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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왕언니의 결혼을 축하하며

by 행성인 2015. 6. 10.

수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편집자주] 지난 2015년 5월 23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구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사무처장을 역임했던 오랜 회원인 여기동(프랜시스 까야사)회원과 필리핀에서 온 이주노동자 찰스 까야사의 결혼식이 있었다. 이날 행사는 양가 친지들과 섬돌향린교회 교인들, 행성인 회원들이 모여 재단법인 인권중심 사람에서 조촐하게 치뤄졌다.


기동이형의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기동이형과 찰스에게 어릴적부터 지금까지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사실 ‘왕언니결혼추진위원회’ 카톡방에 결혼식 며칠 전까지도 삼일에 한 번씩 새로운 요구사항을 던지는 기동이형이 미운 적도 있었는데(정말로 밉진 않았어요^^), 두 사람이 보내 준 예전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웃음만 나오더군요.



사실 저는 결혼식 준비는커녕 참석해본 적도 별로 없었습니다. 식순이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고, “화촉점화”라는 말도 이번에 처음 알았을 정도니까요. 그만큼 결혼은 저에게 먼 것이었나 봅니다. “나도 결혼 할 수 있어!”하고 마음 속 굳게 믿고 있었지만 그게 현실적인 고민이 되진 못했던 것 같아요.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결혼을 빼면 아는 사람의 동성 결혼식엔 참여해 본 적도 없습니다. 가 본 결혼식이라곤 이성 커플의 결혼식 뿐인데,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결혼이고 제가 그 두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도, 항상 마음 속 한 구석에선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난 이런 결혼식은 할 수 없을 거야’하고 말이죠.


기동이형은 삶이 투쟁인 사람이라(^^) 이 결혼식이 “동성결혼식”이라는 것을 내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저는 기동이형의 결혼식이 특별히 “동성결혼식”이라고 느껴지진 않았어요. 제게 기동이형의 결혼식은 그저 기동이형의 결혼식이었습니다. 기동이형과 찰스가 살아온 삶이 만나는 자리이자, 두 사람의 옆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삶을 축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자리였습니다. 삶이 투쟁인 사람이기에, 그 삶을 정말로 축하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기동이형의 결혼식에 다녀온 날은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기동이형에게 축하해주면서, 저도 축하 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 삶도 축하 받을 수 있구나’하고 말입니다.


기동이형은 동생들과 이야기하며 아기 같은 웃음을 짓다가도 “호모포비아들을 박살내자!(순화한 표현)” 같은 거친 투쟁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내는, 누구라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우리의 왕언니이기에, 이 결혼을 준비하는 건 정말로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우리 왕언니는 행복하게 잘 살 겁니다.


찰스! 기동이형을 잘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