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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향 · 성별정체성/트랜스젠더

남자도 여자도 아닌 몸을 만들어놨어

by 행성인 2012. 5. 6.

이 글은 통합진보당 기관지 <진보정치>에 기고한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

 

정민석(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통합진보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4.11 총선으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을 즈음 한 통의 상담전화를 받았다. 수술실패. 그것도 성전환 수술이었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게 남자도 여자도 아닌 몸을 만들어놨어” 그녀의 상담은 이 말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었다.


내 몸과 싸운다.

 

상담을 의뢰한 소희(가명)씨는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다. MTF 트랜스젠더는 태어날 때 부여받은 성(性)은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인지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말한다. 그 반대는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 즉 여성의 성을 부여받았지만 남성으로 인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에게 성전환 수술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내가 나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느냐’지 사회에서 정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여성, 남성의 모습을 따를 필요는 없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고가의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호르몬치료를 받고 성전환 수술을 위해 돈을 모은다. 상상해보라. 남성으로 태어났는데 주민등록상 여성으로 되어 있다면 불편한 점이 얼마나 많겠는가. 행정상의 실수 이상이라면 ‘불편’한 정도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놀림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도 없고 자신이 원하는 꿈도 이룰 수 없을 것이며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마저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위아래로 훑어보며 남자인지 여자인지 끊임없이 확인해댈 것이다. 자신의 몸에 대해 비타협적인 삶은 트랜스젠더에게 너무나 자연스럽다. 주민등록증만큼 거추장스러운 것도 없을 것이다. 트랜스젠더에게 주민등록증을 요구하지 않는 비정규노동을 하거나 유흥업소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삶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소희씨도 꿈이 있었다. 해보고 싶은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여성의 몸으로 당당히 남성을 사랑하고 싶었다. 성전환 수술은 그녀의 삶에 너무나 중요한 목표였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모아둔 돈이 꽤 많았지만 성전환 수술을 위해 아끼고 또 아꼈다.

 

하지만 수소문해 찾아간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 2,000만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하고도 첫 번째 받은 성전환 수술은 실패였다. 그녀의 말대로 남자도 여자도 아닌 몸을 만들어 놨다. 재수술을 받으라고 다른 병원을 추천받았지만 거절당했다. 성전환 수술로 유명하다는 대학병원도 찾아다녔지만 왜 이렇게 몸을 만들어놨냐는 이야기만 들어야 했다.

 

소희씨는 삶의 의욕을 잃고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더 이상 자신을 가장하는 것이 싫고 자신의 몸에 솔직하고 싶었던 마음은 무참히 깨졌다. 급기야 농약을 먹고 자살시도를 했다. 소희씨는 부모님께 더 많은 수술비를 지원받아 태국으로 건너갔다. 힘들게 재수술은 마쳤지만 뒤늦게 찾아온 허무함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지금은 성별정정을 위해 법원을 다니고 있다. 성전환 수술은 성별정정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아직 ‘성전환자 성별정정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전환자들이 성별정정을 하기 위해서는 법원 판사의 주관적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 2006년 6월 대법원이 사법사상 처음으로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정정을 허가했고 같은 해 9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대법원예규)’이 제정되었다. 조건은 여전히 까다롭다. 관련법이 없는 이상 성전환자들은 판례와 지침에 의지해야 한다.

 

산 너머 산

 

소희씨는 그래도 용기를 내었다. 성전환 수술을 실패하고도 누구에게 말하지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주변의 트랜스젠더의 삶을 대변하고 싶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연락해 이 사실에 대해 알렸고 새누리당 최경희 의원에게도 메일을 보내 보좌관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최 의원은 2011년 국정감사에서 성전환 수술건수와 부작용 건수를 보건복지부에 질의했지만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소송을 맡아 줄 변호사를 계속 수소문해 알아보았다. 해외 판례를 찾았고 비슷한 피해사례를 가지고 있는 동료들을 만나 용기를 갖고 함께 소송을 준비해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문제는 산 너머 산이다. 아직 한국 사회는 성전환 수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도덕적으로만 단죄하려 한다. 성전환 수술을 단순히 성형외과 수술의 일부로만 여기는 것도 문제다. 국민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아 비용도 굉장히 높다. 성전환 수술, 부작용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곳도 없다. 만약 보건복지부가 호르몬 치료 및 성전환 수술, 부작용 정보에 대해 제때 제대로 제공했다면 성전환 수술 실패로 고통 받는 트랜스젠더의 숫자는 지금보다 적었을지도 모른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노회찬 의원은 17대 국회에서 ‘성전환자 성별정정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회기만료로 통과되지 못했다. (하지만 ‘성전환자 인권 실태조사’라는 의미있는 연구결과를 남겼다) 새누리당이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18대 국회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못한 채 막을 내리려 한다. 4.11 총선을 앞두고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성전환자 성별정정 특별법 제정은 물론 성전환 수술 및 호르몬치료의 국민건강보험화, 전문의료센터 마련, 정기적이고 통합적인 의료정보 제공 등을 진보신당, 녹색당, 통합진보당에 정책으로 제안했다. 특히 열 세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통합진보당 의원들은 법제도로 구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국가차원에서 성전환 수술 의료사고 문제에 대한 실태조사가 우선과제로 던져졌다.

 

이제 곧 한국 사회 최초로 성전환 수술 의료사고 문제에 대한 공익소송이 진행될 것이다. 다행히 소송대리를 맡겠다고 하는 공익변호사들을 만났다. 그 소식을 들은 소희씨는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고맙다고 말했다. 앞으로 힘든 소송과정이 있겠지만 성전환 수술 실패 후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가슴앓이를 해야 했던 시간을 비춰보면 소송과정은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른다. 소희씨는 지금 그동안 소송을 위해 준비해왔던 자료를 모으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해당 병원에 진료차트를 요구했지만 병원은 오히려 협박으로 일관했다. 이에 화가 난 소희씨는 보건복지부에 신고를 했고 관할구청은 해당 병원을 고소했다. 병원은 다시 소희씨를 만나자고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만만치 않은 투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소송대리를 맡기로 한 ‘희망을 만드는 법’ 소속 변호사들이 첫 면담과정에서 소희씨에게 “이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번 소송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혼자서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니기에 성소수자들의 관심과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소희씨와 같이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트랜스젠더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함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