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법과 관행도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10차 아시아태평양 에이즈 대회 Gay&MSM/TG 커뮤니티포럼 개막발언

8월24일부터 30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는 제10차 아시아태평양 에이즈대회가 열렸습니다.이 글은 8월25일에 열린 Gay&MSM/TG 커뮤니티포럼 개막발언 전문입니다. 커뮤니티포럼은 청소년, 이주민, 성소수자, 마약사용자, 성노동자 등 에이즈에 취약한 그룹의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토론하는 자리였고 24일부터 3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25일은 분과별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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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 대회(ICAAP)를 맞이했습니다. ICAAP이 한국에서 개최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정부의 협조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고 PL과 에이즈 취약그룹들의 의견을 물어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에 중도에 행사가 취소될 뻔하기도 했습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라는 식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가 왜 ICAAP에 와야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자리에 함께 있습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PL, LGBT들의 인권이 왜 중요한지 우리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의 상황을 대변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을 넘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HIV/AIDS와 더불어 살아가거나 잘못된 HIV/AIDS 정책에 맞서 싸우는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 대회는 26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며 HIV/AIDS와 연관된 LGBT들의 삶과 인권에 대해 이야기됩니다. 아시아 태평양 빌리지에서는 각 나라의 활동소식을 접할 수 있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도전에 대해 토론할 것입니다. 한국의 LGBT들도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 대회에서 만날 모든 분들에게 그동안 가려져 있던 한국의 LGBT 인권단체를 알리고 서로의 활동을 교류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26일 개막식이 예정되어 있지만 우리의 시작은 오늘부터입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손짓발짓 써가며 서로 인사를 하고 활동을 나눈다면 벡스코에서 보내는 일주일간의 시간은 매우 소중할 것입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매우 다양합니다. 언어. 피부색. 각 나라의 정치, 경제적인 상황도 매우 다릅니다. LGBT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매우 다르고 국가 차원에서 에이즈에 대처하는 방법도 매우 다릅니다. 저는 10년 넘게 LGBT 인권활동을 하고 7년 정도 에이즈 인권활동을 했지만 다른 나라 상황에 대해 잘 모릅니다. 단순히 뉴스에서 단신으로 나오는 정도를 보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정도입니다. ICAAP을 준비하면서 한국 LGBT들의 삶에 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이제 이 벽을 넘어야 합니다. 동성애를 불법화하는 지역과는 함께 싸울 수 있어야 하고 LGBT 인권이 새롭게 진전되는 나라는 그 성과를 자국에만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HIV/AIDS 예방은 LGBT들의 삶의 권리와 매우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에이즈를 바라보는 잘못된 시선과도 함께 싸울 수 있어야 하고 감염인을 외면하고 배제하는 LGBT 커뮤니티와도 싸워야 합니다. ICAAP이 소중한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경제면에서 우수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인권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후진적입니다. 특히 LGBT, HIV/AIDS 이슈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LGBT가 사회적으로 가시화될수록 혐오와 차별은 점차 종교 중심으로 조직화되고 있고 LGBT들에게 조용히 있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동성애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 ‘에이즈는 동성애자들만 걸리는 질병이다’라는 구태의연한 논리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차별금지법 제정은 여전히 요원하며 정부는 제정할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그 어떤 법과 관행도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혐오에 가장 크게 노출된 그룹은 LGBT 청소년들입니다.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교육, 성정체성이 문제라고 말하는 교육. 에이즈의 진실이 아니라 공포만을 가르치는 교육. 이것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폭력과 차별에 노출된 LGBT 청소년들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가족과 학교를 떠날 것이고, 우울증과 자살 등 많은 위험에 노출될 것입니다. 특히 트랜스젠더들은 성별을 정정할 수 있는 법도 없고, 성전환이나 호르몬 수술비용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노동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불법화되어 있는 성노동은 이들을 HIV/AIDS에 더욱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고 소중한 우리의 삶 자체를 숨기며 살아가야만 하는 한국사회는 바뀌어야 합니다. HIV/AIDS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취약그룹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에이즈 예방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것은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모든 정부에게도 요구하는 말입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10차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 대회에서 국적을 넘는 소중한 친구와 동료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중요한 힘입니다.


감사합니다.


정욜_ 동성애자인권연대, 제10차 아시아태평양 에이즈대회 LGBT 소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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