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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여기동의 레인보우패밀리

육아#29. 어린이집 입학

by 행성인 2024. 9. 24.
행성인의 오랜 회원인 여기동님이 필리핀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2015년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남편의 나라로 가서 살림을 꾸리는 여기동 님은 딸 '인보'를 입양하여 육아일기를 쓰고, 최근에는 성소수자 연구들을 리서치하며 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여기동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어린이집 입학, 학부모가 되다

 

천방지축 딸내미가 유니폼 입고, 책가방 메고, 엄마 아빠 손잡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린이집에 입학하였습니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남편이 부회장을 제안받았는데 전혀 망설임 없이 OK, 부회장을 맡았습니다(이런 활동을 아주 그리고 많이 좋아라 하지요). 

 

아이 덕분에 우리 부부는 학(學)부모(父母)가 되었습니다. 한자 의미를 되새겨보니, ‘아이만 배우는 학생이 아니고 부모도 자식 농사를 잘 짓기 위해 공부하는 학부모(學父母)가 되어야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다음에 '자식 농사'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려고 해요.

 

 

수업은 야단법석

 

입학 첫 주에는 저도 함께 등원했습니다. 인보는 동네 개구쟁이 또래 친구들 케빈, 딴딴, 갑갑과 함께 같은 책상에 앉았습니다. 첫날은 이름표를 만들었어요. 이 이름표를 목에 걸고 어린이집에 갑니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여러 작업을 했습니다. 하트 모양에 빨간색 물감을 칠하고 색깔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수평과 수직 점선을 따라 그렸답니다.

 

아이들의 수업 태도는 그야말로 야단법석 입니다. 난리도 이런 난리는 없는 것 같아요. 이제 만 3세 아이들이라 선생님 말씀에 집중을 안 합니다. 여기저기에서 옆 동무들과 장난을 치고 떠들고 딴짓을 합니다. 마침내 어떤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속 돌아다니면서 수업을 방해했어요. 드디어 선생님이 회초리를 보여주면서 경고의 시그널을 보냈어요.

 

 

부모가 참여하는 수업의 좋은 점

 

선생님 혼자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많은 수의 학생을 챙길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세심하게 챙길 보조교사가 필요한 환경이지요. 그래서 오신 부모님들이 그 역할을 담당합니다. 우리도 아이 옆에 딱 붙어 그림자 수업에 열중해야 했어요. 

 

이렇게 '부모가 교육에 직접 참여하는 수업' 은 여러 측면에서 유익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아이가 만든 것을 지켜보았기에 작업과정을 바탕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수업 중에는 할 수 없었던 “참 잘했어요”같은 피드백을 줄 수 있지요. 그리고 아이에게 질문도 하고 어떻게 느꼈는지 소감도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둘째, 아이의 행동과 말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니 간식 시간에 자신의 것을 동무들과 나눠 먹고 얻어먹기도 하더라고요. 이렇게 아이가 친구들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셋째, 선생님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에게 선생님 혼자서 (하루에 2-3회 정도 나눠주는) 교육 재료를 일일이 나눠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제가 선생님 것을 나눠 받아 아이들에게 핑 나눠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친구들과의 대화와 선생님의 지시를 이해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또다시 수업에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남편은 수업을 마치고 아이가 그린 것을 집으로 가져옵니다(정리하는 것은 저의 몫이지요). 입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이가 만든 것을 저에게 열심히 설명하더라고요. 이때 저는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아주 젊은 카이스트 대학 교수님의 과학 강의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발명하고 싶은 아이디어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고추 밭에서 부모님을 도왔답니다. 너무 힘든 노동이어서 기계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렸던 스케치를 보여주셨습니다. 아마도 교수님의 부모님께서 초등학생 자녀가 수업 중에 만들었던 작품을 보관해 놓으신 것 같았습니다. 아하, 아이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겠는데? 그래서 저도 우리 아이의 작품을 차곡차곡 모아 책으로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금강산도 '간식후경'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뭐니 뭐니 해도 간식 먹는 시간입니다. 어린이집에 손을 씻을 수 있는 세면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집에서도 식사를 하기 전에 손 씻기를 해서 그런지 간식을 먹고 난 후 세면대로 달려갑니다. 손에 물과 비누를 칠하고 요리조리 닦은 후 타올로 마무리를 합니다. 생활 훈련을 한 보람이 있어요.

 

어린이집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일 갑니다. 아이의 간식을 위해 매주 간식 장을 보아야 합니다. 원래 저는 아이의 영양과 건강을 위해 감자나 고구마, 브로콜리와 같은 것을 싸주고 싶었습니다. 도시락 통을 하나 샀습니다. 그러나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 저녁밥을 잘 먹지 않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간단한 것으로 변경했습니다. 그래서 과자나 카스텔라 그리고 요구르트, 주스와 같은 음료수로 준비를 합니다. 사실 매번 간식을 요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엄마표 감자와 고구마는 특별한 날의 도시락으로 싸보렵니다.

 

 

코치 아빠 고마워!

 

 

 

어린이집 갈 시간이 되면 찰스 아빠는 분주해집니다. 여보, 늘 힘든 육아를 담당해 줘서 고맙고 미안해요. 

 

그런데 이제 어린이집에도 함께 등원하여 그림자 수업을 담당하는 코치 아빠가 되셨구려.

당신은 최고 아빠랍니다. 

 

아이가 즐겁고 신나게 어린이집 다닐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노력해요. 

 

그리고 우리 아가, 처음으로 어린이집 간 거 진짜로 많이 많이 축하해!

 

 

 

행성인 여러분,

모국에 코로나가 다시 유행한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폭염과 폭우에 건강 잘 챙기셨길 바라고, 몸과 마음이 시원한 가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