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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소식/퀴어퍼레이드

동인련 긴급회원토론 - 혐오세력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by 행성인 2014. 7. 17.

오소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이번 제15회 서울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이하 퀴퍼)는 성소수자 혐오세력들의 얼굴을 직접 대면한 자리이기도 했다. 퍼레이드공간에 반대집회를 허가 낸 서대문구청의 이중성을, 행렬을 가로막는 혐오세력을 수수방관한 경찰들의 위선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노골적인 조롱과 반대에 굴하지 않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다. 본의 아니게 퍼레이드는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끝났다. 밤 11시가 넘도록 거리에 모여 함께 외쳤던 분노와 기쁨의 목소리를, 길바닥에 쏟아낸 땀과 눈물을, 억압과 혐오를 벗어던진 우리의 몸들을 기억해야 한다.

 

퀴퍼 이후 뉴스와 SNS에서는 저마다의 정리와 감상, 평가와 비판, 적지 않은 쟁점들이 오갔다. 온라인에 올라온 수다한 글들은 퍼레이드를 통해 얻어낸 성취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견된 한계와 아쉬움을 보여준다. 이번 퀴퍼가 새겨 넣은 역사의 무게만큼 과제의 매듭을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함께 가져갈 공론의 장을 만들어 과제를 정리하고 대응을 계획하며 이후의 활동을 고민할 필요가 절실하다.

 

그래서 동인련에서는 지난 6월 19일, 회원들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고, 우리가 할 일을 함께 토론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토론은 주어진 네 가지 질문들에 대해 회원들 각자의 생각을 포스트잇에 적어 공유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질문1. 나에게 이번 퀴어퍼레이드는 ◯ ◯ ◯ 이었다.

 

이번 퀴퍼는 혐오세력의 대규모 방해로 이전 퀴퍼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에 대해 개인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다. 첫 번째 질문은 퀴어퍼레이드가 본인에게 어떻게 와 닿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에 대해 회원들은 즐거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감정을 토로했다.

 

-뺨을 후려쳤다.

올해 3월 동인련에 가입한 한 회원은 세상이 점점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꼈고, 단체들의 노력을 알고 동인련에 가입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나아지고 있다고 막연하게만 생각하다가 이번 퀴퍼때 혐오세력을 맞닥뜨리고 나서는 뺨을 후려 맞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긴장되고,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생각하고 안도할 때, 다시 후퇴하는 것처럼 말이다.

 

- 저들(공권력)에게 2등 시민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그 날 경찰은 행렬을 가로막는 혐오세력을 수수방관했다. 이에 한 회원은 경찰과 대치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서 우리들은 고려의 대상이 안 됨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의 권리를 지켜줄 생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들과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 아쉬웠다.

제1회 퀴어문화축제부터 참여했던 한 회원에게는, 그 당시 작은 규모의 캠퍼스를 도는 것만으로 벅찬 경험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는 축제의 규모가 더 성장한 것에 대한 기대를 했는데, 혐오세력에 대한 대응은 미비했다. 이미 혐오세력이 모일 것이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그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는 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 오히려 성소수자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면 이러한 혐오세력의 방해가 오히려 자긍심을 높였다는 회원도 있었다. 혐오세력들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퍼레이드를 끝까지 해내면서 대해 자긍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 성취였다.

유사하게 쾌감을 느낀 회원도 있었다. 4시간 동안 막혀 있다 나와서 끝까지 다 해냈다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

 

- 전환점이었다.

한편 이번 퀴퍼가 전환점이 된 회원도 있었다. 평소 언론매체를 통해서만 접하던 호모포비아들을 처음으로 눈으로 직접 보게 된 날이라고 한다. 그 날 이후 그 회원은 자신의 삶도 바뀌었다고 한다.

 

- 방아쇠였다.

호모포비아들이 그 동안에는 쏜다쏜다 하면서도 직접 나오지는 않았었는데, 이번 퀴퍼가 방아쇠가 됐다고 생각한 회원도 있었다. 그리고 방아쇠가 당겨졌기에, 이번 사태는 일회성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겪을 일이라고 말했다.

 

- 벽장 퀴어들의 불만이 많았다.

한편 이번 퀴퍼에 대해 벽장 퀴어들의 불만이 많았다는 회원도 있었다. 사람들이 벗는 것이 불만이었다고 한다. (이번 퀴퍼에서는 혐오세력이 노출을 무기삼아 공격하기도 했다. 일명 빤스퍼레이드.)

 

- 의리였다.

이번 퀴퍼는 4시간 동안 막혀있다 진행이 됐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남아서 함께 행진을 했다. 잠시 자리를 떠나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도 행진이 시작됐다는 말에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달려왔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한 회원은 참여자들에 대한 의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 그 외 의견들

- 저항이었다.

- 벽장인 친구들도 분노해서 퍼레이드 행렬 안으로 들어오는 퍼레이드였다.

- 고마웠다. (늦게까지 많이들 남아줘서)

- 빵 터졌다. (막혔다 확 터졌으니까!)

- 즐겁고 행복했다.

- 혐오를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 빤스

- 힘들었다.

- 행진의 목적과 기초를 생각해보게 되는 날이었다.

- 미래였다.

 

 

질문2. 혐오세력들과 마주쳤을 때 ◯ ◯ ◯ 했다

 

퀴퍼날 당시 혐오세력은 현수막이나 피켓, 확성기 등을 이용해 혐오를 표출했다. 심지어는 물리적으로 힘을 행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회원들은 무시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에 대응하기도 했다고 한다.

 

- 불쾌하지만 의연했다.

포비아적 발언이나 그런 혐오 표출을 일상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나?’ 란 생각을 하다가도, 정도가 너무 심해서 불쾌했다고 한다. 한 회원은 비판과 혐오는 다르다며 혐오세력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불쾌하기는 했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의연하게 대처했다고 한다.

 

- 안쓰럽기도, 치가 떨리기도 했다.

우리는 너무 즐겁고 기쁜데 앞에서 혐오를 표출하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 슬프고 화가 나있기에 안쓰럽기도 했다는 회원도 있었다. 반면, 동인련 부스 근처에서 혐오세력들에 맞서 풍물패가 풍물로 맞서자, 혐오세력들이 물리적인 힘을 행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들이 아닌 약해보이는 여자들을 대상으로 물리적으로 괴롭히는 것을 보고 치가 떨렸다고 한다.

 

- 그날이 다 지나서야 생각이 나고 속상했다.

당일은 혐오세력들과 마주쳤을 때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즐겁게 하고 왔는데, 막상 다음날이 되니 계속해서 생각이 나고 속상했다는 회원도 있었다. 세상이 이렇다는 생각에 자꾸 생각이 난다고 하며, 트라우마 될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 죽음이었다. 무서웠다.

퀴퍼날 당일 동인련 부스 앞에서는 혐오세력들이 ‘동성애자는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다’라는 문구의 대형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이에 한 회원은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혐오세력들의 혐오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동인련 회원인 육우당이 생각났다고 한다. 그 친구가 안타깝기만 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회원은 그러한 혐오들은 외압적인 살인이라고 말했다. 그런 혐오 표현들을 보며 어린 친구들이 충분히 무기력감과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고, 본인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다른 회원도 동의하며, 혐오를 그냥 둬서는 안 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이것이라고 했다. 혐오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에 대한 대처는 각자가 다를 것인데, 한 명이라도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면 그런 혐오 표현들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편 한 회원은 감염인 당사자가 아니면 그런 현수막을 보고도 그렇게 깊이 상처받진 않았을 것이라며, 그 현수막에 대해 아무도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과 관련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을 공감 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우리 커뮤니티의 중요한 과제라고 하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갈등이 생기면 안 된다는 강한 마음이 들어서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회원도 있었다. 이에 한 회원은 갈등이 발생하면 우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억압의 내면화’는 아닌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회원도 있었다.

 

- 그 외 의견들

- 무서울 거라 생각했는데 무섭지 않았다.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 오기가 생겼다.

- 사랑을 말했다.

- 저들은 혐오하고 우리는 사랑을 외치고 있다. 아, 사회자 욕설.

- 윙크 키스 더듬했다.

- 손키스를 날렸다.

- 그 뒤에서 춤춰서 물리쳤(?)다.

- 구체적인 근거 없이 ‘동성애를 하면 에이즈에 걸려!’ 라는 말을 던지는 그들을 보며 나는 그들이 조금...안쓰러워보였다.

- 무시 혹은 기록으로(사진) 남겼다.

- 예상된 반응, 더욱 더 커지는 Pride 였다.

- 현장 밖의 혐오세력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 딜레마를 느꼈다.

-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매번 이꼴을 봐야하다니.

-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 퍼레이드 행렬 안에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포비아들이 있었다. 마찰이 있더라도 행렬 밖으로 끄집어 냈어야 했다. 제 피켓을 집어던지는 분도 있었다. 개새끼들아 하며 전단지를 나눠주는 교인도 있었다.

 

 

질문3. 내가 퀴어퍼레이드 책임자였다면 ◯ ◯ ◯ 했을 것이다.

 

축제 주최측은 혐오세력들의 방해가 예고된 시점에서 ‘무대응’을 원칙으로 내세우며, 축제 당일에도 스태프들은 무대응을 고수했다. 그 결과 퍼레이드는 네 시간가량 지연됐었다. 그 외에도 혐오세력과 축제 참여자 간의 잦은 마찰이 있었다. 이에 만약 자신이 축제 책임자였다면 어떻게 축제를 이끌어나갈지 대비책을 공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 상황별 구호를 만들고 곳곳에 붙여 개인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했을 것이다.

한 회원은 무대응 원칙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모든 상황에 무대응으로 대응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각 상황별로 대응방법을 만든 후에 개인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 사전에 LGBT+우호적인 단체(사람)들을 더 많이 조직했을 것! (ex.깃발, 팻말, 피켓, 플랑 등)

이번 축제에는 자그만치 1만 5천여명의 사람들이 모인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축제였다. 그런데 그만큼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무력했다고 평가한 회원이 있었다. 퍼레이드 차량 위에 있는 분들한테만 의존할게 아니라 참가자들 개인끼리 뭉쳐서 구호를 외치거나, 사전에 피켓이나 플랑을 만들어 오는 것은 어떤지 의견을 냈다. 또한 너무 퍼레이드에만 집중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 커뮤니티 내에서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 자치대(?) 운영. 언론의 필요성(?)

이만큼 퍼레이드가 성장을 했는데 아직까지도 놓치고 있는 게 많다는 회원도 있었다. 기독교계나 혐오세력들의 혐오표출이나 비방들은 가시화되고 있는 반면, 우리들의 목소리는 주류언론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들이 비방을 계속해서 한다면, 우리의 반박이나 소식들도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언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한다.

 

- 자율방범대(경찰 혐조가 가능할지 모르나) 내부에 들어와서 집회를 방해하는 사람을 물리적으로 몰아내고 경찰에 인계

자치대를 언급한 회원들이 많이 있었다. 실제로 합법적인 집회를 방해하는 사람들은 집시법에 의거하여 처벌할 수 있다고 한다. 혐오세력들이 그런 행동을 해도 괜찮다는, 또 해도 된다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도록 고발조치가 필요하다는 회원도 있었다.

 

- 혐오세력에 대응 혹은 방어를 위한 배치나 인원에 대해서 고민하고, 마찰이 있을 때 조금 더 단체적인 행동을 계획하겠다.

그날 퍼레이드가 막혔을 때 퍼레이드 차량 뒤에서는 놀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 됐었다. 이에 한 회원은 막혔을 때는 ‘놀자!’ 하는 것도 사전에 필요하다고 봤다. 또한 우리가 단호하게 나간다면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며, 다 같이 나가라고 하는데 버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 우회로 미리 고려해두기

혐오세력이 올 거라는 소식을 미리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설마 막히기야 하겠어?’ 하는 안이한 생각이 있었던 건 같다는 회원도 있었다. 이에 앞으로는 우회로를 미리 고려해두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 직접적인 폭력행사 뿐 아니라 소극적(?) 혐오표현도 제지하도록 했을 것이다.

혐오표현이 이미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작은 혐오표현이라도 제지하도록 했을 것이라는 회원도 있었다.

 

- 직접적이고 논리적인 근거자료로 반박피켓 들기+소리치기 (현장에서 피켓을 제작)

혐오세력이 들고 있는 피켓들을 보면 근거가 전혀 없고 뻔하게 잘못되어 있는데, 그럴싸한 문구로 포장해서 그들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도 ‘어 정말 말도 안 되네’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맞불을 놓는 식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 우리도 그들 사이에 들어가 전단지 나누면서...

그날 혐오세력에게도 배울 점이 있었다는 한 회원은, 혐오를 표출하던 사람들은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확신이 있으면 누구도 못 건드린다며, 우리도 우리가 죄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면, 당당하게 그들 사이에 들어가서 전단지를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경찰에게 직접 항의, 혐오세력과 직접 대치

직접적인 대응 방식을 내세운 회원도 있었다. 한 편 이에 대해 그 날 있었던 아쉬움을 토로했던 회원도 있었다. 주최측에서는 그날 혐오세력의 집회 방해에 대해 경찰에게 다 같이 항의전화를 해달라고 참여자들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이 회원은 전화해서 뭐라고 신고해야하지도 모르겠고(거리 이름도 모르고) 상황에 대한 정보전달도 미흡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회원도 동의하며, 상황에 대해 파악이 안 되니까 사람들이 행렬을 빠져나가는 것이라며,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상황을 공유해야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외 의견들

- 내가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이었다면, 솔직히 한 번 겪어봤음에도 불구하고 대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자활을 대폭 늘려서 혐오세력이 밀집할만한 곳을 미리 다 점령해놓는다??

- 퍼레이드의 코스 등 여러 변수를 고려했을 것.

-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냥 대치하는 게 아니라 대치 중에 세력을 보여줄 수 있는 행사(집회)를 마련할 것.

- 집회신고를 효과적으로, 다른 반대집회가 자리잡을 수 없도록 넓게 집회신고하기

- (혐오세력)사전입장통제

-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어떨까요?

- 적어도 ‘무대응원칙’을 고수하지는 않을 것.

- 내가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 포비아(특히 혐오를 조장, 그리고 행동으로 표현하는...)들에게 몇 번 경고를 하고 심하면 나중에 소송을 한다던지!

- 이건 내가 현재 자주 써먹는데, 대응팀을 만들어서 미리미리 그들의 혐오논리(왠지 쓰일 것 같은 논리들)을 미리 공부, 대응발언들을 미리 생각해두고 나중에 그런 혐오세력이 나오면 대응팀은 대응하고 축제를 즐길 사람은 즐기고...

- 발생할 수 있는 혐오상황에 대해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통하여 대응매뉴얼을 마련한다.(축제 준비 주체 간 커뮤니케이션 중요)

- 감시단을 만들어 폭력, 혐오표현 하는 자들에게 즉각 대응, 몰아냄.

- 경찰에게 압력!

- 많은 이야기 듣겠다.

 

 

질문4. 혐오세력을 이기려면 ◯ ◯ ◯ 을 해야한다.

 

앞으로도 혐오세력의 공격은 계속 될 것이다. 마지막 질문은 혐오세력을 이기기 위한 서로간의 방법을 공유해보기 위한 질문이었다. 수단적인 방법부터 자긍심같은 마음이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 많이 알아야 한다. 혐오세력이건 우리들끼리이건

한 회원은 이 날 토론회에 와서 ‘동성애자는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다.’ 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감염인 당사자와 같이 싸울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게 됐다고 한다. 따라서 먼저 우리들끼리 먼저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법적 지식을 가져야겠다. 사람들은 법 앞에서 작아진다...

이 날 한 회원은 토론회에 와서야, 집회를 방해하던 사람들을 집시법에 의거하여 처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이에 법적 지식을 가지고 대응해야 효과적으로 혐오세력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 회원은 참여자 모두가 법적 지식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법률적인 대변이 필요하다고 하기도 했다. 또한 이에 대해 법 대응은 집회규모에 맞게 변호인단이나 대응팀을 꾸려야하며, 참여자들은 대응 메뉴얼을 숙지하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 방어

만오천명이 나오는 집회에서 개개인의 행동을 다 파악할 수는 없다. 그 자리에서의 언행을 우리 스스로 비판할 순 있어도 그게 혐오세력에 의해 악의적으로 이용되고 편집되는 것은 막아야한다. 그들은 우리의 단면을 왜곡시킨다. 그들은 우리가 턱시도를 입고 나와도 남성끼리 턱시도 입었다고 욕할 것이다. 우리가 마음껏 즐기고 행동하기 위해 방어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 외 의견들

- LGBT+@의 힘이 더 커져야 한다.

- Media Channel, 언론

- 그들이 못하게 하는 건 다 할거다! 차별금지법! 혼인평등! 내 권리 내가 찾아서 엿먹일거야.

- 확신, 논리, 자신감, 연대

- 자긍심과 연대

- 연대세력

- 성소수자 세력화(정치?)

- 혐오를 이기는 것은 조직된 힘이다.

- 프렌들리한 이성애자 그룹을 더 만들어야 한다.

-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확신

- 미쳐야 한다.

- 사랑, 愛, kiss, sex, 뽀뽀쪽, hug, あい, ドキ, わく!

- 문화적인 움직임

- 당당함

- 아웃팅으로 못나오는 벽장들도 온라인으로 함께 행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