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20년 11월, 함께 활동하는 동료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당시 Duke Press에서 출간한 QUEER KOREA(이하 『퀴어 코리아』, 번역이 되기 이전 원서다.)라는 서적에 네 이름과 군대 이야기가 들어갔다고. 출간 당시 9번 챕터로 들어간 티모시 깃즌(Timothy Gitzen)의 원고 ‘RIPPLES OF TRAUMA(트라우마의 잔물결)’에 너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본명과 이야기가 들어갔다는 것이다. 나는 허락한 적이 없는데?
번역서를 구입한 독자들은 당장 책을 뒤적거릴지 모르지만 그 챕터는 이제 없다. 한국어 서문에서 편집자 토드 헨리는 이렇게 적는다.
“『퀴어 코리아』의 한국어 번역을 하고 있는 중에, 나는 한 저자가 이 책의 다른 저자들과 달리 윤리적 기준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의 원고를 묶은 편집자로서 나는 모든 당사자와 긴밀히 협력하여 이러한 과실을 바로잡고, 그것이 초래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나의 노력은 듀크대학교 출판부가 해당 글을 이 책에서 빼고 재출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번역본은 불균등한 지식 생산의 지정학과 연구 위치성의 문제에 대한 민감성은 유지한 채, 급변하는 윤리적 기준의 최고 수준에 따라 한반도의 퀴어에 관한 수준 높은 학문을 모든 독자가 누릴 수 있게끔 하는 개정을 반영한다.”
그의 문장을 보면서 그냥 지나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올해 토정비결에 망신살이 있다는데 이건가 싶다.
비윤리적 성과
티모시 깃즌은 2013년 경부터 수 년 간 행성인을 비롯한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참여 관찰하며 함께 활동해온 동료로, 티모시보다는 ‘팀’으로 부르는 것이 좀 더 익숙하다. 초반에는 미국에서 한국 퀴어씬을 공부하는데 성소수자 인권과 안보정치를 함께 엮으며 연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회견과 집회, 토론회와 회의를 챙기며 참여할 만큼 성실함을 보였고 회원들과도 두루 가깝게 지냈다.
그러던 2017년경, 행성인 2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행성인 웹진팀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당시 활동 이야기를 하던 필자는 인터뷰어들에게 군대 이야기를 오프 더 레코드로 들려주었다. 이를 전해들은 팀은 내 인터뷰 녹취록을 받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나에게 직접 요청한 것도 아니고 제삼자에게 인터뷰 자료를 달라는 얘길 건너 들었다. 곧장 팀에게 실례라고 지적하면서 그래도 필요하다면 직접 인용하지 말고 참고만 해주십사 당부와 함께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미국에 건너가 박사논문을 쓰고 홍콩 모처의 대학교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돌아간 뒤에도 그는 종종 안부 인사를 전했고, 한국에 방문하면 한두 번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일은 한참이 지나고 터졌다.
처음 제보 받았을 때는 무겁지 않게 생각했다. 직접 인터뷰한것도 아니고 허락 절차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마음대로 실명을 실을 수 있느냐고 항의하며 이름을 지우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그는 곧장 알았다며 조치를 취하겠노라 답을 보냈다.
제보한 동료는 낮은 목소리로 정황을 다시 설명해줬다. 『퀴어 코리아』에 수록된 논문을 일단 읽어보고 판단하면 좋겠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다, 팀의 박사논문 The Queer Threat: National Security, Sexuality, and Activism In South Korea 에는 더 상세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주의가 담긴 언급과 함께 보여준 팀의 퀴어코리아 논문과 박사논문에는 민망할 만큼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군대이야기는 술자리에서 몇몇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들려준 것이 전부였다. 끼스럽다는 이유로 군대에서 괴롭힘 당하고 두차례 자살시도를 하고 정신병원에 몇 달간 입원한 끝에 조기 전역을 했고 전역 직후에도 몇몇 부대원의 조롱과 비아냥 담긴 메세지 받은 이야기를, 굳이 다른 이의 문장으로 거창하게 남기고 싶은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사안의 공론화를 위해 간략하게나마 굳이 이야기했다.) 아무하고나 나누고싶지 않았던 고릿적 이야기가 그의 논문에서는 투쟁의 흔적으로 거창하게 해석되어 펼쳐진다. 그리 즐겁지 않은 과거가 여지없이 어둠의 투사마냥 치켜올려졌지만, 당신의 해석은 자유니까. 하지만 당신은 구두와 서면 어떤 경로로도 허락을 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실었다. 인터뷰 동의서? 있었을 리가. 황당했고 나중에는 웃음이 나오더니 화가 치밀었다.
박사논문은 『퀴어 코리아』의 논문보다 더 심했다. 이건 연구인가 논픽션인가. 나뿐 아니라 국내에 알만한 활동가들의 실명과 활동명이 나왔고 몇몇의 사생활은 노골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들 역시 이런 이야기까지 허락한 적은 없었다. 논문 초안을 검토받기는 커녕 논문이 나온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실명과 구체적인 이름들이 들어가지 않으면 당신의 논문은 의미를 잃는가. 설령 그렇다 해도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필수 아닌가. 아니, 인류학은 연구윤리절차를 생략해도 되는 학문인가. 동료의 사생활을 동의도 허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담아내면서 취하고 싶은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학적 성과? 사명감? 공명심? 그렇다면 왜 당신이?
그에게만 문제제기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이야기는 내가 모르는 사이 먼 나라에서 여기저기 읽히고 있을지 모른다. 일단 『퀴어 코리아』 편집자 토드 헨리(하도빈)와 출판사인 듀크대학교 프레스, 책에 원고를 실은 저자들, 팀의 박사논문을 통과시킨 미네소타 대학교와 지도교수에게 연락을 취해보자. 그런데 이 책을 국내에 출간한다고? 마음이 급해졌다.
무책임한 대처
『퀴어 코리아』 논문에 실명이 들어갔던 이들 중 두 명의 피해자들과 연락이 닿았다. 시우와 정민석(정욜) 님은 인권운동을 하며 현장에서 보거나 알고 지낸 이들이다. 셋은 수시로 상황을 확인하고 소통하면서 문제제기 대상과 순서를 정했다. 연구자로 활동하는 시우 님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관련된 주체들에게 문제제기하며 많은 조력을 해줬고, 정민석 님도 문제제기 과정에 소소하지 않은 의견과 마음을 모아주었다.
‘우리’로 엮인 피해자들은 먼저 『퀴어 코리아』의 주 저자이자 편집자인 토드 헨리에게 문제를 확인시켜줬다. 당신이 편집한 책에 수록된 티모시 깃즌의 원고가 얼마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아는가를 물었다. 당신도 긴 시간 한국의 퀴어 씬을 연구해온 것으로 아는데, 여기에 국내 활동단체와 활동가들의 사생활이 들어 있는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적은 연구에 대해 의심도 하지 않았던 것 또한 책망했다.
토드 헨리는 피해자들 편에 선다는 취지로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조금 황당한 메시지가 있었으니.
“연구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점을 좀더 체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여러분들과 같이 ‘퀴어연구윤리회의’ 조직을 설립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건 알겠지만, 이걸 왜 당신이? 당신은 지금 활동 아이디어를 제안하지 말고 사안부터 빨리 해결해라. 당신은 여기서 제삼자가 아니다. 거리두지 마시고 편집자로서 문제해결부터 책임을 다해라.
곧 답장이 왔다. “원하시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인 듯 하오니 앞으로 그 외의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후는 전적으로 작가에게 책임이 있지 편집자인 자신에게는 없다는 내용이다. 자신은 미국의 저명한 학자들에게 공인된 논문을 받은 것이라 피해자의 실명이 들어간 것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곧이어 보낸 편지에 사과를 했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몇번을 봐도 모르겠지만, 내가 당신에게 사적인 메일로 사과 한마디 받자고 문제제기한 건 아니다. 적어도 ‘퀴어코리아’라는 야심찬 주제로 책을 내신다면 그 무게에 맞는 과정상의 책임도 져야하지 않나.
그것이 20년 12월에 보낸 메일이다. 문제제기 직후 Duke Press에서 판매를 중단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 이후로 답은 오지 않았고 나는 6개월 뒤 다시 메일을 보냈다. 팀에게 자신의 챕터가 빠진다는 소식을 듣고 전달한 항의메일이었다.
이 소식을 왜 편집자인 당신이 아니라 저자가 공지하는 것이죠? 책의 챕터를 넣고 빼는 문제인데, 편집자가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피해자들은 문제제기 시점 직전에 당신이 팀의 논문으로 한국의 대학에서 강의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에게 편집자로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나요? 책을 내거나 연구 윤리를 말하려거든 공적인 사과부터 남기라고 요구했고, 적어도 과정상의 과오와 책임이 서문에 다시 실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답한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으며, 피해자가 실망한다면 유감입니다. 마지막 메시지였다. 그동안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다녔는지 모르지만 문제제기자들 때문에 한국에 번역본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학자들 사이에 건너 건너 돌고 있다는 치졸한 에피소드의 출처는 여기서 굳이 묻지 않겠다.
책임 전가 한마당
피해자들은 팀 깃즌이 박사학위를 받은 미네소타 대학교와 지도교수, 『퀴어 코리아』 원서를 출판한 듀크대학교 출판사, 퀴어코리아의 저자들에게 문제의 내용을 전달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사과는 커녕 대수롭지 않다는 식이었다. 팀 깃즌의 박사논문은 징계와 재심사는 커녕 수정처리만 되어 기존의 실명과 단체명이 삭제되거나 익명처리 되었을 뿐이었다. 수정방식도 이상했다. 논문에 이름이 담긴 동료들은 별안간 팀에게 연락을 받아 박사논문 속 당신의 이름이 있는 수십 페이지의 부분들을 확인해달라고 요청받았다고 한다.
듀크대학교 출판사 역시 저자의 문제이니 책임 없음을 단언했다. 사후적으로 문제제기 받았을지라도 도서를 이미 절찬리에 판매중인 출판사에 책임이 없다고? 설마 법적으로 문제가 될까 싶어 발빼고 꼬리를 자르는 것일까. 그것이 미국의 문제해결방식인가. 물론 문제제기 직후 판매를 중단하고 해당 챕터를 뺀 태도를 돌아보면 이들이 부족할지언정 아주 무책임하게 대처한 것은 아니다. 한데 그것을 과오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정적인 잘못을 한 것이 아닐지라도 도의적으로라도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했다면 이렇게까지 칼춤을 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K-문제제기 방식인가.
『퀴어 코리아』의 다른 저자들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메일을 보냈지만 돌아온 답은 없었다. 저자 중 두어 명이 자신의 원고를 빼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이야기를 다른 연구자를 통해 전해 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대로 실렸다. 하지만 일부라도 문제에 공감해준 것만으로 감지덕지인가 싶었고. 하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런 상황에서 침묵과 중립기어가 미덕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피해자들은 힘이 빠졌다. 그렇게 당신들이 책임의 주체를 가르고 책임 없음을 표명했다면 책임의 주체는 과연 합당한 책임을 졌는가. 팀 깃즌은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고 어디에도 공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그저 사적인 경로인 페이스북 (개인 계정이다) 메시지와 개인 메일로 사과했을 뿐 그가 져야할 과오는 매끈하게 덮어졌다. 챕터가 빠진 것이 나름의 징계가 아니냐고? 현재 그는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Wake Forest University 인류학 교수가 되었고 여전히 한국 사회를 연구 중이다. 당신이 허락도 없이 게재한 나를 비롯한 동료들의 사생활이 당신 커리어에 주춧돌이 되었다. 지금도 그와 협업하는 국내 연구자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 사건을 알고서도 그와 협업을 지속한다면 나는 그에게 화를 낼 것 같다.
피해자들과 체념의 감정을 나누면서 문득 떠올랐다. 우리가 미국에 사는 중산층 백인 엘리트였다면 같은 내용으로 문제제기를 할 때 같은 태도와 방식으로 대응할까. 거꾸로 듀크 출판사가 아니라 국내 출판사에서 책을 냈다면 지금과 같은 대응이 이뤄졌을까. 애초부터 법적 대응을 준비해야 했을까. 대응할만한 자원과 시간이 우리에게는 있는가. 이건 개인의 문제지만, 개인의 문제로만 접근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울어진 판
퀴어코리아 번역서에는 역자의 글이 없다. 편집자의 글만 있을 뿐이다.
책을 번역한 성소수자 대학원생/신진연구자 네트워크 번역팀과는 사건 직후부터 소통했다. 처음 이들에게도 앞의 비판과 비슷한 아쉬움이 있었다. 동료활동가 이름이 그대로 나오는데 어떻게 의심도 하지 않을 수 있나. 한번쯤 확인이라도 해야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박사논문도 그렇거니와 이정도 저서라면 연구윤리심사가 어느 정도 적용되었으리라 판단하기가 쉽기에 사실 할 말이 없다. 나라도 그러기 쉬웠겠지. 그것은 원서의 출판사도, 편집자인 토드 헨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상참작은 정상참작일 뿐, 후속 해결을 위한 책임과 절차는 다른 문제다. 문제 제기 직후 국내 출판사가 출판을 연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번역팀은 곧장 팀 깃즌의 논문 초벌 번역본을 공유해줬다. 이들 덕분에 문제의 심각성을 좀 더 알 수 있었다. 이후에도 이들은 국내 출판사와 편집자, 피해자 사이에 소통을 이어가며 출판작업에 숙고를 거듭했다.
그래도 번역자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상황에 개입할 수 있지 않을까. 가령 번역 작업을 엎는다거나, 문제 해결 전까지는 출판을 거부한다거나. 번역자들은 퀴어코리아의 번역방식이 기존 번역의 공정과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주 편집자인 토드 헨리가 신진연구자네트워크에게 번역을 요청했고, 이를 받아 번역하는 입장에서는 발언권이 크게 없다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할 건 없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 아주 발언력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피해자들은 일차적으로 번역본 파기 또는 계약 파기를 원했지만, 이미 계약이 된 상황이고 되돌릴 수 없다면, 더불어 번역작업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이 문제를 역자의 글을 통해 남겨주기를 바란다고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결과물에 역자의 관점으로 책을 해설하는 문장은 찾을 수 없다. 번역자 해제가 없는 내막까지 문제 삼는 것은 이 글의 몫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대중학술서를 표방하는 번역서라면 번역과정에 어떤 부분을 신경썼는지 전달하고 국내 연구자로서 이 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입장을 담는 것이야말로 역자의 책임이 아니었을까. 번역 활동은 해외 도서를 선별하는 것부터 한국적 맥락에 어긋나지 않도록 단어와 문법을 맞추고 때로는 고안하는 작업을 포함한다는 점에 집필만큼이나 무거운 책임을 갖는다. 한편으로 그것이 퀴어 서적이라 한다면 자신들의 번역 작업을 한국 퀴어 사회의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라도 역자의 글은 필요하다. 하지만 책에는 토드 헨리 편집자의 글만 실렸고, 그는 모든 책임을 다했노라 갈음한다. 여기에는 어떤 과정과 협상이 누락되었을까. 번역자의 판단이라면 어떤 의도이고, 판단이 아니라면 어떤 개입이 있던 것일까. 역자의 글을 넣지 않은 것까지 토드 헨리가 스스로 언급한 문제해결 역량과 책임의 결실에 포함되는 것인가. 정말 그렇다면 퀴어를 주제로 엮은 책이지만 전혀 퀴어하지 않은 위계와 비윤리적 상황 아닌가. (출판계의 생리에 무지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만에하나 역자의 자리를 공백으로 남겨둔 것이 번역팀의 자체적인 선택은 아니었기를 바란다.) 추천사를 보고 있자니 기 도서가 ‘놀라운’ 성과라는 상찬이 눈에 들어왔다. 모르고 하는 말씀이기를, 등잔밑이 어둡다고 이만큼 놀라운 K-퀴어의 현실이 어디 있는가.
끝나지 않은 갈무리가 되기를
『퀴어 코리아』가 한국에 출판되었다. 팀 깃즌은 교수생활을 하며 주요한 학회에 도장을 찍으며 학적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고, 토드 헨리는 최근 바다극장에서 홍민키 작가와 ‘쑈쑈쑈’를 기획하여 행사 당일 렉처를 진행했다. (서울 을지로에 있는 바다극장은 오랫동안 게이 크루징이 있었던 유서깊은 극장이다. 그와 홍민키의 협업에 대해서도 한국 퀴어사와 역사의 현장, 생존하는 인물들에 접근하는데 있어 비평적(윤리적 판단보다는) 작업이 필요할텐데, 이는 다른 자리를 기약하도록 하자.)
미국에 적을 두고 연구하는 한국 퀴어 연구자들은 종종 소식을 전하며 제 처지를 농담처럼 얘기한다. 한국 퀴어 씬을 공부한다고 말하면 미국의 다른 학자와 출판관계자들로부터 『퀴어 코리아』라는 주요한 참고문헌 이야기를 적잖이 듣고 있고, 앞으로도 토드헨리와 팀깃즌을 알고 있냐는 질문(두유노...)을 계속 듣게 될거라고. 나는 당신들이 직면한 상황을 씁쓸하게 넘어가지 말고 맞설 언어와 태도를 만들어 응하기를 바라고 멀리서 지지한다. 그것이 이주한 퀴어 연구자로서 여러분의 자리를 자각하며 연구의 방향을 만들어 나가는 실천일 터. 이 글이 미약하게나마 당신들의 곤란함을 지지하는 멀리 있는 곁의 손짓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간의 시간을 정리하면서 많은 감정이 오갔다. 팀 깃즌을 문제제기 하는 지금도 나는 그를 희미하게나마 동료로 생각한다. 아니, 동료로 생각하고 싶다. 문제제기 하고 마지막까지 소통하는 중에도 나는 그에게 코로나 시절에 안녕을 바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가 수년 간 행성인에 보인 헌신과 애정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단체 회원들과 나눈 우정과 신뢰와 연대와 같은 아름다운 가치들을 이렇게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도용했다는 것이 괘씸하고 화가 나지만, 제일 지우기 어려운 감정은 그와 나눈 우정이 이렇게 쉽게 동원되었다는 슬픔이다. 앞으로 다른 헌신적인 해외 연구자가 문을 두드릴 때 그들과 함께 경험을 만드는 것에 문턱부터 생겨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경계도 생기지만, 연구자와 활동가의 역할을 선긋는 것은 답일 수 없다. 설령 약속을 만들더라도 온전히 예방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연구윤리위원회를 하나 더 만들자는 식으로 사건을 쉽사리 봉합하려 했던 편집자의 무책임한 응답 대신, 연구자와 활동가 간 지켜야 할 신뢰와 연구자의 윤리가 무엇인지, 출판사와 편집자, 번역자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숙고하는 노력이 아닐까.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면, 연대와 우정의 무게라고 하겠다.
겉보기에 1년 7개월 여의 문제제기는 매끈하게 봉합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봉합 지점에는 연구윤리와 편집자의 책임뿐 아니라 행성인을 위시한 많은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연대하고 활동하는 것, 그리고 이 활동의 경험을 어떻게 남기고 있는가를 성찰해야 하는 과제들이 억지로 구겨 넣어졌다. 그것이 이 글을 행성인 웹진에 박제하듯 남긴 계기다. 편집자든 출판사든 어떤 대응을 할지 모르겠지만, 침묵이든 치졸한 뒷담화든 고소든 반박이든 뭐든 하려면 해라 싶은 마음이다. 당신들은 사적 경로로 사과를 했고, 이미 물은 엎어졌으니 더이상의 사과는 요구하지 않는다. 책은 나왔고 언제 누구에게라도 의심없이 읽힐 것이다. 책 속에 의미 있는 연구들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매끈하게 출간하고 축하하고 아무렇지 않게 감상을 나누는 것은 조금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퀴어코리아를 읽는 독자들이 적어도 제목을 검색하면서 진행과정에 이런 과오가 있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그리고 여기에 피해자들의 문제제기가 있었음을 남겨야한다는 어떤 '사명감'에 목에 걸린 가시같은 글을 남겼다. 다시 말해 이 글은 문제제기의 목적보다는 덮어두고 모른척하고 망각하려 했던 문제제기와 협상과정의 자갈밭길을 기록한 보고서에 가깝다. 성소수자니 퀴어니 나누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연구하는 이들이라면 기본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를, 무엇보다 이러한 과오가 어쩌면 퀴어를 주제로 삼는 서적일지라도 그 성과 자체가 전혀 퀴어하지 않은 구조와 권력의 문제와도 연루될 수 있음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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