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편지

Posted at 2012. 8. 2. 21:59// Posted in 회원 이야기/재경의편지조작단


두 번째 편지


미안해. 제육볶음을 먹으면서 네 생각을 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것 때문에 미안한 것은 아니야. 제육볶음과 내가 좋아하는 체리 사이의 거리만큼, 너와 나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 생각하는거야. 그래서 미안한거야.


그 마음 때문에,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서 설거지를 하면서 잠시 울었어.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어. 부재중 전화가 떠 있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네 핸드폰 번호를 일곱 자리까지 누르다가, 종료버튼을 눌렀어. 도저히 너에게 전화할 용기 따위는 나지 않았어.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를 알기 시작했더라? 아마 고등학교 시절부터였을 거야. 네가 나에게, 내가 너에게 다가갔거든. 그게 뭐였는지, 어떤 이유였는지도 모른 채.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이었어. 반갑게 손을 흔드는 나를 보자마자, 너는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가리켰어. 솔직히 말하면 그 반지를 자랑하고 싶어서 너를 만나자고 한 거였어. 선물 받았어, 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어. “남자친구가?” 라고 네가 물었을 때, 고개를 저었어. 그리고 말했지. “시어머니될 분이 사주셨어.” 네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어. 고개를 숙였고, 다시는 들지 않았지.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때 나는 말을 멈춰야했어. 하지만 멈춰지지 않았어.


모든 것을 말하고 싶었거든. 넌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이 모든 이야기를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권리’라는 단어를 알려준 것은 너였으니까. 너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지. 아마 고등학교 2학년 때였을거야. “너와 나는 가장 친한 친구니까, 서로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 ‘권리’라는 말이, 열여덟 살짜리에게 나오는 말치고는 거창했지만, 똑같은 열여덟의 나의 마음에 박혔어.


그 ‘권리’라는 단어를 처음 내뱉은 날, 처음으로 사귀고 있는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사귄지 일 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네 남자친구에 대한 의문이 풀렸지. 열여덟, 너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어. 내 입만 쳐다보고 있었어. 난 조용히 웃은 채 고개를 끄덕였어. 너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미소를 지었지.


우리는 평생 동안 서로의 웃음의 거리를 망각한 채 살아왔던 것 같아. 내가 오늘에서야 너를 떠올리고, 남자친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망설이는지, 왜 너를 생각하면서 울었는지, 왜 너를 처음 만났을 때 웃었는지, 웃음에는 어떤 비밀이 들어 있는 거였는지. 아무것도 몰라.


난 그것만 생각하면서 너를 만나왔었어. ‘권리’라는 것, 달콤한 말이거든. 하지만 그 말 안에는 나도 널 이해해야한다는 말이 들어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어. 이제야 깨달았어.


실은 난 늘 불만이었어. 난 네가 누구를 만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녀들을 실제로 볼 수 없었거든. 남자친구와 함께 보자고 해도, 넌 늘 고개를 저었어. 안된다고 말이야. 난 네가 그 ‘권리’를 위반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난 정말이지 너에게 숨기는 게 없었거든. 남자친구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너에게 말했었어. 처음 여행을 갔던 날도, 처음으로 집에 소개받아서 간 날과 내가 사랑한 남자를 낳아준 어머니께서 내 손을 꼭 잡으며 웃었던 날에 대해서, 남자친구네 가족 모임에 초대받은 날도, 모두 너에게 말했어.


차라리 숨기는 게 나았어. 그 제육볶음 출산휴가 중이신 내 사수께서 사주신거야. 잠깐 회사에 들렀거든. 아이와 남편과 함께. 아이는 남편분을 쏙 빼닮았더라. 꼬물꼬물한 발가락과 손가락이 귀여워서 한참을 만지작거렸어. 나도 곧 아이를 갖게 될 것 같았거든. 내가 낳을 아이는 저 아이보다 더 예쁠거라고 생각했어. 아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겠지. 난 그 아이를 데리고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함께 사무실을 찾겠지. 무척 기쁘고 자랑스러울 거야.


그때 네가 울던 날을 생각했어. 넌 일주일 내내 나를 찾아와서 울었어. 나는 하품을 하면서 건성으로 너의 등을 토닥거렸지. 주저앉아서 울고 있는 너를 보면서도 말이야. 네 애인이 병원에 있다고 했어. 꽤 오랫동안 함께한 아이였어. 그건 기억나, 그런 것까지 잊어버리는 것은 아냐. 넌 그 애인의 가족들에게는 고작 아는 동생일 수밖에 없었어. 넌 애인을 응급실에 데리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수고했다고 이제 집으로 가도 된다고, 애인의 가족들에게 택시비만을 받고 집으로 와야 했지. 이제 보호자가 왔으니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애인과는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았었어. 알고 있었는데도, 난 그 마음을 알지 못했어. 


미안해. 네 울음의 의미를 알지 못해서. 내가 쉽게 가질 수 있는 저 모든 권리들이, 풍경들이 너에게는 아마 한참동안 내에 가질 수 없는 것들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 네가 왜 애인들을 나에게 소개시켜주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았어. 미안해,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이제라도 너의 마음을 알아줬으니, 다시 나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하지 않을게. 네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게 어디라도 달려갈거야. 그게 누구라든지 축하해줄게, 그리고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네 옆에 있을거야. 그게 평생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함께 할게. 옆에서 너와 함께 싸워줄게. 이제, 우리 같이 행복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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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08 19:10 [Edit/Del] [Reply]
    대박 감동받은 편지. 이런 편지 한번 받아보고 싶다능ㅠ
  2. 두글자의 압박
    2012.08.18 15:45 [Edit/Del] [Reply]
    다른 사람의 경험이라도, 어느 정도의 접점이 있어야 공감이 되기 마련인데... 나라면, 저렇게 느낄까. 라고 생각하면서 가슴이 턱 막히다 뭔가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따끔, 이거땜에 읽기를 멈췄던 듯 해요. 좀 불편했던 듯.

    마지막문단에서 겨우 맘 추스렸음. 내 친구녀석들은 대체 어디서 뭐 하고 있는거냐, 깨닫지 않고!
    • 재경
      2012.08.28 16:10 [Edit/Del]
      누군가 그러더라구요.
      커밍아웃을 했다고 해서 곧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게 아니라고.
      시간이 필요한거라고. 기다려 줘야 한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좀 빨리 이해해주고 깨달아줬음 싶죠.
  3. 계영
    2013.03.16 23:10 [Edit/Del] [Reply]
    맘이... 자꾸 울먹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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