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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군형법 군인권

제게 있지도 않지만 줘도 안 갖는 남성성을 거부합니다

by 행성인 2013. 12. 25.

이 글은 '전쟁 없는 세상'에서 기고 받았습니다.


유정민석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저는 2006년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1년여 남짓 수감생활을 하다가 2008년 8월 15일에,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후 조치했던 광복절 특사로 고맙게도(?) 출소하게 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유정민석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병역거부자분들이 모두 하나같이 마음고생을 할테지만, 저 역시도 동성애자/여성주의자라는 저의 남다른 위치로 인해 삶에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내밀한 이야기를 이렇게 하게 돼서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두서없는 제 이야기를 통해서 교감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된다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병역거부자와 성적소수자라는 이중적인 소수자성을 지닌 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병역거부를 하게 되기까지
 
제가 병역거부를 하게 된 까닭을 설명하려면, 우선 무엇보다 저의 성소수자라는 정체성과 여성주의자라는 정체성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러하겠지만, 저 역시 군복무의 압박이 점점 조여오던 당시에는 군복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느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제 자신이 남성성이 결여되어있음은 물론이거니와 구태여 가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왜 가야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것에 대한 질문과 의심은 금기시된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아마 어려서부터 혼란스러웠던 동성애자라는 저의 정체성과, 이를 통해 막연히 갖고 있었던 남성성에 대한 거부반응과 혐오가 가장 큰 이유였을 것입니다. ‘남성성’은 저한테 없는 것이지만, 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다들 의아하게 생각하고, 창피하고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와 같은 동성애자 친구들의 다수는 이러한 사회적 통념에 자신이 부응하지 못 하는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는 자신이 도덕적으로 잘못하고 있다는 식으로 자기비하를 하곤 합니다. 일종의 ‘허위의식’같은 것이지요. 아무튼 저의 경우에는 남성성은 무엇보다 별로 인류에게 좋지 않은 가치인 듯 싶은데, 왜 이런 것이 응당 지녀야할 가치로 상찬받아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 투성이었습니다. 사실은 싫다는 감정이 조금 더 명료한 형태로 주조된 것은 여성주의와 같은 이론들을 만나면서 부터였습니다. 그전부터는 막연히 ‘난 동성애자인데, 남성성이 별로 없고 더군다나 혐오하기까지 하는데... 내가 군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남성성이 죽도록 싫은데... 남들 다 가는 것인데 내가 너무 유별난 건 아닌가... 부모님과는 어떻게 갈등을 풀어야하나... 왜 이런 나를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걸까... 내 신분은 앞으로 어찌 되는 걸까...’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남성성이라는 것은 무언가 쟁취해야 하는 것이고, 경쟁, 폭력, 획일, 우열과 같은 수직적인 느낌이 드는 것 투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성스럽다’라고 정의된 일련의 감정들은 무가치하고, 남자답지 못하다고 일컬어지는 행위들은 창피한 것이기에 이것들을 억제하고 복종하거나 지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엄마 화장품을 바르거나 치마를 입어보기도 하고 또 여성스럽다고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던 제가 어려서 들었던 말 중의 하나는 ‘여자 새끼’라는 말이었습니다. 저의 남성과 여성이 모두 실추되는 듯한 그 역설적인 조롱 투의 욕설에, 그때부터 저는 혼란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남성성은 제가 가지고 있지도 않았거니와 ‘줘도 안 갖는’ 것이었습니다.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성적으로는 남성에게 더욱 끌림을 느끼고 여성에게는 성적인 호기심을 느끼지 않았으나, 그것에 대해 사회는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당연히 저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거나 먼 외국에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범죄처럼 일절 금기시 하는 것에 대해 저는 예리하게 직감하였고, 살기 위해 사회적 터부인 저의 성적 지향을 숨겨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는 게 병’이라는 말처럼, 대학 세미나를 통하여 접하게 된 여성주의의 언어는 저를 더욱 군대에 가기 싫어하게 만들었습니다. 남성성을 혐오하게 만들고, 따라서 남성성의 완성을 이룩하는 공간인 군대를 더욱 가기 싫고 혐오스러워 하게 만든 것은 여성주의였습니다. 제가 처음 여성주의를 접했을 때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저를 설명해주고, 더군다나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며, 나를 옭죄는 세상이 잘못된 것이다’라고 다독여줬던, 제가 누군지 알게 해준 그런 언어를 접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하나 이론들을 알아가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었고, 세상이 돌아가는 불편한 진실의 작동방식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한 앎은 나중에 저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병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오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여하튼 그때 알게 되었던 한국사회의 군사주의와 남성성에 관한 비판적인 책들, 특히 생태주의와 여성주의가 결합된, 여성성을 긍정하고 남성성을 비판하는 ‘에코페미니즘’이라는 이론을 접하였을 때 ‘그래, 이거야!’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것들이 한 큐에 꿰어지지는 않았지만, 퍼즐 조각처럼 약간씩 맞춰져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찌 치하의 유태인들이나 예수를 부정해야했던 베드로처럼 저의 존재를 숨기거나 일부러 모르는 척 했던 것에서, 점점 더 저를 긍정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듯 군대와 남성성에 대해서 그전에 가졌던 무의식적이고 막연했던 반감들은 여성주의를 접하고부터는 조금씩 언어화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병역거부라는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는 엄두를 낼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그것의 존재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후일이 어떻게 기약될지 장담할 수 없었고 정보도 부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막연한 공포감이 선뜻 병역거부를 하지 못하게 했던 가장 커다란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뜻은 있지만 언감생심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었던 병역거부에 대해 고민하던 와중에 동성애자 인권캠프를 갔을 때 만났던, 저보다 먼저 병역거부를 했던 분께 병역거부에 대해 물어봤을 때 돌아왔던 답변은, 저를 더욱 주눅 들게 하였습니다. 제게 병역거부의 존재를 알게 해준 고마운 분이었지만, 또한 그분이 없었다면 병역거부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기에 더욱 롤모델 같은 분이었지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라고 물어봤을 때 돌아왔던 답변은 “양심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역질문이었습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된 저는 답변할 수 없었고 머뭇거렸습니다.


저의 막연한 군대에 대한 짜증과 두려움, 거부감은 언어로 표현되기엔 너무나 미흡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양심’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도, 설명할 수 있는 말주변도 없었던 저는 침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분은 “UN에서는 양심을 이렇게 저렇게 규정한다”라는 부연을 했습니다. UN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듣는 순간, ‘아... 병역거부라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나와 거리가 먼 그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눅이 들었습니다. ‘나는 병역거부라는 걸 할 만큼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런건 뭔가 똑똑하고, 정말 진지하며, 확고하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 그런 사람만이 하는구나. 나처럼 단순히 군대 가기 싫어서 꾀병부리는 것 같은 사람은 해당되지 않는 그런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어줍잖은 얄팍한 지식/권력과 오만으로 으스대며 마치 성경에 대한 해석을 독점했던 중세 성직자들처럼 굴며 고민하는 후배의 야코를 죽이던 그 오만함이 우스워서 콧방귀도 안 뀌어지긴 하지만 말입니다. 병역거부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양심은 거창한 것이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확고히 알게 되었으니깐 말입니다.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이라고, 같은 소수자끼리 ‘도토리 키재기’이지 누가 더 잘났네 위세부리는 것이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소심했던 저는 고양이 쥐 걱정해주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더 고민이 되면 연락을 주라”고 말하던 그 사람의 당부가 고마웠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다시 연락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그래, 까짓거 어쩔 수 없구나. 누구나 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피할 방법도 녹록치 않은 것이라면, 가서 부딪혀 보자’라는 자기합리화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자기합리화가 있었고, 사실 병역거부를 하게 된다면 준비되지 않은 제가 짊어져야 할 그 많은 짐들이 부담으로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또 당시의 저는 지금처럼 쾌락주의자가 아니였기에, 막상 남들이 다 가는 군대를 저 혼자 회피하려 한다는게, 마치 이기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성적소수자로서 병역거부를 한 사람은 유일무이하게 한 사람이 있었을 뿐이고 동성애자들은 대부분 군대에서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서도 군복무를 할텐데, 오히려 이 사람들의 고통을 나혼자 회피하려는게 아닌가, 하는 이상한 도덕주의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성애자들에게 군대는 악몽과 같은 곳이기에 ‘그래, 그곳이 현장이라고 생각하고 부딪혀 보자’라는 참 이상한 자기합리화도 했었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항상 병역거부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순 없었습니다. 내가 이미 알게 된 군대에 대한 비판적 시각들과 진실들을 버릴 순 없었습니다. 이미 동굴 밖의 이데아의 진실을 알게 된 사람은, 다시 그림자뿐인 세계로 되돌아 갈 수 없듯이 말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들, 옳은 것이 이것이라는 판단들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숨기거나 아닌 척 연기를 할 뿐이겠지요.


그러던 차에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여차하면 병역거부를 할 수도 있는 선택지를 아예 배제하진 않았기에, 군복무 당시 권인숙 선생님의『대한민국은 군대다』와 박노자 선생님의『당신들의 대한민국』같은 책을 품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비록 군복무를 하게 되었지만, 이분들이 이야기하던 진실을 되새기자’ 라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끔찍한 현실에서 정신만이라도 도피하여 그 책들로 위안을 삼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분들은 진실에 가까운 말씀들을 하시는 분들이지만, 군대에서는 고참의 명령이 진리이자 진실이기 때문에, 저는 온전한 가치관을 유지하고 또 그 책들로라도 위안을 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언어는 저를 더욱 힘겹게 하였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극심할수록, 또한 군대가 요구하는 남성성과 이성애 중심문화, 폭력과 구타의 현실에 대해 그 책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순된 이상과 현실은 저를 더더욱 힘겹게 했고, 그로인해 더더욱 군대가 혐오스럽고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제게, 일상적 업무를 숙지하고 적응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의 고민을 토로한다면 조롱과 비웃음, 구타가 되돌아올 것이 자명하기에, 저는 함구했습니다. 이런 생활이 얼른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군대라는 곳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고, 하루가 1년 같았습니다. 그나마 제가 제일 마음의 안정을 느꼈던 공간은 화장실의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선임병들의 감시의 눈을 피하고, 유일하게 이성애 남성들의 폭력에서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었던 곳은 역설적이게도 냄새나고 더러운 화장실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샤르트르의 ‘타자는 지옥’이라는 말이 참 적절한 곳이 군대인 것 같습니다. 그러던 차에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의병 전역이었습니다. 성소수자라는 저의 정체성을 팔아서라도 제대를 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정체성 장애’라는 의학적 판정을 받는다면, 군대를 제대할 수 있는 길도 있을거라는 판단에서 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뭐가 잘못된거냐? 꾀병 부려서 학교를 안 가려는 아이보다는 맨날 때려서 학교를 가고 싶지 않게 만드는 선생이 더 잘못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이런 저의 애매했던 그리고 어찌보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라고 하기에는 의심이 가게 만들었던 행보 때문에 일부 사람들에게서 의심과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의병 제대를 고민하던 것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아님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심문에 저는 변명할 수가 없었고, 또한 이런 저를 변호하기 위해 온갖 궤변을 꿰어 맞추면서 스스로 횡설수설하게 되었고 의심을 사고 명예가 훼손당했습니다. 지금은 물론 갈팡질팡했던 그 당시의 심경과 행보들에 대해, 저뿐만 아니라 병역거부로 고민하거나 군대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라면, 왜, 어째서 타인에 의해 도덕적 가치판단을 받아야 하는가, 사회적 모순이 투영되었을 뿐인 개인에게 그토록 논리정연한 책임감을 왜 감내하도록 요구하는가에 대해 항의하면서 버티겠지만, 당시에는 군대와 병역거부를 경험하면서 상처받은 제 마음을 격려해 주기보다는 엄밀한 비판과 냉정한 분석이 먼저 돌아왔습니다.
 
 
군대생활과 감옥생활
 
군입대 하여 군생활을 하던 도중 병역거부를 하는 방식을 택했기에, 행정이 불투명하게 되고 재판은 길어져서 항소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미래와 신분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듯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재판이 잡히고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상처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성적 소수자라는 제 정체성으로 인해 군복무와 수감생활에서 입어야 했던 마음의 상처와 공포도 그렇고, 일상에서 매일같이 마주쳐야 하는 가족과의 갈등, ‘병역거부자+동성애자’라는 이중의 충격을 감당해야 했을 가족들의 충격과, 죄 지은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해명하고 안심시켜드려야 했던 그 트라우마들은 사실 지금도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절 다독이고 지탱케 해준 것은 병역거부를 하면서부터 알게된 ‘전쟁없는 세상’이라는 병역거부자와 후원인을 위한 단체 분들, 동성애자와 성소수자 인권단체들, 저처럼 병역거부를 앞둔 친구들의 비슷한 처지,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였고, 제가 그다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을 해서 이런 상처와 시련을 겪는 것은 아니라는 제 판단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아마 더욱 견디기 힘든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막상 병역거부를 하고 나서 수감생활을 할 때는 속이 다 후련하고 마음이 편했습니다. 이제는 신분이 매듭지어지고, 상처는 많았고 앞으로도 남겠지만 그래도 더 이상 군대 문제로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인지, 아니면 그토록 시달리던 국가에 대해 나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했구나 싶어서인지, 속이 시원했습니다. 앞으로 수감생활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일단 안일하게 뒤로 제쳐둔 채 말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교도소 독방에서 많이 깨지기도 하고, 다시 증오심과 원망이 불타오르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수감생활을 할 적에는 그래도 다양한 곳에서 수많은 지지를 해주었기 때문에, 마음만은 든든하였답니다. ‘전쟁없는 세상’에서 보내주시는 우편물들, ‘엠네스티’나 ‘전쟁저항자 인터내셔널’(WRI) 등 세계 각지에서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까지... 제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만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기본권이 통제된 것은 아무래도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역시 감옥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양한 미시권력들과 남성성들의 공간이기에 저랑 맞지 않고 버거운 일들이 생겼습니다. 일단 저를 잠정적 성범죄 가해자로 간주하는 듯한 시각도 불편하였고, 좋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마초들이 많았던 점도 힘들었습니다. 수감시설들은 범죄자들을 오히려 적개심만 키우게 하고 전혀 인간다운 교화를 하는 공간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오히려 바깥 사회보다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범죄자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저의 정체성 정도는 특이한 축에도 못 끼는(?) 역설적인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한 재소자는 원래 예전부터 밑바닥생활을 해서 그런지(?) 저같은 성소수자 친구들도 많이 만나봤기에 편견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건네들었을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바깥보다는 범죄자들이 많은 교도소에서 오히려 제 정체성을 받아들여주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인과적으로 단순히 따지자면, 저는 병역거부를 해서 병역법 위반으로 수감생활을 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마음 한켠에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내가 감옥을 가는 것만 같다’는 냉소적인 생각도 있었습니다.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것들을 인내해야 했지만 전반적으로 버틸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바깥에는 나와 생각이 같은 ‘친구들’이 응원해주고 기다려주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치관에 있어서 그 전과는 전혀 다른 극단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독방에서 사람들과 일절 차단된 채 혼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제게 주어졌고, 그런 시간 속에서 저는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변했습니다. 수감생활을 하면서 혼자 독방에서 정리했던 고민들, 즉 그다지 죄를 짓고 살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저를 이 지경까지 만든 국가, 저를 때리던 선생님들, 그저 자기와 다르다고 따돌리고 괴롭히던 남자애들, 저를 주눅 들게 만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난하던 사람들, 그 열정과 에너지로 주류 권력에 비난과 비판을 하지는 못하면서 구태여 소수자들에게 명철한 이성과 논리적 판단을 기대하며 조금이라도 의심 가는 사항을 포착해서 반론을 제시하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미웠습니다. ‘소수자로 사는 것도 억울하고 원망스러운데, 난 좀 이기적이거나 그래도 용서받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왜 나한테 그런 엄격함을 요구하는 거지? 국가와 공동체가 나한테 해준게 뭔데 국가와 공동체에 애정을 쏟길 바라는 거지?’ 하는 생각에 짜증도 났습니다.


이런 번뇌들이 꼬리를 물다가는 일견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인간의 목숨은 영원하지 않은데, 왜 이런 것들로 고민하고 힘겨워 해야 하는가?’ 하고 코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극도의 허무주의가 저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추구해왔던 제 삶의 가치관의 말로는 결국 이런 처벌이라는 생각, 어차피 용써봐야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 아무리 정의롭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봐도 ‘내가 살고 있는 당대에는 이루어질리 없다’는 생각, ‘만일 그런 세상이 왔다고 하더라도 내가 죽은 후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후대에 누군가가 다시 나쁜 세상으로 되돌린다고 하면 그걸 막을 방법이 있는가?’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수감생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한국의 수준은 별로 기대할게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 땅에는 저같이 성소수자에다가 병역거부까지 하며 국가를 별로 안 좋아하며 국가도 별로 좋아해주지 않을 인간은 살기가 힘들고, 저도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 이민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 결국 싸움에 져서 도망가는 것 같이 억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를 처벌하고 따돌렸던 ‘바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특별히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무방비로 당해야 했던 그런 공격에 대해 부당함을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는 언어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이 똑똑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병역거부를 하면서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면, 상처 끝에 얻은 값진 언어들입니다. 물론 이런 앎들을 또 자신 있게는 말할 수 없고 행할 수 없는 사회적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그들의 논리에 휘둘리거나 저를 비하하진 않아도 되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저를 변론하고 또한 논쟁에서 밀리지 않고 재반박하며 비판하고 설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는 이러한 저의 언어들이, 제가 냉소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하게 된 대가로 얻은 것이라 슬프기도 합니다. 마치 인어공주가 목소리라는 기회비용을 포기한 대가로 다리를 얻었던 슬픔처럼, 저도 저의 감수성과 순수한 마음을 포기한 대가로 저의 언어를 가지려고 하는 것 같기에, 이것이 과연 옳은 길인가 하는 고민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제 자신을 설명하고, 저에게 쾌락을 주고, 저를 방어할 수 있는 언어를 찾기 위해 계속 여행을 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활동이 될 수도 있고 공부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수자들을 위해서 고민을 했던 수많은 학자들과 운동가들이 있어왔기에, 아직 한참은 모자라지만 그분들의 언어를 제 것으로 소화해서 저만의 논리를 찾고 싶습니다.
 


성적 소수자로서의 특성과 남성성과의 갈등
 
동성애자였다는 미셸 푸코가 군대-학교-감옥 등을 일망감시체계의 훈육기관들로 분석한 것은 너무도 명확한 것 같습니다. 군대와 감옥 못지않게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저는 학교 선생님들의 권위주의와 주입식 교육방식에는 말할 것도 없고 남자애들 무리와 여자애들 무리 양쪽에 잘 융화될 수 없었던 왕따였던 것 같습니다. 남자애들은 계집애 같다고 저를 기피하였고, 여자아이들도 사실은 자신들과 같은 ‘여자’가 아닌 저를 마냥 환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젠더 이분법의 진영에서 어느 쪽도 저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저는 사실상 학창시절부터 마음의 문을 많이 닫았다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수준에서 그들이 기대하는 역할들을 보여주고 거기에 맞춰줄 순 있었지만 결코 제 자신의 주체적인 삶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라는 기관은 어린시절부터 제게 이미 세상에 대한 냉소와 타자에 대한 무관심들을 심어줬던 것 같고, 저같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전혀 배려해주지 않았습니다. 체벌에, 입시위주의 교육에, 젠더·섹슈얼리티·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는커녕 성 자체를 부정하던 학교에서 무엇을 바란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습니다. 차라리 공부라도 많이 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워낙 공부보다는 음악이나 게임을 좋아했던 저는 학교생활에 숨이 막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중, 남고를 나오면서 더더욱 그 마초들의 과격함에 질려했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성담론을 죄악시하거나 이야기하기를 꺼려하지만, 남성들의 성담론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재가 없고 자유롭다는 것이 참 재밌는 현상입니다. 성에 대해서 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꺼려하지만, 남성들의 성자유는 항상 암암리에 적극 보장되어 왔다고 할까요.


그러던 제게 한 가지 특이한 해방구가 있었다면 바로 ‘일본문화’였습니다. 일본가수들을 처음 접했을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일본 락밴드들의 짙은 화장과 여성스러운 패션, 그리고 과격했던 표현들은 정말 ‘문화충격’이었습니다. 남자들이 여성들보다 더 짙은 화장을 하고, 또한 성표현의 수위가 거리낌 없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천편일률적으로 보였던 한국 가수들의 음악과는 달리 다양하고 형이상학적인 주제들의 음악은 제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한국과 달리 남성들도 화장을 하는 등 젠더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이 보였던 일본문화를 부러워하고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한국에서는 금기시되었던 일본문화에 심취했던 것도 저의 정체성과 가치관의 형성에 일정부분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본은 나름대로 폐쇄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한국보다는 획일적이거나 금욕적인 부분이 없으며 한국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친구들은 일본음악을 좋아했던 저를 ‘친일파’나 ‘쪽바리’라고 비난하였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의문이 드는 점이 있었습니다. 그런 맹목적 애국심이 이상하리만치 싫었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별로 같은 민족이라고 대접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왜 구태여 성소수자이며 왕따인 내가 조국에 충성을 바쳐야 하는가? 그것은 강요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단 ‘일본은 나쁘니깐 싫어해야 한다’라는 그 무조건적인 당위가 싫었습니다. 제가 경험하지 않았던 일본의 압제보다는, 제가 경험했던 한국의 이성애 남성들의 압제가 적어도 제겐 더 싫었으니까요. ‘왜 민족이나 국가에 충성을 바쳐야 하지?’ ‘왜 군대를 다녀와야 남자가 되고 인간이 되며, 왜 누구나 다 가야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하지?’ 저의 개인주의적이고 아나키스트적인 사고들은 아마 이때부터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때부터 막연히 저의 삶에서 우에노 치즈코 교수의 책 제목처럼 ‘내셔널리즘과 젠더’가 화두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병역거부를 하면서부터 이와 같이 그동안 막연히 느껴왔던 억압의 실체가 감지되어 드러났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병역거부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화두는 비단 제 개인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한국 남성들의 가장 커다란 두 가지 금기인 ‘식민지배를 당했다는 자존심의 상처’와 ‘군복무로 인한 박탈감’, 즉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한국사회의 치부와 모순과 문제점을 가장 잘 반증해 줍니다. 저는 사회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것들 중 하나가 오히려 그 사회의 폐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제가 게이라서 남성(성)들과 갈등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제게는 그러한 내셔널리즘과 젠더에 대한 대응방식이 이성애 남성들의 그것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짜증냈던 감정들이 오히려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획일적인 민족주의와 군사주의와 같은 문제들 말입니다.


아무튼 학창시절에는 막연히 싫은 감정만 있었을 뿐 논리적으로 맞받아칠 능력이 없었거니와, 제 판단이 아무리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일상에서 이를 이야기하고 맞춰달라고 부탁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다다르지 못했습니다. 아니 부탁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으로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생각을 하더라도 중세 시대에는 입도 뻥긋 못했던 것처럼, 그냥 침묵하고 무리의 룰을 순순히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상에서의 수많은 갈등들이 면역이 된 것처럼, 무덤덤히 가면을 쓰고 살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마치 주변환경에 적응을 하고 살아갈 생존전략을 터득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마음 한켠에는 항상 소외감을 느껴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후에 여성주의로부터 인식론적인 혁명을 일으키고 나서는, 단순한 소외감이 분노로 바뀌었지만 말입니다. 이제는 그들의 따돌림이 전혀 정당성이 없으며 맞받아칠만큼 제가 성장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그전의 저는 다들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거나 성적인 농담을 하거나 스포츠 이야기를 할 때면 말수가 없어졌습니다. 군대나 감옥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에서도 제 또래 남자들끼리 모였을 때 하루 종일 화제가 되는 이야기는 ‘여자 따먹은 얘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고는 전혀 부끄러운줄 모르는 사람들의 가치관, 이런 발언들이 가능한 사회적 수준, 이런 발언들을 거리낌없이 해도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 사회.. 지금이야 오로지 관심거리라고는 스포츠에, 여자에, 군대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 사고는 눈꼽만큼도 하지 못하는 수준낮은 그들의 문화에 끼고싶어서 애걸복걸했던 어려서의 제 처지를 생각하면 처량해서 우습기도 합니다. 어찌되었건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사실 지금도 게이에 페미니스트인 저는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만일 어떤 공동체의 주류적인 정서가 그런 수준이라면, 제 평소 소신과 정체성대로 ‘그건 옳지 않아요!’라고 해야 하는 건지, ‘전 게이니깐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합시다’고 해야 건지, 아니면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냥 침묵해야 하는 건지 말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가 오고갈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사회의 모든 문화는 이성애/남성 중심적이기에, 어느 곳에서도 연애이야기, 성이야기가 나오면 저는 흥미를 잃곤 합니다. 저는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왜 안 좋아하냐는 식으로 질문이 들어오고, 남성의 젠더 역할에 응당 기대되지 않는 행동을 제가 보이면 사람들은 의아해 합니다. 한마디로 저는 군대 뿐 아니라 이 사회 모든 곳에서 ‘고문관’, ‘부적응자’인 셈입니다.


인터넷에서 ‘XX녀’라는 식의 마녀사냥이 팽배한 것을 보면, 한국 사회는 이성애 남성중심성이 상당히 극렬한 나라입니다. “그는 남자야”라는 말 한마디로도 칭찬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부르디외의 분석처럼 남성성 그 자체가 미덕으로 작동하고, ‘군대를 갔다 와야 남자가 되지’라는 이상한 관념이 팽배합니다. 또한 군사주의와 남성성,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들이 또다시 사회적 약자들과 많은 사회적 담론들을 억압하고 봉하는 기제로 작용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부엌에서 요리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바비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악기연주를 하는 것도 좋아했지요. 그런데 집안의 어른들은 ‘사내자식이 부엌에 들어가냐’고 하고, 친구들은 축구나 농구보다 수다 떠는 것을 더 좋아했던 저를 멀리하였습니다. 이렇게 조금은 남들과 달랐던 저를, 학교와 가족은 그 남다른 부분에서 배려를 해주지 않고 방치했던 것입니다. ‘왜 이런 진실을 세상은 말해주지 않는 걸까... 분명히 나같은 사람들도 존재하는데...’ 제 존재와 세상에 대한 고민과 짜증 그리고 무언가 갈증을 계속 느끼면서 때로는 동아리 활동도 해보고 교회도 나가보기도 하고 운동권 학생들과 어울려도 보았지만, 그 안에서도 무언가 저의 근본적인 정체성 때문에 갈등이 있어왔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면에서 저는 많은 사람들과 꺼내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전제조건으로 타협할 수도 없는 그런 ‘비밀’을 숨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도 이해해 줄 수 없고 받아들여 주지 않을 꺼라는 그런 저만의 비밀. 무리에 끼기 위해서는 혼자 끙끙 앓는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왜 이야기하려고 시도해보지 않느냐. 솔직하게 말하지.” 그러나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제가 바보가 아닌 이상, 모든 문화 속에서 이성애중심적이고 남성중심적인 것을 저는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수많은 삶 속에서 성적소수자라는 저의 정체성이 충돌하는 지점들을 일일이 양해를 구하거나 대응을 한다는 것은, 저를 아주 유별나고 귀찮고 성가신 존재로 만들어서 왕따를 당하는 것을 작정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또한 만일 예기치 못한 신변의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어찌 막을 수 있을까요? 저는 비록 커밍아웃을 했지만, 만일 어느 성소수자가 커밍아웃을 한다면 말리고 싶습니다. 답답한 심정은 이해가지만, 커밍아웃을 한다고 삶이 행복해지거나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것은 결코 아닐 거라고, 사회는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해줄 순 있겠지만, 소수자는 언제나 다수자에 대해 배려를 먼저 하게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소수자가 항상 더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야 한다는 이치를 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현실이 부당하고 원망스럽지만 말입니다.


특히나 요즘같이 인터넷에서 ‘신상 털기’가 쉽사리 자행되는 세상에서는, ‘성소수자’라는 약점이, 본인의 힘으로는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파급력을 가지고 일파만파로 퍼져서 사회적 살인에 처할 위험성에도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를 도외시한 채 속으로만 숨겨야하는 사람들을 음흉하다거나 용기가 부족하다거나 솔직하지 못하다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다고 알려지는 마리 앙뜨와네뜨처럼 현실을 도외시한 발상일 것입니다. 사회가 먼저 제반 준비를 해놓지 못했으면서 성소수자들 개인들을 이성애/남성들이 모든 공적 담론장을 장악하고 있는 사회로 나오라고 하는 것은,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를 강제로 끄집어내는 것이나 번데기 속 고치를 강제로 뜯는 격입니다.
 
 
현재의 고민과 앞으로의 삶의 계획
 
저는 생태주의나 평화주의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저의 존재론·인식론적 고민에서는 여성주의와 더욱 친화적입니다. 물론 때로는 여성주의에서의 ‘여성’이 또 다른 젠더 이분법임에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따라서 아예 젠더 정체성을 해체하자는 ‘주디스 버틀러’와 같은 탈구조주의 페미니즘, 즉 기본적인 젠더 정체성을 해체하는 이론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철학사 전반에 관한 지식들을 갖추어야 할 것 같고, 공부할 길이 멀고도 험난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를 설명해주고 마치 저를 위해서 만들어진 듯한 이론과 담론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결국 소수자들이 가장 쾌락을 느끼고 행복해 하는 이론과 담론이 가장 좋은 이론과 담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춤출 수 없으면 혁명이 아니다”라는 엠마 골드만의 말처럼 말입니다. 그 외에도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거대 정체성을 해체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기에, 탈식민주의나 탈민족주의, 아나키즘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는 한국에서 모든 사회적 담론들을 압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민족/국가는 모두 남성성, 군사주의, 파시즘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기에, 응당 제가 고찰해야 할 지점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엉뚱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동물해방론에도 그에 못지 않은 관심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어느 부분에서는 강자일 수 있기에, 다른 소수자들, 특히 동물의 해방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의식적으로 다른 약자들을 고려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홀아비 심정 과부가 아는’ 성질이고 ‘가재는 게 편’의 수준일지라도 말입니다. 어쨌든 저의 경험과 삶은 여성주의에 더욱 친화성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이러한 모든 것이 결국 정체성과 이분법, 그리고 근대적 합리성을 벗어나려는 것임을 알기에, 탈구조주의에도 강력한 흡입력을 느낍니다. 동양철학에서는 노자와 장자의 철학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어느 하나도 한국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겠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철학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렇게 생각해보니 제가 좋아하거나 관심을 갖는 이론들이 모두 일정부분 인간들에게서 실망을 느끼는 이론들인 것 같습니다. 아마 사람들에게서 많은 배신감과 상처를 받았던 저이기에, 인간을 회의하는 이론들인 생태주의나 동물해방론, 탈구조주의에 깊이 경도된 것 같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이론만 가지고는 될 수 없겠지만, 상당부분 허무주의나 비관주의가 저를 지배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추구해야 할 가치이자 당위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 하고자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도 알겠고, 또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으며, 여성주의는 이러한 사실과 가치, 존재와 당위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저를 지탱해주고 이끌어 줄 신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병역거부운동과 담론에도 무엇인가 도외시되어 왔던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군대 자체가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산물이라는 점입니다. 성중립적인 폭력은 없습니다. 전쟁과 끔찍한 학살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우습게도 민족과 인종의 뿌리깊은 대립이나 종교적 갈등 그 이상으로 정신분석적으로 이런 폭력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징후들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나 폭력이 일어나는 저변에는 군사주의적인 남성성이 있기에, 또한 “군대는 폭력과 섹스가 결합된 제도”라는 정희진 선생님의 분석처럼 젠더나 섹슈얼리티의 관점 없이 군사주의가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측면에서, 많은 기존의 병역거부운동은 이를 도외시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병역거부운동과 많은 활동가들의 그동안의 업적과 노고 그리고 힘겨웠던 싸움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저는 오히려 이것이 더욱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젠더와 섹슈얼리티야말로, 종교의 교리나 거창한 평화주의보다 더욱 근원적이라고 말입니다. ‘평화’는 좋은 것이지만 너무 거창하기에 막상 전쟁과 같은 극한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피부로 와닿기 힘듭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이성애/남성들이 저지르는 폭력적이고 군사주의적인 짓거리들은 매우 피부로 와닿습니다. 일상에서 저는 매일 젠더와 섹슈얼리티, 군사주의적 남성성과 전쟁을 치르는 기분입니다. 사실 전쟁이나 군대는 이러한 것들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며, 이것들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전공은 윤리학인데) 저는 ‘양심’을 구태여 종교 교리나 보편적 도덕에 의해서 설명하는 것보다는 소수자들의 다양한 흐름 속에서 생성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오히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특정 종교인들의 교리이거나 운동권 학생들의 정치적 행위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도 이끌어 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주장해왔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처벌하지 말아주세요”라는 구호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다”라는 구호가 운동의 차원에서도 보편화돼야 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일상의 군사주의와 남성성,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 아닌 다음에야 피부로 와닿기 힘든 거대한 평화주의나 교리보다는, 오히려 이런 것들이 더욱 가깝게 느껴질 것이고, 이런 것에 부당함을 느끼는 일상의 삶 그 자체가 이미 평화주의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행하고 있다는 반증임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예비역 남성들은 군복무로 인한 박탈감을 여성에게 투사하는 식으로 왜곡되고 병적인 심리상태를 보여주지만, 남성들에게도 사실 젠더 정체성이 억압이 아니라면, 그렇게 수많은 예비역 남성들이 열등감을 느끼며 인터넷에서 쏟아내는 언어폭력과 여성에 대한 투사 심리를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젠더 정체성과 국가주의, 군사주의로 인한 억압이 많은 이들의 군복무로 인한 박탈감의 원인이며, 이런 박탈감이나 열등감의 방향을 잘 설정하게끔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들의 투사는 방향이 매우 잘못되어 있지만, 무언가에 대한 부당함과 분노라는 점에서는 국가에 대해 부당함을 느끼는 병역거부자들과 그리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러한 갈등에서 이득을 보는 권력이 있다는 것에 화가 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의 젠더와 섹슈얼리티 혹은 남성성에 대한 거북함과 고통을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다양한 양심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서 고생하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한국사회가 야만적인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소중하고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고통 받는 이 역설은 없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병역거부운동에도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이, 어떤 세련되고 논리적인 언어로만 표현되는 것이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입에 재갈을 물리는 성질의 규범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언어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 세련된 언어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고 그런 언어에 조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병역기피자들 및 소수자들을 또다시 차별하는 기제로 작동할 것입니다. 순전히 제 생각이긴 하지만, 병역거부운동의 변화양상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종교적 병역거부를 하던 흐름에서 벗어나서, 비종교적 이유로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들로 넘어왔고, 이어서 저처럼 일종의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 혹은 병역기피자와 같은 친구들도 하게 되는 수단으로 변화된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러한 흐름이 마치 중세에서 근대로, 근대에서 탈근대로 넘어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특정한 종교인들만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다양한 비종교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출현했지만, 사실 이들도 운동권이거나 자신들만의 언어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저와 비슷한 친구들, 언어를 갖추지 못한 소수자들에게 벽을 느끼게 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오히려 병역거부운동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누구나 행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그리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혁범 교수의 지적처럼, 한국사회에서 다른 곳에서는 모두 불평등하지만 유일하게 평등한 것처럼 치장되는 공간이 ‘군대’이기에, 또한 그것이 다같이 권리를 박탈당해야 하는 억압이기에, 유달리 한국남성들이 목을 매며 분노하는 곳이 군대인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눈가리고 아웅’하려는 사회적인 담론에 맞서서 ‘우리는 병역기피자들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양심’을 강조하며 해명하고자 해왔던 것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의 자기 모순입니다. 물론 병역거부 운동이 초창기에 많은 오해를 씻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소위 ‘비양심적 병역기피자’들에 대해 선을 그으면서 출발한 것일테지만, 또한 병역거부운동이 주류사회의 담론이나 국가주의적 논리와 동일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치부해버릴 순 없겠지만, 여전히 병역기피와 ‘구분짓기’를 하며 가치의 위계를 나눈다는 점에서는 주류적 담론의 언어에 갇힌 한계도 지닙니다.


과연 병역기피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일까요? 인간이 무섭고 힘든 것을 피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니깐 그토록 군문제에 대해서 눈에 쌍심지를 키는 사람들이 많겠지요. 그러나 자신이 병역을 기피하고 싶은 것을 왜 솔직히 이야기하지 못할까요? 여기서 저는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고 했던 라캉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들은 결국 사회적으로 병역기피자로 낙인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들을 해대는 ‘허위의식’을 갖고 결국 그릇되고 왜곡된 방향으로 이런 존재론적 모순을 투사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점들을 생각한다면, 병역거부는 병역기피로, 양심의 거창함은 두려움이나 귀찮음이라는 인지상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통과 두려움을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고, 이러한 효용극대화를 ‘옳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공리주의적으로 본다면, ‘병역기피’ 자체는 도덕적으로 오히려 옳은 행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병역거부 또한 민주화, 대중화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많은 이들의 고통을 없애고 후생을 증가시키고자 한다면 궁극적으로는 ‘합법적 병역기피’인 모병제를 도입하는 것이 온당하겠지만요.


동성애운동 또한 인권운동이나 기존의 정체성의 정치가 아닌, 이런 권력벡터들의 상호 복합적 작용을 고찰하기 위해서라도 젠더나 섹슈얼리티의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나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던지는 페미니즘과 젠더/섹슈얼리티 정치의 영역에도 관심을 갖고 나아감과 동시에, ‘진짜 남성’을 만들고자 하는 군사주의와 남성성의 폭력, 파시즘의 억압에도 당연히 문제제기와 연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영역들의 교집합 속에 놓여있는 저의 독특한 위치가 설명하는 것처럼, 동성애운동, 평화운동, 여성주의는 ‘따로 국밥’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고열, 두통, 기침 등 무관한 것으로 보이는 현상들의 배경에는 ‘감기 바이러스’라는 공통 원인이 있듯이, 무관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문제, 동성애운동, 평화주의, 병역거부의 근저에는 모두 ‘젠더/섹슈얼리티’라는 공통원인이 있습니다.


여하튼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아무튼 저는 횡설수설하고, 병역거부보다는 병역기피에 가까운 저를 변론하기 위해 무언가 명확한 언어로 병역거부를 설명하기보다는 주류의 언어나 혹은 병역거부운동의 논리를 아전인수격으로 꿰맞추고 두서가 없게 되었습니다. 저조차도 이미 마음속에 ‘병역기피는 나쁜 것이므로 되도록 병역기피를 했던 사실은 숨겨야한다’는 무의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병역거부까지 결심했던 저조차도 주류의 언어로 저를 규정하고 타인의 담론으로 저를 설명해야 하는데, 절대다수의 소수자분들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소수자들의 슬픈 숙명인 듯 싶습니다.


‘젠더 트러블’이라는 주디스 버틀러의 책이름이 나타내듯이,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불편함과 혼란으로 인해 저는 제 자신의 존재론적 고민을 하게 되었고, 페미니즘을 접하고 부터는 인식론적 혁명을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저서들은, 제게 그동안 불투명했던 저의 경험들을 명확한 언어들로 바꿔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러한 저의 경험과 지식들을 이용해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윤리학적인 고민들을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서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회적 변혁을 추구하고 싶지도 않고, 물론 한때 그런 치기에 제가 무슨 대단한 운동가가 되는양 설레발을 쳤던 경험도 있지만, 그러나 세상이 쉽사리 바뀌거나 그러진 않을 것 같고, 소영웅주의가 아닌가 생각도 들기도 하면서 제 자신은 여기서 주저앉아서 더 나아가지 않고 맴돌게 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인식론적 앎을 가지고 앎을 실천하는 것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은 단지 편하고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을 뿐이지, ‘나서서 세상을 바꾸겠다!’ 라는 거창한 생각이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사회적 약자일 뿐이지, 운동가는 아니다’라는 자기합리화 비슷한 사고들이 저를 지배하게 되었고, 사회로 나가기보다는 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껍질로 단단히 둘러싼 채 속으로 숨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동굴밖의 이데아의 세계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동굴속 그림자의 세계가 진실이라고 알고 사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설명할지라도 저만 미친놈 취급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부질없는 마이동풍에 우이독경이라면, 자포자기하고 그냥 우선 내가 편한대로 될대로 사는게 낫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저의 존재와 세상을 알고 싶어서 얻게 되었던 언어들이, 오히려 ‘모르느니만 못한’ 역설로 되돌아왔을 때는, 차라리 아무것도 알지 말걸... 하는 씁슬한 기분도 듭니다. 오히려 무지와 무위를 말했던 노장철학처럼, 앎을 버리고 모름을 택하면서 살다 가고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역시도 언어를 찾고 끈덕지게 대화와 소통을 하는 것 자체가 피곤하고 성가시며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대단한 성인군자처럼 제 자신의 행복과 욕망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고, 또 그래야하는 이유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행복한 세상이 좋은 세상이며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며 쾌락주의적인 것이 크기에 저는 당연히 저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타인들에 대한 관심을 예전처럼 쏟거나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혼자서 살 수 없는 세상이기에, ‘주체는 타자의 인질’이라는 레비나스의 말처럼 저 또한 사람들에게서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모순을 가지고 있기에, 타자에 대해서 또한 포기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을 미워하고 불신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사람을 그리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가 살면서 느껴왔던 분노와 신경질은 실은 사람들이 저를 좋게 봐주지 않는다는 어리광에서 그리했을지도 모르니까요.


어려서는 친구들한테 따돌림 받는 것이 너무 싫어서 사람들에게 맞추다가도 ‘소외감’을 느꼈고, 커서는 사람들을 제게 맞추고자 하였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며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소외감’은 ‘분노와 좌절’, 그리고 ‘허무함’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타인을 불신하고 사람들에게서 기대와 애정을 포기하게 되면서 마음의 문을 많이 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리에 끼고 싶어 했던 어린시절처럼 결국 사람들 속에서 살 것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배려해주지 않았던 것이 싫어서 사람 전체에 대한 불신과 증오로 나아갔지만, 그것은 결국 ‘사람들’한테서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음을 오히려 반증하는 것일 테니까 말입니다.


아무튼 앞으로 살면서 지금껏 그래왔듯이 많은 시행착오와 헛고생을 할 수도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 것은 제 든든한 우군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분들의 언어를 엄선하여 받아들이고 저만의 언어로 주조하고 만들어 가기에는 인생이 짧은 것이 아쉽습니다. 스스로 자기만족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저는 방어할 수 있는 논리가 존재한다는 것이 기쁘기만 합니다. 물론 이런 수고를 구태여 안 해도 되는 공격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요. 노자와 장자는 복잡하게 살지 말고 아이처럼, 광인처럼 살며 언어조차 쓰지 말자라는 제안을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언어와 논리들을 찾아가야만 하는 그 과정은, 소통을 통해서 사회적 관계 안에 저의 존재를 위치시키고 방어하기 위한 것이지만, 사실 어찌보면 피곤하고 괴로운 과정이기에,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면 더욱 좋겠지만, 그래도 방어를 못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좋습니다. 언어조차 필요 없는 세상이면 더욱 좋겠지만, 그래도 저의 존재론, 인식론, 윤리학적인 고민들을 해결해주는 언어가 존재하고 내 것으로 고찰할 수 있다는 생각,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그런 생각이 저를 타자에 대한 혐오와 공포로부터 버티게 해주고, 마음의 빗장을 잠그지 않고 무너지지 않게 해주며, 말초적인 것으로 저를 망가뜨리지 않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상당 부분 허무주의와 비관주의가 제 머릿속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