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양
지난 달 22일 오후 7시 반 신촌 아름다운 교회에서 레이디가가 콘서트 반대 기도회가 열렸다. 본 기자는 은혜 받은 기독교인으로 위장해 기도회를 직접 취재했다. 사탄의 최종병기 그녀. 레이디가가를 무찌르기 위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성령 충만한 부르짖음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지하드.
큰일 났다. 소수의 은혜 받은 기독교인들이 레이디가가로 대변되는 동성애의 영과 음란의 영에 영적전쟁을 선전포고한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핵폭탄 보다 강력한 무기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무기의 이름은 바로 기도.(잘은 모르겠지만 목사님이 그렇다고 했다) 아마 기독교인들 중 한명이라도 전투적 기도를 하게 된다면 초속 50킬로의 열풍이 휘몰아치고 열선이 주위로 퍼져 나오며 감마선과 베타선이 몸을 꿰뚫어 주변의 100킬로 내의 모든 사람들이 의식하기도 전에 사망하려나? 어쨌든 이런 가공할 병기마저 갖춘 자들이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세상은 이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 그런 가공할 작전이 이루어진 곳은 신촌 한구석의 지하교회. 기자는 빗속을 뚫고 아마겟돈을 준비하는 그들을 찾아 나섰다.
레이디가가 넌 이미 죽어있다!!
예배당은 지하에 있는 것 치고는 넓고 깔끔했다. 소방법에 걸릴 것 같은 방 배치나 건물구조(2분정도 등산을 하니 화장실이 있는 느낌이랄까?)는 어차피 세속의 법 위에 계신 신의 역사하심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예배당 입구에서 기자는 이 성스러운 취재를 가장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는 포지션을 찾기 시작했고 방언의 기적이 한창 일어나고 있는 아주머니 옆으로 잡았다. 방언이라서 기도내용을 잘은 모르겠지만 세계 평화나 레이디가가의 몰락이나 바람난 남편의 귀가 중 하나였음은 분명한 것 같았다.
어쨌거나 주위의 상황을 이면지에 적던 기자는 문득 옆 아주머니의 시선을 느끼고 흠칫 놀랐다. 만약 이 아주머니가 내가 메모하는 내용을 보게 된다면…애초에 적대적인 공간에 들어오면서 몇 대 맞는 걸 각오는 했지만 250석이나 되는 좌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니 공포가 엄습했다. 한 대씩만 맞아도 250대. 흥에 겨워 두 대 때리는 사람도 있을 테니…몇 대 맞으면 파스나 붙이지 했던 기자는 파스대신 무덤에 붙일 잔디를 사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빨리 이면지를 뒤집어 메모를 가리려던 기자는 더욱더 큰 문제를 발견하고 말았다. 이면지로 쓰던 종이가 녹색당 성소수자 공약집이었던 것이다. 결국 기도하는 포즈로 이면지를 덮어버리고 당황을 숨기기 위해 방언의 은사가 내린 것처럼 좋아하는 노래를 중얼거렸다. 포포포포포포커페이스.
왕년에 칼로 탱화 좀 그어봤던 사람들이라 이 정도는 껌이로군.
이윽고 예배가 시작되었다. 기자는 양 옆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기도로 동성애로 가득한 세상을 구원하자고 인사한 후 찬양의 멜로디에 몸을 던졌다. 키가 훤칠한 찬양인도자는 꽤나 능숙하게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최근에 동영상으로 본 공연 중 이것과 비슷한 공연이 있었는데. 그게 레이디가가 공연이라는 건 좀 슬픈 일이긴 하지만. 물론 그런 사탄의 역사와 비교한다는 게 불경이다. 하여튼 레이디가가도 울고 갈 만큼의 멋진 찬양 실력을 보여줬다. 물론 가사가 몇 군데 틀린 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프로젝터 티브이로 가사를 내보내는 불경을 저지른 전산실담당자에게 파문을)
욕구불만인 부모님이 계시다면 교회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 될 만큼의 찬양이 끝나고 아름다운 교회 이규 목사님이 연단에 올라왔다. 다니엘서를 인용해 레이디가가라는 환란을 무찌르고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지도자가 필요함을 역설하시던 목사님은 갑자기 좌중을 둘러보시더니 이 중에도 이미 레이디가가나 사탄의 꼬임에 빠진 자가 있을지 모른다며 회계해야한다고 말했다.
‘젠장 아까 포커페이스 부른 거 들켰나?’
은혜 받은 통찰력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만한 광경에 필자는 공포에 빠져 비상구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러면서 한 기도는 필자를 더욱 공포에 몰아넣었다.
“주여 뱀을 무찌르러 온 우리 중에도 이미 뱀에게 물린 자가 있을지 모릅니다. 이들을 축복하시고…”
의도치 않게 축복을 받아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기도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많은 목자들이 일어나게 해주소서. 전문가들을 붙여주소서. 지도자들이 일어나게 해주소서. 상담가들이 일어나게 해주소서. 재정후원가들이 일어나게 해주소서? 재정후원가들이…”
음? 그랬군.
재정후원가들을!!!!!!!!
어쨌거나 목사님의 기도가 끝나고 여성 인도자 한 분이 올라오셨다. 이 분은 레이디가가로 대표되는 음란의 영과 동성애의 영이 아무리 날뛰어도 주님의 권세와 영광은 오히려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좋은 설교였다. 아마도? 설교 중간에 방언만 터지지 않았더라면 분명 엄청나게 은혜로운 내용을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라는 단어를 발음하실 때면 방언의 은사가 발동되는 바람에 설교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건 참 은혜롭게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분은 그런 은혜를 등에 업고 레이디가가에 대한 저주를 퍼부으셨다. 특히 우리의 기도가 이 땅에서 레이디가가를 떠나가게 할 거라는 부분은 나도 동의한다. 아마도 모든 공연과 스케줄이 끝나고 쇼핑할 목록마저 다 채운다면 레이디가가는 이 땅을 떠날 것이다. 어쨌거나 이 분은 모든 동성애와 음란의 영에 영적 전쟁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핵폭탄 보다 더 무서운 기도의 힘으로 무장한 250명의 결사대는 기도와 찬양으로 이를 지지했다.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이 250명은 혹독한 가사노동으로 단련된 최고의 아주머니들이거나 생활전선의 최전방에서 자신을 수양한 전문가들이었다. 핵폭탄보다 무서운 기도력은 차치하고서라도 우리가 이들 자체의 전투력을 감내할 수 있을지도 심히 걱정이 되었다. 맛있는 반찬으로 우리에게 내분을 일으키거나 최고의 친절로 우리의 마음을 전향시키는 전술에 대한 대비책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여성 인도자가 내려가고 레이디가가의 악행을 담은 영상물을 방송했다. 그 영상물에 따르면 레이디가가는 사탄과 교류하며 자신의 출세와 만족을 위해 사탄의 병기로 활약함이 분명했다. 논리도 분명했고 증거도 충분했다. 다만 화면 속의 여자가 레이디가가가 맞는지는 좀 의문이었다. 아니 초대형 HD티브이로 화면을 틀면서 도트가 드러날 정도의 화질은 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정신없는 편집이란…과장 좀 보태면 화면 안에 나온 사람이 산타클로스나 설인 혹은 네스호의 괴물이라고 해도 믿어질 판이었다.
마지막으로 연단에 올라온 이용희 교수는 먼저 가가에 대해 우호적인 보도를 한 언론을 축복했다. 기도만해도 핵폭탄에 버금가는 위력일진데 축복을 받았으니…기자들에게 동정심이 느껴졌다. 더불어 음란한 몸짓을 하는 사람들과 동성애의 영을 가진 이들도 축복 받았다. 고로
동인련은 멸망했다.
어쨌든 교수는 뱀의 머리를 밟듯 동성애의 영과 음란의 영을 짓밟아 없애고 모든 교회가 레이디가가의 공연에 대해 기도하고 축복하고 저주해야한다고 했다. 이제 바야흐로 영적인 십자포화를 거행하자는 말이었다. 아마도 레이디가가의 악에 물든 영혼은 정화되다 못해 태어나기 전의 상태에 될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요즘 한국에서도 동성애 문화가 대중화 되고 있다며 2007년도에는 동성애 차별법 저지가 수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서는 점점 동성애에 우호적인 언론도 생겨나고 있고 사회적 분위도 그에따라 전환된다면서 더욱더 열심히 싸워야 한다고 역정을 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여러분 동성애 차별법은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법이 아니라 동성애도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 놓고 생각하자는 법입니다."
어라? 이 사람 의외로 잘 알고 있잖아. 물론 그 뒤에 나온 말은 조금 비약이 심하긴 했지만.
"성교육 시간에 동성애를 가르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동성애에서 더 나아가면 수간까지 갑니다!"
도대체 어떻게 사람을 사랑해야 짐승을 겁간할 폭력성을 갖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들은 그렇게 믿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같은 맥락에서 시금치를 먹으면 힘이 세지고 신문기자가 빨간 팬티만 입으면 하늘을 나는 것도 믿겠지. 어쩌면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러면서 우리도 그 동안의 음담패설을 반성하고 주님의 아들과 자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소리를 했다. 분명 이 중에도 음란한 자가 있을 거라고. 아까 목사님도 그렇고 통찰력이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아는 한에도 이 중에 분명 한 명은 있었으니까. 내 하드 디스크를 뒤져본다면 그게 누군지도 알게 되겠지. 물론 내가 좋아하는 새 이름을 모르면 찾기는 좀 힘들 거다.
이후의 시간은 끝없는 기도의 장이었다. 아버지를 부르짖고-아까 그 여자 인도자는 여전히 아버지 발음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그것에 세 배쯤 주를 부르고 거기에 네 배 정도 동성애의 영을 짓밟고 그것에 열 배 정도 포커페이스를 불러댔다. 아 물론 포커페이스는 나만 불렀지만. 주위 사람들이 알았다면 같이 부르자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옆의 아저씨는 가가노래를 외국 찬송가라고 속이고 가르쳐준 다음 부르자고 하면 부를 정도로 레이디가가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가가를 그놈이라고 부르지도 않았겠지. 이름도 레이디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영적 아마겟돈은 그렇게 끝났다. 느낌이 어쩠냐고?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나올 때 보니 내 우산이 없어져 있었으니까. 아마도 불순한 마음이 있었던 나에게 내린 벌일게다. 진짜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설마 아마겟돈에 참가한 신성한 이들이 내 우산을 가져가는 죄악을 범하지는 않았겠지. 도둑질은 십계에서도 금지된 거니까. 머리카락도 없는데 비가 좀 많이 오더라. 젠장.
동인련 웹진팀- 강양(yzomb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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