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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군형법 군인권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10문10답

by 행성인 2014. 4. 1.

진구, 조나단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3월18일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안이 입법발의 되었습니다.

그동안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찬반논쟁이 뜨거웠는데요.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 차별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에서 왜 폐지가 되어야 하는지 10문10답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법과 관련된 문제이다 보니 낯선 법 용어가 많을 수 밖에 없는데요.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에서 10문 10답의 내용을 원문의 의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덜 낯설도록 바꾸고 각주를 달아보았습니다. 널리 공유해주세요.

*입법발의: 발의국회의원들이 의정활동 중 법제안을 하는 것. 국회의원 10인 이상의 서명이 필요하다.


1. 군형법 제92조의6의 내용은 무엇이고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


군형법 제92조의6은 ‘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형사처벌하고 있는 조항입니다. ‘추행’이라는 표현 때문에 많은 혼란을 주고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폭행이나 협박 등 강제성을 띄지 않고 상호 합의에 의한 동성간 성행위까지도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유일한 법 조항입니다(민간인의 동성 간 성행위는 처벌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 조항은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고 있는 것은 물론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기에 반드시 폐지하여야 합니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해 UN 국가별보편적정례인권검토(UPR) 등 국제사회에서도 꾸준히 폐지권고를 받아왔습니다.


2. 군형법 제92조의6을 폐지하자는 말은 군대 내 동성 간 성폭력을 처벌하지 말자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군대 내 성폭력은 군형법(제15장 강간과 추행의 죄)으로 처벌할 수 있으며, 형법과 성폭력특별법에 의해서도 처벌할 수 있습니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합의에 의한 성적 접촉을 처벌하는 법 조항입니다.


3. 군대라는 환경의 특수성 때문에라도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 역시 형사처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기본적인 인권으로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하며, 군대라고 하여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개인 간의 성행위가 군대라는 환경상 어느 정도의 제한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 제한이 반드시 형사처벌일 필요는 없지요. 예컨대, 군대 내에서의 성행위가 문제되는 것은 동성 간 성행위뿐만 아니라, 이성 간 성행위도 마찬가지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군대 내 이성 간 합의하의 성행위 중 군기강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는 형사처벌이 아니라 군인사법상의 징계처분이나 전역조치 등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즉 군형법 제92조의6은 징계처분으로도 규제가 가능한 행위를 형사처벌로 규제하고 있어 과잉입법이며, 동성 간 성행위를 이성 간 행위와는 달리 대우하고 있기 때문에 차별적인 법 규정입니다.


*성적자기결정권: 성적자기결정권이란 개인이 성행위를 할때, 누구와 할 것인지 결정한 권리이다

누구, 언제, 어디서나 성행위를 할 수 있지만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중대한 공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이 제한됩니다.


4. 그렇더라도 동성 간 성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군형법 제92조의6이 필요하지 않나.


외국의 사례나 연구를 보더라도 동성 간 성행위를 형사처벌하는 조항을 없앨 경우 그 행위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인식은 편견일 뿐이며, 아무런 실증적 근거가 없습니다. 이 조항이 없더라도 동성 간 성폭력은 여전히 형사처벌을 할 수 있으며, 그 외의 문제적 행위들은 징계로 규제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군형법 제92조의6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은, 남성은 성욕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강력한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잘못된 통념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통념은 잘못된 것으로서 오히려 남성이 타인의 성에 폭력을 행사하고 성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됩니다.


5. 비강제적인 합의하의 성행위라 하더라도 동성 군인 간의 성행위는 군 기강과 군 전투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


실질적으로 이 조항이 적용된 사례를 살펴보면, 합의하의 동성 간 성행위로 인해 부대 업무에 차질이 생겼거나 명령 체계에 문제가 생겼거나 부대의 기강이 약화되고 전투력 보존에 위해가 발생하였는지의 여부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동성 간 성행위 자체만을 문제 삼아 비난과 혐오만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폭력적이지 않고 일방적이지도 않은 동성 간 성행위를 ‘비정상’이라고 바라보는 차별적인 관점이 문제입니다. 예컨대, 엄격한 군 기강이 요구되는 파병부대의 사무실에서 이성군인간의 성행위가 있었던 사례에서는 군 기강이 크게 침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징계만으로 그쳤습니다. 반면, 원래부터 아는 사이인 서로 다른 부대의 두 병사가 휴가 중 집에서 성행위를 한 사례는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6. 이미 헌법재판소는 2002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이 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하지 않았나.


합헌 결정이 있었다고 이 조항이 항상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합헌 결정은 ‘위헌이 아니다’라는 의미만 있을 뿐, 해당 법 내용이 정당하거나 최선의 내용이라는 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헌재에서는 합헌 결정을 하였더라도 소수의견인 위헌의견을 존중하여 입법적으로 법을 개정한 사례도 있습니다. 특히,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해 2002년에는 위헌의견이 2명, 2011년에는 4명(한정위헌 의견 포함) 있었습니다. 따라서 합헌결정에도 불구하고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합헌: 헌법의 취지에 맞는 일. 헌법재판소에서 관련 법 규정이 헌법의 규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즉 헌법에 합치된다. 더 쉽게 말해서 “법을 어긴 것이 아니다.”라고 결정함.

*위헌: 법령 등이 헌법규정에 위반하는 것(헌법 제107조)을 말한다.

*한정위헌: 어떤 법률에대해 [...라고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밝히는 것이다.즉, 법률 자체의 효력은 없애지 않되 법을 놓고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할 때 특정한 해석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위헌적 해석 여지를 없애기 위한 결정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정위헌 (매일경제, 매경닷컴)


7. 2013년 개정으로 ‘계간’이라는 차별적인 용어가 ‘항문성교’로 바뀌어 문제가 해결된 것 아닌가.


‘계간’이라는 용어 자체가 비하적이고 차별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문제가 있었지만, ‘항문성교’라는 용어로 바뀌었다고해서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처벌하는 본질적인 내용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남성간의 성행위를 비하하는 말이었던 ‘계간’이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상관없이 적용되는 ‘항문성교’라는 용어로 대체됨으로써 조항의 적용대상이 더 모호해졌습니다(즉, 이성간의 항문성교도 처벌대상이 되는지가 불분명합니다). ‘항문성교’라는 용어를 쓰더라도 합의한 성관계를 처벌하는 이상, 개정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폐지를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계간[鷄姦]: 닭이 성교한다는 의미로 남성간의 성행위를 비하하는 말.


8. 미국도 통일군사법전(The Uniform Code of Military Justice, UCMJ)에서 군인의 항문성교를 처벌하고 있지 않나.


아닙니다. 이 조항은 폐지되었습니다. 2003년 미국연방대법원은 로렌스 대 텍사스 사건에서 이른바 ‘소도미법’이 위헌이라고 선고하였습니다. 이후, UCMJ상의 소도미조항 제125조는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관계에 대해서는 적용이 실질적으로 중단된 상태에 있습니다. UCMJ 제125조는 군인에 대하여 수간 등 비자연적인 성적 교섭을 금지하는 조항으로, 2013년 통과된 국방수권법(NDAA)에서는 UCMJ 제125조 중 합의한 동성 간 성관계를 금지하는 내용을 삭제했습니다. 오히려 미군은 ‘성정체성을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라는 “Don’t Ask, Don’t Tell” 정책을 폐지하고 군인 동성(결혼)커플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등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로렌스 대 텍사스 사건: 1998년 9월 17일, 텍사스 주 휴스턴 시 경찰은 무장 소란의 허위 신고를 받고 존 게데스 로렌스와 타이론 가너가 동성 성관계를 하고 있던 아파트에 들어갔다. 총기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경찰은, 무단 침입에 강력히 항의하는 두 남성에게 구강성교와 항문성교 등 동성 간의 '비정상적인 성관계'를 금지하는 텍사스 주 소도미법 위반 혐의를 대신 적용하였다. 벌금형과 하룻밤의 구금에 처해진 로렌스와 가너는 다음 날 무죄를 주장하여 풀려났다.

2003년 6월 26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6대 3으로 텍사스 주 법령을 최종 위헌 판결하였다. 로렌스 대 텍사스 판결과 함께, 사적 공간에서의 동성 간 합의 성관계를 금지하는 기존의 13개 주 소도미 법 모두가 자동으로 위헌에 해당하게 되었으며, 즉시 효력을 상실하였다.

*소도미 법[Sodomy Law]: 특정한 성행위를 규제하거나 처벌하는 법을 통틀어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명칭이다. 소도미는 본래 성기와 성기의 결합이 아닌 항문 성교나 구강 성교, 수간(獸姦) 등 소위 '부자연스럽다'고 일컬어지는 성행위의 형태를 통칭한다.


9. 우리나라에서는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가 시기상조가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인권증진을 위해 조속히 추진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미 2002년 헌법재판소 결정(2001헌바70)에서 2인의 재판관이 군형법 제92조의6 위헌의견을 개진한 바 있습니다. 또한 2008년 제22사단 보통군사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직권 제청하고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위헌의견을 냈으며, 2011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3인의 재판관이 “강제에 의한 행위와 합의에 의한 행위를 동일하게 처벌함으로써 수사기관, 공소제기기관과 재판기관의 자의적 해석을 초래한다.”고 위헌성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2012년 UN 국가별보편적정례인권검토(UPR)에서도 이 조항의 폐지를 권고했습니다. 현재도 이 조항을 적용하더라도 기소유예, 선고유예, 집행유예 등으로 거의 실질적인 처벌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를 유지할 필요성이 크지 않습니다.


*위헌법률심판: 국회가 만든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심사하고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그 법률을 효력을 잃게 하거나 적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국가별보편적정례인권검토(UPR): 유엔인권이사회(UN Human Rights Council)가 4년 6개월에 한 번씩 유엔 회원국 전체를 대상으로 인권상황을 상호 점검하고 개선책을 권고하는 제도

[네이버 지식백과] 국가별 정례인권 검토 [universal periodic review]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10. 군형법 제92조의6이 폐지되면 군대 내 동성애자를 허용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행위가 만연해 에이즈 감염이 퍼지는 것은 아닌가.


지나치게 비합리적인 주장입니다. 현재 군인사법 등 관련 법령상 동성애자의 군복무를 금지하고 있는 규정은 없고 오히려 국방부 훈령인 「부대관리훈령」 에서는 동성애자 병사의 인권을 보호하고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군복무를 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는 동성애자 군복무 허용과 무관합니다. 이 조항이 폐지되면 군대에서 성적으로 문란한 행위가 만연해 에이즈 감염이 퍼질 것이라는 주장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동성애에 대한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문화 속에서 동성애자 병사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하고 합의에 의하더라도 성적 접촉은 주저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이즈 감염이 퍼질 것이라는 우려 또한 질병에 대한 기초정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나올 수 없는 주장입니다. HIV/AIDS는 충분히 예방 가능한 질병이고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걸리는 질병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성적 문란과 에이즈 공포를 연결시켜  군형법 제92조의6 존치의 비합리적 근거로 삼고 있어 매우 우려되는 주장입니다. 차별과 편견에 기반한 비합리적인 혐오와 공포를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군형법 제92조의6을 폐지하여야 합니다.


군형법은 폐지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