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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소식/해외 인권소식

[회원 에세이] 팔레스타인 노트

by 행성인 2024. 2. 20.

소유(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24년 2월 4일 일요일 오후 2시, 청계천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규탄 한국 시민사회 8차 긴급행동' 집회가 열렸습니다. 행성인은 작년 12월 24일 5차 집회를 시작으로 정기집회와 이를 주최하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에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날 집회에서는 행성인 회원으로서 제가 첫 번째 순서로 발언하였습니다. 다음은 그날 발언한 전문이며 더 관심이 있을 회원분들을 위해 관련있는 자료나 기사들을 주석으로 달아둡니다.

가자지구 사망자가 3만여명에 달하는 현재까지도 공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휴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다음 집회인 3월 2일에도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이 날은 범세계적인 연대 행진이 있다고도 합니다. 하단의 포스터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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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규탄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멈춰라!' 8차 집회 기록사진 중



안녕하세요, 시민 여러분. 저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소유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을 멈추는데 힘을 보태고자, 저는 이곳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시민으로서, 그리고 성소수자로서 왜 팔레스타인의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관심을 갖고 연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이스라엘에 대해 가졌던 인상은 무척 좋았던 것 같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언론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오랜기간 억압받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강한 국가를 이룬 나라, 그래서 대한민국과 한국인들이 본받아야 하는 나라라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한때 주권을 일제에 빼았겼고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었던 역사적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같은 억압받았던 민족으로서 동질감과 희망을 가지게 하는 국가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현실은 사뭇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은 불법적인 군사점령을 통해 그곳에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짓밟고 빼앗아온 점령자였습니다. 점령과 봉쇄의 현실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은 한때 이 땅에서 일어났던 차별과 수탈, 폭력 등 피지배의 기록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각주:1]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그리고 어느때보다 심각한 집단학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이 여러가지일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의 점령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병원과 학교와 민간 시설에 대한 폭격과 민간인 학살이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스라엘에 최소한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저는 성소수자입니다. 제가 활동하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는, 얼핏 보면 성소수자와 별로 상관있어 보이지 않는 여러 집회와 투쟁에 무지개 깃발을 들고 참여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고 함께함으로서 우리 자신을 긍정하고 우리가 경험하는 차별들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단지 성소수자로서만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게이 남성이지만 동시에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우리 모두는 삶의 터전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로부터 필요한 교육과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당연하게도 생명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나의 삶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어느 하나만 바꾸거나 혼자 바꿀 수 없기에 우리는 또한 연대하는 것입니다.

점령이란, 바로 그 모든 권리를 빼앗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곳에 오기 전 저는 트위터의 이스라엘 계정들이 올린 사진들을 보았습니다.[각주:2] 폐허가 된 가자지구와 탱크 앞에서, 무지개 깃발을 펼쳐든 군인의 사진들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성소수자가 마음놓고 자신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저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가 걸려 있는 공간을 편안하게 느낍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사진 속 무지개가 결코 자랑스럽지 않습니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앞세워 타인의 삶과 생명을 빼앗는 일을 정당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오래도록 자신들의 이미지를 희석하는 일에 무지개를 동원한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핑크워싱이라 부릅니다.[각주:3] 성소수자로서 팔레스타인에 연대한다고 하면, 어떤 이들은 이야기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이슬람에서, 하마스에게서 성소수자가 어떻게 될지 아느냐고 말입니다. 그것에 반박하는 대신, 저는 여기 팔레스타인 퀴어들이 전 세계 퀴어들에게 연명을 요청한 연대 성명[각주:4]의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를 악마화하고 비인간화하기 위해, 특히 제국주의적이고 대량 학살적인 행위를 위해 우리의 퀴어성과 신체, 그리고 퀴어로서 직면하는 폭력을 도구화하는 것을 거부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섹슈얼리티와 성적 다양성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태도가 식민지 사회에 인간성을 부여하는 기준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우리가 생명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은 우리가 수많은 결점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지, 식민지적 자유주의 인간성의 양식에 근접했기 때문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그 사진을 보았을 때, 저는 욕을 하곤 얼른 제 화면에서 치워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사진 속 폐허는 누군가에겐 그렇게 치워버릴 수 없는 잃어버린 집이자 일터이자 곧 현실일 것입니다.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인간이 되기도 하고 비인간이 되기도 하는 성소수자로서, 저는 인종과 종교, 국적과 성별과 그 어떤 이유로 차별과 배제는 물론 학살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그 어떤 성소수자도 평화 없이는 온전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저는 살면서 한국에서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웃 국가도 아닌 그렇게 먼 곳의 비극에 대해 말하는 것이 그저 자신을 뽐내거나, 허황되게 들리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중장비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가옥을 파괴하는데 사용되고[각주:5], 한국에서 수출된 무기가 민간인을 학살하는데 사용된다면,[각주:6] 그리고 한국인들이 점령자들을 위해 파병을 하려 한다면[각주:7], 한국에서만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해방을 바라는 팔레스타인인들과, 팔레스타인 퀴어들과 함께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즉각 폭격과 학살을 중단하고 휴전 협상에 임할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성소수자의 인권과 상징을 자신들의 만행을 지우는 데 사용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 점령과 학살에 동참하는 일에 반대합니다.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과 경멸의 눈길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오늘 이곳에 든 우리의 무지개가 팔레스타인 퀴어들에게 보탬이 되기를 바라면서 구호로 연대의 마음을 전하겠습니다.

"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10차 긴급행동이 웹진 발행일 직후인 3월 2일(토) 청계전 SK서린빌딩 앞에서 진행한다.

 

 

 

진보넷에서 발행한 다음 두 영상도 이해에 도움을 주기에 공유합니다.

 

 

  1. 이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 읽기 주간'에 소개된 책들을 참고하세요. 몇몇 책들은 전자책으로도 존재합니다. https://platformc.notion.site/11-29-12-05-3c9ea8dc99744923baa48407e448178e  다음 기사를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문제의 양비론자들을 비판한다', 플랫폼씨. https://platformc.kr/2023/10/no-human-being-can-exist/ [본문으로]
  2. '가자지구서 성소수자 '무지개 깃발' 든 이스라엘 병사',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31121165400108 [본문으로]
  3. '[제 9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이스라엘은 왜 ‘게이 천국’을 욕망하는가  : 초국적 LGBT 인권 담론, 자유주의, 그리고 핑크워싱(Pinkwashing)', 행성인 웹진. https://lgbtpride.tistory.com/1385 [본문으로]
  4. '[국제 연대 성명] 퀴어 팔레스타인인 해방 요구', 행성인 웹진. https://lgbtpride.tistory.com/1890 그리고 다음 글도 참고해주세요. '팔레스타인 퀴어들이 지겹게 들은 8가지 질문',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번역. https://pal.or.kr/wp/%ed%8c%94%eb%a0%88%ec%8a%a4%ed%83%80%ec%9d%b8-%ed%80%b4%ec%96%b4%eb%93%a4%ec%9d%b4-%ec%a7%80%ea%b2%b9%ea%b2%8c-%eb%93%a4%ec%9d%80-8%ea%b0%80%ec%a7%80-%ec%a7%88%eb%ac%b8/ [본문으로]
  5. '‘인권경영’ 선언한 HD현대, 팔레스타인 문제는 ‘외면’', 경향신문. https://m.khan.co.kr/world/mideast-africa/article/202304100830011#c2b [본문으로]
  6. '대전 방위사업청 앞에서 무기수출 중단을 외치다', 플랫폼씨. https://platformc.kr/2024/01/stop-arming-israel/ [본문으로]
  7. '정부 이·팔 관련 '홍해파병' 가능성에 시민사회 "결사반대"', 프레시안.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12251641111581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