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HIV/AIDS!, I will love

Posted at 2008. 7. 30. 21:49// Posted in HIV/AIDS

영진 _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KANOS 활동가



 상실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삶을 마감하기 전 인간의 상실에 대한 책을 준비하였다. 그녀는 그 책이 완성되기 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제자와 동료들은 ‘상실 수업’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요즘 나는 상실감이란 무엇일까라는 주제에 매료되어있던 중 이 책을 읽게 되었고, 그녀로부터 좋은 가르침을 받았다. 그 가르침은 ‘30분 울어야 할 것을 20분 만에 중단하지 말라!’라는 명제이다.

 사람은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감정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은 저마다 다양하다. 어떤 이는 감정을 극도로 제한하여 되도록 표현하지 않고, 누구는 자유롭게 표현하기도 하는가하면, 또 다른 이는 과장되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것은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저마다 다르게 숨쉬는,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세상 속에 나를 던져 버리면, 나도 모르는 사이 이 살아있는 감정을 숨 쉬지 못하게 하는 훈련을 받게 된다. 그런 훈련의 과정 속에서 나는 어느새 인내심이 많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고, 그로 인해 훌륭한 인격체로 평가 받게 되며, 심지어 존경 받기까지 한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건 내 본 모습이 아니야’라고 소리를 질러본대도 소용없는 일이다. 어떤 깊은 슬픔이 덮쳐 와도 마음 놓고 한없이 울지 못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훈련 탓이다.



 상실로 가는 길에 들어서다

 2005년 2월 HIV감염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잘 관리할 것인가? 감염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만을 고민하기로 하고 빨리 받아들이는 훈련에 돌입했다. 다른 감염인보다는 쉽게 인정했고, 내가 청한 도움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이해가 있었기에 감염인으로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기도 하였다. 허나 그건 포장을 하는 것일 뿐 진정성이 없는 것이었다. 왜? 나는 충분한 시간을 내어 HIV 감염이라는 충격에 대해 아파하지 않았었다. 아픔을 충분히 겪지 못한 나는 언제부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직장 동료들과의 갈등과 해고의 과정, 사랑에 대한 실패, 경제적 어려움, 가족에 대한 죄책감 등 감염인으로서 부딪혀야 하는 사건들을 대할 때 마다 나는 용기를 잃어 가고 있었다.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 중에서 사랑에 대한 실패는 진정한 감염인으로서 나 자신을 다시 보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지난 2002년, 이반 시티 채팅을 통해 3살 연하의 동생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두어 번 만나다가 곧 시들해졌다. 하지만 2003년 여름 내 생일날, 다시 채팅을 하다 그를 우연히 만나 저녁을 함께 했었다. 그리곤 또다시 만날 일이 없었고, 내 기억 속에서 그 동생은 천천히 지워져갔다.

 올 봄 채팅을 하던 중 다시 동생을 만나게 되었다. 사진을 교환 하던 중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함에 그를 기억해 냈고, 예전의 기억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3번째 만남이 우연이 아닌 필연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흠뻑 젖어 올랐다. 다시 만난 그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적당히 아저씨가 되어 있었고, 세상의 아픔까지도 함께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성숙함도 갖추고 있었다. 한 사람에게 오롯이 빠져 든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문득, 그에게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나는 그에게 ‘내 생일 날 앞치마를 사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는 흔쾌히 사주겠다고 했다. 그런 약속을 한 뒤로는 나는 갈등해야만 했다. 내가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할지, 아니면 알려주지 말아야할지, 알려준다면 언제 어떻게 알려야할지. 선택의 무게는 무쇠 솥을 올려놓은 것 마냥, 무겁게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나를 보는 동거인들에게(*참고로 나는 동인련에서 달팽과 리버와 같이 한 살림 공동체 rainbow tree를 이루고 산다.) 그가 다시 찾아 온 기쁨에 대해 얘기할 때면, 백만 불짜리 환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않을 수 없었다.


 현실은 그런 행복의 시간을 길게 보여 주지 않는다. 나는 한 달간의 고민의 시간을 마무리 짓기 위해 인사동의 M에서 고백했다. 그 보다 내가 더 굳어 버린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따뜻했다. 모든 것을 이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안심했고, 기뻤고,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고백의 시간 이후, 그를 향한 사랑은 더욱더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주 무서운 속도로...  여행 약속도 했다. 세상을 다 얻은 것이었다.

 허나 그 모든 것들은 한 순간 내려앉았다. 여행을 가기로 한 날 그는 오지 않았다. 전화로 두렵다고 했다. 애써 진정시키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가자고 했다. 다시 만남의 날을 정하고 기다렸다. 그 날도 오지 않았다. 그는 ‘힘드니 며칠만 시간을 갖고 쉬게 해 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것이 끝이었고, 다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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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인에 대한 편견은 당사자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깊다.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드러내지 못한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겐 고통일 것이다.



 감염인이다!

 처음에는 며칠 후면 다시 연락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일부러 가졌다. 10일이 지나고, 2주가 지나가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점 미쳐갔다. 사람들과의 소통이 두려워지기 시작했고, 스스로를 자학하기 시작했다. 내 몸 속에 흐르는 바이러스를 모조리 태워버리고 싶었다.  

 본가에 다녀 온 어느 일요일 오후(그와 헤어진 2주 째 되던 날!) 여느 때처럼 동인련에 모여서 북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동안 가슴 깊숙이 감춰왔던 슬픔이 터져 버렸다. 울었다. 소리를 질렀다. 한 시간이 넘도록 아주 서럽게 울고 소리 질렀다. 그토록 서럽게 울고 소리치면서 나는 비로소 감염인이라는 현실 안으로 넘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그녀의 충고처럼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 내었기 때문에 한 고개를 넘었다. 반쪽만 인정하던 내 모습을 더 잘 받아들이게 되었다고나 할까!

 한 동안 사람들의 눈에서 숨어버렸다. 그렇게 한 달 쯤을 그늘에서 숨소리도 참아가며 살아가던 중,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았다. 촛불 집회였다. 동인련과 함께 퀴어 퍼레이드가 끝나고 난 뒤 시청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수만 명 속에 내가 있었다. 명박이가 싫어 거리로 나온 그들 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 수만 개의 촛불의 바다 속에서 나는 세상 속의 나를 찾기 위해, 그리고 내가 살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한 손에는 촛불과 다른 손에는 피켓, 입으로는 이명박 OUT, 재협상을 외치면서 나는 ‘끈질긴 삶의 담금질’이란 게 무엇인지를 깨달아가고 있었다. 

 한 동안 나는 ‘살아야 한다’는 애절함으로 거리로 나가 무지개 깃발 아래에 서 있었다. 무지개를 보고 거리로 나온 새로운 이들과도 함께 했다. 숨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드러나 있기로 했지만 지금도 사람들과의 소통이 쉬운 건 아니다. 집회를 하는 동안에도 나는 약을 먹는다. 거리에서 체력이 소진된 상태로 약을 먹고 나면, 울렁증과 어지러움으로 바닥에 쓰러질 듯 하고 피로감마저 급격하게 몰려온다. 뒤풀이에 가서도 술잔을 같이 하지 못하고, 맥이 빠져 헤메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면 이런 이유였음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동성애자 + 감염인 = 나, 이것이 나의 진정한 모습이다. 이를 인정하기 위해 나는 상실을 배워야 했다. 직장을 잃어야 하는 상실, 사랑을 잃어야 하는 상실, 가족을 등져야 하는 상실... 모든 것이 상실 투성이가 되어 간다. 그러나 그 상실만큼 채워지는 것은 동인련 안에서의 나(감염인)에 대한 이해의 시선, 따뜻한 동지애이다. 깊은 상처에 울고 있을 때 맘껏 소리 지를 수 있었던 곳이 동인련의 rainbow tree이다. 나는 이 곳에서 한 열매를 맺고 산다. positive라는 열매일거다. 당신들에게 얘기한다. ‘I have HIV/AIDS!’ ... 그리고 ‘I will love’



* 감염인을 부를 때는 PL(People living with HIV/AIDS)이라고 합니다.

* 저는 하루에 두 번 약을 복용합니다. 칵테일 요법이라고 해서 세 가지 기전의 약을 섞어 복용하고 있습니다.
  약은 감염인에게는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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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30 21:52 신고 [Edit/Del] [Reply]
    해와_ 상실을 통해서 인생에서 더 값진 것을 배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영진님 글 읽고 들었어요. 우리들이 영진님을 잘 몰라서 그동안 배려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구요. 영진님, 화이팅이에요^^
  2. 마샬
    2008.07.30 23:11 [Edit/Del] [Reply]
    상실이란것도 일종의 무엇인가를 비워낸 거라면 다시 채워질 무언가가 너에게 틀림없이 생겨날거라 믿어.
    따뜻하고 좋은일이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 기운내고.
  3. 나라
    2008.07.31 01:14 [Edit/Del] [Reply]
    오라방! 히이- 헤죽.
  4. ...
    2008.07.31 12:28 [Edit/Del] [Reply]
    누구신진 잘 모르지만..당신의 글 읽고...상실수업을 저도 한번 읽어볼랍니다
    인간에겐 정말 감당할만큼의 고통만 있는걸까요?
    저는 요즘 제 앞에 처해진 고통을 감당하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상실이라는 말이 너무 싫습니다. 원치않는데 자꾸만 내 앞에서 사라져가고 지워져가는것을
    보고있어야만 하는 지금이 아무리 원치 않아도 현실이라는 것이..
    이 고통을 지금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길거리를 걷는 동안 무의식중에 눈물이 새나와도
    그것으로 마무리지으려 합니다. 더한 상실감을 표현하면 미쳐버릴 것 같기 때문에..
    그런데 정말 그렇게 표현해버리면 조금 나아질까요...
    아픈 옆지기를 보면서...자꾸 희망을 잃어가는 나를 질책하면서...
    동성애자라 가족이 아니라 나서지 못하고 속만 끓이고 있는 무력한 나를 탓하면서...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는것만 탓하면서..그렇게 사는것을 조금이라도 벗어날수있을까요..
  5. 2008.08.03 00:21 신고 [Edit/Del] [Reply]
    글 잘 읽고 갑니다....아, 이런 글을 읽고는 뭐라고 해야 좋을까요. 옆에 있었다면 꼭 한번, 안아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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