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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향 · 성별정체성/트랜스젠더

[회원 에세이] 트랜스젠더도 운동하고 싶다

by 행성인 2024. 8. 26.

연수(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0. 들어가며

 

2024 파리 올림픽 복싱 종목에서 두 선수의 성별 논란이 일어났다.

 

알제리의 아마네 칼리프 선수와 대만의 린위팅 선수가 출전 경기에서 각각 승리함으로써 메달을 확보하였는데 ‘XY 염색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이 들썩인 것이다. 사람들은 여성으로서 여성 종목에 참가한 두 선수를 두고서 성별을 의심하는 모욕적인 말을 하거나, 트랜스젠더일 것으로 단정짓고서 트랜스혐오적인 발언을 일삼기도 했다.

 

언론에서도 이건 미친짓”, “포용성 아닌 광기라는 해외 인사들의 혐오발언들을 그대로 헤드라인에 가져다가 쓰는가 하면, 두 선수들이 성전환을 했다는 잘못된 정보로 진실을 호도하기도 했다.

 

칼리프 선수와 린위팅 선수의 성별정체성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건 그들이 태어났을 때 여성으로 지정받아 여성으로 살아오다 여성 종목에 출전을 했다는 것 뿐이다. 국제복싱협회(IBA) 회장인 우마르 클레믈레프는 두 선수가 "XY 염색체를 갖고있다"고 했지만 정확히 어떤 검사를 해서 어떤 결과가 나온 것인지를 제대로 밝힌 적이 없다.

 

추측할 수 있는건 그 두 선수가 간성(Intersex)일 가능성이다. 세계 인구의 1.7%가 간성으로 집계되고 있다. 간성(Intersex)이란 염색체,생식기관,성 호르몬, 성기 등이 생물학적 성별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지정성별 여성이지만 고환이 있거나, 지정성별 남성인데도 자궁이 있는 경우, 혹은 성 염색체가 XXXY가 아닌 경우도 다수 존재한다. 여성으로 지정받은 칼리프 선수와 린위팅 선수에게 만약 정말로 XY 염색체가 있다면 간성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아무튼 XY 염색체가 있다고해서 두 선수의 승리와 성취가 부당해지는건 아니다. ‘남자라고 모욕당해야 하는건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두 선수를 향한 논란에 대해 온갖 혐오를 쏟아붓는 사람들에게 이미 사실관계나 논리는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나는 그러한 논란과 혐오야말로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바로 그게 내가 이 글을 쓰게된 이유다. 어차피 정말 읽어야될 사람들은 안 읽겠지만 말이다. 한 번 하나씩 짚어보자.

 

 

1. 절차상의 문제

 

두 선수는 국제복싱협회(IBA)에서 승인한 세계선수권대회와 각종 국제대회 여자부 경기에 정상적으로 출전하였었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모든 사람은 차별 없이 운동할 권리가 있다.”며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두 선수는 여자로 살아오다 여자로서 여자종목에 출전했고 복싱협회와 올림픽위원회에서도 이를 승인했다. 두 선수의 출전은 절차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2. 올림픽의 신체적 기준

 

그렇다면 만약에 실제로 트랜스젠더가 올림픽에 출전하고자 한다면 가능할까? 그렇다. 국제올림픽위원회(이하 IOC)는 트랜스젠더 선수의 참여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트랜스여성 선수는 2003년 이후부터는 성확정 수술을 마쳤다면 출전이 가능하게 되었고 2015년 이후부터는 수술을 하지 않더라도 호르몬 치료를 통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일정 수치를 넘기지만 않으면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남성으로 지정받은 신체가 가질 수 있는 이점 - 이 역시 논란은 있다 을 고려하면서도 인권적인 측면을 고려해 최대한 트랜스젠더를 포용하려고 한 결과이다. 즉 칼리프 선수와 린위팅 선수가 설령 트랜스여성이라 하더라도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3. 신체적 기준은 공정한가?

 

그렇다면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반발심이 들 수도 있다. 아무리 기준이 있다고 해도, ‘생물학적으로는 남자인 사람과 여성들이 같은 종목에서 경기한다는게 불공정한거 아니냐고 말이다. 이에 대해서 관련 단체들 사이에서 다양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긴하다. IOC는 트랜스젠더 선수 포용을 위해 테스토스테론 기준을 폐기하는 (강제력이 없는)권고안을 2021년에 발표했다. 그러나 유럽 스포츠의학협회와 국제 아마추어 수영 연맹(이하 FINA)은 이에 반대하는 합동 성명을 냈다. 참고로 FINA의 트랜스여성 선수에 대한 기준은 IOC보다 훨씬 엄격하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트랜스젠더 여성이 시스젠더 여성보다 신체적으로 이점을 갖느냐 아니냐인 것이다. 트랜스여성 선수의 여성종목 참가를 반대하는 한 운동 생리학 박사는, 남성은 청소년기 시절에 이미 근육량과 뼈의 밀도,심폐 지구력이 여성보다 월등하며, 호르몬치료로 인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진다 하더라도 운동을 통해 다시 높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에 조안나 하퍼라는 스포츠 과학 박사는, 시스젠더 여성보다 체구가 큰 트랜스젠더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체구와 걸맞는 골밀도나 근육량은 없다면서 단순히 체구의 차이가 이점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트랜스여성 선수가 시스젠더 여성보다 이점을 갖느냐인 것이다.

 

 

4. 생물학적 성별

 

사람의 성별은 생물학적으로도 이분법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는 성소수자인권운동에서 많이 해왔었다. 염색체나 성기가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스포츠에 있어서도 남자종목과 여자종목으로 나누는게 그렇게 적절하지 않을수도 있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 IOC의 규정에 따르면 여성부 경기에 출전하고자 하는 사람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1리터당 10나노몰 이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테스토스테론 농도는 리터당 0.5 ~ 2나노몰, 남성은 9~35나노몰로 알려져 있는데 한 연구에 따르면 조사한 여성선수 중 4.8%가 리터당 10나노몰을 넘겼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규정에 의하면 시스젠더 여성조차도 배제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신체적 외양과 운동능력 때문에 성별을 의심받았던 여성선수들의 사례도 있다. 같은 성별로 묶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신체적인 차이가 크다면 이건 꼭 트랜스젠더의 문제가 아니라 성별로 나누는 기준의 문제가 아닐까.

 

 

5. 다른 기준

 

나는 한 퀴어여성 풋살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시스젠더 레즈비언이 대부분이지만, 나같은 트랜스젠더 여성도 배제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실제로 같이 훈련이나 경기를 할 때 내가 압도적인 이점을 갖는게 드러날까?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체력, 속도, , 실력 모든 면에서 나는 평균 정도에 불과하다. 트랜스젠더 여성인 나보다 신체적으로 강하고 실력이 뛰어난 시스젠더 여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서 트랜스여성을 강자’,‘포식자등으로 묘사하는 걸 볼때마다 너무 억울하다. 물론 올림픽처럼 엄격하게 순위를 매기는 엘리트 스포츠의 경우와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보다 무조건 운동을 더 잘할 거라고 단정하는건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를 더 강화하는 셈이 된다. 이러한 사고는 신체운동에서 확장되어 체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세계체스연맹(FIDE)2023, 트랜스여성은 여성부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근거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뇌와 여성의 뇌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남성우월주의에 기반한 아주 황당하고 성차별적인 사고다. 체스를 두는 데에 성별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렇게 성별의 차이가 강조될수록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성별권력을 가진 시스젠더 남성들이다.

 

 

나도 눈치 안보고 운동하고 싶다...

 

 

그렇다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트랜스여성 선수는 이점을 갖는가가 아니라, ‘트랜스여성 선수와 경기를 하려면 어떤 기준이 필요한가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해보자. 우리의 신체와 신체능력은 어차피 각각 다르다. 농구에서의 큰 키라던지, 격투기에서의 왼손잡이는 경기에서 분명히 이점을 갖지만 이걸 가지고 불공정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시스젠더 여성간에도 차이는 존재하는데, 트랜스여성이 갖는 특성이 새삼 배제의 근거로 작동하는건 엄연한 차별이다. 우리가 스포츠에서 더욱 다양한 신체들을 포함하기 위해 더욱 다양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롤(LOL)같은 게임의 경우 성별이 아닌 실력으로 티어를 나누고 그 티어에 따라 리그가 구성된다. 마찬가지로 스포츠도 남성부, 여성부가 아닌 경력이나 실력에 따라 브론즈부, 실버부, 골드부 이런식으로 나눠서 경쟁해보면 어떨까. 내 이야기가 황당하게 느껴지는가? 적어도 체스연맹 아저씨가 하는 말보단 훨씬 건설적이지 않은가?

 

 

 

*글을 쓰면서 다음의 책과 기사를 참고했다.

 

'체스도?' 국제협회 "트랜스 남성 여성부 출전 금지"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세계체스연맹(FIDE)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사람은 여자 체스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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