취소하라는 자들에게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란 단 한 줌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무지한 획책에 굴복하여 시설관리공단은 결국 체육대회의 '성격'을 문제삼아 대관 취소라는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일방적 낙인에 동조하는 것으로, 이미 사회에 만연한 소수자 혐오와 차별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풍양속'을 토대로 한 대관 취소 입장이 큰 논란이 되자 시설관리공단 측은 "누수 문제 해결을 위한 공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공사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담당자가 임의로 대관을 허가한 것"이라는 면피성 변명을 급하게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대관을 하기로 한 날로부터 대관이 취소된 날까지 주최 측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시설관리공단의 내부 의사결정 체계와 해명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설의 대관은 일선 담당자 혼자만이 결정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며, 중간 관리자급 이상의 소위 권한을 가진 구성원의 결재 혹은 승인을 득할 수밖에 없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대부분의 시설과 기관에서 통용되는 합리적인 상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설관리공단은 공단 차원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일선 담당자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운 채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 대관 취소에 대한 정당성을 취하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최 측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일절 부담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앞뒤 맥락 없는 변명은 결국 성소수자에 대한 노골적 차별만을 드러내보이게 하여,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비록 집단 간 견해 차이로 인한 대립과 갈등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사회적 소수자가 불합리한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소수자에 대한 불합리한 편견과 혐오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2013년 성소수자 인권단체 주관 행사와 관련하여 마포구청이 야외무대 시설 이용을 불허한 것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와 같은 입장을 밝히며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구민의 세금으로 출자된 시설관리공단과 이를 관리하고 감독해야 할 의무를 지니는 동대문구청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구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울러 동대문구를 비롯한 모든 지역사회 안에 성소수자 구성원이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와 산하기관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차별과 혐오에 맞서 성소수자 구성원이 맞서 일어나는 순간, 변화는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는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차별 철폐의 기로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여러분의 몫입니다. 다만 성소수자 구성원이 결코 평등으로의 행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똑똑히 새겨두어야 할 것입니다.

 

동대문구와 시설관리공단은 즉각 졸속과 차별로 얼룩진 행정 처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에 대한 대관 취소를 철회해야 합니다. 더불어 차별적 행정 처리로 인해 더 이상 성소수자 구성원이 권리를 침해받지 않도록, 관련 대책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합니다. '나중'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성소수자들은 결코 '나중'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나중'에라도 하게 될 차별시정을 '지금 당장'으로 당겨올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의 차별시정 요구를 무작정 '나중'으로 미루며 책임을 회피할 것인가. 판단은 동대문구와 시설관리공단의 몫이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엄중하고도 매서울 것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