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롱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소나무 숲이 둘러쳐진 집에서 시인 이적요는 한은교를 처음 만났다. 이적요는 은교가 자신의 데크 위에 '놓여져' 있었다고 묘사한다. 이 소설 속에서도 은교는 '놓여져' 있는 존재다. 이적요와 서지우가 주도하는 서사 속에 은교는 놓여져 있을 뿐, 소설의 주 서사 속에서는 역할이 없다. 은교는 두 남자에 의해 창조되고 소비되는 이미지로서 존재하며 두 남자의 시야 밖에서는 의미를 얻지 못한다. 두 남자가 분출하는 끓어 넘치는 감정 사이를 가볍게 표류하는 은교는 누구였을까.
 
이적요에게 은교는 영원한 처녀, 순결한 신부였다. 늙은 시인이 첫 만남에서 묘사한 은교는 젊음 그 자체다. 이적요는 소설 전반에 걸쳐 처음에는 은교에게 성욕을 품지 않았다고 말하나 묘사는 솔직하다. 그는 은교의 젊음, 젊음을 드러내는 몸에 끌렸음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은교를 향한 애정과 성욕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것은 은교에게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덧씌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성적 주체성을 가지지 못한 소녀인 동시에 도발적인 맹랑함을 가진 처녀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그는 서지우와 은교의 성적인 접촉을 여러 번 목격했지만 시인은 그러한 접촉을 서지우의 일방적인 약탈이라고 주장한다. 이적요는 처녀가 아닌 은교, 섹스에 능동적인 은교를 견딜 수 없다. 그가 말했듯이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믿어야 했다. 그 믿음을 위해서라면 시인은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한 은교를 ‘약탈당하는 처녀’로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서지우는 이적요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나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이적요를 따라 문학에 입문했으나 재능이 없었으므로 하릴없이 문학계를 서성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적요가 대필해준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됨으로써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달려가게 된다. 서지우에게 은교는 그가 유일하게 스승을 이길 수 있는 점인 젊음과 남성성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은교가 “할아부지”와 자신을 비교하는 말들에 상처를 입자, 자신을 견제하는 이적요를 배신한다. 그는 소녀 은교의 마음을 포착하지 못하는 동시에 스승을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그 역시 자신이 은교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스승을 향한 반발심이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은교는 대체 누구였을까? 온갖 문학적 인용구와 묘사 사이에서 표류하는 은교가 어떤 사람인지 소설의 서사만 따라가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소설 속의 은교는 두 남자에 의해 상세히 묘사되지만 그 묘사는 그녀의 이미지를 왜곡시키며 자신들의 입맛이 끼워맞출 뿐이다. 은교는 서사를 이끄는 인물보다는 소설의 주 서사에 필수적인 소설적 장치처럼 보인다. 서사를 이끌어가는 인물로서의 개성을 전혀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치가 좋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집에 걸쳐진 사다리를 타고 넘어가 잠이 들 정도로 무방비하지만 시인과 그 제자 사이에 일어나는 격랑 사이에서 파멸하지 않고 유유히 표류하는 열일곱 소녀라니 소설 속 인물이라도 지나치게 현실성이 없다. 지나가며 몇 번 봤을 뿐인 “낯익은” 모르는 사람의 차에 올라타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가 자신을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에 열을 올리는 두 남자 사이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순수하지만 능란하고, 맹랑하지만 사려 깊은 소녀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진부하다. 은교는 서사를 떠도는 “순수한 팜므 파탈”이라는 아이콘일 뿐이다.
 
이적요는 은교의 순수하고 영원한 처녀, 순결한 신부라는 이미지에 집착한다. 서지우가 대학생이 된 은교와의 관계를 상상할 수 있는 반면에 이적요는 은교와 연인으로서의 관계를 상상하기 어렵다. 상상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상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시인은 은교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의 첫사랑 D에게서 평생동안 벗어나지 못했고 그 이후로 그가 사랑했거나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든 여인들 에게  D의 이미지를 드리웠다. 은교 또한 예외가 아니다. 시인은 은교의 이마가 D의 이마에 “혼인반지만큼, 꼭 들어맞는”다고 묘사한다. 이적요가 평생 좇아온 것은 D의 이미지뿐이다. 그는 은교에게 D의 이미지와 어리고 순수한 소녀, 영원히 젊고 깨끗한 처녀의 이미지를 씌워 알 수 없는 것, 영원한 처녀, 존재하지 않는 여인을 만들어 사랑하려 했다. 그가 사랑한 이미지는 은교가 아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미지만을 좇았을 뿐이다.
 
소설 속의 은교가 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한 적이 없기에 독자는 은교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서지우와 이적요 또한 은교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위태로운 토템을 만들었다. 서로의 손을 빌리지 않으려 애썼지만 결국 서로의 영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둘은 은교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온갖 모순된 이미지들 사이에 가두려 했으나 은교는 그 사이를 빠져나간다. 은교를 사이에 두었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관계는 사실 언제나 둘만의 관계였으므로. 그 둘이 오히려 자신을 따돌린 것 같다고 은교는 말했다. 문학적 공감과 공범자의 내밀함을 공유한 그들 사이에 있던 은교는 둘 중 누구와도 우정이나 친밀함은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적요와 서지우,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은교라는 상像을 탐하다 공멸했을 뿐 은교라는 인물에게는 전혀 가까워지지 못했다. 그들의 시야 밖에서 은교는 평범한 고등학생, 대학생이었을 것이다. Q 변호사의 눈이 대변하듯이 은교는 그저 “평범한 대학생”이다. 포착되지 않는 주체에 대한 설명으로서는 가장 명확한 셈이다.

 

 

  1. 잉여킹
    2016.01.10 12:57 [Edit/Del] [Reply]
    솔직히 말하자면 종군위안부 소녀상을 바라보는 대중적 시선, 그리고 그 소녀상의 이미지에 새겨진 모습들을 보면 이 글에서 시인이 생각하는 은교와 다를 바가 없어서 썩 좋아보이진 않네요.

    '섹스에 능동적이고 순결하지 않은 10대 소녀'는 견딜수가 없으니 '순결한 소녀상'을 만들고, 정작 중요하지도 않은 '자발성' 에 집착하며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었다고 위안부 '노동자' 들의 인권이 무시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금도 소녀상을 안고 고집 피우는 그들의 모습이 썩 보기 좋지는 않아요.
  2. 잉여킹
    2016.01.10 13:00 [Edit/Del] [Reply]
    다만 저 자신은 은교의 '순수한 팜므 파탈' 이미지의 실제 여성들을 몇번이고 보아왔기 때문에 (아이유 제제 논란도 어떻게 보면 그런 이미지에 대한 옹호와 반발로 볼 수 있겠죠) 그다지 현실성 없는 이미지라는 이 글의 해석에는 다소 반발이 오네요. 물론 은교 소설을 보질 못했기에 소설에서의 묘사가 부족할수는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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