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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제1회 아시아 선진국 MSM&TG HIV/AIDS 회의 참가 후기

by 행성인 2011. 1. 10.

첫 시작을 함께 한 첫 번째 경험
-12월 제1회 아시아 선진국 MSM&TG HIV/AIDS 회의 참가 후기

제1회 아시아 선진국 MSM&TG HIV/AIDS 회의 참석자들과 함께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던 12월의 초입, 나는 나의, 비록 짧지만, 동인련 활동에서 가장 특별한 활동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바로 12월 1일부터 5일까지 싱가폴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 선진국 MSM&TG HIV/AIDS 회의’에 동인련 활동가의 자격으로 참석하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 종로나 이태원 근방에 한정되어 있었던 활동의 지평을 전국을 넘어 국제적인 영역으로 넓히는 경험이었기에 학기 중 임에도 자원을 했었고, 꽤 오랜 준비 끝에 마침내 그 결실을 보게 된 것이었다.


처음이라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는 건지, 나의 첫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인천공항의 기상악화로 연착, 중간 기착지인 상하이에서도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안개로 또 연착, 그리하여 목적지인 싱가폴에는 다음날 정오에나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 입국장 문을 나설 때 느껴지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후텁지근한 느낌, 동남아에 있는 나라다 보니 가로수는 야자수에, 그야말로 이국적인 풍경들, 이런 것들을 느껴볼 새도 없이 바로 호텔에 짐을 풀고 대충 씻은 다음 그날 오후 회의부터 참석하게 되었다.


이번 ‘제 1회 아시아 선진국 MSM&TG HIV/AIDS 회의’에서는 우선 참가국(한국, 일본, 중국, 홍콩, 대만, 태국, 싱가폴, 말레이시아) 각국의 HIV/AIDS 현황과 정부, 시민사회에서의 대응, 그리고 특별히 MSM이나 트랜스젠더, 성 노동자들과 그들의 커뮤니티에 대한 양측의 접근 방법과 그동안 수행해 온 활동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국의 위의 내용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이 있었고, 안타깝게도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우리나라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상태였다. 두 나라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내용에 대해 질의응답을 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다.


각국별로 동성애자들에 대한 접근방식은 많은 차이를 보였다. 싱가폴은 동성 간 성행위에 대해 많은 벌금을 부과하고 있었고, 말레이시아는 우리 기준으로는 반인권적인 태형을 선고하고 있었다. 반면 태국은 초·중·고 정규 교육과정에서 1년에 16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성 다양성과 평등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고, 채용 과정에서 차별이 없는 것은 물론 일부 직종에서는 게이들이 선호되는 모습도 보이고 있는 등 상당한 수준의 인권신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동아시아에 속한 우리나라와 일본은 딱 중간 정도의 수준이었다. HIV/AIDS에 대한 접근은, 대부분의 참가국들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방식의 접근을 하고 있어 전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정부의 정책, 커뮤니티 내에서의 인식이나 편견은 비슷한 정도를 보이고 있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커뮤니티 내에서 감염인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 강도가 높게 나타나 타국과는 상이한 모습을 보였다.


이 외에도 회의에서는 세부 주제별로 그룹을 나누어 그룹 토론을 하는 세션도 있었다. 총 네 차례에 걸쳐 12개의 주제로 나누어 토론이 진행되었는데, 나는 ‘MSM/TG 청소년층’, ‘차별적 법률 환경’의 세션에 참석했다. 이 그룹 토론에서 동인련이 진행하고 있는 ‘무지개학교 놀토반’과 같은 청소년 자긍심팀의 활동이 동료 간 자긍심 강화 및 고양에 대한 우수 사례로 발표되었고, ‘군형법 92조’와 이를 없애기 위한 위헌소송 운동이 한국의 동성애 차별적 법률과 이에 저항하는 운동의 예시로서 소개되었다.


회의가 끝난 후 저녁에는 회의에 참석한 활동가들과 저녁을 먹고 술자리를 함께 하면서 개인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아마도 회의 자체보다는 이게 진짜배기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사석에서 각국의 현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었고, 가끔은 ‘너희 나라에 게이바가 몇 개 있고 어디가 핫 하냐’는 등의 가벼운 이야기들도 나눌 수 있는 그런 좋은 자리가 되었다. 공식 술자리가 끝난 후에는 나를 비롯해 우리나라 NGO쪽 참가자들이 우리네 종로나 이태원 같은 게이바 밀집 거리의 한 바에서 오붓하게 앉아 인생 얘기라던가 활동에 대한 진솔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싱가폴은 먹거리는 싸지만, 술은 정말 비싸서 종류를 막론하고 가격이 우리나라의 두배 이상이었다.


둘째 날 회의에서는 회의 종반에 접어들어 각국에서 2인의 대표자를 뽑고, 그 대표자들끼리 따로 모여 아시아 주요국을 아우르는 새로운 MSM&TG HIV/AIDS에 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논의를 하게 되었다. 나도 그 자리에 한국 대표의 일원으로 참석했고, 한 시간 반 정도의 논의 끝에, 이 새로운 네트워크의 가칭은 ‘DAN’, 첫 번째 의장국은 한국, 차기 회의 개최국도 한국이라는 결정이 나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8월 부산에서 제 10회 ICAAP 회의가 개최되기 전까지 이 ‘DAN’의 실체를 확립하고 ICAAP 회의에서 선보일 수 있는 첫 성과를 내는 것을 그 목표로 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틀간의 회의가 끝났고, 밤이 되자 우리는 그 거리의 한 바에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고, 근처 클럽에서 자체 뒤풀이를 했다. 그날 늦은 밤 나는 현지인 친구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고, 오랜만에 근심걱정 없이 즐겁게 놀기도 했다. 금요일 밤이라 사람도 많고 분위기도 달아오르는 등,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친구들이 어울리는 우리네 이태원 분위기도 나는 그런 시간이었다.


이 회의 외에도 우리는 싱가폴 정부에서 주관하는 에이즈 컨퍼런스에 초청을 받아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주관의 에이즈 컨퍼런스는 한 눈에 보기에도 전문 의료인들과 관변 단체들을 위한 행사라는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했고, 우리는 그 내용의 수준이라던가 행사의 분위기가 우리나라 정부주도 행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느꼈다. 컨퍼런스 자체보다는 참석자나 자원봉사자로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여러 나라의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그들의 단체가 개최하는 행사에 초청을 받은 것이 더 큰 소득이자 좋은 기억이었다.


그렇게 싱가폴에서의 4박 5일이 가고, 나는 다시 귀국해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나의 첫 국제회의 참석이자 특별한 경험은 끝이 났다. 사실 이 회의를 통해 제의된 가칭 ‘DAN’이라는 네트워크가 요즘 들어서야 겨우 구체화 작업이 시작하려 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잘 성립되어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네트워크가 성립되고 말고를 떠나서 이 회의는 정부주도가 아닌 활동가들이 주최한 회의였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각국의 상황과 현실에 대해 교류하고 처음으로 타국의 활동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나에게 있어서는 이미 그 의미와 목표는 달성된 것이었다.


아마도 올해, 2011년에는 우리가 외국으로 나가기보다는 외국 활동가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활동하고 교류하는 기회가 많을 것 같다. 8월에 개최되는 10회 ICAAP 회의에 참석하게 되면 아마도 지난 12월에 싱가폴에서 만났던 활동가들을 거의 전부 만나게 될 것이다. 별로 많이 남지는 않은 시간이지만, 그들이 한국에 와 우리에게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궁금해 할 때, 우리가 이것만큼은 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성과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에 아마도 올해 우리는 이전보다 더 바쁘고 치열하게 움직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게는 그때 만났던 활동가들이나 이후 연락이 닿았던 분들로부터 메일이 오고 있다. 이렇게 연결은 시작되었다. 아마도 이 메일들에 대한 내용 발표나 협조 여부 결정은 이후 동인련 HIV/AIDS팀 회의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올해, 2011년 8월에 부산에서 개최되는 10회 아시아 태평양 HIV/AIDS 국제 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1인당 100만원 정도의 참가비가 든다. 그리고 아마도 그 회의에는 지난 12월 싱가폴에서 만났던 활동가들이 대부분 올 것이다. 그들과 나는 가칭 ‘DAN’이라는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시작점에 함께 있었다. 첫 시작을 함께 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이어나가고 그 깊이를 더 깊게 하기 위해, 8월의 어느 날 나는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다른 나라의 활동가들과 함께하고 새로운 네트워크의 시작을 알렸던 첫 시작을 함께 한 지난 12월 싱가폴에서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이재성(게이총각)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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