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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향 · 성별정체성/여성 성소수자

성소수자 인권 빼앗아 모든 이들의 평등 빼앗겠다는 치졸한 여성가족부

by 행성인 2015. 10. 13.

노동 운동하는 레즈비언 이경

 

테마송♪ - 내가 왜 (꽃다지)

 

10월 10일 대한문에서 개최된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에서는 6명의 연사들이 성소수자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과 존재를 외쳤습니다. 행성인 웹진에서는 이들의 발언을 게재하고자 합니다. 다양한 세대, 다양한 성적지향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여성으로 연결되는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봅시다. (무대에서 발언 당시 각각의 연사마다 테마송이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테마송을 들으며 발언문을 보면, 연사들의 발언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위 테마송 링크를 클릭하시면 해당 노래의 유튜브로 연결됩니다.)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스케치 바로가기

 

 

 

저는 민주노총에서 일하는 여성 동성애자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운동권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집회와 행진을 사랑하고 깃발이 펄럭이면 가슴 뛰는 운동권입니다. 무지개깃발이 펄럭이면 물론 더욱 짜릿하지요. 혹자는 제가 노동자풍 레즈비언을 좋아해서 노동조합에서 일한다고도 하지만, 저는 노동자들이 행복한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서 노동운동을 합니다. 지금같이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득중 지부장이 40일 넘는 단식을 하고, 수백 일을 옥상과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하고, 그보다 더 많은 이름 없는 노동자들이 죽어야 되는 세상은 아주 소수의 잘 먹고 잘사는 인간들을 빼면 모두에게 행복할 수 없는 세상이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그런 노동자들을 만나고 조직하고, 이 사람들을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합니다.

 

작년 겨울 서울시청농성을 기억하시나요? 농성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옆집인 파이낸스센터 고공농성 중인 씨엔앰 노동자들이 연대하러 왔었지요. 그 뒷이야기를 얼마 전 들었습니다. 이 노동자 동지들은 동성애자인 제 이야기를 들으러 어떤 모임에 방문한 같은 노조 조합원들이었어요. 처음 성소수자들에게 연대방문 갈 사람들에게 자세히 설명을 하지 않아서 뭔지 잘 모르고 온 조합원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몇몇 동지들이 문제를 제기했지요. 그런데 한 동지가 자분자분 우리가 싸우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돌아가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우리랑 똑같네.”, “다르지 않네.” 하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결국 단 한사람도 돌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듣자니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와서 우리에게 나쁘게 대하는 것을 보면서 더욱 자신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처음에 들려드린 노래가 그런 내용입니다. 자신이 당한 인간 이하의 취급, 헌신짝처럼 내버려지고, 비정규직이라 차별받는 것이 억울해 농성을 시작한 노동자들이요. 밤깊은 길거리에서 잠을 청합니다. 도무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낯설고 불편한 사람들의 시선에 몸도 마음도 쪼그라붙습니다.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 여기 이곳에 있는 걸까요. 여러분도 살면서 그런 생각 해보셨지요?

 

 

저는 그 동지에게 제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저도 그렇게 세상에 농락당한 채 무기력하게 세상에 내버려져 있었던 것 같았던 때에 대해서 말이죠. 제가 여러 번 이야기한적 있어서 많은 분들이 아실지도 모르겠어요. 저의 예전 파트너는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그때 사방이 가로막힌 고공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어요. 우리는 돈이 없었고 저는 매일매일 치료비를 걱정했지요. 그녀의 가족도 나쁜 사람들만은 아니었을 텐데 이상하게 저를 존중해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매일같이 보호자가 되어 데리고 다닌 병원에서도 제가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알려주려 하지 않았어요. 그녀의 장례식장에서도 저와 제 친구들은 이방인이었고 그녀의 실제 삶에 대해선 숨을 죽였습니다. 대신 한번도 본적 없던 가족과 친척들이 그 자리를 점하고서는 이런 얘길 했지요. “결혼도 안한 젊은 여자가 죽으면 원래 장례도 안 치르는 법이다” 결국 그들은 저를 속였고 저는 화장터에서 그녀와 영원히 이별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지금도 그녀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추모할 기회를 빼앗겼고 저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너 때문에 애가 이렇게 됐다”는 이야기 속에 침묵했습니다.

 

결혼도 안한 젊은 여자는 여자가 아닙니까. 결혼도 안한 젊은 여자들이 서로의 애정과 신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돌보고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존중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까. 왜 우리는 그 때 싸우지 못하고 숨을 죽여야 했을까요? 저는 그런 과정을 겪으며 인간의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 존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리 사회는 인정할만한 사람과 아닌 사람을 나누어 죽음에도 순위를 매기고 결국 차별받는 사람들의 시신은 처리해야할 살덩이가 된다는 사실을 그 때 깨달았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내가 차별받지 않고서 어떻게 얻었다는 것입니까? 저는 정말 여가부가 주장하는 평등의 자격에 미달하는 사람입니까?

 

제가 민주노총에 들어오고 나서 가족수당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민주노총은 그 전까지 평등한 임금체계에 대한 논의가 오히려 내부로는 미흡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도 결혼 바깥의 사람들에게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던 과거에서, 동성을 포함한 다양한 가족들이 일종의 신청을 하면 지급하는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민주노총 규약은 동성을 포함한다는 것을 명시했습니다. 규약개정을 심의했던 산별노조와 지역본부의 대표자들 모두가 민주노총이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공유하게 된 순간입니다. 이와 더불어 이성가족이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수당에서 제외되었던 동료들도 수당을 받게 되었습니다. 때로 성소수자 권리를 위한 변화는 성소수자를 넘어서는 권리 변화를 내포합니다. 간단하지요. 우리의 권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서 노동자 동지는 자기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합니다. 왜 사람들이 동성애를 혐오하는지 말이지요.

 

 

노동자들은 변합니다.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변합니다. 그런데 결코 변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저 같이 노동자 투쟁을 조직하고 성소수자들과 연결시키려고 하는 사람을 더러운 좌파라고 합니다. 우리의 연대를 좌빨과 동성애의 더러운 커넥션이자 국가 전복 세력이라고 합니다. 저는 여기에 굳이 논박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좌파가 맞고, 저더러 공산주의자라고 한들 자본주의자라고 하는 것보다 모욕적이지는 않습니다. 저야말로 민주노총에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 한명쯤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걸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그런 커넥션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요.

 

다만 저들 보라고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저는 민주노총에 있는 많은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봤으면 해서 들어간 것이니까요. 분명히 말을 거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누군가는 커밍아웃할 용기를 얻고, 누군가는 위안이 되고, 누군가는 그동안의 관념이 깨지고요. 그래서 좌빨과 동성애의 커넥션은 더 강화되어야 해요. 더 많은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나야말로 그런 커넥션의 요체인 것이라고 주장하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저들의 폭로가 모욕적이지요. 마치 좌빨들이, 노동자들이 더러운 성소수자들이랑 손잡지 못하게 해서 우리를 뿔뿔이 흩어놓으려는 수작 같지 않습니까?

 

 

여성가족부도 마찬가지지요. 양성평등에서 성소수자는 빠지라고 한 겁니다. 사람을 쪼개놓겠다는 건가 싶어요. 내 파트너는 여성 자동차정비사에요. 그녀가 다니던 사무직 직장을 그만두고 정비를 배워서 먹고 했을 때 나는 말리지 않았어요. 그의 말대로 우리 사회는 여성 노동자가 결혼도 하지 않은 채로 늙어가기엔 꽤나 조건이 까다로운 사회 아니던가요. 부잣집 딸이 아닌 이상, 고소득 전문직, 장관, 또는 대통령이라도 하지 않으면 평범한 노동자로는 살아남기 힘든 사회 아닌가요? 40대 중반쯤에 기술도 없이 벼랑으로 내몰리느니 재밌어하는 일 하면서 고되더라도 기술직이 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거지요. 그런데 제 파트너는 정비소에 들어가서 더 자주 자신이 여성임을 느낀 것 같아요. “여자가 이런 일해도 되냐”는 물음과 “여자니까 일을 못할 거”라는 편견과 “남잔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합니다. “하이힐 신고 일해라” “그래야 우리가 보는 재미가 있지”라는 말도 듣지요.

 

결혼제도 바깥에 있는 성소수자가 제도에 속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하기 위해 정비사에 도전한 게 그리 잘못이란 말입니까? 여가부는 그렇게 양성평등을 외치고 성희롱을 근절하자면서, 왜 레즈비언을 향한 차별에는 침묵하겠다는 것입니까? 레즈비언들의 경제상황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것은 무엇으로 인한 차별 때문이란 말입니까? 도대체 무엇이 성소수자로 받은 차별이고 무엇이 여성으로만 받은 차별이란 말입니까? 여가부는 이런 질문에 납득가능하게 답할 수 없다면 자신들의 입장을 거둬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노동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정규직 이기주의 타령을 하면서 노동개악을 밀어붙일 때 더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초단시간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로 먼저 내몰리기 때문에, 거기에 우리 성소수자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운동을 하는 겁니다. 쉬운 해고가 도입되어서 사장 맘에 안 들면 저성과자 낙인찍어서 해고할 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더 쉽게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노동개악에 반대하는 겁니다.

 

박근혜정부와 사장들은 트랜스젠더 여성 노동자가 반월공단의 어느 공장에서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라는 것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그건 함께 트랜스젠더 노동자의 문제이자 여성노동자들의 문제가 됩니다.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문제는 동료 노동자들이 훨씬 더 잘 이해합니다. 우리는 같은 요구를 걸어야 하고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노동운동과 성소수자운동은 만나야 합니다. 양성평등에 성소수자가 포함되지 않는다며 여성과 성소수자 사이를 가르려고 하는 자들이야말로 우리들이 함께 하지 못하도록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것이겠지요.

 

 

저는 여성노동자들이 차별적인 대우에 침묵하지 않고 양성평등을 주장하며 투쟁한다면 그건 그대로 박수치며 함께할 것입니다. 그 노동자들은 차별받아 억울하고 화가 났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등은 어쩌면 여가부가 쓸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더 이상 차별에 억눌리지 않고 내 삶을 찾겠다고 나서는 여성노동자들이 어떤 언어로 자신의 부당함을 표현하건 저는 지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거기에는 적어도 누구는 빼야한다는 알량한 계산과 편견이 쩔어 있지 않습니다.

 

메카시즘이 몰아치던 시대에는 성소수자만 당한 게 아니었습니다. 성적 보수주의와 가족주의가 강화되며 여성들의 자유는 빛을 잃었고 다시금 집안으로 끌려들어가야 했습니다. 성소수자는 직장에서 해고되고 다시금 벽장 속에 갇힌 시대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가부 저들의 주장은 여성이라도 보호하겠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양성평등에서 성소수자가 빠지는 것은 성소수자 여성들이 빠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들의 권리와 삶을 후퇴시킬 것입니다. 우리가 기죽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갑시다. 분명히 모두를 위한 인권의 베이스캠프가 이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