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제1회 육우당 문학상 기획자)

 

동기

의도는 단순했다. 먼저 육우당을 두고 이야기할 때마다 회고되는 익숙한 기억들- 일테면 시조시인이 꿈이었다는 것과 떠난 후 남겨진 몇 편의 시조와 일기를 책으로 엮었다는 사실이 하나라면, 10주기 즈음부터 그의 글을 진지하게 읽고 되새기는 시도들이 많아지고, 그들 중 누군가로부터 청소년 성소수자의 이야기들이 좀 더 많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나온 것이 또 하나의 동기였다. 이를테면 청소년에게 동성애가 해악하다는 구호와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조직되는 소위 ‘문용린시대’에 청소년성소수자의 목소리가 좀 더 울림을 가지면 좋겠다는 바람들, 아니, ‘청소년’, ‘성소수자’라는 당사자성에 대상을 좁히지 않더라도 누구든지 청소년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요구가 높아진 것이다.

위의 요구들은 ‘텍스트’가 생산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주장으로 구체화되고, 육우당 10주기 추모회의와 더불어 요구들이 본격화되면서 몇몇 아이디어들이 논의되었다. (개중에 과거시험처럼 징치고 대한문 앞에서 시조백일장을 하자는 흥미로운 의견들도 있었지만,) 논의 끝에 결정된 건 문학상이었다.

 

준비

육우당 10주기 문화제를 준비하는 가운데 나온 아이디어였던지라 문학상은 문화제의 부수적이고 일회적인 이벤트로 끝날 소지가 다분했다. 하지만 동인련의 독립적인 사업으로 가져가자는 기획단의 의지에 힘입어 문학상은 안정된 프로젝트의 환경 속에서 준비될 수 있었다.

홍보가 시작되면서 주변의 기대와 관심들이 들려왔다. 저마다 글을 써봐야겠다는 이야기, 소싯적에 썼지만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 간직해온 글을 응모하고 싶다는 몇몇의 참여의사는 준비과정에 적잖은 기대와 책임을 안겨주었다. 어쩌면 이번 행사는 저마다 홀로 안아온 외로운 분투의 기억들을 발굴해내는 시도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작부터 산재해있었다. 10주기 문화제에 일정이 맞춰지던 터라 시간이 2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홍보와 응모접수, 심사와 발표 모두가 진행되어야 했던 것이다. 실무야 부지런히 준비하면 되지만, 제일 걱정되는 건 시간부족 속에서 양질의 글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였다.

시간의 촉박함 속에서도 마음을 다잡고 4월 초부터 중순까지 접수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심사일이 접수마감일로부터 며칠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텍스트를 전부 읽을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따르면서 고민 끝에 실시간으로 텍스트들을 정리하고, 수시로 심사위원들과 공유하는 방식을 택했다.

접수 후반에는 여지없이 작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점수마감일 자정을 치는 순간 내리 들어온 작품들은 15편에 달했다. 그렇게 최종 응모된 작품 수는 63편. 예상했던 50편보다 훨씬 웃돌았다.

‘악’소리와 함께 밤을 새며 텍스트를 정리하고 읽어가며 추천작들을 선별했다. 시간에 비례해서 단어수도 의당 줄어들지 않을까 주판알을 튕기며 시의 비중이 더 높으리라는 추측을 했지만, 생각보다 수필과 소설들의 양이 더 많았다. 개중에는 노래 가사를 옮겨 쓴 것처럼 흔한 문장들로 조합된 글들이 있는가 하면, 표현과 구성 면에서 높은 수준을 보여줌에도 주제에 부합하지 않는 글들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이런 경우 눈을 질끈 감고 걸러낼 수밖에 없었다.

 

심사

청소년성소수자로서의 경험, 또는 청소년시절의 기억을 비밀처럼 간직하고 묵혀둔 이들에게 심상들을 문장으로 빚어내는 일은 사적인 작업이지만 동시에 많은 독자들을 향해 있다. 그래서 경험과 정서를 글로 새기는 행위는 카페와 술집에서 나누는 수다와 담소들 또는 인터뷰나 긴급한 구호들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 은밀함이 확보되지만 동시에 특정한 형식을 갖춤으로써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열린 구조를 지향하는 것이다.

예상대로 혹은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작품들은 저마다 은밀한 고백을 들려주고 있었다. 때론 시를 빌어 단어들을 빚어내는가 하면, 소설의 형식으로 서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접수하고 걸러내는 위치를 자각하는 동안에도 글을 읽는 동안은 숨죽여 단어와 문장들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해야겠다. 며칠 밤 동안 텍스트를 읽었던 시간은 기획과정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단어들로 기워낸 삶의 편린들, 털 뭉치 속에서 실을 뽑아내듯 언어로 빚어낸 이야기들은 한편으로 기획자를 포함한 심사위원들을 괴롭혔지만, 다른 한편으론 마음 속 꽃비가 되어 읽는 이들의 마음을 아득하게 적셔주고도 남았으리라.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획자의 감상에 그치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심사위원의 위치는 기획자와는 다를 터, 글을 음미하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 심사위원들은 기존 심사기준- 1) 청소년 성소수자의 삶과 정서를 진솔하게 드러낸 글, 2)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문제의식을 문장에 잘 녹여낸 글 –에 덧붙여 문장표현과 글의 구성까지 기준으로 첨가하여 텍스트들을 평가했다.

평가기준을 논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육우당문학상의 취지를 정리해주기도 했다. 이른바 이번 행사는 순수문학의 자웅을 겨루기보다 성소수자들의 글쓰기를 독려하고, 글 쓰는 성소수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행사라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산문과 운문으로 기본적인 장르분배를 하고, 당선작 아래 가작을 두어 양질의 글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해주면서 문학상의 미흡한 지점들을 지적하고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그렇게 진행된 심사에서 당선작은 무난하게 의견일치를 보았다. 하지만 우수작 다섯 편을 선별하는 데에는 의견이 분분했다. 실제로 우수작으로 선정된 텍스트 목록이 문학상을 기획한 필자의 예상과 많이 달라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분명 좋은 글을 놓쳤던 기획자의 게으른 눈을 탓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가슴 속에 남는 글이 우수작 목록에 들어있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컸다(물론, 여기에는 이후 대회에서 장르가 편중될 우려를 막기 위해 장르를 안배했다는 의견과 더불어 기존 성소수자를 둘러싼 진부한 서사들은 우수작 선별에서 제외했다는 심사위원들의 속 깊은 뜻이 담겨있다.).

필자의 좁은 식견을 반성하며, 심사숙고 끝에 얻은 결과를 수긍했지만,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아쉬움에 속이 탔다(오죽하면 심사결과를 전해들은 날 밤에는 체크해놓은 텍스트들이 배를 타고 굿바이 인사를 건네는 꿈을 꿀 정도였을까!). 기획자의 주제 넘는 바람이겠지만, 심중에 남았던 작품들만큼은 어떻게든 함께 읽고 싶었다. 그래서 낸 계획이 1회 차 문학상에는 내지 않기로 잠정 합의되었던 문집을 작게라도 내자는 것. ‘기획의 꽃’은 문집 발행이 아니겠는가(!)를 외쳤지만, 사실 당선작만 선보이는 것보다는 양질의 글들을 함께 읽는 것이 이번 행사취지에 보다 가까울 것이다. 경합에 붙여졌던 텍스트들을 당선작 및 우수작들과 함께 문집으로 싣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동인련에서는 흔쾌히 하반기에 낼 수 있도록 지원해주겠다고 답해줬다.

 

10주기가 되어서야 기획된 문학상은 이미 늦은 시도였는지 모른다(어쩌면 우리는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육우당이 글을 써야했던 ‘절실함’을 다시 읽어내고자 노력하는 것인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굳이 육우당의 이름을 빌어 문학상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문학상을 육우당에 대한 나름의 애도행위로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단순히 그를 기억하고 회고하면서 부재를 봉합하는 시도만을 가리키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적 타자로서 부딪힐 수밖에 없던 가로막길 앞에서 스스로 떠나기를 선택한 그의 극단적 외침은 10년이 지나서야 살아있는 이들의 언어를 매개로 다시금 반복된다. 다만 오늘의 문장들은 고백과 호소의 단어들로 복구 불가능한 부재의 상흔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문학상은, 이러한 애도를 저마다의 실천으로 집단화하는 계기로, 투쟁을 통해 청소년성소수자이슈가 성장할 수 있었던 10년의 시차 속에 지속적인 ‘울림(혹은 울음/웃음…욼음?)’을 채워 넣는 시도로 이해되어야한다. 말하자면 문학상은 육우당이 부재하는 자리에 그동안 이야기되지 않았던, 유령처럼 지낼 수밖에 없었던 청소년성소수자로서의 삶과 기억들을 그러모으는 노력에 가까운 것이다. 오늘의 문장들은 육우당이 새겨온 단어들에 화답하며 새로이 생성될 ‘응답’을 기다린다. 그리고 문장을 매개로 청소년성소수자로서의 삶을 자각하고 부르짖었던 육우당의 글쓰기와 공명하는 시도 속에서 우리는 정치성을, 혹은 정치적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처음 준비하는 문학상이었던지라 토대부터 세워야 했기에 기획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미흡한 부분이 여실히 드러났지만, 첫발에 만족할 수는 없을 터. 그럼에도 탄탄하게 프로그램을 준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실무를 도맡아 담당해준 사무국 활동가들의 도움이 컸다. 문학상의 아이디어부터 경제적 지원까지도 아끼지 않았던 동인련 운영위의 지원 또한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이들에게서 어떤 ‘절실함’을 발견했다는 점은 청소년성소수자운동의 또 다른 가능성으로, 혹은 과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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