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리+와 카노스의 세 활동가들과 나는 6월 21~2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어떤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글로벌 펀드 모금을 위한 동아시아 시민사회 전략회의’ 이름도 어려운 이 회의에 가기로 결정한 뒤에 나는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무엇보다 글로벌 펀드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회의의 목적이 무엇인지, 갔다가 괜한 부담만 지고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준비는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 것인지 여러 가지 걱정이 들었다. 회의라면 응당 무언가 목적이 있을 것이고 우리를 초대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원하는 게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일단 우리가 잘 모르는 내용이니 들어보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오면 되겠지, 이렇게 마음먹고 일본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참가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참가자 대다수가 회의를 통해서 새로운 활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가기 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도 대체 우리가 무슨 회의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왔는지 감이 안 잡힐 거다. 그래서 일단 배경과 회의 내용을 조금 길어지더라도 대략 설명하고 내가 느낀 성과에 대해 얘기해야 할 듯하다.  


회의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번 회의는 ‘글로벌 펀드’에 관한 자리였다. ‘글로벌 펀드’는 2002년 설립된 국제기구로 주로 선진국 정부들로부터 기금을 모아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활동에 사용한다. G8 정상회담과 유엔이 탄생의 모태가 됐다.


글로벌 펀드는 1990년대 말 탄생한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성장하면서 선진국 정부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된 것에 대한 대응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저개발 국가의 비참한 현실에 책임이 있는 선진국 정부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이 커지자, 자신들이 국제 사회 리더로서 책임을 다한다는 것을 보이고자 글로벌 펀드를 만들고 돈을 내놓게 된 것이다.


따라서 글로벌 펀드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빈곤과 질병 문제를 낳는 근본적 원인을 건드리지 않고 결과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당장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기 위한 치료와 더 많은 목숨을 살릴 예방 활동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글로벌 펀드는 선진국 정부들과 기업들의 이해관계에 도전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사실 문제를 만들어낸 당사자들인 선진국 지배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기능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글로벌 펀드는 운동이 강제해 낸 성과라는 측면도 있다. 글로벌 펀드 활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치료받고 목숨을 살릴 수 있게 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글로벌 펀드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고민하면서도 선진국 정부들이 글로벌 펀드에 기금을 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생색내기만 하려고 할 때 비판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펀드는 지금까지 주로 G8국가 위주로 기금을 출현해 왔다. 그런데 2007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 G8이 G20으로 변화하고 중국, 한국 같은 신흥 경제들이 새로운 원조국가가 되면서 상황이 변화했다. 글로벌 펀드가 목표하는 활동을 하려면 계속해서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더 많은 국가들이 돈을 내야 한다. 경제 위기로 기존 원조국들의 기금이 줄어들 것이 빤한 상황에서 글로벌 펀드는 새로운 원조국들에 다가갈 절실한 필요가 있기도 하다. 글로벌 펀드는 3년 단위로 모금 목표를 세우고 각국에 목표 달성을 위한 모금을 호소하는데, 올해가 그 목표를 세우고 각국의 약속을 받는 해이다.


한편 각국 정부들의 우선순위는 당연히 글로벌 펀드가 아니기 때문에 글로벌 펀드도 각국의 시민사회가 글로벌 펀드를 옹호하고 정부에 압력을 가해주길 원한다. 이번 회의를 조직한 단체인 ‘아프리카 저팬 포럼’도 그런 구실을 하는 NGO다. 아프리카 저팬 포럼은 주로 빈곤국 에이즈 문제를 일본 사회에 알리고 일본 정부가 글로벌 펀드에 더 많은 기금을 내도록 압력을 가하는 활동을 한다. 글로벌 펀드는 한국과 중국에서도 이런 활동이 있기를 바라고 이번 회의를 통해 한국과 중국 활동가들에게 자신들의 필요를 설득하고자 한 것이었다.


특히 한국은 11월 G20 정상회담이 열리는 국가이기 때문에 중요성이 컸다. 한 마디로 우리가 이번 회의의 표적이었다. 어느 정도 그럴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우리를 설득하고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일본과 중국 활동가들의 경우 이미 글로벌 펀드와 연계가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회의는 글로벌 펀드 활동을 소개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시간과 한중일 세 나라의 에이즈 관련 현황과 이슈, 활동을 발표하는 시간, 각각의 맥락에서 글로벌 펀드 지지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내용들이 주로 얘기되면 우리의 부담이 커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회의는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글로벌 펀드 사무국에서는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를 솔직하게 표현했고 구체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활동을 제시하거나 어려움에 대해 함께 토론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회의에는 다양한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일본에서는 아프리카 저팬 포럼 활동가들만이 아니라 빈곤 운동 활동가, 에이즈 활동가들이 여럿 참석했고, 중국에서는 홍콩 에이즈 파운데이션의 두 활동가가 참석했다. 글로벌 펀드에서도 두 명의 시민사회 담당자들이 이틀 동안 함께 회의에 참석했다. 이들은 모두 한국의 상황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고 연대와 교류를 지속하고 싶어 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특히 한중일 세 나라의 에이즈 이슈들에 공통점이 많고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에 큰 공감을 느꼈다. 우리는 일본과 중국(홍콩) 활동가들과 대화하면서 그들 상황에 대해 배웠고 서로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 활동가는 우리에게서 한국 정부가 유엔이 권고한 감염인 출입국 규제 철폐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다는 말을 전해 듣자 국제회의에서 항의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런 만남과 자극 덕분에 우리는 회의가 진행될수록 마음이 가벼워지고 활력이 생겼다.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하던 국제적 이슈로서 에이즈 문제에 대한 더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국의 에이즈 관련 활동과 운동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고 연대와 협력을 강화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특히 G20과 ICAAP 회의가 한국에서 열릴 예정인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구체적으로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


회의 참석자들은 한중일 에이즈 운동의 연대 필요성을 공감했고 G20과 ICAAP 대회에서 공동의 활동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연대와 협력을 지속하고 강화하기 위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네트워크를 현실화하기 위한 계획도 논의했다.





회의를 마치고 한국 참가자들은 대부분 매우 즐겁고 유익한 경험이었다는 평가를 했다. 글로벌 펀드나 이번에 우리가 만난 활동가들이 우리와 차이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글로벌 펀드는 G20 정상회담에서 각국 관료들을 만나 글로벌 펀드 모금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이번에 참석한 중국과 일본 활동가들도 회담장 안에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반면 나는 G20 정상회담의 위선을 폭로하고 그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만드는 장본인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생각을 알리고 우리와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국제 연대 활동은 중요하다. 이번 회의는 국제 연대 활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물론 아쉬움도 남는다. 무엇보다 사전에 회의와 주제, 참가자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특히 통역을 담당한 내가 영어 실력과 사전지식이 부족했던 것은 가장 아쉬운 점이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중국과 일본, 글로벌 펀드 활동가들에게 한국의 현실과 우리가 해온 활동들, 우리의 고민과 방향에 대해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하면 한국 상황에 대한 발표도 준비가 미흡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만남은 첫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이 활동가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다음 회의를 준비하면서 이번에 부족했던 지점들을 메워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니 회의의 감흥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고민과 걱정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 에이즈 운동의 힘겨운 상황의 무게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이 무엇인지 찾았다고 말하는 카노스 활동가, 그리고 기껏 주변에 머물러 있다가 에이즈 쟁점을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나. 이것만으로도 이번 일본 여행은 충분한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누가 잘 다녀왔냐고 물어도 즐겁게 답할 수 있다. 잘 다녀왔습니다.


이나라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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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팽
    2010.07.05 12:15 [Edit/Del] [Reply]
    참가기 외전으로 다가 회의에 참여한 '조선의 대표 LGBT 정숙, 석주, 나라, 은주 언니'의 재미난 여행기를 듣고 싶구랴~! 회의 내내 통역하느라 긴장했을텐데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여~! 담엔 나도 데리고 가!! ㅎㅎ
  2. 경태
    2010.07.05 13:25 [Edit/Del] [Reply]
    그렇지~ 시작이 반! 나도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해~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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