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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운동의 역사

[전시 메모] 기억과 기념, 분출하는 오늘

by 행성인 2025. 2. 21.

남웅 (행성인 웹진)

 

 

한국에 HIV/AIDS 감염인이 처음 발견되었다고 알려진지 40년이 지났고, 서울 퀴어퍼레이드는 25주년을 맞는다. 숫자가 무슨 의미인가 싶다가도 횟수를 기념하는 일은, 이름을 만들고 그 안에 모여 함께 겪어낸 시간을 접으면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놓친 것을 살피며 이후를 열어가기 위한 작업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냈다는 걸 기념하고 서로에게 안녕과 무운을 비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근래 성소수자 운동단체 30년을 맞은 두 단체의 전시가 있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전시는,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한쪽이 단체의 30년사를 기록과 출판물로 보여준다면, 다른 한쪽은 소식지를 역사적 기록으로 두고 전시한다.

 

 

괄호를 채워가는 활동

 

 

지난 11월 열린 엘상담소의 전시 《레즈비언 ( ) 나》는 타임라인에 충실하다. 각 파트를 나눠 괄호마다 탄생/활동/상담/놀이를 넣어 섹션을 나누고 단체를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로 삼는다. 정체성으로서 레즈비언으로서 삶이 나에게 어떻게 연결되었고, 레즈비언으로서 집단과 단체를 이룬 시간을 일궈왔는지 가늠케 한다. 전시는 단체 발족 이전부터 1994년 한국여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 설립으로, 2005년 '한국레즈비언상담소'로 이름을 바꾸며 이어지는 시간을 밟는다.

 

전시장 가운데 단체의 타임라인과 정세를 나란히 정리해서 길게 늘어놓고, 공간 둘레를 따라 입구에서부터 단체의 초기와 집중활동, 소모임과 커뮤니티 활동의 기록을 자료집과 회의록, 만화와 낙서, 영상기록물을 선별하여 벽과 테이블에 전시한다. 90년대 유행한 시사프로그램에 단골이슈처럼 등장했던 '동성애'에 얼굴과 목소리를 내놓은 이가 단체사람들이었구나. 어떤 답답함과 걱정과 용기가 있었을지 가늠이 어렵다. 더 놀라온 건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이후 미디어 모니터링과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활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가시화는 바깥의 아우팅과 성별위계에 기인한 성희롱과 협박에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 쉽게 열기 어려운 환경은, 외부로부터의 안전만큼 친밀한 관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렵게 만든다. 상담에 집중한 행간을 짚으며 커뮤니티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야기를 들어줄 이를 얼마나 필요로 했을지 알 수 있었고, 소모임 활동과 크고 작은 기록물을 보면서 고투 속에서도 친밀함의 커뮤니티를 일궈왔음을 알았다. 

 

 

전시자료들 중 만화와 낙서가 특별히 많았던 것은, 그만큼 내부의 친밀한 관계가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단체 굿즈와 소모임 동인지 형태의 출판물까지 단체에서 생산한 다양한 사물들은, 그저 수익사업으로 만들기 위한 굿즈이기 이전에 자신의 활동을 남기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서로 간 취미와 일상을 나눠온 궤적임을 보여준다. 작게 마련한 시청각실에는 과거 활동한 이들의 인터뷰나, 사무실 배치를 모형으로 제작해 전시하기도 했다. 기획한 활동가들이 단체에 얼마만큼 애착이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흘려도 아름답게

 

친구사이 소식지 전시 '흘리는 연습'은 1993년부터 2024년까지 소식지로 발행한  2,240편의 글 중 145건 글을 선별하고, 6개의 주제로 분류하고 배치한다. 감정의 아카이브/ 일상을 유지하는 힘/ 사랑을 둘러싼 정념/ 세상에 선보이기/ 얼떨결에 어울리기/ 미래에 대한 열병으로 나눈 키워드는 커뮤니티로서 인권운동단체를, 커뮤니티와 접면을 넓히고자 하는 친구사이의 활동을 보여준다. 퍼포먼스 중심의 전시공간인 윈드밀에서 진행하는 전시는,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는 시각예술작가와 역사학자, 디자이너와 더불어 오랜 시간 단체 안팎에서 활동해온 상임활동가가 함께 기획한 사실을 전면에 보이며 크레딧 너머 전시에 들인 품을 실감케 한다.

 

6개로 나눈 키워드는 커뮤니티단체로서 개인의 정념과 공동체의 관계성에 주목한 것처럼 보였다. 한편으로는 전시가 분류한 주제들과는 별개로 독자에 따라 다르게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행성인 활동가의 눈으로는 노동자 대투쟁의 광장에 성소수자가 출현하는 첫 순간의 기록과 극장과 술집에 모이는 이들이 겹쳐보였고, 동성부부의 결혼식이 집회일수밖에 없을 상황과 부킹 팁과 나이들며 매력을 잃고 외로워질 것에 대한 두려움과 체념 사이의 친밀함이 보였다. 이는 커뮤니티 안팎으로 접점을 만들고 관계의 형식을 만들어내는 한편으로, 권리를 요구하고 제도에 개입하는 상이한 활동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단체의 사정이 보였다고 하면 다분히 주관적인 감상일까. 활동의 재생산과 커뮤니티의 접점과 확장을 고민하는 건 여느 풀뿌리단체의 필연적인 고민일 것이니.   

 

 

전시장 가운데 맞이공간을 둘러싸고 넓게 펼쳐진 전시장을 군데군데 두르며 종횡으로 출현하고 사라지며  흐르는듯한 파이프마다 손으로 쥔듯한 반죽이 은회색 마시멜로우처럼 이어진다. 덩어리마다 사람들의 얼굴과 기록, 사건들이 레이저로 음각되어 있다. 선적인 타임라인을 그리는듯 하지만, 얼기설기 기억의 부분을 이어낸 모습임을 감각한다. 동선을 따라 관객들은 테이블에 선별한 기사를 읽고, 지금까지도 활동하는 퀴어독립출판인의 인터뷰를 만난다. 

 

 

전시는 조형적으로 심혈을 기울인 모습이다. 인권미감을 뻈다는 농담은 전시를 보기 전부터 잘 알았고, 새로 활동을 시작한 박민영 작가가 총괄 기획자로 역할을 한 것도 주효했을 것이다. 포스터부터 인상적이었는데, 기존 소식지의 폰트를 한글자씩 따고, 글자마다 폰트의 출처를 주석으로 남긴 디자인은 그간 소식지의 비일관적인 디자인과 편집 탬플릿 또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일 것이다. 이는 전시에도 이어지는데, 폰트와 판형, 제본 방식 등 출판과 편집 기술을 바탕으로 전시물을 재구성하는 부분은 그간 글쓴이뿐 아니라 편집과 디자인 작업까지도 고려에 넣는 사려깊은 기획의 묘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흘리는 연습판'이었다. 소식지 텍스트와 타임라인에 초점을 맞추기 쉬운 전시에서 당시 독립출판계의 나눔 문화(축하글에 한권 증정이라던가)나 광고 스크랩도 그렇고, 소식지가 유실된 구간의 기록을 보릿자루 등 외부 잡지를 통해 간접적인 기록을 스크랩하는 부분은 시각적 아카이빙의 또다른 실천을 보여주는 인상을 준다. 여기서는 전업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이경민의 역량이 두각을 보였다.

 

관객으로 하여금 기사를 몇편 고르고 제본할 수 있게 마련한 테이블은 여러가지로 놀랍고 부러웠다. 관객에게 엮은이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면서 참여와 나눔을 실천한 것이 하나라면, 이 전시는 수익은 커녕 본전을 보전하는 일까지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게 한 것이다. 

 

(오른쪽 아래) 선별한 소식지 기사들의 제목 일부를 따서 제본집의 이름이 만들어진다. 내게 모인 제목은 점괘 같기도.

 

띄엄띄엄 바닥과 벽에서 나타나 이내 다른 벽으로 숨어드는 파이프 라인은 단체의 흔적을 점점이 이어가며 선적인 흐름을 이어가다가 전시장 가운데 친구사이 회원들의 인터뷰로 모인다. 정면 하관부를 부분적으로 포착한 영상은, 화면 가운데를 조형적으로 부각하며 친구사이 회원들의 하관 얼굴들이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게 한다. 30년 전부터 쭉 이어진 시간이 지금 친구사이 성원의 얼굴과 목소리로 출현하는 모습인데, 튀어나온 조형물에 투사된 입술이 씰룩거리며 사랑과 일상을, 미래를 이야기한다. 아는 이의 입술이 씰룩일 때면 요망한 주둥이라고 같이 간 친구와 반가워했다.

 

 

공과 과, 오염된 미래를 열기

 

아카이빙을 바깥에 보일때, 공과 과를 어떻게 선별해서 내보일 것인가가 고민이 든다. 보이지 않는 부분, 보여낼 수 없는 지점은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도 과제가 된다. 남성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로 시작한 친구사이도 여느 인권운동단체처럼 처음부터 비남성 퀴어나 트랜스, 논바이너리 남성, HIV/AIDS와 켐섹스에 환대적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더불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커뮤니티의 울타리로는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더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하지 않음을 기억할 수 있을까. 

 

전시가 직접적으로 이를 표명하지는 않지만 몇몇 파열의 신호를 남긴다.  출구에 다다르면 파이프가 단절된듯한 지점을 만난다. 파이프에 꽂혀 있어야할 기록의 덩어리가 부서진 부분은, 끝내 안지 못한 무언가를 가리키면서도, 시간의 파이프에 끼워내지 못했음을 시각화한다. 또 하나의 장치는 전시장의 조도였다. 전시공간은 유난히 어두운 가운데 텍스트가 있는자리에 하이라이트를 부여했다. 텍스트 중심의 전시가 이렇게 불친절할 수 있느냐는 투정을 차치하면, 하이라이트 조명은 친구사이 소식지의 발자국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보이지 않거나 끊어진 지점, 보여도 덮어두었던 지점을 예견한 것은 아닐까. 이 그림자들이 앞으로 친구사이뿐 아니라 성소수자운동이 더듬어 나가야하는 자리를 암시한 것은 아닌가를 생각했다.

 

(좌) 《흘리는 연습》의 바닥 일부, (우) 《레즈비언 ( ) 나》의 연표 일부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전시는 해소 직전의 상황과 인력난의 어려움을 덤덤하게 남긴다. 공과 과를 평가하는 일뿐 아니라, 이를 오늘의 관점으로 다시 읽어내고 보여주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더불어 단체가 상담에 집중하면서 바깥의 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한계를 인정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정념을 덜어낸 아카이브는 소소하고 사적인 흔적과 활동의 기록을 병렬하며 보여준다. 아카이빙을 정리한 지금의 활동가들은, 커뮤의 외연을 넓히고 연대활동을 확대하고자 하는 열망을 줄곧 보이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렇다면 이 단체들이 놓쳤음을 인지하는 것들이, 과거와 다른 오늘의 눈으로 다시 지난 시간과 기록을 볼 때, 어떤 지점에 하이라이트 조명을 다시 줄 수 있을까. 낙서와 기록들은 어떻게 다시 미래를 오염시키며 열어낼 수 있을까. 전시들이 지난 기록과 연표의 정확한 전달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면, 전시가 좀 더 오염된 시간, 혹은 오염되어야 할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보여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지금의 레즈비언상담소는 설립 직후부터 오랫동안 이어져온 아우팅에 대한 대응을 둘러싼 논의들과, 부문운동과 계급운동 사이의 논쟁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까. 단체 바깥의 커뮤니티 내부 담론이 불화 속에 생성된 지점들로부터 오늘의 공론장을 재고할 수 있을까. 이는 논쟁에 휘말렸던 (구)동성애자인권연대 또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역사를 보여주는 방식은 전시와 출판물뿐 아니라, 최근에는 무대로도 보여주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최근 6-70대 트랜스젠더 여성의 서사에 천착하는 작업들은 이들을 직접 무대에 올리고 미디어 기록과 함께 자신들이 상연할 수 있도록 한다. 상호 감각적인 조우는 그들의 호흡과 발성, 몸의 생김새와 태도를통해 종적인 시간의 축을 한 자리에 펼쳐놓는 아카이빙의 무대를 펼친다. 물론 그건 오랜시간 트랜스 여성으로서 유흥업과 서비스노동자로 종사하며 익혀온 기예가 있기에 무대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전시들을 보면서, 더불어 근간에 운동과 공동체의 시간을 기억하고 서로 교차하며 거리를 감각해내는 무대와 전시 등의 문화적 결과물들을 보면서 행성인은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이 생겼다. 이쯤 다시 행성인으로 깔대기를 대보자. 이 단체는 어떻게 그간 쌓여온 시간들을 정리하고 드러낼 수 있을까. 이미 여러분이 다 하셨으므로 전시는 선택지에서 멀어졌을까. 무엇이 되든, 지금의 행성인들이 잘 꾸려낼 것이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