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련 웹진 "너, 나, 우리 '랑'" 9월호
9월 14일... 한가위 보름달이 떴습니다.
이날 저녁 동인련 사무실에는, ‘한가위 수다떨기’란 제목의 프로그램으로 회원, 후원회원 그리고 동인련 활동을 통해 만났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무지개 색 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HIV/AIDS감염인 그리고 먼 나라에서 오신 이주노동자 게이, 이성애자까지... 1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의 사람들이... - 함께했습니다. 보름달이 유유히 동인련 사무실 위로 흘러가는 시간동안, 우리는 이들과 함께 쌓여있는 스트레스를 풀며 신나는 수다를 떨었습니다.
다큐멘터리 감독 이진우님(http://blog.naver.com/pugsang)이
동인련 사무실 2층에서 한가위 보름달이 흘러가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 날, 우리들 대부분은 명절날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과 어딘지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을 보낸 가운데,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모두들 사무실로 모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무실에 모여 수다를 떨면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어서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왜 굳이 내가 혹은 우리가 부모님, 친척들을 만나면서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하나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우리가 스스로의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정상가족’이라는 규격화된 논리가 우리를 비정상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겠지요. 혈연이라는 이 끈덕지고 끈질긴 관계는 ‘상처’와 ‘미안함’을 고민해야하기에 더욱 드러내는 것을 선택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당분간은 불편을 감수하고 이성애자인척 그들이 기대하는 사람의 허울을 뒤집어쓰고 웃어야 하는 반복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겠지요. 물론, 요즈음엔 예외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몇 해 전부터 동인련 회원들은 설날과 한가위날 저녁이면 항상 함께 모이고 있습니다. 서로의 집안사정을 굳이 시시콜콜 물어보는 것은 아니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서로의 심정을 쓰다듬어주며 서로에게 힘을 주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매년 우리는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혈연관계 이외에 의지할 수 있는 공간, 스스럼없이 기댈 수 있는 가족 공동체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하는 그림입니다.
물론 성소수자 가족, 공동체가 쉽게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가족을 구성하더라도 차별은 존재할 테니까요. 아플 때 병원에 가서도 보호자 항목에 이름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마주해야하고, 사보험은 가입하기도 힘들뿐더러 상속인을 지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싶어도 결혼을 하고 싶어도 그것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입니다. 사회가 응당 해야 하는 교육, 의료, 공공재 등 사회 공공성마저 훼손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될 판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성소수자가 그리는 가족을 현실에서 가능하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것들을 고민하며 싸워야합니다. 우리 성소수자들에게도 보편적 인권을 누리면서 살아갈 권리가 있기 때문에 결코 이 문제에서 물러설 수 없을 것입니다.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고 하던가요. 둥글고 환한 달만큼 동인련 회원, 후원회원을 비롯해 성소수자들의 앞날에 희망과 사랑이 가득하길 빌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원을 한가위 보름달에게 속삭이셨나요?
장병권 _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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