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지지하며

 

요즘 학생인권조례가 교육 핫이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공약으로 내건 진보교육감 취임 이후 조중동 등 보수 언론들과 보수 단체들은 연일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하고 있다. 한편에서 전교조와 청소년인권단체들을 비롯한 시민사회운동진영은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를 구성해 학생인권조례 만들기에 나섰다. 동성애자인권연대도 운동본부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왜 중요한지, 특히 우리 성소수자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나아가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와 교육은 어떻게 가능할지도 함께 고민해봤으면 한다.

 

지난 6.2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후보들의 대거 당선은 오늘날 학교 교육 현실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었다. 우파들과 정부가 전교조 마녀사냥을 통해 진보교육감 당선을 막으려 혈안이었지만 무려 6개 지역에서 진보교육감이 탄생했다(그 가운데 2명은 전교조 교사 출신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진보교육감들이 일제고사, 자사고 확대, 교원 평가제, 전교조 탄압 등 이명박 정부의 특권 교육, 경쟁 교육에 제동을 걸기를 바라고 있다. 동성애자인권연대도 진보교육감 경선 과정부터 참여하며 진보교육감 당선을 기대하고 지지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날이 갈수록 심화된 입시경쟁은 학교를 가능성과 희망이 아니라 좌절과 패배를 배우는 곳으로 만들었다. 부모의 재력이 아이들의 학업성취를 결정짓고 특권의 대물림이 강화됐다. 우익들은 민주화 정권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말하는데 학교에 대해서도 (속뜻은 완전히 다르지만) 비슷한 비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민주화 정권 아래서도 학교 민주화는 조금도 진척되지 않았고 여전히 폭력과 강제가 개성을 짓누르고 있다. 두발 규제 금지, 복장규제 완화, 체벌 금지, 보충학습 및 야간 자율학습 선택권 보장 등 학생인권조례에 담긴다는 주요 내용을 보면 참담한 학교 현실이 드러날 뿐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교육’은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을 뜻한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 교육은 지식과 기술 따위를 ‘주입하며’ 인격을 ‘파괴’하고 있다. 입시 경쟁이 교육을 지배하는 유일의 원칙인 학교는 폭력과 강압, 무기력과 증오가 뒤섞인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가 됐다.

 

7월 7일 발족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발족 선언문에는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학교를 이렇게 그리고 있다. “학생이 자유와 참여 속에서 배움을 누릴 수 있는 학교, 감당할 만한 배움과 다양성이 꽃피는 학교, 차이가 낙인과 배제의 이유가 되지 않는 학교,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신뢰와 소통이 복원된 학교.”

 

오늘날 학교의 현실이 우리가 바라는 이런 이상과 한참 동떨어져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교육이 하는 구실은 진정 민주적인 시민을 길러내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의 불합리와 모순을 그저 순리로 받아들이고 그 불합리와 모순을 통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일할 노동력을 창출하는 것인가? 과거에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교육이 확대된 과정은 단순하지 않지만, 경쟁과 이윤추구가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의 이치가 학교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고 그런 원리를 더욱 강하게 학교에 적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갈등에서 드러나듯이 학교의 변화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순탄하게 이뤄질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힘이 충돌하면서 어떤 힘이 변화를 강제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솔직히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현실을 바꾸기 위한 아주 기초적인 조치일 뿐이다. 정말로, 법조문이 현실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헌법 제1조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통해서 ‘다른 교육’이란 무엇인지, 왜 그것이 필요한지, 어떻게 가능한지를 토론할 수 있고 변화를 고무할 수 있을 것이다.

 

성소수자들에게 학교의 변화는 절실한 문제다. 성소수자들은 자신을 긍정하는 법을 배우고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할 시기에 자기혐오를 강요받고 차별받을 뿐 아니라 폭력과 괴롭힘에 노출돼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그동안 성소수자 운동이 중요하게 다뤄온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에 있어서도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도 성소수자의 존재가 가시화하고 성소수자 자긍심과 인권의 목소리가 성장해왔지만 교육과 제도의 변화는 이를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과거에 성소수자들은 대부분 청소년기를 자기 정체화가 지연된 혼란과 고민의 시절로 보내거나 자책감과 자괴감, 고립의 고통으로 보냈다. 이제는 성정체성을 더 일찍 확립하고 긍정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성소수자에 대한 직접적인 멸시와 폭력이 학교에서 표현되고 있기도 하다.

 

학교 교육은 여전히 동성애와 다양한 섹슈얼리티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지 못할 뿐 아니라 편견과 혐오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들은 교실에서 일상적으로 동성애혐오가 담긴 발언들을 내뱉는다. 여전히 많은 교사들이 동성애를 비정상이나 일탈로 여기는 경우가 허다하고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학교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를 만났을 때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동성애/성전환 혐오가 강력한 사회 분위기는 또래 집단에도 그대로 반영돼 학교에서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이나 폭력을 경험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 이런 괴롭힘과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지지받을 수 있는 경로는 극히 드물다. 이제는 ‘게이’나 ‘레즈’라는 말이 약한 아이들을 놀리는 말이 되고 있기도 하다.

 

작년에 추진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에는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런 차별 금지 명문화는 학교에서 올바른 성정체성 교육을 시작하고 학교에서 동성애혐오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성소수자 청소년만이 아닌 모두 - 모든 청소년, 교사, 학부모 - 를 위한 교육을 만들려는 노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모두를 위한’ 학교를 만드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는 앞으로 한 달 정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조례안을 다듬고 9월부터 주민발의를 위한 서명운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우파의 거센 공격 속에서 보수적 압력에 크게 노출된 진보교육감에게만 기댈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운동으로서 힘을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우리도 조례제정운동에 참여해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알리고,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세력들의 논리를 반박하며, 사람들을 설득하고 관심과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 활동에서 쌓은 경험을 현실의 변화를 추동하는 힘으로 이어가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학생한테 무슨 인권이냐는 이야기가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존재와 인권을 부정하는 이야기와 같고, 학생은 미성숙하다는 논리가 청소년은 아직 성정체성을 결정하기에 이르다는 논리와 같다는 것은 두 번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동성애는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지겹게 들어온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 요즘엔 더 분명히 드러나는 것 같다. ‘권리는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소리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문득, 차별금지법을 동성애허용법안이라며 반대한 자들이 학생인권조례도 ‘학교에서 동성애를 조장하려는 시도’로 공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아마도 이런 논란과 논쟁까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이제 모두를 위한 학교와 교육이라는 우리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논의와 행동을 진전시킬 때가 됐다.

 

이나라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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